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형(성균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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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성주의를 고민한다는 것을 주변에서 알았을 때의 반응은 내가 생각한 이상이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스케줄 노트에 끄적여 놓은 여성주의용어들과 책들을 보시고는 ‘네가 여자야? 사내자식이...’ 친구들의 반응은 ‘너 동성애자, 게이야 혹시?’ 여성주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자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정상이 아닌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친구들의 그러한 반응에 난 흠칫 놀라며 ‘아니야. 아니야. 나 이성애자야.’라고 얼굴이 붉어지면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난 어려서부터 여성스럽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파란색보다 분홍색을 좋아하고, 예쁜 노트에 예쁘게 형형색색으로 필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걱정과 놀림으로 나를 대해왔고 나는 굉장히 이런 것에 피해의식을 느꼈고, 나를 더욱 억압했다. 좀 더 남성스럽게, 좀 더 대범한 척, 화려한 색보다는 칙칙한 색깔로 내 옷장을 채웠다. 그런 나에게 여성주의는 나의 고민과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처음에 난 마치 잃어버렸던 나의 돈을 찾은 것처럼 여성주의에 빠져 수업시간에도 여성주의도서를 읽고 내 삶을 여성주의적으로 살아가야지 하면서 다짐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참 즐거웠다. 그런 나에게 돌아온 친구들의 반응은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 이보다 힘든 고민은 남성이, 아니 내가 여성주의를 고민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가의 여부였다.

여성들의 권리들과 피해들을 가시화하는 성폭력담론을 다루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과연 내가 주체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성주의를 고민하고 이를 조금이나마 이후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활동과 실천으로 이어갈 수 있을 그런 것을 찾는 과정 중에 성폭력상담관련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난 장벽을 보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분명 사적/공적 영역을 나누는 것의 허구성, 그리고 그것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알고 있지만 피해를 겪은 여성들이 과연 남성인 나에게 자신들의 피해를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심지어 ‘당신 말고 여자상담원 바꿔요!’라고 말하는 상상을 혼자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학교선배가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던 책에서 나는 그 장벽이 조금이나마 허물어지는 경험을 했다. 남성이 여성주의의 주체가 되는 과정에서 왜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 주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나에게 남기면서 내가 생각했던 여성주의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 사고의 산물인가를 깨달았다. 자신의 고민과정 속에서 그것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가는 과정 속에서 그러한 실천과 활동이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나 역시 어떤 자리에서, 어떤 위치로 내가 그러한 활동을 하고 싶어 하고 있었다. 이러한 고민들을 안겨주면서 어느 정도의 그런 나의 고민과 가치관에 시원한 해소감을 맛보았지만 사실은 아직도 그리고 지금도 그런 고민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나이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여러 책들을 찾아보면서 남성페미니스트에 대한 생각들을 해보았다.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무엇으로 그것을 판명되는가를 혼자 고민도 해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여성주의적인 삶을 내 삶으로 끌어안아서 페미니스트가 될 것인가를 한동안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서 그런 이야기를 다룬 책이 있었다. 확실히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답, 아니 그 책의 생각은 그랬다. 여성주의를 고민하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남들이 그리고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비춰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아! 하는 탄성과 반성으로 머리를 하루 종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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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라는 분야가 학문으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 특성상 완전히 안다는 것이 얼마나 아는 것인지를 판가름하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난 아직도 더 고민하고 생각해 봐야 할 부분도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내가 머리 아프게 생각할 것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 내가 여성주의를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 것을 아직도 앞에서 말했듯이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난 누구보다 남성들이 여성주의를 고민하고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느낄 때야 비로소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주의적인 사회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절반이 여성이듯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남성들이 여성주의를 생각할 때 우리 사회를 재구조화할 수 있다고 막연한 그리고 자신 있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내가 지금 군대의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두려워서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의 최절정(?)인 대학교 2학년이기에 사회적으로 들어오는 압박으로 고민과 힘듦으로 하루를 사는 남성으로 살고 있지만 말이다.

Posted by 행진

2007/06/29 20:34 2007/06/29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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