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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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명의 죽음. 그 죽음은 조작된 죽음이었다.
부실경영을 꾸며낸 회계조작과 기술만 유출하고 미련없이 떠나버렸던 먹튀자본이 만들어낸
어쩌면 당연한 죽음들이었다.
24명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아직 지어지지 못하고
여전히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거리에 있는데
거울을 비추듯 하이디스에서 똑같은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자본들이 이윤을 뽑아내고 떠나간 그 이후의 공장의 모습은 어떠한가.
노동자들은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고, 남은 노동자들은 그들의 몫까지 견뎌내며 고강도의 일을 감내해야만 한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는 생계가 어려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좌절하고 어떤 이는 죽음을 선택한다.
남은 노동자는 자신도 해고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리다 신경쇠약에 걸리거나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괴로움으로, 또는 너무 빡빡한 일상의 고통으로 삶이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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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3권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 노동자가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가지는 세 가지 권리.
노동자의 권익(權益)과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으로서 생존권에 속한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짓밟히고 있다.
노동조합을 만들면 해고되고,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직장이 폐쇄된다.
권리를 이야기하는데 몇십억의 돈을 물어내야하고, 권리를 누리기 위해 찬 바닥에, 공중에 내몰린 채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한다.
생존이 무시된 이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나.
올해 초 잃었던 소중한 열사의 목숨이 그 ‘이후’를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동 3권이 정말 노동자의 생존이라면 국민을 책임져야할 국가는 지금의 상황을 왜 수수방관 하고 있는가.
국가는 왜, 침묵으로 살인자를 자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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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 자신의 권리를 바라지 못하게 되는 사회, 삶이 메말라가는 사회.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예상할 수 있는 미래는 이런 모습들뿐일 것이다.
이미 우리는 참담한 ‘이후’들을 수없이 목격해왔다.
이제는 새로운 ‘이후’를 고민해야할 때다.
어떤 미래를 그릴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