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해방전후사
- 4. 3 제주항쟁을 맞이하여 -
잠들지 않는 남도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 어둠 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아 ~ 아 ~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
0. 들어가며
1945년 조선의 해방부터 1953년 한국전쟁의 종전까지, 8년간의 기간을 보통 해방전후사라고 부릅니다. 8년 간의 기간이지만 이 시기는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쟁점을 제공합니다. 진보적인 역사학계의 출현의 상징으로 1980년에 출판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언급하고, 뉴라이트 부상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출판이 있습니다. 이처럼 해방전후사를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그것을 대중에게 이야기하고 학습해 왔던 관점 자체가 이데올로기 투쟁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해방전후사는 ‘혁명의 광장’이었을 만큼, 치열한 계급투쟁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식민주의 시기에 은폐된 형태로 조직되었던 각종 이념들이 폭발하는 시기가 해방전후이기 때문이지요.
‘일본 놈들이 쫓겨나가고, 미국 놈들이 들어와서 해방인 줄 알았는데 그놈이 그놈이더라~’
이 노래가사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지만, 한국의 해방 전후사를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는 없습니다. 이 노래가사는 일본이 미국으로 바뀌는 것을 단지 ‘똑같은 놈’(제국주의 세력)이 지배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며, 세계적인 국면의 전환을 인식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한국의 해방전후사 기간은 전쟁 이후 미국 헤게모니의 부상에 따라 자본축적 및 세계적 통치성의 국면이 바뀌는 시기였습니다. 그것은 완결된 형태로 짜여진 것이 아닌 커다란 부침을 겪으며 생성중인 것이었고, 때문에 해방전후사를 일관된 시각으로 바라보기가 어려워집니다. 또한 한국이라는 위치 자체가 미국헤게모니 성립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위치이기 때문에, 한국을 거점으로 하여 동아시아 전체에서 공산주의의 이식을 막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발전주의로의 기틀 짜기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헤게모니의 새판짜기가 진행됨에 따라서, 한국의 지배계급들의 동향이 뒤바뀝니다. 이는 한반도에서 좌-우 연합정부의 처음의 계획이, 미국의 전략에 따라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보수주의적 세력의 단독집권으로 바뀌는 일련의 과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지배계급들이 통치를 위한 물질성을 마련하는 과정입니다. 식민지 시기에 착취를 자행했던 민족자본가와 관료들이 했던 방식과, 국가장치들이 행했던 역할들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특히 경찰과 군대와 같은 폭력적 국가장치들은 단순한 억압을 넘어서, 전후 남한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해방 전후사는 가히 민중정치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와 각종 지역위원회, 공장 점거 운동과 대중운동 단위로서 전평/전농 운동, 남로당의 결성과 빨치산 운동... 탁치 논쟁을 둘러싼 치열한 대중운동의 전개, 9월 총파업과 10월 인민항쟁, 4. 3 항쟁과 여순사건 등등. 해방 전후사는 계급역관계가 우위에 있던 시기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지배계급들은 미군정을 등에 업게 되고, 이를 통해서 계급연관계는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계급역관계가 역전되던 조건들을 단순히 지배계급들의 탄압만으로는 돌릴 수 없습니다. 계급투쟁의 패배는 혁명전략에 있어서 소련이라는 국가의 역할과, 북한의 성립이라는 다른 축의 헤게모니 성립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좌파들이 행했던 전술들에서의 패배가, 계급역관계의 역전을 가져오는 데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패배는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계급정치와 좌파가 거의 소멸하다시피 하는 조건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계급투쟁에 있어서 또 하나 주목할 수 있는 측면은, 각 분파들 간의 연대연합 전술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런 연대연합과 관련된 논쟁들은 현재의 정치 지형 혹은 민중운동 지형의 동향을 파악할 때에도 충분히 되새겨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해방전후사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데 있어서는 ‘한국현대사를 만나다’의 총론에서 제시했던 방식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해방전후사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일종의 과도기, 새판짜기의 시기였기 때문에 일관된 흐름으로 역사를 바라보기가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해방전후사는 각 시기별 사실의 순서를 정확히 알아가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사건 하나하나의 정확한 인과관계의 파악이 아닌, 어떤 구조와 정세들 속에서 사건이 과잉결정 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방 전후사에서 4.3 제주항쟁은 계급투쟁과 단일국가 수립이라는 ‘민족적’인 목표가 결정적으로 좌절되는 사건입니다. 특히 10월 인민항쟁 이후에도 단선 반대투쟁의 형태로 간헐적으로 진행되던 대중투쟁이 막을 내리고, 유격대 형태의 투쟁이 전개되는 계기입니다. 이 사건은 민중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을 보여주며, 지배계급들이 폭력적 국가장치의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그리고 4. 3 항쟁은 당해 10월에 있었던 여순 사건과 더불어, 반공주의를 강화하며 민족 안 경계긋기를 강화한 시기입니다. 이러한 경계 긋기의 과정들로 5월의 선거와 제 1공화국의 출범이 가능하게 됩니다.
한국현대사에 있어서 해방 전후사는 가장 역동적이고, 아쉬운 부분이 많은 역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해방전후사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실과 관점을 살펴봐야만 합니다. 물론 우리의 글에서 해방전후사의 모든 사건들과 쟁점들을 다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해방부터 4. 3 제주항쟁이 일어나기까지의 약 3년간의 역사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총론에서 보았던 방법을 위주로 해전사를 바라보는 방식들을 서술할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해방전후사와 그 시기에 있었던 사건들이 갖는 의미를 좀 더 명확히 추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론적인 해석을 넘어서, 현재의 계급투쟁에 기여하는 역사해석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행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