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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4일, 장애인 차별철폐 문화제가 열렸던 서울역에서 처음으로 ‘차별에 저항하라’와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라는 두 권의 책을 접했다. ‘현장 활동가’라는 이미지가 ‘책’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다는 편견 때문이었을까? 직접 책을 소개하고 계셨는데도 사실 그 때는 김도현 동지가 저자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

그 당시엔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읽어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지나쳤었는데, 420과 430/메이데이를 지나면서 평소 정리 되지 않았던 ‘장애인 운동’에 대한 이러저러한 고민들이 다시 머리를 어지럽혀 책장을 넘기게 되었던 것 같다.

원래 기획은 행진회원들께 서평을 부탁하거나 뉴스레터 편집팀(이하 편집팀) 차원에서 서평을 쓸 계획이었지만, 그동안 두 권의 책에 대한 서평이 여기저기서 꽤 있어 왠지 모를 부담감이 들기도 했거니와 저자의 좀 더 생생한 문제의식을 전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고 인터뷰를 부탁하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생각했던 만큼 얼마나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 진 자신이 없다. 사전에 녹음기를 준비하지 못한 미숙함도 문제지만, 하나를 물으면 서너 가지를 이야기하시며 열변을 토하시는 김도현 동지의 많은 이야기와 열정을 그대로 전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여러 회원들과 그 자리에 함께 했으면 더 좋았겠다.

  편집팀    준비해 온 질문을 드리기 전에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어서요. 음... 진정으로 ‘동정’과 ‘시혜’를 넘어선다는 것 혹은 진정한 ‘연대’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물론, 이러한 문제는 장애인 운동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나 장애인 투쟁에 함께하고 동의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의 감수성이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낄 때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데요. 예를 들면,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친구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하긴 하지만, 사실 그 사람들보다 얼마나 장애인 혹은 장애 문제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드는데요. 실제로 여러 집회나 문화제에서도 장애인들과 함께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은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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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현    흔히들 ‘연대는 과학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죠. ‘남성’이 ‘여성’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기가 힘든 것과 비슷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쉽게 얘기하면 ‘머리’로 느끼는 부분과 ‘몸’으로 느끼는 부분의 차이가 있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 장애 문제의 경우 ‘머리’, ‘몸’을 통한 경험이 모두 불가능한 사회구조가 더 큰 문제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러한 경험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머리’와 ‘몸’으로 느끼는 부분들의 간극을 메워가는 과정이 중요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노동조합이나 학생회 등에서 장애 강좌를 하거나 하는 식으로 기본적 관점에 대한 일상적 교육사업과 같은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 단위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전에 ‘이동권’ 투쟁이 활발했을 때 ‘장애인이동권연대’에 정말 많은 단위들이 함께 했었죠. 하지만 그 이후에 단위들에서 장애문제를 스스로의 고민으로 가져가기 위한 자발적인 노력은 부족했다고 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는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편집팀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의 경우 장애인 운동 전반 혹은 주류장애인 운동에 대해 일정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 ‘진보적 장애인 운동이 나아갈 바’에 대해 말씀해주신 것 같은데, 진보적 장애인 운동의 방향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가요? ^^;;

  김도현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 ^^  쉽지 않은 이유는 전체 운동 역시 ‘전망’이 부재하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겠죠. 그리고 어떻게 보면 무언가 ‘답’이 있는 것도 문제일 수 있죠. 열 발자국 앞으로 가봐야 다음 열 발자국이 보이지 않을까요? 진보적 장애인 운동의 방향 혹은 이념적 지향이라기보다는 ‘원칙’ 정도로는 국가권력으로 포섭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이 중심이 되어야 겠죠. 

  편집팀    현재 운동진영 전반에서 장애문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 충분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다른 운동진영에서 장애인 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오해와 왜곡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동지가 생각하시기에 운동진영에서 장애문제에 대해 바꿔야 할 시선이나 잘못된 인식은 무엇이 있을까요? 

  김도현    ‘오해’/‘왜곡’이라는 표현보다는 ‘부재’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재’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를 바꿔가야지요. 처음 질문의 답변과 비슷합니다. 유기적인 연대가 중요하겠죠.  

  편집팀    여러 운동들이 처한 조건과 장애인 운동의 현재 처해있는 조건이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우리 사회에는 신자유주의에 의한 억압과 차별, 불평등이 있어 왔고 많은 운동들이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전선으로 결집할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을 대하는 이 사회의 매우 봉건적인 태도나 시선 그리고 관행에 맞서 싸워온 측면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물론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에 따른 억압도 있지만...) 그런 면에서 한편으로 책에서 밝힌 장애인 운동의 ‘비동시대성’이라는 지적이 매우 동감되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 운동이 다른 여러 운동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연대할 것인가 하는 점은 또 다른 쟁점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김도현    사실 장애인 문제/투쟁을 처음 접할 때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부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러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배제’가 근대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 요소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배제’는 결코 낯선 문제가 아니죠. 사회가 장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을 격리시킨 것이 아니라 이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격리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은 장애인 운동에 있어서도 필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에서도 신자유주의와 관련한 문제를 빼놓을 수 없구요. 특히 앞으로 장애인 운동의 의제로 주거권, 교육권, 노동권 등이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절대로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투쟁이 장애인들의 매우 기본적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었다면, 지금부터의 투쟁은(일정 전환점이자 위기 국면이 될 수도 있는데...) 실질적이고 인간다운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한 시민권(citizenship)을 획득해나가는 싸움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신자유주의와 전면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말하면 입법투쟁은 정말 재미없습니다.^^ 하지만 기본권 자체에 대한 배제가 여전히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필요성이 우선하는 측면이 있죠.

  편집팀    마지막입니다. 동지도 학생 때부터 활동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많은 학생들이 졸업이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현재 학생운동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나 전국학생행진(건)동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있으시다면?

  김도현    사실 ‘어떤 걸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은데,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공간’도 많습니다. 그리고 ‘대중운동이 힘들다’라고 이야기하거나 ‘현장’에 대해 비판하면서 실제로 그 공간으로 들어가서 바꾸어 내려는 노력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데, 반성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가끔 내 삶이 100% 행복한가에 대해 생각해보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보통 이야기하는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보다 행복한가라고 물었을 때도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거든요. 지금까지 활동을 하면서 가졌던 고민이나 가치관을 유지하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속에서 그것들을 지속적으로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 나를 깨뜨리지 않는 최소한의 삶의 양식이 아닐까요?


미숙한 인터뷰 진행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이끌어주신 김도현 동지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Posted by 행진

2007/05/27 19:22 2007/05/2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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