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계는가능하다

다세가.jpg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48호] 더 자극적이게, 더 선정적으로, 성폭력 사건의 '소비' 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작성자 : 전국학생행진
Date : 2013-04-03 15:31  |  Hit : 4,567   추천 : 0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48호] 성폭력 사건의 \'소비\'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hwp (283.0K) 다운 55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48

 

더 자극적이게, 더 선정적으로,

성폭력 사건의 소비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성폭력 사건의 스펙터클, 그리고 대중적 소비

    지난 2, 연예인 지망생 A양이 탤런트 박시후 씨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면서 시작된 박시후 사건은, 드라마 출연 중 인기가 아주 높아진 스타 연예인이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 파장이 가시기도 전에 3월에 헤어디자이너 박준 씨가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었고, 연이어 연예계의 성상납 루머에, 인권운동가 고은태 교수의 성희롱 발언, 사회 고위층의 성접대 동영상 파문이 터졌다. 이런 유명한 사건들 외에도, 이름 모를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포털사이트를 오르내리고 있다.

noname01.jpg

    이렇게 매일같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성폭력 사건 보도를 보다보면, 우리는 가히 성폭력의 스펙터클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미디어가 성폭력 사건들을 더 선정적으로 보도할수록, 사람들은 더 자극에 지치고, 익숙해진다. 이 스펙터클 속에서 성폭력 사건은 가벼운 가십거리가 되고, 전국민 드라마가 된다. 박시후 사건만 보더라도, 피해자 A양이 지인과 나눈 카톡 메시지, 약물 검사, 합의금 요구, 전 소속사의 음모론, 거짓말 탐지기 등의 조사 상황이 미디어에 의해 웬만한 추리소설보다 더 재밌게 각색되어 전 국민에게 보도되었다. 이를 보며 사람들은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에 대해 수다를 떨 듯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해자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탐정이 된 것처럼 사건을 이리저리 추리해본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중적 통념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재생산된다.

  

진짜 피해자, 진짜 가해자 찾기

 noname02.jpg

    박시후 사건에서 사람들은 피해자 A양이 지인과 나눈 카톡 메시지에서 합의금에 대해 대한 내용을 보며 A양이 박시후의 돈을 노리고 접근한 꽃뱀이라고 공격하기도 했고, 한편에선 박시후도 아무 여자나 불러서 자는 더러운 놈 아니냐고 욕하기도 했다. 고은태 사건에서도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평소 분위기를 추측해보라며 고종석 씨가 피해자가 과거에 트윗에 올린 성적인 글들을 리트윗하기도 했고, 한편으로 가정도 있고 인권운동도 했던사람이 변태적인 말을 했다는 것에 사람들이 충격받기도,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연예인 성상납 의혹을 보면서 사람들은 한편으로 소녀들의 꿈을 착취하는 검은 손을 비난하면서도, 그 여성들도 연예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성을 이용하지 않았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또 고위층 성접대 파문을 보면서는 윤리적이어야 할 사회 지도층이 저런 짓을 하다니 원래 썩은 건 알았지만 진짜 더럽네 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름 모를 극단적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선 가해자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형량을 늘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렇게 사건마다 다양하고, 서로 모순적이어 보이는 반응들은 사실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성에 대해 순수하고 까지지 않은연약한 여성이어야 피해자로 인정되며,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으슥한 밤에 자신의 변태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성들을 덮치는 음흉한 싸이코패스여야 한다는 관념이다. 이러한 피해자-가해자의 전형에 맞는 성폭력 사건일수록 사람들은 이를 성폭력 사건으로 받아들이며,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 사건엔 뭔가 숨겨진 다른 게 있을거야...’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피해자의 평소 행실을 캐내며 혹여나 성폭력 피해자가 성적으로 문란하진 않은지, 성을 이용해먹으려는 꽃뱀이 아닐지 의혹을 제기한다. 또 가해자에 대해선 어떻게 가정이 있는 사람이, 인권운동가가, 이미지 좋은 유명 연예인이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될 수 있냐, 평소에 사회생활 잘 하던 사람인데 그럴 리가 없다, 뭔가 음모에 휘말린 것은 아닐까, (성폭력 사실이 명확한 경우) 술에 취해 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결국 쟤도 더러운 변태였다는 식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명백한 성폭력 사건일 경우, 이제는 가해자를 악마화하며 사회에서 매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짜 피해자, 진짜 가해자에 대한 대중적 관념에 기반을 둔 담론들 하에서 성폭력 사건은 사회적 현실과 분리되어 철저한 개인만의 문제, 특수하고 지엽적인 이벤트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성폭력 사건의 스펙터클화 속에서 재생산되는 대중적 담론들은 성폭력 사건의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 바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삭제한다. 피해자는 사건의 맥락 속에서 자신이 뭔가 성적으로 피해를 받았다고 느꼈기에 신고를 한 것이다. 그런데 고은태 사건에서 보듯, 피해자가 행여 과거에 문란한 행실을 보였다면 바로 너는 진짜 피해자가 아니고 괜한 사람 잡으려는 꽃뱀이다!’고 공격받는 사회적 조건에서, 피해자는 왜 자신이 본디 순수한 사람인지, 그에 비해 가해자는 얼마나 극악무도한 사람인지, 그래서 왜 내가 진짜 피해자이고 보호받아야 하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성폭력 사건 자체에서 무엇이 폭력적이었는지를 보고 해결하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며, ‘증명과정은 피해자로 하여금 계속 성폭력의 기억을 되뇌며 분노와 상처, 무기력감 등의 감정에 스스로를 이입하게 만듦으로써 성폭력 사건의 진정한 해결을 방해한다.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피해자-가해자의 전형적인 이미지에 의해 사건을 재단하며 사건의 본질을 흐릴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정황을 보면서 피해자가 무엇이 피해라고 느꼈는지를 이해하고, 그 피해감이 발생한 맥락을 사회·문화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욕을 하지만, 아무도 그 피해자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고, 무엇이 자신의 몸을 성적으로 침해했다고 느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성폭력 사건에서 성적인 피해감이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분석하고, 이를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피해자가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인가 아닌가, 가해자는 정상인인가 변태인가, 그래서 피해자가 보호할 가치가 있냐 없냐로 논쟁하는 것보다 훨씬 건설적이며,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감을 치유할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이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성폭력 사건들이 매일같이 언론을 장식하는 상황 속에서, 누구나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성폭력이 사라지길 원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이 엄청난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일찍 귀가하거나 야한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 혹은 가해자를 더 강력히 처벌해서 그 미친놈들이 사회에서 활보하지 못하게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일반적으로 나오고 있다. 여성들의 공포와 가해자에 대한 분노에 동의하지만, 과연 여성들이 조심한다고, 가해자들을 더 강력히 처벌한다고 해서 성폭력이 사라질 수 있을까?

noname03.jpg

    위에서 살펴본 통념처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성폭력에 대해 야간에, 낯선, 성인남성에 의한, 낯선 장소에서, 강제로 끌려가, 강간피해를 떠올리지만, 사실 성폭력 사건의 대부분은 아는 사람에 의해, 익숙한 생활공간에서 발생한다. 낯선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너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게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성폭력 가해자가 소수의 일탈적 개인이라는 관념이 맞지 않으며, 오히려 성폭력 사건이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맞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다 싸이코패스인 것일까? 아니면 개인이 아닌 우리 사회의 문화 전반에 문제의 원인이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성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성폭력 사건의 책임을 가해자에게만 돌리고, 개인의 일탈로 몰아버릴 때, 우리 공동체는 괜찮다고 다독이며 책임을 면피하게 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자. 성폭력 사건의 기사와 여성들의 신체를 성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 기사나 광고가 함께 포털 메인을 장식하고 있는 현실, 회사나 학교 등 일상적인 장소에서 권력관계를 통해 교묘히 벌어지는 성희롱들, 이렇게 여성들이 공동체에서 살아가며 무언가 언짢음을 느끼게 하는 수많은 사회·문화적 맥락들이 존재한다. 개인을 악마화하기보다 이런 현실을 찾아보며, 성폭력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Total. 90
추천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82호] 국정농단 민생파탄 비선실세 정… 전국학생행진 2016-11-03 17082 0
54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48호] 더 자극적이게, 더 선정적으로, … 전국학생행진 2013-04-03 4568 0
53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47호] 불안의 시대. 평화로 가는 길은 … 전국학생행진 2013-03-16 2632 0
52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46호] 대학등록금, 바빌론의 탑 무너뜨… 전국학생행진 2013-02-27 3000 1
51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45호] 죽음이 일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전국학생행진 2013-01-16 2550 0
50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대선특집 마지막호] 18대 대선 분석과 … 전국학생행진 2013-01-01 4218 0
49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대선특집5호] 18대 대선, 그 이후의 노… 전국학생행진 2012-12-17 2120 0
48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대선특집4호] 야권단일화에 담기지 않… 전국학생행진 2012-12-04 2066 0
47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대선특집3호]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전국학생행진 2012-11-02 1905 0
46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44호] 빈곤의 사슬, 부양의무자 기준 폐… 전국학생행진 2012-10-17 2096 0
45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대선특집2호] 고등교육정책비판 전국학생행진 2012-10-11 1787 0
44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43호] 성폭력 문제. 보다 근본적이고 폭… 전국학생행진 2012-09-14 1708 0
43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대선특집1호] 9월, 주목해야 할 것 전국학생행진 2012-09-13 1718 0
 1  2  3  4  5  6  7  8  
AND OR

신자유주의에 맞서 대안세계화로! 전국학생행진  |  이메일 stu_link@hanmail.net 맨 위로
정보공유라이선스 이 홈페이지에서 전국학생행진의 모든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선스 2.0 : 영리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