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 이후는 달라야 한다
- CJ E&M의 공식 사과에 부쳐 故이한빛 PD의 뜻을 기리며
무려 8개월 만에 CJ E&M은 드라마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故이한빛 피디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CJ E&M은 ▲책임자 징계조치, ▲회사 차원의 추모식, ▲이한빛PD 사내 추모편집실 조성, ▲고인의 뜻을 기릴 수 있는 기금 조성을 약속했다. 또한 방송 제작환경과 문화개선을 위해 ▲제작인력의 적정 근로시간 및 휴식시간 등 포괄적 원칙 수립, ▲합리적 표준 근로계약서 마련 및 권고 등 9가지 개선과제를 실천할 것을 약속했다. 유가족, 함께 가슴아파하며 애도한 수많은 시민들, 그리고 대책위원회에 참여한 여러 단체들이 아니었다면 그저 한 청년의 개인적인 죽음으로 잊혀져갔을 일이었다.
그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어서, 사회에 따뜻한 메시지를 던’지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싶’다며 드라마 PD가 된 사람이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스스로 자처했을 ‘하루 20시간이 넘는 노동’에 미안해하고, 어쩌면 열정이라며 두세 시간만 자고 일하겠다는 사람들을 오히려 안타까워했던 그였다. 스스로 가혹한 노동을 감내하면서도 자신이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아닌’ 사람임에 가슴아파하던 사람이었다.
또 그는 우리 모두였다. 한 해 630여 명이 과로로 산업재해 보상을 받으며 그 중 46%는 사망하는 나라에서, 그는 초장시간 일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아파하고 힘들어하던 사람이었다. 어느 직업, 어느 직군이건 저녁, 주말, 휴가를 모두 반납하고 일해도 ‘열정’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는 20~30대 청년 노동자들의 삶을 누구보다 앞서 미안해하고 슬퍼하던 사람이었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명백하게도 CJ E&M 산하 방송국에서의 초장시간 노동이었기에, 사람을 사람대접하지 않는 CJ E&M의 조직문화였기 때문에, 나아가서는 근로시간도 휴식시간도 명확하지 않은, ‘관행‘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 최소한의 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외주하청이 남발하는, 방송 산업의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뒤늦었지만 CJ E&M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환영한다.
바라건대 이제는 또 다른 한빛이 없어야 한다. 한빛 이후는 달라야 한다. 부디 하늘에서만큼은 故이한빛 PD가 편히 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CJ E&M 산하 모든 노동자들은 건강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드라마와 예능방송, 영화를 만드는 모든 노동자들은 충분히 휴식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의 어느 노동자라도 살기 위해 나간 일터에서 죽을 만큼 일하다가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 故이한빛 PD의 뜻을 기리는 길에 전국학생행진도 함께해 나갈 것이다.
전국학생행진
2017.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