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존치 66년, 드디어 우리는 승리했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를 환영한다!
더 이상 ‘낙태죄’는 없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69조 1항인 자기낙태죄 조항과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인 의사낙태죄조항이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선고하였다. 이번 헌법불합치 선고로 66년 만에 한국 형법상의 ‘낙태죄’는 그 의미를 상실했으며, 형법상 낙태죄의 허용한계를 규정해 온 모자보건법 제14조도 마찬가지로 현재와 같이 존속될 이유가 없어졌다.
‘낙태죄’의 역사는 경제 개발과 인구 관리의 목적을 위해 생명을 선별하고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을 통제해 온 역사였다. ‘낙태죄’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낙태죄’는 국가의 필요에 따라 낳을 생명과 그렇지 않은 생명을 구분해 온 법이었다. 1960-70년대, 국가는 산아제한 정책의 하나로 ‘낙태버스’를 운영하며 여성에게 ‘낙태’ 시술을 권유하였다. 2000-10년대, 국가는 저출산 정책의 연장선 상에서 ‘낙태죄’를 강화하여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였다. 이처럼 국가는 시대에 따라, 필요에 따라 제멋대로 ‘낙태죄’를 적용해오며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재생산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해왔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선고는 그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여 왔던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중대한 결정이다.
‘낙태죄’ 폐지는 투쟁으로 가능했다!
‘낙태죄’ 폐지는 헌법재판소의 주문 몇 문장으로, 헌법재판관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0년 낙태 고발 정국에서부터 용기 있게 임신 중지 사실을 알리며 임신 중지와 ‘낙태죄’의 현실을 알린 여성들, 2017년 ‘낙태죄’ 처벌 강화를 반대하며 검은 시위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들, 2018년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가한 23만 명의 시민들. 우리가 없었다면 또다시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낙태죄’는 존치되었을 것이다. 집에서, 학교와 직장에서, 거리에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나선 우리의 투쟁이 없었다면 오늘의 판결도 없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우리의 투쟁은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라고 외치며 ‘낙태죄’를 통해 국가의 인구를 통제해 온 역사, 여성에게 재생산 비용 및 책임을 전가해온 역사를 드러낼 수 있었다. 또한 우리의 목소리는 그동안 가려져 왔던 여성들의 임신 중지 경험과 그 실태를 드러내었다. 건강을 위협하는 시술을 감내해야 하고, ‘낙태한 여성’이라는 차별, 낙인, 그리고 처벌까지 감당해야 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거리를, 광장을 메웠다. 우리의 목소리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요구하고, ‘낙태’에 대한 사회적 차별, 낙인, 그리고 처벌을 없애야 한다는 더 많은 우리의 목소리로 커졌다. ‘낙태죄’ 폐지는 자신의 경험과 현실을 드러내고 싸워 온 수많은 여성들과 이들의 용기에 응답하여 함께 싸워 온 모든 우리가 이루어낸 역사적 승리이다.
또 다른 시작이다!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하라!
우리는 이제 또 다른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 낳을 권리 그리고 낳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제는 사회 모든 구성원의 성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와 국회의 손에만 우리의 삶과 권리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보장하는 사회, 포괄적 성교육을 보장하는 사회, 마음 편히 양육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이 마련된 사회,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여성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며 합당한 임금과 노동조건을 제공하는 사회, 보육과 가사노동이 여성의 일로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회. 여성의 재생산권을 완전히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더욱 가열 찬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을 요구하며 사회를 바꿔내는 우리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거리와 광장을 메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