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자본과 산업의 결탁, 가려지는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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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3일 화요일은 토고와 대한민국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평택 전쟁기지 건설 반대! 촛불 문화제는 진행되었다. 어디서? 월드컵 경기 응원 인파가 광화문을 다 장악할 것이 분명하고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기 불가능하다는 판단아래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안에 있는 한미 FTA 반대 농성장에서 진행을 하였다. 50여일을 꼬박 채우고 있는 촛불 문화제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대추리에서 촛불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을 주민들을 생각하며 평택 투쟁을 알려가기 위해 쉼이 없었다. 그런데, 붉은 옷을 입은 수십만 명의 사람들로 인해 옮겨간 것이다. 월드컵은 6월이면 끝이 난다. 평택 투쟁도 6월말 계고장이 날아온다. 한미 FTA 협상도 이미 1차 협상을 마무리 했고 2차 협상은 7월 초이다. 6월은 월드컵을 열심히 응원하고 7월부터 투쟁하자고 할 텐가? KTX 여승무원 동지들의 투쟁도, 기륭전자 동지들의 투쟁도 모두 7월부터 생각해보자고 할 것인가?

미디어의 농락- 온통 월드컵 특집 방송


5월 4일 대추초등학교에는 전국의 방송들이 다 모였다. 마치 전쟁 속보라도 올리듯이 긴장이 팽배했다. 그래, 언론이라면 저런 정신이 있어야지 했다. 그러면 월드컵이 시작되고 나서 방송 편성표를 보자. 언론이라는 말이 부끄럽게도 3대 메이저 방송사의 편성표는 “축구”를 빼고는 무엇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전이 펼쳐진 지난달 18·22·25일 메인뉴스 시간의 월드컵 관련 보도 비율이 SBS 100%, MBC 96%, KBS 94%에 이르는 등 월드컵 기간 내내 TV뉴스가 파행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국민들의 귀와 눈을 가리는 그 편성표에는 월드컵 뿐, 긴박한 평택도 FTA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없었다. 축구가 방송가를 싹쓸이 한 지금, 한미 FTA 협상은 마무리되어 가고 도두리에는 전경들이 상주하고 KTX 노동자들은 100일 투쟁을 축하하였고 투쟁을 열심히 하시던 장애인 동지는 지하철에 투신을 하셔서 돌아가셨다. 토고전이 있던 그날 밤, 같은 시각, KBS 1TV에서는 평택 미군기지확장에 관한 국방부와 범대위의 대 토론회가 있었다. 계속 토론회를 거부하던 국방부가 잡은 그 시간. 이렇게 중요한 논의를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보고 있을지 우려를 표한다는 사회자의 말에 적극 공감하며 미디어와 국가가 월드컵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국민을 농락한다는 생각을 씻을 수 없었다. 이날의 대 토론회야 말로 월드컵 방송국인 3개 메이저 방송사의 특별!특집!방송이어야 했었다. 언론이 왜 존재하는가?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방송사들은 국민이 한국사회의 쟁점들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의 눈과 귀가 되는 공공적 역할을 담보해야한다. 또한 문화를 선도하고 형성하는 일 주체로서 언론은 존재한다. 그 중에 여론을 형성하는 몫은 가장 큰 책임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의 언론은 자신들이 선도적으로 한국 사회 다양한 쟁점들을 덮어버리고 있다. 언론이 축구에 올인하는 동안,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동안, 오프사이드는 알아도 세이프가드는 몰라도 되는 것처럼, 다음 국가대표 감독이 누가 되는지는 빠삭해도 평택은 내일 모레 퇴거명령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몰라도 되는 것처럼 한국사회 또한 축구 광풍이 불고 있다.

자본-국가-월드컵 / 언니 좋고 형부 좋고 나도 좋은 삼각관계


올해 들어 힘들어하는 활동가들을 많이 보았다. 몸을 손오공처럼 여러 개로 나누어 투쟁했으면 좋겠다고 상상도 해보곤 했다. 어느 한 해 그렇지 않은 해가 없었지만 한미 FTA투쟁, 평택 전쟁기지 건설저지투쟁, 비정규직투쟁, 교육투쟁에 그야말로 숨돌릴 틈 없이 민중들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물론 민중들은 강고하게 투쟁하고 있다. 어느 하나 정세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투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저항의 움직임을 살짝 잠재우고 대한민국에 사는 민중들의 공감과 저항의 세력화를 막기 위해선 월드컵만큼 좋은 게 없다. 기업들은 덩달아 신이 났다. 2002년의 자발적인 붉은 악마들의 거대한 움직임을 보고 돈이 된다는 판단아래 광고부터 시작하여 급기야 서울시청 앞 광장을 사기까지 하지 않는가. 하나가 되자며 응원을 독려하는 것은 기본이다. 기업들이 월드컵을 위해서, 국위 선양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벤트로는 개인정보가 새나가고 있는 것이며, 그들의 상품 광고를 억지로라도 한 번 더 보게 만든다. 2002년에는 무료로도 배포하고 싼값에 살 수 있었던 티셔츠는 이제 전 의류기업들에서 독점을 행하고 있다. 월드컵 특수! 자발적으로 기업의 이윤을 올려주니, 기업들은 정말 이 같은 호재가 없다. 여기에 더불어 제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문제는 2002년에도 제기되어왔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 월드컵 공식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 실명하는 파키스탄의 어린 노동자나, 몇 억에 판매되는 베컴의 축구화를 푼돈을 받고 만드는 동남아의 어린 노동자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민족-국가주의와 축구경기. 이 두 가지를 이용하여 자본은 돈을 벌고 정부는 불만을 무화시키고 언론은 그 가운데서 어색하지 않게 당연히 응원의 인파로 흘러가도록 중간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금의 월드컵을 결코 유쾌하게 즐기기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월드컵은 부메랑이다


우리 2002년을 잊지 말자. 월드컵 뉴스 속에 방송도 되지 못하고 인터넷 뉴스 한 끄트머리에 겨우 간략하게만 나왔던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 그 때 얼마나 투쟁하기 힘들었던가. 언론의 외면을 받았지만 투쟁으로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며 촛불을 켜드는 그 동안, 거리에는 월드컵 승리 기쁨의 인파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한참 지나고서야 그 투쟁은 간신히 살아나게 되었다. 시기를 놓친 투쟁에 대한 방기는 2006년 칼이 되어 우리 목전을 겨누고 있다. 바로 한미FTA와 평택 전쟁기지 건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이다. 지금 이 투쟁 또한 힘을 잃을 때, 2010년 월드컵 응원의 붉은 함성은 민중들의 절규로 붉은 티셔츠는 민중들의 피로 물들지 그 누가 알겠는가.

신호등 신호에 따라서만 다니던 길을 자유롭게 다니고 모르는 사람과 하나가 되어 흥분하는 즐거움! ‘우리나라’가 이기기라도 하면 더 기쁘다. 내 힘든 삶도 잊을 수 있고 오랜만에 ‘쾌감, 해방감’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기에, 현실을 잊기 위해 스포츠와 축제에 열광하도록 조작당하고 있는 거라면, 우리의 일시적인 쾌감은 분노를 담은 것인지도 모른다. 거짓된 해방감을 인식하고 투쟁으로 진정한 해방을 쟁취할 수 있도록 칼끝을 벼려야 할 때인 것이다. 자본과 정권이 조장하는 월드컵 열기에 휩쓸려가는 사이, 누구에게 저항하자고 하고 연대투쟁하자 말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하나씩 둘씩 고립되어 잊혀지고 쓰러지는, 투쟁하는 민중들을 더 이상 잃을 수 없다. 해방 세상을 향해 민중으로서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청년학생들이라면, 지금의 월드컵 세상을 그대로 즐기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본과 정권이 적극 이용하는 월드컵, 이용되는 것은 부메랑이 되어 월드컵을 넘어선다. 축구국가대표의 경기 승리, 그리고 패배 이후 국가주의의 기억과 텅 빈 거리를 남길 것인가, 아니면 민중들의 승리로 해방의 거리를 다시 한 번 만들 것인가. 지금이 바로, 정세를 열어젖히는 선도적이고 헌신적인 투쟁을 시작할 때이다.

Posted by 행진

2006/06/28 06:20 2006/06/28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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