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행난 (금속노조 남부지역지회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여성의 날 행사에 갔다가 시그네틱스지회 투쟁이 담긴 <얼굴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늘 만나는 시그 동지들이 집안일과 투쟁을 힘겹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2005년에 투쟁을 막 시작했을 때, 고3이던 작은 딸에게 물질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정서적으로도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2005년 8월, 파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집에서 협조를 많이 해줬다. 하지만, 1년 반 정도 지난 지금은 눈치가 많이 보인다. 애 아빠는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애 아빠도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길어지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애들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또, 아이들 교육이며 집안에 들어가야 할 돈은 많은데 그걸 혼자 다 감당하려니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애들이 착하고 많이 이해해줘서 고맙고 투쟁하는데 큰 힘이 된다. 많이 도와주고 내가 밖에 나가서 다칠까봐 늘 걱정을 한다. 그래서 애들한테는 많이 미안하다. 얼마 전, 딸애가 졸업식인데 나에게 말을 안 하고 혼자 다녀온 것을 뒤늦게 알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침에 출근투쟁 때문에 일찍 나와야 해서 애들 얼굴을 못보고 나오는데, 그래도 꼭 밥상은 차려놓고 나오려한다. 얼마 전 한 쪽 손을 다쳤는데, 나머지 한 쪽 손으로 빨래를 하다 보니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여성이라는 것은 집 안에서 뿐만 아니라 일할 때 처절하게 느꼈었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라는 것은 정말... 나는 기륭전자에 들어오기 전까지 정규직으로 일을 했었다. 그때는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이든 경조사가 있든 마음 편하게 휴가를 쓸 수가 있었고 현장 분위기도 가족적이었다. 그런데 기륭전자는 몸이 아파도 경조사가 있어도 해고의 위협 때문에 휴가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고 동료들끼리도 살갑게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생리휴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자식들과 함께 살아가야하는 엄마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지 여성노동자들을 문자 하나로 자르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는 신체적인 이유까지 언급하면서 해고를 했다. 월급은 또 어떻고. 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한 달에 잔업을 40시간만 해도 100만원이 넘었는데, 여기서는 80~90 시간을 해도 100만원이 안되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자 직원과 임금의 차별도 있었다. 정규직일 때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는데,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는 버는 돈은 얼마 안 되고 체력은 딸렸다. 밤늦게 까지 일하고 집안일 까지 하고나면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났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대우와 비인간적인 해고였다. 그래서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투쟁을 하면서 기쁜 일, 통쾌한 일도 많았다. 현장 안에서 농성을 할 때, 사측에서 우리를 셔터로 가둬놓았었다. 나는 그 위 6개월 동안 불면증에 시달릴 만큼 갇혀있는 것이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웠다. 그 때, 언제인가 한 번 한 조합원이 그 셔터를 발로 뻥 차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 뻥 찼는데, 얼마나 시원하던지! 2005년 10월 17일, 공권력 침탈로 현장농성이 중단되고 경찰서로 연행이 되었었다. 그 때, 알몸 수색을 거부했던 일이며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 신문을 볼 권리 등을 요구하고, 나올 때 교통비까지 받아갖고 나온 일은 정말 통쾌했던 일이다. 하지만,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처음으로 설치했던 우리들의 천막을 용역과 전경들이 부수었던 것은 정말 가슴 아픈 기억이다. 투쟁을 하면서 무엇보다 기뻤던 일은 전국의 노동자들을 많이 만난 것이다. 특히, 코롱, 하이닉스, 하이스코, 한국합섬 등 장기투쟁 사업장 동지들은 서로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큰 힘이 되었다. 우리도 힘들지만, 다른 사업장 동지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우리도 그렇지만,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도 빨리 해결이 되어 그 동지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기륭 투쟁에 물심양면으로 연대해준 동지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그 날, 오후에 집회가 있었는데 김성만 가수가 축가를 불러주고 조합원들이 케익을 준비해주었다. 노래를 듣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눈물이 났다. 또, 조합원들이 연락을 했는지 내가 아끼는 많은 연대동지들이 알고 축하메시지를 보내주어서 참 기뻤다. 다들 힘들 텐데, 정성껏 생일을 챙겨준 우리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 우리 기륭분회는 대오가 그리 많지 않다. 일을 못하게 되면서 다들 방세며 전기세, 전화세도 못내는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식뻘 되는 회사 용역이나 전경들과 싸우고 그러다가 다칠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특히, 지난해 3월 6일 회사 용역들의 폭력과 회사에서 하루 종일 쏘아댄 물대포, 그리고 이를 방관하던 경찰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그렇지만 우리 조합원들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없는 세상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연대도 열심히 다니면서 550일이 넘는 투쟁을 하고 있다. 조합원들 모두가 밥 잘 챙겨먹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오늘, 집회를 하는데 지나가던 한 시민이 우리 조합원 아가씨들을 보고 나이 들어 보인다고 해서 속이 상했다.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여유 없는 투쟁이지만, 우리 조합원들이 건강도 잘 챙기고 피부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고...”

우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삶이 이미자의 노래에 나오는 동백아가씨처럼 오늘은 아프고 ‘멍’ 투성이지만, 오늘 단결되어 열심히 투쟁하는 우리가 있기에 반드시 기쁜 내일이 올 것임을 믿는다.

Posted by 행진

2007/03/20 18:21 2007/03/20 18:21
, , ,
Respons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RSS :
http://stulink.jinbo.net/blog/rss/response/33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