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길을 넓혀갑시다
- 희망버스의 승리를 알리며
희망의 버스는 그 모든 분노와 안타까움이 모여 만들어졌다.
누구 몇 사람이 기획하고, 제안한 게 아니다.
(………)
그들의 진정성이 희망의 버스의 엔진이었고, 주원료였다.
희망의 버스 승객들에게 드리는 글 중에서, 송경동
1) 단 한순간도 수많은 김진숙들이 질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지난 11월 10일. 309일을 지상 35m 상공에서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농성하던 김진숙씨가 드디어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정리해고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정면으로 붙어야 하는 싸움’이라는 말을 남기고, 정리해고가 철회되지 않으면 내려오지 않겠다며 괴물 같은 85호 크레인위에 올랐던 그녀였습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회사로 돌아가게 된 이 승리의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309일을 크레인위에서 농성한 김진숙 씨와 크레인 아래에서 수많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냈던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대책위원회가 있었습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를 막아내기 위해 전국에서 발 벗고 달려온 평균 승객 10000명이 넘었던 희망버스의 이름 없는 승객들이 있었습니다. 여름휴가로, 가을 소풍으로 부산으로 서울로 달려가서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를 외치며, 실제로 그것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던 승객들 말입니다. 한진중공업의 승리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강력한 사회적 압박을 통해서 거대 재벌기업에 맞서서 정리해고를 막아낸 명백한 ‘승리’입니다.
2) 우리 시대 평범한 모든 이들이 함께 살아 온 서러운 이야기
이 명백한 승리가 값진 것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온 우리들이 겪은 서러운 이야기들의 고리를 끊어낼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일상화된 정리해고에 맞서는 이들이,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학생들이,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야욕에 맞서 강정마을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이, 1%에 맞서는 모든 99%들이 모두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서러운 이야기들을 가지고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촛불을 들어도 변하는 것은 없어 보이고 삶은 점점 더 팍팍해져만 가고 아무리 투표를 잘 해보아도 끊어 낼 수 없을 것만 같던 쇠사슬에 처음으로 균열을 내는 승리를 만든 것 입니다.
하지만 균열을 낸 것에만 만족하기에는 우리 삶을 옥죄는 쇠사슬들은 여전히 너무도 튼튼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김진숙 씨가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던 승리의 날, 다른 한편에서는 쌍용자동차의 18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쇠사슬의 한곳에 균열을 내는 동안 다른 한곳은 우리를 더 강하게 옥죄어 온 것 입니다. 또한 쌍용차의 슬픈 이야기 말고도, 아직 희망버스가 싣고 달려가야 할 우리의 문제들은 많습니다. 비록 이번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막아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재벌대기업들의 정리해고, 날치기로 통과된 한-미 FTA를 타고 한국 경제 곳곳에 들어올 해외 투기자본들과의 싸움들 또한 아직 새내기버스에 불과한 희망버스가 싣고 달려가야 할 우리의 문제들입니다. 이 문제들이 남아 있는 한 새내기버스의 걸음마는 힘찬 뜀박질로 커져나가야 합니다.
3) 이제 김진숙은 잊읍시다.
희망이란 본디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고향」중에서
한진중공업의 어느 노동자는 희망이 없던 한진중공업 투쟁에 “희망버스가 와서 희망과 용기를 얻었고 승리할 수 있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희망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흩어져서 아파할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싸워나가면 거대한 구조에도 균열을 내고 끊어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김진숙씨는 309일 만에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와서는 이제 자신은 빠르게 잊어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빨리 잊고, 쌍용자동차로 가서 ‘죽음의 행렬’을 끊어달라고 했습니다. 김진숙씨의 말처럼 어쩌면 이제는 김진숙은 잊어도 좋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함께 달려나갈 수많은 김진숙들이 있고, 함께 승리를 만들어내고 함께 기뻐할 수많은 김진숙들이 이미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버스가 전국 각지에서 부산까지 달려오며 만든 희망의 길을 따라 다시 전국 각지로 퍼져나갑시다!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2011 연세대 실천단 [RISE UP!]
(문의 : 010.3399.5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