여성의 몸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거부한다!
-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인공임신중절을 포함시키는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을 중단하라! -
보건복지부가 모자보건법을 벗어난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하는 의사에 대한 자격정지 기간을 12개월로 늘리는 내용이 포함된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미 형법 269·270조에서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한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조치는 이중처벌의 소지가 다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산부인과 의사들을 볼모삼아서라도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고 한다.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국가의 입장은 정권에 따라 상이한 듯 보이지만 결국 언제나의 핵심은 ‘적절한 수준의 인구 유지’였다. 산아제한이 시급하다고 여겨졌던 1970년대에는 소위 가족계획정책의 일환으로 할당량까지 책정하면서 국가 차원으로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하더니, 1990년대 이후에는 저출산이 문제가 되자 태아의 생명권을 구실로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대대적인 처벌에 나서기 시작했다. 여성의 몸을 ‘인간의 몸’이 아니라 상품의 수요·공급 상황에 따라 가동률을 조정할 수 있는 기계처럼 신생아의 수를 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또한 정부는 인공임신중절이 저출산의 주 원인 중 하나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 반대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의미의 ‘3포 세대’라는 유행어가 보여주는 것처럼 저출산은 그 자체로서 문제라기보다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만연하고 주거비·의료비·양육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소위 ‘헬조선’이라는 문제의 결과이며, 사람들은 이런 헬조선에서 임신과 출산을 포기할 따름이다.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는커녕 노동개악으로 저질 일자리를 양산하고 민영화를 통해 사회서비스 비용에 대한 부담을 증가시키면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점점 더 아이를 낳고 기르기 어려운 사회를 만들고 있다. 이 마당에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여 여성들이 어떻게든 아이를 낳기만 하면 된다는 발상은 뻔뻔하면서도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하는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임신중절을 비범죄화하여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또 하나의 생명이 자라도록 할 것인지 아닌지를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려나가고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여 여성이 출산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처벌 강화 방안에 대해 지난 10월 15일 보신각 앞에서 진행된 ‘검은 시위’를 비롯한 사회적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보건복지부는 “불법 낙태수술에 대한 행정처분 기준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관련 법령은 입법예고 중으로 구체적인 행정처분의 대상 및 자격정지의 기간은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적으로 확정할 예정”이라며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우리는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 시도를 당장 집어치울 것을 요구한다. 또한 인공임신중절을 범죄로 규정하면서 자신의 몸에 대한 여성들의 통제권을 짓밟는 현행 형법을 바꾸고 여성들이 출산과 양육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들을 만들어가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2016.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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