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문제. 보다 근본적이고 폭 넓은 접근이 절실하다.

- 아동성폭력 사건에 분노하는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 -

지난 8월 말 전남 나주에서 일어난 아동 납치․성폭력 사건은 한국사회를 또 다시 충격 속에 빠뜨렸다. 사건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가해자에 대한 극렬한 분노를 느끼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인터넷과 SNS 공간에 표출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충격적인 아동 성폭력·살인 사건은 최근 몇 년간 꾸준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그때마다 전 사회적으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아동에 대한 성폭력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성폭력․살인사건의 보도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8월 말 이후 현재까지, 포털사이트 메인마다 연일 성폭력 관련 기사가 자리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대부분은 헤드라인부터 기사 내용까지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사건의 전말을 가십거리 정도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수없이 많은 충격적 성폭력 사건들의 사례들을 수집하고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근본적으로 대안을 고민하는 자세이다.

그동안 이런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많은 국민들이 가해자에 대한 더 높은 형벌을 요구했고, 실제로 전자발찌와 가해자 신상공개는 현실화되었다. 그럼에도 성폭력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가해자에게 더 높은 형벌을 가하는 것이 성폭력 사건을 줄일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을 조심스레 추론해볼 수 있다. 물론 전자발찌와 가해자 신상공개 같은 방안이 아직 제대로 정착되고 확대되지 못해서 그렇다는 주장이나, 이전보다는 가해자 처벌이 엄격해지기는 했지만 아직은 너무 약하기 때문에 효과가 미약하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화학적 거세(성충동 약물치료)’나 사형이 거론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화학적 거세는 이미 성폭력 가해를 저지른 자의 재범 방지에만 의미가 있을 뿐 끊임없이 새롭게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한 대책은 전혀 아니다. 그마저도 실효성이 아직 명확히 입증되진 않았다는 점도 문제이다. 실질적 사형의 부활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전 세계적으로 민주화된 국가의 대부분에서 실질적으로 사형이 폐지되었다는 추세에도 반하며 그동안의 인권의 역사를 한 순간에 돌려놓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가해자를 ‘인간’으로 볼 수는 없다는 주장은 당장의 분노를 푸는 수단이 될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어떤 인간이나 권력에게도 ‘타인을 살인할 권리’는 없다는 보편적 진리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다.

성폭력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상담·해결과 사례연구, 대안논의를 해온 여성운동계에서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책과 대안이 가해자의 형벌에만 집중해서 다뤄지는 것을 비판한다. 그동안의 꾸준한 문제제기의 성과로 최근 각계(경찰, 국회, 여성가족부, 법무부 등)에서는 이러한 문제제기를 반영하여 다방면의 대책을 내놓고 있는 듯하다. ‘특정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산발적으로 다루고 있는 기사들 이외에, 성폭력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다루는 기사들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이 대책들을 살펴보며, 표면적 해법에 그치지 않고 보다 근본적이고 폭 넓은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할 것이다. 경찰에서 내놓고 있는 ‘한 달간의 집중 치안 강화’와 같은 대책은 지금껏 반복되어왔던 반면 그 효과는 굉장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기대를 걸기 어렵다. 국회는 ‘아동·여성대상 성폭력 대책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가결시켰는데, 오는 12월9일까지 가해자 관리 뿐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복지차원에서의 체계적 지원’,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의 강화’ 등 다각적인 대책 마련을 논의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는데 성폭력 피해자 지원 강화가 주요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 대상을 피해자 가족까지 확대하고, 성폭력 피해자 지원센터 확충, 의료비 지원 절차 간소화를 계획하고 있다. 국회와 여성부의 이런 움직임은 환영할만한 부분인데, 말 뿐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책이 반드시 마련될 수 있도록 지켜보아야 한다. 법무부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친고죄 조항의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여성운동이 꾸준히 주장해온 바로, 이 또한 실현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동성폭력과 성인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공통점은, 피해자가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대상’, ‘가해자의 욕구충족의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아동성폭력의 원인을 아동포르노나 소아성애증으로만 볼 수 없고, 성인여성보다 더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대상을 찾은 결과라는 견해에 주목해보자. 한 사회의 평등한 인간/시민으로서, 누군가를 폭력 행사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은 사회적·문화적 경험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사회구성원들이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길러질 수 있도록 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 사회가 남성의 성욕을 다루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해자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일상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성욕과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나 권력관계에는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아예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조차 인식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고 당연한, 그렇기 때문에 당당한 것인 반면 여성의 성은 그렇지 않다.남성들이 포르노를 보는 것은 당연하다. 술 취한 여성은 경계심을 늦춘 것이기 때문에 남자가 마음대로 해도 되는 대상이다.’와 같은 생각들은 우리가 은연중에 당연하게 생각하고 종종 농담이나 개그의 소재로 다뤄지기도 하는 이야기들이다. 성폭력 문제를 비판하는 인터넷 기사들의 배경에 여성 연예인에 대한 자극적 기사들과 여성 신체의 특정 부위를 부각시킨 인터넷 광고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남성들의 일방적인 성욕 표출과 여성에 대한 대상화를 재생산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성폭력사건들은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공포를 증폭시키며 여성스스로가 더 조심하고 더 경계하며 일상을 옥죄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여성들에게 전혀 해방적이지 못하다. 우리에게 남아야 할 것은 여성의 권리를 인식하고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교훈이다. 여성과 남성 간에 존재하는 권력의 차이와 폭력들을 세심하게 바라보고 바꿔나갈 수 있는 사회적 담론과 실천들이 필요하다. 반복되는 실패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전진하기 위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근본적 대안으로의 ‘방향 전환’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