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 누구의 패배인가?
-4.11총선 결과를 바라보며
놀랄 것도 없다! 야권연대의 패배도, 새누리당의 승리도.
간이고 쓸개고 다 빼낸 야권연대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물론 최적의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야권연대가 이번 선거에서 이렇게까지 대패했다는 것이 의외긴 하다. 하지만 당명에 모두 ‘통합’을 내걸었던 그들이 사실은 노동자민중의 삶에 ‘분열’과‘혼란’을 불러올 것이라는 결과가 의외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놀란 것은, 야권연대 패배의 원인으로 지적된 20대 개새끼론이다. 선거 기간 내내 투표 하지 않으면 새누리당이 당선될 것이라고 국민을 겁박하더니, 총선 이후에는 야권 패배가 투표율에 있다고 겁박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투표율이 높았다면 정말 승리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들의 거만함은 선거 전이나 후나 똑같다. 야권은 세대가 바뀌면 승리할 것처럼 ‘2030’의 숨은 표를 강조했다. 그리고 혹자는 새누리당이 손수조와 이준석을 띄울 때, 민주통합당은 청년비례대표에게 주도권을 주지 않았다며 야권을 지탄한다. 청년을 위한다는 것이 청년비례대표 지분 유무로 갈린다는 유아적 사고도 우습지만, 20대가 투표했다면 혹은 20대를 정면에 내세웠다면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는 오만함에 치가 떨린다. 유명 연예인부터 시작해서 평범한 이들까지 투표인증샷을 올리고 SNS 투표 독려를 하는 등 유난히 투표율이 강조되었던 선거였음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이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결국엔 아무도 우리에게 현재의 빈곤과 불평등을 해결해줄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던 점, 위기를 극복할 전망을 제시하는 정당이 없었던 점이 문제다. 누구나 얘기했던 재벌개혁과 복지담론이 공약자료집에만 남았던 것은 그들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지 않는가.
패배의 원인? 애초에 승리란 없었다.
지금 우리는 패배의 원인을 ‘누군가에게’ 돌리고 있지만, 사실은 누굴 찾을 수도 없거니와, 누굴 찾는다 하더라도 그 누군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김용민이니 한명숙이니 근신하고 사퇴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흉을 찾지 못해 안달 난 이번 총선 결과는 사실은 우리의 ‘패배’라고 말하기 어려운,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야권연대가 승리했으면 서민의 승리라는 도식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 과정에서 야권연대는 결코 노동자민중의 힘을 키우는 단결로 이어지지 않았고 민주당 자본가정당과의 야합일 뿐이었다. 실제로 통합진보당은 (구)민주노동당이 본래 가지고 있던 노동자성을 삭제하고, 야권연대에 목매어 노동자의 손발을 묶고 투쟁의 김을 빼는 역할을 했다. 심지어 성폭력 2차 가해자를 비례대표 후보로 선출하면서 피해자를 무력화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 시대, 운동진영의 잘못된 운동전략
그 결과는, 울산/창원/거제 등 노동자 밀집지역에서의 통합진보당 대패로 증명된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버리고 노동정치의 색깔을 빼낸 채 반MB정치만 강조되었던 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의 약진은 ‘약진’이 아니었다.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구호를 떠들어대는 마당에, 지금과 같은 야권연대 정치로는 어떤 대안적 설득력도 없었다. 만약, 4.11총선에서 재벌개혁과 정리해고 비정규직 일자리 문제를 진정 이명박 정권 심판 핵심적 과제로 여겼다면 야당 대표들과 후보들이 정리해고 비정규직 농성장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 기간, 쌍용차 노동자 22번째 죽음 추모 농성장에는 후보자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는가. 경찰에 의해 영정이 내팽겨쳐지고, 노동자들이 병원으로 실려 나가는 동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도대체 무얼 했는가? 울산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고도 현대차 정규직이 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잇고 있다. 진정 비정규직 문제를 우리 사회 핵심 문제로 여겼다면, 왜 공장 앞에서 싸우고, 노숙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이 왜 당하고만 있게 놔두는가?

진지하게, 신자유주의 하 발생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그 이후를 고민하는 대안세력을 자처한다면, 현재의 운동 전략은 뜯어고쳐져야 한다. 민주노총이 민주당과 정책협약을 하는 시대.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서는 시대. 어느 때보다 노동계 후보들이 많이 나왔던 선거지만, 어느 때보다 ‘노동’관련 쟁점이 부상하지 못했던 선거였다. 10.26의 과분한 후광, 그리고 나꼼수 열기에 대한 지나친 해석이 우리 모두를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진보라 불리던 정당도 이제는 붉은색을 당색으로 전환하고, 당명까지 바꾼 새누리당과 차별점이 없다. 오히려 원칙조차 지키지 못하고 민주통합당 대열에 오른 노동계 인사들의 철새행각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정리해고법과 비정규직법을 만들었던 신자유주의 정권 민주통합당 그곳에 말이다.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야권연대 패배 속에 제시될 카드는 안철수밖에 없어 보인다. 새로운 정치를 실험하겠다는 그는 얼마나 기존의 틀을 벗어날 수 있을까?박근혜 대세론을 뒤엎을 수 있는 유일한 주자. 하지만 명망가 1인으로 현 정치경제구조 전반을 바꿔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안철수는 정당을 기반으로 삼지 않더라도 대중적 인기와 미디어의 힘을 활용해 선거 자금과 운동원을 조직할 것이다. 하지만 정당이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고유한 이념이나 정책 대신 고장난 신자유주의를 개혁하는 수준의 전문가적 합리성을 지닌 안철수의 대선 행보는,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성을 약화시키고 자본주의 체제 내로 운동을 포섭하는 패망의 길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우리 역사에 공짜란 없었다. 파산한 신자유주의 체제를 뒤엎는 데, 돌아갈 수 있는 길이란 없다.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한, 박근혜든 안철수든 문재인이든 위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몇 주 후면 5월 1일 노동절이다. 노동조합이 이곳저곳에서 자본과 정권에 의해 파괴당하고 있는 순간에도 자본가정권과 야합했던 민주노총이 메이데이를 어떻게 꾸릴 지는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진정 노동자민중의 노동절, 그리고 8월 노동자 총파업이 가야할 길 또한 분명하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에 맞서, 가장 앞장서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와 함께, 모든 노동자민중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그게 2012년 대선까지 우리가 해야 하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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