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정치학적 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난 몇 주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박근혜의 정수장학회 발언이 일파만파의 격랑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와 자신은 아무 관계가 없다며 논란을 일축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박근혜의 역사관이 박정희 시대를 역사의 시공간으로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 채 아버지 기억에 매달려 있어, 비극이 반복될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박근혜의 당선이 곧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행이 아닐까 하는 국민들의 우려는, 비단 60년대 박정희 유신 독재가 2010년대 박근혜에게 오롯이 재현되어서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주장하는 100% 국민대통합에 분명 통합되고 있지 못하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즉, 새마을 운동을 통해 '국민총단결'을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을 탄압했던 박정희처럼, 통합과 발전을 앞세우고도 일반 민중들의 고통을 해결하지 않는 박정희의 ‘정치학적 딸’이 바로 박근혜 후보라는 것이다.
대선이 55여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주요 거리에 걸려있는 새누리당의 현수막이 눈에 띤다. 그 이유는 새누리당이 지난 총선 때 당명도, 로고도, 당을 상징하는 색깔도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다르게 설정해서 일수도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유난히 강조하는 국민, 민생, 통합이라는 것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너무나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의 ‘일자리문제’ : ‘비정규직도 차별 없이!’
박근혜 후보는 이번 대선의 뜨거운 쟁점, 경제민주화를 새누리당의 핵심 정책으로 설정하면서 그 중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일자리 문제 해결’을 꼽는다. 이는 “비정규직도 차별 없이!”라는 문구로 표현된다.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새누리당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차별’의 문제를 공약화한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비정규직 정책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내 그 실체를 드러낸다. 남한의 경제적 불평등, 사회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해 제시한 경제민주화와 그에 종속되는 비정규직 차별 정책에는 새누리당 자신이 강조하는 국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공정한 시장경제’를 꼽은 새누리당은, 문재인과 안철수 등 야당세력의 경제민주화가 주장하는 ‘재벌개혁’을 경계한다. 내부적으로는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김종인 위원장과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한구를 중심으로 발생한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당의 경제민주화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새누리당이 이렇게 허우적거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새누리당은 경제위기를 비롯하여 빈부격차를 해결할 방법을 그들 자신도 모른다. 재벌에 대한 문제제기는 세계경제위기 이후 ‘빈부격차가 확대’되자 아래에서부터 꾸준히 있었던 바다. 이는 지난 수십 년 간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막대한 부를 금융자본과 대재벌, 소수의 부자들에게 집중시켰고 그 결과 비정규직과 실업자의 급증, 실질소득의 감소와 빈곤의 확대, 복지 축소로 이어져 대다수 민중들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힘들어진 것을 반영한다. 세계경제위기는 내로라하는 경제학 전문가들도 그 전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데, 자본주의 체제는 위기를 극복할 대안도 없이 광범위한 대중을 삶의 나락으로 빠트리며 그 책임을 일반 대중들에게 전가했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현재의 위기에 대한 혼란스러움만 담고 있을 뿐이다.
경제민주화 재벌개혁은 선거에서 일회성으로 제시되는 정책 대안이나 일부 법/제도 개혁 차원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문제다. 하기에 정치권의 경제민주화는 전 민주당 김대중 대통령/노무현 대통령이 시도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게 끝날 우려가 큰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하는 경제민주화는,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전략 - 즉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와 노동신축화- 과 직결되는 문제다. ‘비정규직도 차별 없이!’를 말하지만 뒤에서는 비정규직을 더욱 늘리는 법안을 만드는 새누리당은 앞으로 노동자민중에게 닥친 그 어떤 문제도 제대로 해결할 의지가 없음을 스스로 말한다. 특히나 새누리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한 시장경제를 차단하겠다며 대기업의 횡포를 지적하지만, 2012년 올 한 해만 하더라도 SJM과 유성기업 등 재벌사 부품업체 하 건설되어있는 건강한 노조를 탄압한 현대차 자본을 비호했다.
그런 측면에서 새누리당의 ‘비정규직 차별 없이!’라는 슬로는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닐 수 없다. 수출재벌 기업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만들었던 값싸고 편리한 일자리 비정규직을 이제 와서 해결해보겠다는 시늉일 뿐이다. 그 뿐인가? 10월 17일 15만 4천 볼트 송전탑에 올라가 추위와 외로움을 이겨내고 생존과의 싸움을 시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새누리당은 철저히 외면한다. 새누리당이 내놓았다는 비정규직 해결 법안은 올해 5월에 내놓은 사내하도급 보호법 등 비정규직 4대 법안인데, 이는 사내하도급을 합법화시켜 종전 대법원의 불법파견 확정판결을 무력화시키는 법안이다. 목숨을 내놓고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울분을 한 순간에 수포로 돌리는 꼴이다. 새누리당은 사내하청을 법제화하고 보호조치를 강화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이 법이 통과될 시 현대차를 비롯해 불법파견을 저지르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제조업 사업장들이, 불법파견을 합법도급으로 위장할 수 있다. 결국 경제민주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현대차 재벌자본을 비호하며 노동자들을 억압했던 것은 새누리당 자신이다. 현대차 정몽구를 비롯한 제조업 대자본가들에게 면죄부를 갖다 바친 새누리당의 이번 사내하도급 보호 법안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대법원 판결도 이행하지 않고, 법정 구속망을 다 피해가고 있는 현대차 자본을 옹호하는 새누리당은 비정규직 문제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 포장된 언어로 국민들을 눈속임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이 진정 비정규직이 차별 없는 세상을 원한다면, 그리고 노동자를 국민대통합의 주역으로 보고 있다면, 20여일 가깝게 단식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김정우 지부장, 농성을 잇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와 현대차 비정규/부품업체 노동자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는 후보로 선출된 직후, 전태일 동상에라도 들러 통합쇼를 해보려고 하다가 쌍용차 노동자의 저지에 막혔다. 그리고 쌍용차 노동자를 멱살잡이로 끌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는 사회적 타살 정리해고 문제에 아무런 대답이 없는 박근혜, 복지를 떠들지만 사회양극화의 핵심 문제인 비정규/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박근혜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으며, 미래 권력을 꿈꾸는 박근혜에 대한 노동자의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하는 사건이었다. 즉, ‘국민대통합’을 한다는 박근혜의 화합쇼에 ‘냉수 먹고 거짓말 그만해라’라고 말해 줄 국민들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하지만 새누리당은 청문회에서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이 그렇게 요구하는 국정조사도 단칼에 거부했다. 이들의 경제민주화에는 노동자가 설 자리가 없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은 오직 기업의 관점에서 경영상의 이유를 들이대면 정당화된다. 누구나 말하는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화두가 된 지금, 노동자를 위한 경제민주화란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의 ‘취업 스펙 타파!’ : 새누리당의 ‘창조경제론’?
새누리당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창조경제’를 발표한다. 박근혜 후보는 이 정책을 두고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경제성장의 틀이자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와 함께 잘 맞물린 톱니바퀴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경제성장률만 강조해 국민의 원성을 샀던 지난 정권에 대한 평가, 경제민주화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재계/당내 반발 양자를 모두 고려한 새누리당 나름의 새로운 경제 성장 패러다임이다. 창조경제론에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소중하며, 끝없는 부지런함과 위기 때마다 뭉쳐서 이겨내는 힘을 이용해 다시 한 번 경제를 창조해보자고 한다. 새누리당 김성주 선대본위원장은 며칠 전 있었던 국정연설에서‘싸이’를 예로 들며, 글로벌 경제로 뻗어나갈 수 있는 국민 한 사람이 또 다시 등장할 수 있다며 국민들의 자신감을 고취시킨다. 정치인보다는 국민 한 명 한 명을 강조하는 슬로건. 꽤 그럴싸하다. 하지만 국정기조까지 ‘국가’에서 ‘국민’으로 옮겨가며 주장하는 새누리당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나라다.그 꿈은 전혀 창조적이지 않은데, 창조경제론의 7가지 과제 중 몇 가지만 훑어보아도 한국 경제 현실과는 무관한 정책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의 창조경제론은 '스마트 뉴딜'(산업 전반을 과학기술ㆍIT와 접목시키는 것)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한다. 하지만 이를 접한 대다수 언론에서는 IT분야의 고용 창출력이 지금껏 기대에 못 미쳤기에 그 실효성에 의문을 던진다. 글로벌 경기침체 후 IT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산업 자체 성장도 정체했고, 높은 이익을 얻는다고 그것이 고용률로 이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10년 IT분야의 순이익은 국내 기업 전체 순이익에서 15%가량을 차지했으나 고용의 비중은 2.2%에 불과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스마트 뉴딜을 통해 노동시장에서 다양한 고용형태를 만들겠다는 이 정책은 이전 한국 IT노동자들의 살인적인 근무환경과 열악한 고용구조를 보았을 때, 더 열악한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 분명하다. 장시간 노동에 야근수당마저 제대로 못 받아, 수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물론 이는 IT노동자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의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국가경쟁력과 산업경쟁력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는 ‘줄일수록 수익이 커지는 비용’ 쯤으로 생각한다면 앞으로도 절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창조경제론의 과제 중에서도 ‘창업지원’ ‘스펙초월 채용시스템’과 대한민국 청년이 세계를 움직이는 ‘k-move’는 새누리당이 일자리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 읽을 수 있다. 스펙초월 채용시스템(취업 스펙 타파!)은 붕어빵과 같은 취업시스템을 변경하여 열정과 잠재력만으로 취업할 수 있게끔 해주겠다는 것이다. 젊은 층의 인재를 고루 고용하면서 청년실업난과, 미스매칭(기업과 취업자간의 수요-공급이 맞지 않는 것)을 해결해보겠다는 것이다. k-move에서는 국내시각을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리면, 새로운 기회,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있다며 해외로의 취업 기회를 살리자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새누리당의 청년 정책은 청년실업과 일자리 문제에 대한 새누리당의 인식 수준을 엿보게 한다. “애 젖 먹이면서 주방에 앉아 웰빙 진생쿠키를 만들었다고 구글(google)에 올리면 전 세계에서 주문을 받을 수 있다. 젊은이들이 어마어마한 가상 세계와 글로벌 영토가 있는데 왜 수동적으로 대응하는지 모르겠다”고 한 김성주 선대본 위원장의 발언에서 보듯, 새누리당은 현재 일자리 문제를 남한 사회 전반의 경제구조와 위기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취업자 ‘개인’의 협소한 시야의 문제로 치부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이해하듯 우리 청년들이 창업이나 해외로의 취업 ‘기회’가 적어서 취업을 하지 못하는가?새누리당의 말처럼, 열정과 잠재력만으로 청년들을 받아주는 글로벌 영토의 일자리 자체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들은 대부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언제 그만둬야 할 지 모르는 불안정하고 비상식적인 일자리뿐이다. 그러니까 너도나도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에 매달려 아까운 청춘을 다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었던가. 비상식적인 일자리만 증가하는 것은, 현 정권과 자본이 신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확산해온 노동 관리정책 때문이었다. 새누리당이 달콤하게 포장해 놓은 ‘취업스펙타파’ ‘k-move'정책 정도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수출 재벌의 이윤창출을 위해 노동 시간 및 강도 시기까지 모두 자본의 입맛에 맞게끔 바꾸어놓은 것은 다름 아닌 새누리당 자신들이다. 창업 지원이든, 해외 취업 지원이든 결국 몇 명을 제외하고는 청년들 대다수가 실업자 신세를 모면하기 위한 바닥으로의 경쟁에 내몰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누리당의 현수막 ‘취업스펙타파’가 가지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나아가며
최근 불법정치자금으로 검찰 수사 중인 새누리당 홍사덕 의원은 “유신 독재는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 백억 달러 달성을 위한 것”이라며 박정희의 독재를 미화했다. 하지만 박정희가 이룩했다는 경제발전과 수출입국은 노동자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통한 성장이고 발전이었다. 그 결과 남한처럼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무시되고, 사회보장제도가 후진적인 나라도 없다. 어쩔 수 없었던 당시의 선택이라고 무마하기엔 유신 독재가 피 흘리게 했던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다. 2012년 남한은 비정규직, 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OECD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고 있고, 산업재해도 끊이지 않아 아직도 한해 2천여 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다 목숨을 잃고 있다. 박근혜의 전태일을 추모하면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을 멈출 수 없다면, 박근혜 자신이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국민대통합과 아버지시대 극복은 요원할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이루려면 현대차 비정규직 정규직화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현대차 정몽구를 구속해야 한다. 그래야 과거에 갇히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박근혜 본 말의 진심을 국민들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박근혜의 꿈과 노동자민중 대다수의 꿈은 달라도 ‘너무’ 달라 보인다. 박근혜 후보의 국정운영 도화지 한 켠에 그려질 그녀의 꿈에는, 박정희 시절부터 쭉 억압/착취 받았던 경제성장의 주역 노동자민중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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