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 침묵으로는 잔인한 시간을 끝낼 수 없습니다.
- 고(故) 허세욱 열사를 추모하며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관악구 봉천동 일대가 달동네이던 시절,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좀 좋아지겠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마흔 살의 택시 노동자 허세욱은 봉천 6동 마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살아온 마을이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게 되자 그의 막연한 믿음도 무너집니다. 철거지역의 세입자 대책을 행정당국에 요구하며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는 자신이 겪는 강제철거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려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사회 구조적인 변화는 한 사람의 한 사람의 실천으로부터 나온다는 신념으로,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알리며 실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틈틈이 신문과 책을 읽으며 세상에 대해 공부하는 것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 그는 이 땅의 우뚝 선 노동자였습니다.
2007년 4월, “한미 FTA를 중단하라!”. 이 땅의 더 많은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 지옥의 협상을 그만두라는 많은 사람들의 절규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그는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질러 불꽃이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아프고 아픈 희생에도 죽음의 협상은 끝끝내 질주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1년 뒤,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와 이명박정권 반대의 촛불이 거리를 수놓았을 때, 허세욱 열사가 떠올랐습니다. 열사가 살아계셨다면, 아마 거리에서 끝까지 촛불과 함께 싸우셨겠지요.
2009년 4월, 열사는 하늘에서도 편히 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살인개발 중단하라! 용산참사 책임져라!" 라는 외침은 2년 전 허세욱 열사의 외침과 맞닿아있습니다. 정권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벼랑으로 내몰리는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외환위기 시절 IMF의 처방대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편입에 충실했던 남한사회는 작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폭풍을 그대로 떠안았습니다. 수많은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꿈과 희망을 넣었던 펀드가 거대 자본의 돈놀이에 의해 반 토막이 났고 회사를 지켜온 수백,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경제위기의 고통을 최전선에서 전가당하며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잔인한 4월을 살아가는 우리들, 침묵으로는 잔인한 시간을 끝낼 수 없습니다. 지난 겨울, 지역민을 다 내쫓는 재개발에 저항하다 돌아가신 다섯 분의 열사를 기억한다면, 가난한 노동자들은 자신이 살아온 지역에서 살아갈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알고 있다면 기억합시다. 4월의 열사들을. 삶의 권리란 저항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으로 민중의 삶과 권리를 위해 싸운 허세욱 열사와 용산 철거민 열사를 기억합시다.
- 4월 15일 수요일 저녁 4시 : 허세욱 열사 추모, 경제위기 책임전가 규탄 선전전
- 4월 15일 수요일 저녁 7시반 : 용산참사 철거민 추모문화제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며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부와 자본에 맞서, 우리의 삶과 권리를 이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합시다!
경제위기에 맞선 연세대 공동행동
[연세대학생행진, 연세대 여성주의모임 앨리스, 문과대 3반 학회 프락시스
문과대 11반 학회 삼투압, 문과대 교지 문우편집위원회, 공과대 12반 소모임 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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