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언니네 방'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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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지은이: 언니네 사람들
펴낸곳: 갤리온
펴낸때: 2006.3.27.


전국학생행진(건) 회원 경하


어떤 말로 이 책을 소개하면 좋을까 몇 시간을 고민해도 책을 읽고 느낀 만큼의 감동을 전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다만 행진의 첫! 뉴스레터 책 소개에 이 책을 싣게 되어서 무척 흥분된 상태이고, 많은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다는 생각에 손가락이 앞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기 어려운 말을, 그래도 하기로 결심했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하네요.

‘언니네 방’?


이 책은 여성들이 모여 일기장에도 차마 쓰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언니네( www.unninet.net )’의 ‘자기만의 방’이라는 공간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글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언니네-자기만의 방’은 ‘여성들이 글쓰기를 통해 치유를 경험하는 장’으로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되었고, 고정희 시인의 정신을 이어가는 공간으로 선정되어 ‘제3회 고정희상(2005)’을 수상했습니다. 또 보존해야 할 인터넷 유산으로 선정되어 ‘정보트러스트 어워드 2005’를 수상했다고도 합니다.

이 책에는 여성들의 몸의 욕망, 섹스에 관한 아주 솔직한 이야기, 남자들에게 해주고 싶었지만 못했던 이야기, 사랑에 대한 생각, 힘겹게 혹은 용감하고 멋지게 사는 언니들의 이야기 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말 못한 삶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내 이야기가 아닌 것이 없으면서도 또 다양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입니다.

언니네 사람들과의 만남


발간되었을 때부터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터에 어느 날 책상위에 놓여있던 선배의 책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1시간 만에 4부까지 읽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 ‘여기 이런 내용이 있는데 나도 딱 이래~’라고 떠들며 엄청 귀찮게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얼마 후에 친구에게서 이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읽고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서 펜을 들었을 때는 별로 쓸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책의 어떤 부분을 발췌하고 감정을 정리하기에는 글 하나하나가 다 고민거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꼭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차례차례 적어두었습니다.

많이 좋아해도 차마 다 말 못했던 남자친구에게, 지금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은 여자친구에게,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여자/남자친구에게, 화내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묻어둔 미운 친구에게, 내가 아직은 온전히 공감해 줄 경험이 없는 동성애자 친구에게.

그래서 행진 회원 동지들에게도 ‘꼭 읽어보시라’는 딱 한마디가 꼭 하고 싶네요^-^

우리의 입술이 저절로 열릴 때


‘여성주의는 여성에게 말할 수 있는 입을 달아주었지만 그 입이 저절로 말할 수 있게 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조금은 어려운 말이네요;;

처음 여성주의를 만났을 때 어땠는지 기억나세요? 이제껏 안 좋았던 일들에 대해서 내가 다 잘못한 줄로만 알았는데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고, 여성으로서 살아감에 부당한 일들에 대해 항변할 말을 알려주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여자친구들을 만나 이야기 하면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았고, 여전히 명쾌하게 맞설 수 없는 교묘한 가부장적 논리와 감정에 속이 상하고, 가장 친한 연인에게 말하기는 더욱 어렵기만 해서 ‘여성주의자’로 살아가는 일상은 전쟁이 되었습니다. 웃지도 화내지고 못하고, 즐길 수도 뛰쳐나오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차라리 여성주의를 몰랐으면 이렇게 힘들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주의가 우리에게 부당한 성별 권력의 폭력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입을 달아주었지만 여성주의자로 살아가기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참 오랜 고민을 했습니다.

그건 아마 여성들의 경험과 감정은 ‘여성은 ~한 상황에서 ~하게 느낀다.’ 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할 때, 화가 날 때, 쇼핑할 때, TV 볼 때 ‘남자는 ~하다.’, ‘여자는 ~하다.’류(類)의 단정이-누군가에게는 무척 불편하고 불리한 단정이- 일상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주의는 그로부터 억압당하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또 다른 방식’으로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담아내고 이해하는, 그래서 서로를 억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지향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억압되고 은폐되어있는 수많은 일상-‘사적인 영역’을 드러내서, 그것을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게 하려는 권력에 위협을 가하고 그/녀들의 일상을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여성주의가 만들어내는 말은 언제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나 ‘언제나 싸움을 붙이는 불편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언니네 방’은 우리에게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고민을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글들에 대해서 다 공감할 수도 없고, 가끔 의아한 내용도 있습니다. 처음엔 공감하는 글들이 눈에 많이 들어와서 친구에게 같이 읽어보자고 하거나 혼자 몇 번을 더 읽게 되었지만, 감상이 너무 다른 친구를 만나게 되기도 하고 처음 봤을 때와 다르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생각/행동 했을까’하고 글에 의문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거기에서부터 서로 다른 경험이 오가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내고 조금 더 서로에게 깊이 다가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이전에는 목까지 차올라도 마땅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물에 빠진 사람처럼 숨이 멎을 것 같았던 많은 이야기들을 조금씩 꺼내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하지 못했던 감정을 그/녀들이 말함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말’을 가지게 되어서이기도 하고, 이것이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용기가 생겨서이기도 합니다.

늘 ‘수다’처럼 쓸데없는 일이나 ‘남이 들으면 부끄러운’ 이야기로 여겨졌던 것들이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아도 되도록 경험을 끄집어내고 여성의 ‘언어’로 만드는 것, 공감하고 이해하며 그 말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우리의 입술이 저절로 열리는’ 여성주의가 아닐까요?

여성주의는 지금까지도 그래왔거니와, 이제는 ‘너는 헤프냐, 조신하냐.’, ‘너는 결혼해 아이를 낳겠느냐, 일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는 제한된 선택지를 밀어내고 여성의, 우리의 다양한 삶이 소리치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어울릴 수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많은 동지들이 용감한 말하기를 시작한 ‘언니네 방’ 문을 열어 보았으면 합니다. 고백과 공분과 위로와 치유를 넘어 따뜻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힘 있는 언어를 만들어가는 그녀들을 만나 봅시다. 이제는 ‘~~한 행동은 하면 안 된다.’던 닫힌 입을 열어 ‘여성들은 ~하고 싶다.’, ‘여성에게도 ~한 경험들이 있다.’처럼, 여성의 다양한 삶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우리 삶의 권리를 이야기해봅시다. 많은 동지들과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또한 거기서부터 ‘언니네 방’ 몇 권을 더 만들 수 있는 경험과, 삶의 권리가 발견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대충 한 번 읽으면 그저 공감할 법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내 경험으로부터 더 많은 다른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에 ‘우리의 입술이 저절로 열리는’ 시작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는 그녀들의 이야기. 여자들끼리 얼굴보고 말하려 해도 어렵고, 남자들한테는 더 하기 어려운 이야기. 무릎을 칠만큼 통쾌하지만 꼭 내 것 같지만은 않은 이야기. 남자들에게는 부끄럽고 뜨끔하고 깜짝 놀랄 이야기. 페미니즘 이론 서적보다는 여성들의 마음을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언니네 방’,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에서 여성의 생동감 넘치고 힘 있는 말과 글을, 삶의 권리를 발굴해내는 힘찬 행진을 시작해 봅시다!!

책 목차 보기

Posted by 행진

2006/04/24 05:38 2006/04/24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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