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어느 청명한 가을 날, 교지 문을 열었는데 한 선배와 동기가 컴퓨터로 원더걸스의 “텔미”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뽕짝 뽕짝 거리는 음악과 함께 불그죽죽한 영상을 바라보며 귀엽다- 를 연발하는 선배의 말에 나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어라라? 이 모습이 귀엽다고? 내 눈엔 원더걸스는 화려했고 이효리 못지않게 노출된 의상이 먼저 눈에 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짙은 화장사이로 가려진 앳된 얼굴이라든가, 노래와 춤이 어설프고 쉽다가도 뜬금없이 간주중에 나오는 섹시댄스 등의 부조화는 어쨌든 그 이후의 인식 문제였다.
후렴구인 텔미를 따라 부르며 흡족해 하는 선배와 동기를 보며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려는 찰라, 뇌 속을 거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버린 “변태
같아요.” 그게 왜 오타쿠고 변태냐는 선배의 반박에 여성 성 상품화가 어떻고, 미성년의 미완숙함을 성적으로 무분별하게 수용해서는 안 된다 등등의 그럴싸한 변명을 하고 있자니, 사실 나조차도
으로 표현되는 대중문화를 제대로 이해(=비판?수용?)하고 있는 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그냥, 선배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서 하는 태클이었을 뿐이라고 받아칠 수밖에......
그리고서 한 달, 두 달 학기가 끝나가는 동안에도 원더걸스의 텔미는 지치지도, 지겹지도 않는 듯 내가 있는 주변의 모든 온/오프라인 공간을 잠식해 갔다. -텔미 신드롬의 ‘춤과 노래 따라하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하다못해 총학생회장으로 출마한다는 모 후보네는 어머나- 포즈로 전혀 귀엽지 않는 모습을 프린트해서 학교 곳곳에 플랑을 걸어놨고, 인문대 부회장 후보는 강의실에서 홍보차 텔미 춤을 췄다더라 하는 소식도 들려져 왔다.
이러한 텔미 신드롬의 중심에서 있는 원더걸스는 대중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대중가수 답게 본질적인 ‘노래’를 부름과 함께 소녀로서의 귀여움과 섹시함(=원숙함을 가장한 미숙함, 순수함을 가장한 도발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춤’'을 추었고 그것은 단순히 쉬운 음악만으로는 어필하지 못했을 부분을 ‘훌륭히’ 메워 주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결국 쉬운 노래는 ‘포장’이었고, 기획된 ‘상품’은 애초부터 그들이 보이려 한 양면적 이미지의 자극일지도 모른다.
이를 가리켜 어떤 문화 평론가는 로리타 콤플렉스(=포르노3)와 그라비아4)의 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라고 했고, 다른 어떤 이들은 마틸다를 바라보는 레옹(=중학교 조카의 재롱잔치를 보는 삼촌세대의 훈훈한 감성?)이다, 또 다른 이들은 잘 만들어진 B급 감각(감성이 아니다.5))이라고도 했다. 누구의 분석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 전에 이렇게 소비되고 그 욕구에 맞춰 생산되는 문화가 과연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난 몇 달 동안 네티즌을 추리 소설가로 만들었던 아이비 사건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아이비는 고급화된 섹시함으로 대중들을 충족시켰다. 그러나 그 고급화 전략이 사생활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친숙’으로 다가오자 대중들은 바로 그녀를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다른 붕어가수나 그룹들보다는 낫다고 평가받는 아이비의 가창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더 이상 ‘가수’로서 상징되는 대중문화의 리더로서 중요한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꾸며내건 꾸며지건 간에 특정한 컨셉에서 벗어난 아이비는 더 이상 대중에게 요구-만족을 충족시키는 자극적 요소가 되지 못하고, 이는 곧 아이비라는 상품성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원더걸스 역시 로리타 콤플렉스의 자극이든 첫사랑의 풋풋한 동심의 자극이든 또는 잘 꾸며낸 평범이든 간에 어떠한 틀(컨셉이라 부르는)이 놓여져 있고 이 틀 안에서의 활동과 모습만이 대중의 욕구를 충족하고 수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떠한 반감은 이냥 저냥의 뜬금없는 태클일 뿐이고 이러한 문화에 길들여진 자들은 저마다 배설적 표현 (소희야, 하악하악 그렇지만 너를 위해 금딸을 하겠어6) 등등)을 하기에 스스럼이 없으며 오히려 이를 당당함이라고 부른다.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17조로 되돌아가 보자. 물론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강간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하철 광고에 나의 벌거벗은 육체를 이용하는 것은 무엇인가?
- 뤼스 이리가레, 세계인권선언 비판 中
나는 원더걸스의 상품성이 이렇게 유지되는 것에 대하여 원더걸스에 대한 단순한 안타까움인지, 이를 수용하고 생산하는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문제 때문인지 아직 이성적, 감정적인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글을 써내려 가는 지금까지도 이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앞서 표현한 대로 수용이 되든, 비판이 되든 우선 일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부분)해야 하는 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내가 향유하고 있었던 대중문화를 부정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올바르다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대안문화를 스스로 찾지 못했고, 아직까지도 어떠한 이상적인 문화의 요구 역시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무수한 성폭력과 상품화에 대해서 어떠한 고민을 할 필요 없이, 텔미는 그저 흥얼거리면 되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되물었을 때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이윤 창출을 위해서 행해지는 인격적인 권리인 ‘성’의 상품화와 이에 대한 ‘무분별한 판매-소비’에 대한 비판은 자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그저 도덕적인 평가 척도만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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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태[變態] 1 본래의 형태가 변하여 달라짐. 2 정상이 아닌 상태로 달라짐. 또는 그 상태. 3 <동물>성체와는 형태, 생리, 생태가 전혀 다른 유생의 시기를 거치는 동물이 유생에서 성체로 변함. 또는 그런 과정.≒탈바꿈. 4 <식물>식물의 뿌리, 줄기, 잎 따위의 기관이 본래의 것과는 다른 형태로 변하여 그 상태로 종(種)으로서 고정되는 일. 5 <심리>정상이 아닌 성욕이나 그로 인한 행위. 또는 그 성욕을 가졌거나 그 행위를 하는 사람.
2) 오타쿠[otaku] 대중문화에 심하게 몰두하는 마니아.
3) 포르노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의 준말, 인간의 성적 행위의 사실적 묘사를 주로 한 문학,영화,사진,회화.
4) 그라비아(Gravure) [명사] 1.<출판> 사진 제판법에 의한 오목판 인쇄의 하나, 간단하게 말하면 잡지 화보 2. 섹시미와 청순미를 과시하는 수영복(비키니) 화보. 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을 그라비아 아이돌(Gravure Idol)이라고 부른다.
5) 감각은 외부의 물리적인 자극에 대한 단순한 반응 자체를 말하고, 감성은 그 이후, 재수용되는 정서상태를 말한다.
6) 팬이라 자칭하는 이들 중에는 원더걸스의 미성년인 소녀적 순수함을 지켜주기 위해서 자위행위(딸딸이)를 하지 않겠다(禁)고 온라인상에서 내뱉는다. 스스로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서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이로 인해 원더걸스는 순식간에 익명의 다수에게 성적으로 희화화된 대상이 되고 말았다. 원더걸스의 성적인 자기결정권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