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 무엇을 남겼나?


지방선거 결과 스케치_북풍 누른 노풍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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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류언론들과 여론조사 모두 한나라당 대세론을 이야기 했지만, 투표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개표 전 기세등등하게 대거 당선을 예상한 한나라당은 참담한 표정이었다. 서울시장에서 오세훈 후보가 간발의 차로 당선된 것부터 시작해서 전체 기초단체장 당선자 수에서 민주당이 앞선 것까지 사실상 ‘이변’이 일어났다. 많은 언론들은 '북풍을 누른 노풍의 승리'라고 떠들어댔다. 언론은 안희정과 이광재, 김두관을 두고 노무현의 '좌희정', '우광재' 그리고 '리틀 노무현'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그 원인을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면서 시작된 강경 대북제재는 ‘북풍’을 불어오기는커녕 한나라당에게 ‘역풍’으로 돌아왔다.

 진보정당들도 성적이 크게 나쁘지는 않다. 야권연대를 적극 추진했던 민주노동당의 경우 이번 선거에서 기초단체장 3명(창당 이후 첫 수도권 기초단체장), 광역·기초 의원 139명을 당선시키면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현재 야권 단일 후보가 당선된 인천과 강원, 경남 등 3곳 광역단체와 서울 강서와 경기, 성남 등 28곳의 기초단체에서 민주당과 공동지방정부를 실험하기로 한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진보신당의 경우 25명의 지방의원을 당선시켰다. 창당 2년이 지나지 않았다는 점과 1만 5천명 정도에 불과한 당세를 감안한다면 선전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 사퇴 사건으로 혼란이 가중된 것을 비롯하여 중앙당의 불명확한 선거 전략으로 명분과 실리 모두를 얻지 못하는 불만족스러운 선거 결과에 대한 내부 평가가 지속될 전망이다.


반MB 표심의 확대, 국민의 선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다. 15년 만에 처음으로 54.5%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특히 청년층의 투표율이 증가했다. 선거과정에서 화두가 되었던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한 한반도 전쟁위협의 고조와 이명박 정권의 독단적 국정운영에 대한 반감을 ‘투표’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분열된 보수층에 비해 진보ㆍ민주진영의 후보 단일화 전술이 효과를 발휘했음도 부정할 수 없다. 현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세력을 선택하려는 국민들의 심리를 후보 단일화라는 틀이 흡수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가진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것은 비단 이번 선거만의 일은 아니다. 2006년에는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게 큰 차이로 패배했다. 엄밀히 말해 이번 지방선거결과를 한나라당의 참패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정당지지율로는 여전히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뒤지지 않고 있고, 수도권 지역만 보더라도 한나라당이 여전히 안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나라당 패배-민주당 승리라는 표면적인 결과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자세하게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 여론을 단순히 ‘민심의 진보화’ 혹은 ‘계급의식의 확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국민들의 ‘정권심판’ 요구는 탄탄한 토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국민들은 민주당을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세력이라기보다는 집권 정당에 대한 현실적인 견제세력으로 사고하고 있다. 정당을 지지하는 기준이 집권 정당에 대한 반발에 머무는 한 언제든 상황은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을,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의 역사가 이미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여당과 다르지 않은 야당이라는 여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순간, 지지는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때문에 현실의 모순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진보진영은 대중들의 분노와 불만을 동원하여 선거에서 승리하려는 안일함을 넘어, 전반적인 삶의 불안정화와 비민주적 상황에 맞서는 확고한 이념과 대안을 모색하려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여-야 할 것 없이 서민중심과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 했지만 국민들에게 선거기간 반짝하는 공약 이상의 진지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졌을지는 의문이다. 선거 막바지로 갈수록, 타 정당에 대한 비난이나 후보이미지로 표심을 잡으려는 모습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지금 당장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로 인해, 범야권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국면이 펼쳐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력한 모습을 보인다면 대중들은 곧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진보진영은 현 정권에 대한 ANTI 세력으로 머물기보다는 경제위기와 불안정노동, 저임금과 불평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세력으로 아래로부터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들은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을 동원하는 것과 정치공학을 통한 자리 얻기에만 열을 올렸다. 반MB연대에 대한 환상으로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의 우경화는 선거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정체성을 상실한 진보정당 운동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야권연대를 추구해야 한다는 ‘민주대연합’의 핵심은 민주당 주도의 후보단일화 전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이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었다. 민주노동당은 서울시장과 경기도 지사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을 적극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민주당으로부터 구청장 후보 등을 양보 받아 당선되는 성과를 내기도 했는데, 이것을 마냥 ‘승리’로 평가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민주당 집권 10년은 이명박 정권이 실행하는 정책의 토대를 닦은 기간이었다. 금산분리 완화, 한미 FTA 추진, 자본시장통합, 각종 기업에 대한 해외매각 등 한국 사회를 신자유주의로 깊숙하게 편입시킨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작품이었다. 이들이 이제와 ‘왼쪽’으로 노선을 선회한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아주 기회주의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이들의 본질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연합을 추진하는 민주노동당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전술적 판단이라고 하기에는 도가 지나쳤다. 선거 이후 민주노동당의 행보는 더욱 우려스럽다. 이번 선거결과를 발판삼아 2012년 민주당과의 공동 집권과 공동내각을 구상하겠다는 이야기를 공개석상에서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다. 일각에서는 진보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이 당내에 공존하는 ‘미국 민주당 모델’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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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진보신당은 원칙 없는 반MB연합에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5+4회의에 참가하고 지역별로 야권연대에 동의하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결국에는 5월 30일에 경기도지사 후보였던 심상정 후보가 국민참여당 후보였던 유시민 후보를 지지하면서 사퇴를 공식선언하는 일이 생겼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노회찬 후보는 끝까지 입장을 고수했는데, 오세훈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한명숙 후보를 제치고 당선하자 단일화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많은 질타를 받았다. 선거 과정에서 보인 여러 가지 한계들로 인해 진보신당 내부에서는 중앙당의 방침과 대표들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표출되었고, 선거 이후 이를 수습하기 위한 방안들을 마련하는 중이다. 진보신당이 선거기간동안 여러 가지로 좌충우돌했던 것은 지방선거의 의의와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대연합이 아닌 독자 행보를 하겠다고 호언장담 했으되, 진보신당의 정책이나 방향은 민주당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반신자유주의와 경제위기 책임전가 반대 등의 입장을 분명하게 내세운다기보다는 ‘복지확대’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선거 전략으로는 ‘진보정당’으로서의 명확한 위치를 확보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진보정당에 대한 사표심리를 더욱 부추길 뿐이다. 한나라당 심판을 위해 일단 민주당을 찍으라고 주장하는 진보정당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단절 없이는 민중들의 정치가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이 같은 이념을 희생시키는 것은 ‘진보정치’가 아니다.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목표 자체가 반MB연대에 의해 희미해지고 있는 상황, 대중운동들로부터 대안세력을 만들어가는 노력보다는 표심을 잡기에 급급한 모습의 진보정당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엄호하는 진보세력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민주당이 지방자치단체장에 많이 당선됐다고 해서 민중들의 삶을 억압하고 빈곤을 확산하는 신자유주의가 역전될 리 만무하다. 한나라당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이명박 정권의 정책기조는 변화하지 않을 예정이다. 소리 소문 없이 생존권과 노동권을 박탈당하는 이들이 전국 곳곳에 존재하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억압하는 폭력의 강도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소위 ‘국민의 힘으로 당선되었다는’ 민주당은 노동자-민중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 정부여당의 국정운영에 대한 견제역할 정도는 수행할 수 있지만, 큰 틀에서 현재 경제위기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을 관리해야하는 이해관계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에서 상층중심의 야권연대를 통해 타협과 합의를 이어나가는 방식이 지속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실리적인 이익을 찾으며, 잘못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면 진보의 미래는 없다. 초유의 경제위기 하에서 어렵더라도 대중적 투쟁을 엄호하면서,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분열을 넘어 단결을 구축하려는, 그야말로 ‘재정비’가 필요하다. 다시금 진보정당의 역할에 대한 원칙과 이념을 바로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더 이상 진보정당들만의 과제가 아니다.

Posted by 행진

2010/06/23 22:21 2010/06/23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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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선언 10주년, 6.15 남북공동선언이 한반도 평화의 해법이 될 수 있는가?



  최근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남한과 북한 정권은 군사적 대응까지 고려하고 있고 국제 사회는 북한에게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많은 국민들이 이러다가 전쟁 나는거 아니냐며 우려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익숙할지도 모르는 남북 위기 국면이 다시 도래한 것이다. 왜 한반도는 계속해서 전쟁의 위협에 시달릴 수 밖에 없을까? 이런 대결구도를 끝내고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일차적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통일’이다. 하지만 이 ‘통일’이라는 한 단어에는 수많은 쟁점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도 ‘통일을 염두에 둔 안보전략을 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2000년 당시 6.15 남북공동선언(이하 6.15 선언)을 크게 반겼던 세력들은 6.15 선언을 이행하는 것이 통일 및 한반도 평화에 핵심적이라고 말한다.(올해는 6.15 선언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과연 한반도의 평화가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한 ‘통일을 염두에 둔 안보전략’이나 일부 세력들이 한반도 평화에 핵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6.15 선언’으로 올 수 있을까? 6.15 선언 10주년, 그리고 천안함 사건을 맞아 한반도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자 한다.


햇볕정책과 6.15 남북공동선언

  6.15 선언의 성격에 대해 분석하기 전에 짧게 6.15 남북공동선언이 무엇인지 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1990년대 미국의 대북 전략은 정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봉쇄와 접촉’, ‘당근과 채찍’ 등으로 집약될 수 있는데(페리보고서의 이중경로 전략) 특히 클린턴 때는 북한정권의 급격한 붕괴를 상정하기보다는 유화국면 속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에 걸림돌이 되는 북한의 불안정성을 제거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 개방을 이끄는 것을 단기적 목표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선언이 있게 된다.

  남한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이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꾸준히 이야기한 ‘햇볕정책’의 일환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회담이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총 5가지의 합의사항을 발표한다. 이 내용은 남북통일의 원칙(자주적 통일, 남한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성 인정 등), 이산가족 문제, 비전향장기수 문제, 남북 경제와 문화 협력,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 방문 등의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 선언은 당시 세계적으로도 중대한 계기로 인식되면서 남한과 북한에 곧 항구적인 평화가 찾아올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6.15 선언으로 상징되는 유화적 흐름 속에서 체결된 ‘북미공동코뮤니케’는 곧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을 문제삼으며 파기되었고, 2001년 미국의 ‘악의 축’ 발언으로 남북관계는 다시 위기로 치닫게 되었다.



6.15 남북공동선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많은 세력들이 남북이 매우 평화롭게 보였던 시기인 2000년을 떠올리며 ‘6.15 합의 이행’을 주장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1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행사도 성대하게 치러지는 등 6.15 선언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앞서 서술했듯이 이 선언이 남북의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6.15 선언이 어떠한 국제적 정세속에서 맺어진 협정인지, 그것을 용인한 미국의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를 자세히 살펴본다면 6.15 선언의 성격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김대중 정권의 가장 큰 업적, 바로 6.15 선언이다. 이 6.15 선언은 그 당시 ‘햇볕정책’이라 이름 붙여진 남북한 화해와 관련된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햇볕 정책은 큰 틀에서 미국이 구상하는 동아시아 전략에 공조하는 것이었다. 앞서 서술했던 것처럼 남북관계는 미국의 태도와 정책기조에 따라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계속되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헤게모니 국가로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에서 강력한 군사력으로 경제력을 뒷받침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라는 ‘변수’를 관리하는 다양한 방식이 등장했던 것이다. 미국의 포용정책은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바뀔 수 있는 일시적이고 종속적인 성격일 뿐이다.

  이런 포용정책은 본질적으로 통일정책이 아니라 분단관리정책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평화공존을 위해서는 미군(군인은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며 전쟁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철수라는 조건이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미국 주둔의 필요성을 설득했다고 자랑하기도 하는데,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 자체가 평화공존의 모순이다. 그런데 많은 세력들은 이런 포용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을 제출해왔다.

  현재 악화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두고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 10년을 되돌리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김대중-노무현 10년이 지금보다 괜찮았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문민정부 이후 ‘통일’은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흡수되면서 봉쇄정책(적극적 대결)이냐 포용정책(분단 관리)이냐의 양자택일의 문제로 변질되고 있을 뿐 진정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을 펼쳤던 정권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김대중 정권은 평화 대통령으로 인식되었다. 결국 포용정책은 김대중 정권 시절 민중들의 삶이 벼랑으로 내몰리는 것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달호, 최옥란 등의 열사들을 잊게하고 김대중을 평화의 수호자/민주의 수호자로 만들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외전략은 세계자본주의의 질서에 거스르는 국가와 세력에 대한 제재와 공격을 강화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목적은 종국에 이들을 금융세계화로 편입하든 말살하든 간에 현재의 금융세계화 체제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6.15선언 합의 이행 구호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은 현 상태 유지 이상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6.15선언 합의 이행과 같은 구호가 아니라 현 체제가 양산하는 전쟁위기에 맞서 민중들의 평화권을 되찾기 위한 활동, 그리고 금융-군사세계화를 주도하는 미국과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는 남한 정권에 대해 비판을 전면화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원칙

  위에서 대략적으로 6.15 선언을 바라보는 관점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향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지금) 좀 더 구체적으로 ‘평화’를 위해 우리가 견지해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이명박 정권의 대북 봉쇄정책 및 대결기조 철회가 선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명박 정권은 재임 초기부터 북한에 대해 꾸준히 대결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고, 군사적 도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것은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 PSI 참여 등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최근 천안함 사태에서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부터 북한을 염두에 둔 발언을 하기도 했고, 조사 결과 발표 후에는 마치 군사적 보복이 해결책이라도 되는양 북한을 자극하고 북한에 대해 대결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렇게 북한을 군사적 대결 대상으로만 보고, ‘보복외교, 도발외교’를 일삼는 이명박 정권의 대북 태도는 결국 군사적 위기를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천안함 관련 북한 제재/봉쇄정책 즉각 철회하라!
- PSI 참여 중단하라!

  둘째, 한-미-일 군사동맹 해체를 요구하자!

  하지만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대북 대결기조를 철회한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시기에는 북한에 대해 포용정책을 취했지만 그것이 결국 진정한 한반도 평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바로 미국의 동아시아 관리정책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아시아-태평양을 연결하는 신흥시장으로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미국 주도 하에 경제통합의 구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지역적 수준의 군사강국이 분명치 않으나, 여러 가지 불안정성이 존재하고 있어 대규모 군사적 경쟁의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는 지역이다. 잠재적으로 미국에게 군사적 도전국이 될 중국의 부상을 제어하고, 아시아-태평양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군사벨트를 형성하고자 했을 때, 동북아의 한-미-일 삼각동맹은 지역동맹으로 확장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전략에 전극 편승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기존의 한-미동맹을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국제 평화에 기여하는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하고 있다. 기존의 한-미동맹이 반공이념과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면, 전략동맹은 이를 넘어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모든 제반 분야에서 상호 신뢰확대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 이러한 전략은 한-미 및 한-미-일의 공조강화를 통해 미국중심의 동북아시아 지역 안보구도를 고착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동맹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남한이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경제 통합과정을 보다 철저히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따르는 위험으로서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를 낳는다. 우리는 한-미동맹은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질서와 이에 조응하는 미국의 군사세계화를 공고히 하는 것이라는 것을 낱낱이 폭로해 가며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주범은 바로 한-미-일동맹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한-미-일동맹 폐기를 외쳐야 한다.
- 주한미군 철수하라!
- 키리졸브/팀스피리트 등 한미합동 군사훈련 즉각 중단하라!
- 침략전쟁에 이로울 뿐인 ‘전략적 유연성’ 반대한다!
- 군사동맹이 아닌 평화동맹을!

셋째, 일방적으로 남한이 군비 및 군대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

  전 세계가 무한 군사경쟁을 펼치고 있었던 냉전 시기를 살펴보자. 냉전이 가장 첨예해진 시기에도 미국과 소련은 군비 축소를 위한 다양한 형태의 협상이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몇몇 제한적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그것이 실제적으로 획기적인 군비축소나 핵폐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전쟁 위기와 냉전 체제가 종결된 것은 협상에서의 화해, 협력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냉전 체제의 종결은 비로소 소련이 붕괴하고 난 후에야 이루어졌다.

  즉, 양국간의 협상이 군비를 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군비증강의 변명이나 눈가리개로 주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이에 평화운동 집단은 미-소 협상을 통한 상호 군축합의를 넘어서, 자국 정부에 의한 일방적ㆍ단독적 군비축소(unilateralism)를 촉구하는 운동으로 나아갔다. 특히 1980년대 초 정점에 이른 유럽의 반핵평화운동은 핵실험의 중단, 군사기지의 제거, 특정 군사전략의 폐기 등 자국정부의 일방주의적 행동을 촉구했다. 일방주의적 행동을 위한 요구는 원칙적으로 정부에 대한 대중의 압력을 통해 쟁취될 수 있으며, 정부의 행동은 뉴스 미디어와 여론에 의해 감시될 수 있다. 반면 운동이 다자간, 양자간 국가적 협상을 요구한다면 협상과정을 자세히 파악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우며, 협상 과정을 신뢰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협상의 실패에 대한 비난은 상대편에 대한 책임 전가로 이어질 수 있다.

  군비축소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이는 없다. 원칙적으로 ‘전쟁’을 바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이명박 대통령도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어떻게 군비를 축소할 것이냐’이다. 유효한 군비 축소란 ‘일방적’일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이 하면 나도 하겠다는 ‘포괄적’ 군비축소는 사실상 군비축소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즉 현재의 남북간 군사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남한이 먼저 군비축소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군대나 군비 축소를 위한 국가 간 협상에 기대하기에 앞서 남한에서부터 일방적인 군비 및 군대 규모가 축소될 수 있도록 하여 남북 평화의 돌파구를 열어야 할 것이다. 국가간의 합의는 언제나 불안정했고, 여기에 민중들의 평화적 열망이 담기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 합의가 현실로 이어지기란 만무하기 때문이다.
- 군비의 증가가 아닌 민중들의 삶에 대한 지원을!
- 천안함 사건 빌미로 한 전력증강 발표 철회하라!


  위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원칙과 요구들을 살펴보았다. 이 원칙들을 전제로 하여, 진정 한반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신자유주의 정권의 사탕발린 수사도, 단순한 정권간의 합의도 아니라는 것을 널리 알려나갈 수 있도록 하자. 정권에서는 해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6.25 ‘전쟁’을 상기시키며 은근히 북한의 군사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 더군다나 올해는 6.25 전쟁이 60주년이어서 더욱 그 흐름이 눈에 띄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북한 역시 군사 도발에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복’ 논리로 또다시 북한을 자극하는 것이 진정 남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인지는 차근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2010년 6월을, 민중들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직접행동을 통해 정권이 광고하는 호국보훈의 달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평화의 달로 만들어가자!


Posted by 행진

2010/06/23 11:55 2010/06/2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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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의료민영화, 어떻게 맞설 것인가?


 

본 글은 보건의료학생 [매듭]에서 기고한 글입니다.
건강한 세상, 더 큰 연대를 위한 보건의료학생 [매듭]은 현재 2010년 여름 건강현장활동(7/19-25)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http://knotforhealth.tistory.com/97을 방문하세요.



의료민영화, 이대로 현실화?

  의료민영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참여정부 때부터 '의료산업화' 혹은 '의료선진화'라는 거짓이름으로 시작된 의료민영화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인수위 시절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남한 의료의 체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당연지정제 폐지(당연지정제는 모든 의료기관과 국민건강보험과의 계약을 강제하는 제도로서, 공공병원의 비율이 10% 이하인 남한에서 공공보건의료체계를 유지시켜주는 필수적인 제도이다)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가 2008년 촛불의 여파로 인해 잠잠해진다. 2009년 다시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이라는 정책 속에 포함되어 흐름을 타던 의료민영화 시도는 12월에 발표된 KDI(한국개발연구원)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영리의료법인(현재 남한의 모든 의료기관은 비영리법인이어야만 하며, 자본의 출입과 이윤 배당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윤은 병원에 재투자된다) 도입 필요성에 대한 연구용역 보고서가 각기 다른 결론을 내며 모순에 부딪히면서 표류하고 만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2009년 12월 10일 관계부처합동 명의로 발표한 <2010년 경제정책방향과 과제>를 보면 정부가 제시하는 경제정책 6개 분야 주요과제 중 ‘서비스산업 선진화’가 핵심으로 들어가 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는 경제자유구역에서 외국교육기관이나 외국의료기관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 제ㆍ개정,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도입이 핵심 요지다. 아니나 다를까, 2010년 상반기 임시 국회에는 어김없이 의료민영화 5대 악법(의료법 개정안, 의료채권법, 보험업법 개정안, 경제자유구역 특별법, 제주도 특별법)이 모두 상정되었다. 또한 지난 5월 17일에는 치료를 제외한 검진, 예방, 관리에 관련된 의료서비스는 모두 민영화시키는 법안인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다. 진보적 보건의료 및 사회운동단체가 7년여 시간동안 맞서오던 의료민영화가 단 몇 달 사이에 국회를 통과할지도 모르는 매우 긴박한 상황이다.


  물론 아직까지 의료민영화에 찬성하기보다는 반대하는 국민이 많은 상황에서 정부도 쉽사리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예상 외로 고전하며 민주당에게 일시적으로 주도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6월 국회에서 의료민영화를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민주당 및 친노 세력 역시 궁극적으로 의료민영화 찬성 쪽에 힘을 싣기 때문이다(물론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소수의 의원들이 있긴 하지만, 사회운동단체들의 수차례 요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의료민영화 반대를 당론으로 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의료민영화 정책들의 대부분은 과거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절 현재의 민주당과 친노세력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른바 반MB 연합의 맹목성이 잘 드러난다). 지방선거 결과로 인해 조금 늦춰질 뿐, 의료민영화는 하반기부터 신속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지난 6일 청와대가 보건복지비서관으로 정상혁 교수를 내정한 일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당연지정제 폐지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주장하며 의료민영화의 첨병 역할을 해왔던 정상혁 교수를 그런 자리에 앉힌다는 것은 당연지정제 폐지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던 이명박 정부의 변명이 거짓임을 드러낸다. 또한 의료민영화 추동 세력 중 가장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장관 윤증현이 지난 5월 31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영리의료법인 도입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함께 실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다시 협의를 시작했다."라고 밝힌 것만 보아도 곧 의료민영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의료민영화의 두 축 중 하나인 영리의료법인 도입(다른 하나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이 구체적인 정책안으로 도출될 경우, 이 문제는 올 하반기 G20과 함께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영리 의료법인은 미국 베스트 병원 순위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곳이 하나도 없으며(낮은 질), 비영리법인에 비해 사망률은 2% 가량 높고 병원비는 19% 가량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높은 비용). 또한 영리 의료법인 도입은 단순히 의료공급체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연지정제 폐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과 긴밀히 연관되어 사실상 의료를 시장화시키고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하는 데 있어 단초가 될 가능이 크다. 이미 시장주의적 의료가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의 평균 수명은 OECD 국가 중 24위, 천 명당 영아사망률은 27위로 건강수준은 매우 낮다. 또 전 국민의 15.3%(4,570만 명, 2007년)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며 이로 인해 보험 미적용으로 추가로 사망하는 사람이 1년에 18000여명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의료비 부담으로 매년 2백만 명이 개인 파산하며, 이는 미국 전체 개인 파산의 50%에 달한다(파산자의 75%는 의료보험 가입자이다). 반면 총의료비 지출은 2007년 기준 GDP의 16.0%로 매우 높다(OECD 평균 9.1%). 이 중 대부분이 보험자본과 의료자본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제는 의료민영화에 맞서는 강력한 대중운동이 필요한 때이다. 하지만 최근 일각에서 의료민영화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되고 있는 ‘건강보험 하나로 OK’ 정책안은 많은 난점들과 위험을 안고 있다. 함께 살펴보자.

'건강보험 하나로 OK',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지난 6월 9일, 국민 1인당 월평균 1만1천원의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내면 선택진료비, 병실 차액, 초음파, MRI, 각종 검사의 의약품, 노인틀니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OK’ 시민회의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이들은 먼저 비용부담 방식의 변화를 꾀하여 현재 국민 1인당 월 평균 보험료 약 1만1천원을 더 내면 보장률을 90% 이상 수준으로 일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민중의 생존권을 위해서도, 병원 영리법인화와 민간의료보험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현 상황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현행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전국민건강보험을 통한 공적 의료재정체계와 민간중심의 의료공급체계(공공병원 비율 10% 이하)로 구성된다. 민간중심 공급구조는 행위별 수가제(진료 행위당 수가를 지급하는 제도로 과잉진료를 유발한다)가 결합되어 의료공급자의 영리추구행위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5배의 재정확충을 통해서 보장률을 90% 이상으로 확대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건강보험 재정은 82%, 1인당 보험료는 79%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장성 강화는 5.2%에 불과했으며, 연간 가계직접부담액은 43% 증가하여 물가상승률을 훨씬 상회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영리추구적 공급체계를 건드리지 못하는 재정확충을 통한 보장성 강화는 필연적으로 의료시장의 팽창을 가져올 것이며, 영리추구적 의료공급자만 배불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 '건강보험 하나로 OK' 안에는 보험자본과 제약자본에 대한 통제방안이 없다. 우리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민간보험자본과 제약자본에 대한 통제 없는 의료체계 개혁은 한계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오바마는 당초 건강보험 개혁안에서  공공의료보험을 만들어 민간의료보험과 경쟁시키려고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조항은 빠지고 보험 미가입자를 의무적으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시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결국 보험자본에게 더 큰 시장을 열어준 셈인데, 여기에 있어 보험자본의 로비와 압력이 상당했을 것이라 예측된다). 보건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이며, 신자유주의적 재편과정을 통해 더욱더 중심적 위치를 점하는 보험자본과 제약자본에 대한 인식이 없는 대안은 오히려 호랑이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꼴이 될 수 있다.

  보험료를 (우선적으로) 인상하여 재정을 확충하자는 제안 또한 문제가 있다. 이미 현재의 보험료 수준도 감당하지 못하는 체납인구가 상당한 규모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들이 보험료 인상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낙관할 수 없다. 또 정말 보험료를 적게 내서 보장성이 낮은 것인지에 대해서 검토가 필요하다. 유럽 복지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소득 대비 보험료 부담비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동시에 기업과 국고 지원의 부담비율이 낮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보장성 강화를 위한 재정확충은 국가와 자본의 부담을 늘리는 방식을 요구해야 하지 민중들이 적정한 부담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내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국가와 자본의 부담을 확대하는 것은 제도 개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계급역관계의 변화를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계급역관계를 역전시켜내는 투쟁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보험료 인상에 그치는 수준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더욱이 만약 의료민영화가 전면화 된다면 보장성이 강화된 건강보험도 무용지물이 된다. 민중의 건강을 심각하게 파괴할 의료민영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썩은 동아줄에 매달리기보다는, 보다 날카롭고 거센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의 기치 아래 모든 노동자-민중이 결집해야 한다.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의 의미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의료민영화 의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막아내는 싸움에 함께 해야 하는 당위성은 너무도 명백하다. 영리 의료법인 도입은 단순히 의료를 이윤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의료채권법, 병원경영지원회사(MSO) 등과 결합해 금융 자본에게 병원을 통째로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금융세계화의 모순이 곳곳에서 체제를 뒤흔들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마저 금융화시킨다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다. 더욱이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이 공공보험 설립안이 빠진 채 보험 자본에게 시장만 키워주는 반쪽짜리가 되어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한번 보험 자본에게 넘어간 우리의 건강을 되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되돌린다 하더라도 많은 대가가 필요하다(2009년 폴란드는 의료민영화를 철회하는 대가로 투자보호협정에 따라 네덜란드계 보험 자본인 Eureko에게 18억 유로를 지불해야만 했다).


  유럽발 재정위기가 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격 역시 거세다.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의 원인을 복지로 몰아세우며 민중의 생존권을 박탈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는 투쟁으로서, 생존권 투쟁을 모아내는 싸움으로서,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에 힘을 쏟아야 할 시기이다.


Posted by 행진

2010/06/23 11:48 2010/06/2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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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진

2010/06/22 14:11 2010/06/2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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