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여성의 날의 유래와 의의
만약 우리가 남성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수 있다면,
산전산후 휴가를 받고 아이를 탁아소에 맡길 수 있다면,
모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성(Sexuality)과 수태를 조정할 권리가 있다면
이것 모두는 바로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피나는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10년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3‧8여성의 날 기념대회 연설 中
1908년 3월 8일 루저스 광장, 미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1만 5천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은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맞서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동시적으로 발생한 경제공황 속에서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일하며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것을 요구받았지만, 그녀들은 정작 인간이자 노동자, 시민으로서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여성들의 봉기는 비단 미국 뿐 아니라 유럽대륙으로도 퍼져나갔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물가가 오르자 '주부들의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은 처음엔 악독한 상인들을 위협하거나 시장의 상품 진열대를 부수기도 했지만, 곧 그런 행동들만으로는 생계비용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키는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의 참정권이 필수적임을 깨닫게 되었죠.
여성노동자들의 저항을 기억하고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 독일 사회주의자이자 여성운동가인 클라라 제트킨(Clara Zetkin)의 제안으로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을 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20세기 산업국가에서 열악한 노동현실에 분노한 여성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투쟁했던 것을 기억하고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도모하고자 여성운동진영이 의식적으로 노력한 성과인 것입니다.
그 후 1년이 지난 1911년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부터 여성의 날이 준비되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정부와 사회에서의 여성의 평등에 대한 문제들을 분석했습니다. 드디어 첫 번째 여성의 날,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거리 곳곳에서는 시위가 열렸고 그를 막으려는 경찰들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들의 집단적인 저항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여성해방 운동의 역사와 여성의 날
어떤 사람들은 여성의 날에 가장 중요하게 요구한 것은 여성의 투표권이었다고 이야기하면서 지금은 이런 요구들이 달성되었으니 여성의 날은 여성을 위해 이벤트를 열고 선물을 하는 기념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성의 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면 그런 이야기들은 아주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여성의 날은 전 세계 여성들이 함께 투쟁하고 연대하는 날이며, 그 의미가 여성의 참정권 요구로만 그친 적은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 3․8 여성의 날은 참정권 요구만이 아니라 여성들의 지위향상과 남녀차별 철폐, 여성빈곤 타파, 전쟁 반대 등 당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억압에 맞서 함께 연대하며 투쟁한 날이었습니다. 1915년 멕시코와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 반대 및 물가안정 운동, 오스트리아․에스파냐에서 일어난 군부독재 반대운동, 1943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무솔리니 반대시위를 비롯해, 1979년 칠레의 군부정권 반대시위, 1981년 이란 여성들의 차도르 반대운동, 1988년의 필리핀 독재정권 타도 촛불시위 등이 그 대표적인 투쟁입니다.
특히 1917년 여성의 날은 러시아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첫날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더욱 뜻 깊은 날이 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식량 구입을 위해 줄을 서 있던 한 여성이 빵 가게의 유리창에 돌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기나긴 줄을 서 있던 여성노동자들과 병사 부인들이 시위대가 되어 페트로그라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행렬은 또 다른 곳에서 여성의 날 집회를 하고 있던 여성노동자들과 동맹파업자들과 합류했고, 전쟁과 그로 인한 물가 인상, 노동자들의 비참함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주의 여성 활동가들은 열악한 여성들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알려냈을 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와 병사아내들 스스로가 조직되어 자신들의 요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운동이 여성해방을 자신의 과제로 삼고 이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 것을 주장했고, 혁명과 여성운동의 결합을 시도했습니다.
이처럼 3․8 여성의 날은 여성해방을 앞당기는 투쟁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 만의’ 사안과 요구를 넘어서, 민중을 억압하는 폭력에 맞서 전 사회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저항과 연대의 날이었습니다. 그 시대가 만들어낸 사회적 조건에서 가장 착취 받고 박해 받았던 여성들이 직접적인 행동에 나섰을 때 역사가 바뀌어왔다는 것은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여성, 그리고 사회가 바뀌길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성의 날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결코 작지 않죠.
연대의 원리로 투쟁하는 여성의 날을 만들어갑시다!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와 전쟁의 시대에서 여성들은 더욱 빈곤해지고, 더욱 많은 폭력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일자리가 늘어나는 가운데, 여성들 대부분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면서도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난 뒤에는 피곤한 몸을 쉴 틈도 없이 여성이 ‘집안 일’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 시달려야 하죠. 복지와 공공서비스는 축소되거나 그마저도 돈을 주고 사야하는 일이 되었고, 사회가 보장하지 않는 복지의 공백은 다시 여성들의 희생으로 채워집니다. 값 싸게 고용할 수 있고, 쉽게 해고되며,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가정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여성! 만약 그녀들이 멈춘다면 세계가 어떻게 될까요?
드러나지 않게 세상을 지탱하고 있었던 여성들은, 이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움직이려 하고 있습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점으로 전 세계의 여성들이 그녀들 스스로의 힘으로 국제적인 연대를 시작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아래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여성들의 네트워크인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은 2005년에 지구를 횡단하는 릴레이 행진에 나섰습니다. 상파울루에서 3만 여명의 여성들이 ‘인류를 위한 여성의 지구적 헌장’을 선포하며 벌인 대규모 시위는 몇 달 동안 지구촌 50여 개 국을 거쳐 부르키나파소까지 도달했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 각기 다른 직업, 신체적 특징, 성적 지향을 지닌 그녀들은 전 세계를 행진하면서 자신들을 억압하는 다양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경을 넘는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세계여성행진’은 올해에도 3‧8 여성의 날에 맞춰 제 3회 국제 행동을 준비하고 있는데, 처음보다 더 많은 국가와 도시에서 전 지구적인 행동에 동참 할 것을 밝혔습니다. 한국 역시 세계의 여성들과 함께하는 행진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2010년에도 신자유주의 속에서 억압받는 전 민중들과 함께 힘차게 투쟁하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만들어 갑시다!!
Posted by 행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