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선언 10주년, 6.15 남북공동선언이 한반도 평화의 해법이 될 수 있는가?



  최근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남한과 북한 정권은 군사적 대응까지 고려하고 있고 국제 사회는 북한에게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많은 국민들이 이러다가 전쟁 나는거 아니냐며 우려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익숙할지도 모르는 남북 위기 국면이 다시 도래한 것이다. 왜 한반도는 계속해서 전쟁의 위협에 시달릴 수 밖에 없을까? 이런 대결구도를 끝내고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일차적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통일’이다. 하지만 이 ‘통일’이라는 한 단어에는 수많은 쟁점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도 ‘통일을 염두에 둔 안보전략을 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2000년 당시 6.15 남북공동선언(이하 6.15 선언)을 크게 반겼던 세력들은 6.15 선언을 이행하는 것이 통일 및 한반도 평화에 핵심적이라고 말한다.(올해는 6.15 선언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과연 한반도의 평화가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한 ‘통일을 염두에 둔 안보전략’이나 일부 세력들이 한반도 평화에 핵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6.15 선언’으로 올 수 있을까? 6.15 선언 10주년, 그리고 천안함 사건을 맞아 한반도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자 한다.


햇볕정책과 6.15 남북공동선언

  6.15 선언의 성격에 대해 분석하기 전에 짧게 6.15 남북공동선언이 무엇인지 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1990년대 미국의 대북 전략은 정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봉쇄와 접촉’, ‘당근과 채찍’ 등으로 집약될 수 있는데(페리보고서의 이중경로 전략) 특히 클린턴 때는 북한정권의 급격한 붕괴를 상정하기보다는 유화국면 속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에 걸림돌이 되는 북한의 불안정성을 제거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 개방을 이끄는 것을 단기적 목표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선언이 있게 된다.

  남한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이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꾸준히 이야기한 ‘햇볕정책’의 일환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회담이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총 5가지의 합의사항을 발표한다. 이 내용은 남북통일의 원칙(자주적 통일, 남한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성 인정 등), 이산가족 문제, 비전향장기수 문제, 남북 경제와 문화 협력,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 방문 등의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 선언은 당시 세계적으로도 중대한 계기로 인식되면서 남한과 북한에 곧 항구적인 평화가 찾아올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6.15 선언으로 상징되는 유화적 흐름 속에서 체결된 ‘북미공동코뮤니케’는 곧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을 문제삼으며 파기되었고, 2001년 미국의 ‘악의 축’ 발언으로 남북관계는 다시 위기로 치닫게 되었다.



6.15 남북공동선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많은 세력들이 남북이 매우 평화롭게 보였던 시기인 2000년을 떠올리며 ‘6.15 합의 이행’을 주장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1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행사도 성대하게 치러지는 등 6.15 선언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앞서 서술했듯이 이 선언이 남북의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6.15 선언이 어떠한 국제적 정세속에서 맺어진 협정인지, 그것을 용인한 미국의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를 자세히 살펴본다면 6.15 선언의 성격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김대중 정권의 가장 큰 업적, 바로 6.15 선언이다. 이 6.15 선언은 그 당시 ‘햇볕정책’이라 이름 붙여진 남북한 화해와 관련된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햇볕 정책은 큰 틀에서 미국이 구상하는 동아시아 전략에 공조하는 것이었다. 앞서 서술했던 것처럼 남북관계는 미국의 태도와 정책기조에 따라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계속되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헤게모니 국가로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에서 강력한 군사력으로 경제력을 뒷받침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라는 ‘변수’를 관리하는 다양한 방식이 등장했던 것이다. 미국의 포용정책은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바뀔 수 있는 일시적이고 종속적인 성격일 뿐이다.

  이런 포용정책은 본질적으로 통일정책이 아니라 분단관리정책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평화공존을 위해서는 미군(군인은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며 전쟁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철수라는 조건이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미국 주둔의 필요성을 설득했다고 자랑하기도 하는데,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 자체가 평화공존의 모순이다. 그런데 많은 세력들은 이런 포용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을 제출해왔다.

  현재 악화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두고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 10년을 되돌리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김대중-노무현 10년이 지금보다 괜찮았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문민정부 이후 ‘통일’은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흡수되면서 봉쇄정책(적극적 대결)이냐 포용정책(분단 관리)이냐의 양자택일의 문제로 변질되고 있을 뿐 진정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을 펼쳤던 정권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김대중 정권은 평화 대통령으로 인식되었다. 결국 포용정책은 김대중 정권 시절 민중들의 삶이 벼랑으로 내몰리는 것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달호, 최옥란 등의 열사들을 잊게하고 김대중을 평화의 수호자/민주의 수호자로 만들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외전략은 세계자본주의의 질서에 거스르는 국가와 세력에 대한 제재와 공격을 강화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목적은 종국에 이들을 금융세계화로 편입하든 말살하든 간에 현재의 금융세계화 체제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6.15선언 합의 이행 구호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은 현 상태 유지 이상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6.15선언 합의 이행과 같은 구호가 아니라 현 체제가 양산하는 전쟁위기에 맞서 민중들의 평화권을 되찾기 위한 활동, 그리고 금융-군사세계화를 주도하는 미국과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는 남한 정권에 대해 비판을 전면화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원칙

  위에서 대략적으로 6.15 선언을 바라보는 관점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향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지금) 좀 더 구체적으로 ‘평화’를 위해 우리가 견지해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이명박 정권의 대북 봉쇄정책 및 대결기조 철회가 선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명박 정권은 재임 초기부터 북한에 대해 꾸준히 대결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고, 군사적 도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것은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 PSI 참여 등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최근 천안함 사태에서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부터 북한을 염두에 둔 발언을 하기도 했고, 조사 결과 발표 후에는 마치 군사적 보복이 해결책이라도 되는양 북한을 자극하고 북한에 대해 대결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렇게 북한을 군사적 대결 대상으로만 보고, ‘보복외교, 도발외교’를 일삼는 이명박 정권의 대북 태도는 결국 군사적 위기를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천안함 관련 북한 제재/봉쇄정책 즉각 철회하라!
- PSI 참여 중단하라!

  둘째, 한-미-일 군사동맹 해체를 요구하자!

  하지만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대북 대결기조를 철회한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시기에는 북한에 대해 포용정책을 취했지만 그것이 결국 진정한 한반도 평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바로 미국의 동아시아 관리정책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아시아-태평양을 연결하는 신흥시장으로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미국 주도 하에 경제통합의 구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지역적 수준의 군사강국이 분명치 않으나, 여러 가지 불안정성이 존재하고 있어 대규모 군사적 경쟁의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는 지역이다. 잠재적으로 미국에게 군사적 도전국이 될 중국의 부상을 제어하고, 아시아-태평양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군사벨트를 형성하고자 했을 때, 동북아의 한-미-일 삼각동맹은 지역동맹으로 확장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전략에 전극 편승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기존의 한-미동맹을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국제 평화에 기여하는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하고 있다. 기존의 한-미동맹이 반공이념과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면, 전략동맹은 이를 넘어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모든 제반 분야에서 상호 신뢰확대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 이러한 전략은 한-미 및 한-미-일의 공조강화를 통해 미국중심의 동북아시아 지역 안보구도를 고착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동맹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남한이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경제 통합과정을 보다 철저히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따르는 위험으로서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를 낳는다. 우리는 한-미동맹은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질서와 이에 조응하는 미국의 군사세계화를 공고히 하는 것이라는 것을 낱낱이 폭로해 가며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주범은 바로 한-미-일동맹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한-미-일동맹 폐기를 외쳐야 한다.
- 주한미군 철수하라!
- 키리졸브/팀스피리트 등 한미합동 군사훈련 즉각 중단하라!
- 침략전쟁에 이로울 뿐인 ‘전략적 유연성’ 반대한다!
- 군사동맹이 아닌 평화동맹을!

셋째, 일방적으로 남한이 군비 및 군대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

  전 세계가 무한 군사경쟁을 펼치고 있었던 냉전 시기를 살펴보자. 냉전이 가장 첨예해진 시기에도 미국과 소련은 군비 축소를 위한 다양한 형태의 협상이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몇몇 제한적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그것이 실제적으로 획기적인 군비축소나 핵폐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전쟁 위기와 냉전 체제가 종결된 것은 협상에서의 화해, 협력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냉전 체제의 종결은 비로소 소련이 붕괴하고 난 후에야 이루어졌다.

  즉, 양국간의 협상이 군비를 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군비증강의 변명이나 눈가리개로 주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이에 평화운동 집단은 미-소 협상을 통한 상호 군축합의를 넘어서, 자국 정부에 의한 일방적ㆍ단독적 군비축소(unilateralism)를 촉구하는 운동으로 나아갔다. 특히 1980년대 초 정점에 이른 유럽의 반핵평화운동은 핵실험의 중단, 군사기지의 제거, 특정 군사전략의 폐기 등 자국정부의 일방주의적 행동을 촉구했다. 일방주의적 행동을 위한 요구는 원칙적으로 정부에 대한 대중의 압력을 통해 쟁취될 수 있으며, 정부의 행동은 뉴스 미디어와 여론에 의해 감시될 수 있다. 반면 운동이 다자간, 양자간 국가적 협상을 요구한다면 협상과정을 자세히 파악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우며, 협상 과정을 신뢰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협상의 실패에 대한 비난은 상대편에 대한 책임 전가로 이어질 수 있다.

  군비축소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이는 없다. 원칙적으로 ‘전쟁’을 바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이명박 대통령도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어떻게 군비를 축소할 것이냐’이다. 유효한 군비 축소란 ‘일방적’일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이 하면 나도 하겠다는 ‘포괄적’ 군비축소는 사실상 군비축소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즉 현재의 남북간 군사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남한이 먼저 군비축소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군대나 군비 축소를 위한 국가 간 협상에 기대하기에 앞서 남한에서부터 일방적인 군비 및 군대 규모가 축소될 수 있도록 하여 남북 평화의 돌파구를 열어야 할 것이다. 국가간의 합의는 언제나 불안정했고, 여기에 민중들의 평화적 열망이 담기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 합의가 현실로 이어지기란 만무하기 때문이다.
- 군비의 증가가 아닌 민중들의 삶에 대한 지원을!
- 천안함 사건 빌미로 한 전력증강 발표 철회하라!


  위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원칙과 요구들을 살펴보았다. 이 원칙들을 전제로 하여, 진정 한반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신자유주의 정권의 사탕발린 수사도, 단순한 정권간의 합의도 아니라는 것을 널리 알려나갈 수 있도록 하자. 정권에서는 해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6.25 ‘전쟁’을 상기시키며 은근히 북한의 군사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 더군다나 올해는 6.25 전쟁이 60주년이어서 더욱 그 흐름이 눈에 띄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북한 역시 군사 도발에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복’ 논리로 또다시 북한을 자극하는 것이 진정 남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인지는 차근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2010년 6월을, 민중들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직접행동을 통해 정권이 광고하는 호국보훈의 달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평화의 달로 만들어가자!


Posted by 행진

2010/06/23 11:55 2010/06/2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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