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를 읽고

회원 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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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베스트셀러를 뉴스레터에 소개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지네요. 올해 뉴스레터에 신설된 코너인 ‘우리들의 이야기’에 다른 분들이 좀 편하게 글을 쓰셨으면 하는 생각에...ㅎㅎ 사실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본 적 없이 이 책만을 소개한다는 것이 성급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하지만, 일단 ‘남쪽으로 튀어’는 재밌고 통쾌합니다. 일상의 활동에서 지치고 가끔 푹 쉬고 싶을 때 한번쯤 읽어보면 유쾌한 활력소가 될 것 같네요. 특히나 기본적인 집회의 자유마저 허락되지 않는 요즘, 무력감이나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분이 있다면... ^^;;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이 소설은 꽤나 무거운 주제와 여러 이야기들을 매우 경쾌하고 부담 없이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고 적절한 진지함을 유지하면서 풀어갑니다. 이런 부분들은 소위 ‘대중운동’을 고민하는 우리들도 항상 고민해야 할 부분일 것 같아요.

‘남쪽으로 튀어’는 아나키스트 아버지를 둔 초등학교 6학년 지로의 특별한 성장 이야기입니다.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는 과거 부르주아 국가의 전복을 목표로 하는 혁명당인 혁공동(아시아 혁명 공산주의자 동맹)의 전설적인 행동대장으로, 현재는 프리 라이터를 자처하고 무정부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인물입니다. 국민연금 납부는 국민의 의무라는 구청 담당자에게 “그러면 난 국민을 관두지”라고 당당히 선언하고, 지로에게는 “학교 같은 거, 다니지 않아도 괜찮다”고 충고하는 속 시원한(?) 아버지이지요. 소설 전반이 이런 아버지 이치로의 투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긴 하지만, 지로의 사춘기 성장통 문제나 모두 독특한 캐릭터와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는 엄마, 누나, 동생의 이야기와 후반부의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한 온가족의 투쟁이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재미를 엮어냅니다.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든 프롤레타리아든 집단이 되면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개인단위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얏!

하지만, 단순히 재밌게만 이 소설을 읽을 수는 없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위의 대사에서 보듯이 집단과 개인의 문제에 대해서 아직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소위 말하는 현실 운동이나 우리가 하고 있는 활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개개인에게 평등하고 행복한 공간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도 쉽게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이유로 떠나가는 친구들도 많이 봤구요. --;; (물론 일본은 우리와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래서 조금 기대를 하면서 읽어갔는데, 이 소설의 결론은 결국 제목처럼 지로네 가족은 남쪽으로 도망가는 길을 택하는 걸 보면서 답답해지기도 하더군요. 어쨌든, 우리에겐 지금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있는데, 결론은 결국 남쪽으로 도망가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후반부 이리오모테섬에서의 생활 중 마을 사람들과의 매일 같은 연대(?)나 외국인 체류자 베니 와의 만남, 그리고 지역경찰도 지로의 가족을 보며 혼란을 겪는 부분에선 무언가 답이 좀 보이는 것 같기도 했어요. ‘문제해결’이라는 것이 집단적으로 가능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집단 혹은 공동체에 속한 개개인들 모두에게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간으로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야기가 너무 멀리 왔나요? ^^;;

아무튼 요즘처럼 일정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아 심신이 지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거나 혹은 튀고(?) 싶을 때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무언가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웬만한 만화책보다 재미있다는...

Posted by 행진

2007/03/20 18:43 2007/03/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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