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자본이 정말 우리의
‘삶’을 발전시켜 줄 수 있을까?

- 초민족적 외국투기자본의 노동권 파괴


들어가며


 요즘 한국에서 외국기업의 이름을 듣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외국에서 한국 기업의 이름을 보는 일도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다. 그만큼 요즘 기업들과 자본들에게는 국적이 없다. 국경과 지역을 넘나들면서 전 세계에서 자유롭게 기업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정부들은 외국 기업이 자유롭게 전 세계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것, 특히 자국에 들어와 투자활동을 벌이는 것을 매우 반갑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경제의 발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우리의 ‘삶’을 발전시켜주었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배층들이 만들어놓은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기업들은 세계 곳곳에서 이윤을 뽑아내지만, 그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참담하다. 이윤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장이 폐쇄되면서 일자리를 잃고, 기술만 쏙 빼내가고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는 기업 때문에 한꺼번에 몇 천 명이 해고당하기도 하며, 주식시장에서 기업 가치를 올리기 위해 생산비용을 절감하려는 기업주 때문에 임금이 삭감되기도 한다.

이렇게 초민족적인 투기자본들, 그리고 그 기업들이 전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지금의 체제와 환경은 기업의 주인들과 ‘가진 자’들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에게는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노동자들의 삶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왜 그런 일이 생기게 되었고, 여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어떻게 되어야 할지 고민해보도록 하자.





노동자들이 LA, 파리로 간 이유


 지난 1월 세계 최대 악기박람회인 남쇼(NAMM SHOW)가 열리는 미국 애너하임 컨벤션센터 앞마당에는 전단지를 돌리며 메마른 ‘투쟁가’를 토해내는 콜트악기와 콜텍 노동자들이 있었다. “노동자가 없으면 음악이 없고, 음악이 없으면 삶도 없다!”가 장단 맞춰 쇳소리로 터져 나온다. 인간의 본능을 처절하게 대변하는 음악들이다. 이 노동자들의 일터는 실상 2007년(콜텍 대전 공장)과 2008년(콜트 경기 부평 공장)에 문을 닫았다. 실직자들이 이역만리를 가는 까닭엔, 12시간 비행 거리만큼이나 긴 설명이 필요하다.

1970년대 세워진 콜트 악기와 자회사 콜텍은 세계 기타 생산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했지만, 2006년에 당기순손실을 입는다. 흑자경영 10년만이다. 2007~2008년 사이 국내 공장도 모두 문을 닫는다. 당시 콜트악기 쪽은 “경영적자와 노사 갈등 때문에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지만, 이에 대해 ‘위장폐업’이 아니냐는 사회적 여론이 거세다. 중앙노동위원회가 해고가 부당하다고 2008년 결정하고 2009년 법원 판결도 쏟아진다. 콜트의 해고 무효 확인 행정소송(2심)에서 노동자들이 승소하고, 민사소송(1심)에서도 “해고가 무효하며 원직 복직시킬 때까지 월평균 임금 등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판결이 나왔다. 콜텍 역시 지난해 11월 해고가 부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을 받았다. 복직투쟁 1100일이 다 되어가지만 회사는 뻔뻔하게도 모든 판결에 대해 항소 ․ 상고했다. 결국 회사의 노동자들은 20년 기타 제조 남성 숙련공의 한 달 치 월급을 훌쩍 넘는 200만 원 짜리 왕복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이런 ‘원정투쟁’은 급히 유행이 된다. 또 다른 무리가 1월 19일 프랑스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발레오공조코리아(충남 천안) 해고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일터도 지난해 말 사라졌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세계 3대 자동차 부품업체 발레오가 그룹 차원에서 결정한 사항이다. 그리고 이들이 돌아오는 2월엔 승림카본(경기 안산) 해고 노동자들이 한국을 떠난다. 회사 경영권을 쥐고 있는 독일의 다국적 자본 ‘슁크’가 노조와 갈등을 거듭하다 2007년 직장을 폐쇄한 것이다. 우유팩 제조업체인 페트라팩(경기 여주) 해고 노동자들도 2007년 스위스로 원정투쟁을 떠나 석 달간 천막농성, 단식투쟁을 한 적이 있다.

위에서 본 여러 노동자들의 사연은 다른 것 같아도 어딘지 닮아 있다. 자본 철수 이후, 생계는 물론이거니와 책임 ․ 윤리 경영 따위의 호소는 경영진의 귓등에도 닿지 않는다. 무엇보다 국내 경영진은 문제 해결 의지가 없거나 결정권이 없다. 권한 있는 경영진은 만날 수조차 없다. 그림자도 없는 ‘허깨비 자본’은 노동자를 철저히 무력화한다. 그 때문에 발레오공조 ․ 승림카본 노동자들은 결정권 없는 국내 경영진을 넘어 그들의 ‘주인’과 직접 만나고자 한다. 국내 자본인 콜트 ․ 콜텍의 노동자들은 외국의 거래처나 고객을 직접 만나 호소하려 한다. 국경을 넘는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질수록,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의 피할 수 없는 세계 여행도 일반화된다.



외국투기자본, 그게 뭐야?


 수십 명의 구속자와 수천 명의 해고자를 발생시킨 작년의 쌍용차 구조조정은, 외국 투기자본(줄여서 ‘외투자본’이라고 하기도 한다)의 문제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했다. 2004년 쌍용차를 인수한 상하이자동차는 투자는 외면한 채 기술 유출에만 몰두하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회사를 부도내 버렸고, 이후 법정 관리인에 의해 대규모 정리해고가 단행되었다. 상하이 자동차는 이후 검찰 조사에서 기술 유출 등의 범죄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한국 정부가 상하이자동차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현재 쌍용차는 인수자를 찾기 위해 저비용 생산 구조(저임금 고강도 노동 시스템)를 갖추기 위한 구조조정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쌍용차만큼 여론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캐리어, 발레오공조, 위니아만도 등 초민족자본이 투자한 제조업 기업들에서 현재 자본 철수가 진행 중이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의 피해를 겪고 있다. 미국계 초민족 자본인 유티씨의 계열사인 캐리어는 몇 년째 시설투자는 하지 않은 채 수백 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며 영업망만을 유지한 자본 철수 절차에 돌입했고, 프랑스계 자동차 부품 업체인 발레오의 한국 계열사인 발레오공조는 아예 공장 폐쇄를 단행했으며, 초민족적 사모펀드 씨브이씨의 소유인 위니아만도는 자본철수 협박 속에서 노동자를 정리해고 중이다. 현재 구조조정에 대해 투쟁하는 곳 대다수가 초민족자본 투자 기업일 정도로 한국에서 초민족 자본의 문제는 심각한 상태이다.

자본의 자유로운 세계적 이동 때문에, 초민족자본은 한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무력화하는데 유능하다. 노동자들이 정당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면, 초민족자본은 떠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대응한다. 이들은 세계적 수준의 생산 네트워크를 보유함으로써 한 공장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른 공장에서 생산을 대체해 버릴 수 있다. 기업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다. 제어할 고삐가 없는 외투자본들은 밑바닥 경주(race to the bottom)를 벌이며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한다. 기준이 엄격한 곳에서 저임금과 해고가 자유로운 곳으로 옮겨 다닐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리를 총체적 파괴하고 축소시키며 열악한 조건을 직접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외투자본은 국제적 경제 여건에 따라 공장 폐쇄와 이전을 아주 자유롭게 감행한다. 2008~2009년 세계경제위기에서도 볼 수 있었던 초민족 자본의 국제적 이동은 경제 조건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과감하게 공장을 폐쇄하고,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곳에서는 현지에서 자본을 조달하고 본사의 자원을 집중하여 공격적으로 인수 합병을 하고 신규 공장을 건설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본 철수 협박 및 신규 투자 등을 조건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크게 빼앗는 것은 물론이다.

경제위기 과정에서 나타난 초민족 자동차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이들 기업은 하나같이 생산이 감소하는 곳에서는 정리해고 공장폐쇄 등의 구조조정을 감행하며 동시에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서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도요타, 지엠, 폴크스바겐, 혼다, 닛산, 포드, 피아트 등의 자동차기업을 비롯해 최근 국내에서 대규모 해고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캐리어 에어컨, 발레오공조 등도 앞에서는 위기인척, 뒤에서는 새로운 투자를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외국투기기업들은 충분하게 저임금 노동을 이용하며 노동법에 대해서도 특혜를 누린다. 바로 각국 정부들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한국의 경제자유구역(FEZ), 아시아 및 남미의 수출가공구역(EPZ)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지역에서 기업들은 정부의 각종 자금 혜택은 물론 노동법을 면제받기도 한다. 한국에서 2002년에 제정된 경제자유구역법은 구역 내 초민족 기업들에 근로기준법과 파견법의 일부 조항들을 무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도미니카공화국, 멕시코, 필리핀 등의 국가에서는 노조활동 탄압,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 지불 등에 대해 정부가 눈을 감는다.

이와 관련해 남한 정부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인베스트 코리아(Invest KOREA) 본부’를 설치해 개별 외국 자본이 투자하면 어떤 인센티브와 얼마만큼의 지원을 받게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산정해 미리 알려주고 있다. 외국인 투자촉진법에 따르면 ‘외국 투자자가 출자한 기업’에 대해 조세․현금․입지 지원 등 각종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지식경제부의 외국인 투자기업 정보에 따르면, 1월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투기업은 1만7580개다. 이렇게 많은 외투기업에 관해 남한 정부는 무한한 지원만 제공할 뿐, 자본 철수 등에 뒤따르는 고용 문제 등에는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있다. 투자 유치에는 열심인 정부가 일방적으로 공장을 철수하고 떠나는 외투기업 현황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지식경제부 투자정책과 쪽은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 자본은 (각종 세제 혜택 등이 주어지기 때문에) 100% 신고하고 있고, 이를 분기별로 발표하고 있다”며 “그러나 자본 철수의 경우에 따로 신고하는 외국 자본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저 짐을 싸서 떠나버리면 그만인 셈이다.

이제 문제를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자.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외투기업들이 자국에 들어오는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가 뭘까? 바로 정부 및 지배층들이 유포하는 ‘경제 살리기’의 해법이 바로 투기자본들이 자유롭게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기업 활동을 하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08-09 금융위기와 쌍용자동차 사태를 거치면서 그것이 해법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투기자본들이 자유롭게 전 세계에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지금의 금융구조/금융화가 작년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고, 자신의 이윤만을 위해 기술 유출만 하고 발을 빼버린 투기자본 때문에 2500여명의 쌍용차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발레오공조코리아, 페트라팩, 콜트․콜텍, 캐리어 에어컨 등등 수많은 기업들의 노동자들이 각각의 외투기업에 대항해서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작년 쌍용자동차 투쟁도 ‘상하이’라는 초민족적 투기자본에 맞선 싸움이었다. 이런 일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좀처럼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까?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많은 노동자들의 단결이 필요하다. 각각의 기업주에 맞서서 싸우는 것 뿐 아니라 전 세계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빼앗아가고 있는 외국투기자본 전반, 외국투기자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지금의 신자유주의 금융화 체제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흐름을 만들어가야만 진짜 해결을 이루어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서울에서 G20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결국 이 회의는 심각한 문제들을 만들고 있는 투기자본들이 더욱더 활발하게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금의 위기상황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과 구조를 만들 것이다. 이렇게 계속되는 규제완화, 시스템 개선 등으로 결국 투기자본들이 더욱 활개 치게 된 것이다. 이 G20을 적극 유치하고 홍보하고 있는 정부, 그리고 이 기회로 우리 경제가 한 발 도약해야 한다며 환영의 손길을 보내고 있는 자본에 맞서서 지금의 금융화 질서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가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앞서 나온 원정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문제, G20에서 논의될 사항 등을 지금 우리의 삶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갈수록 외국투기자본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나중에 근무하게 될 기업이 외국투기자본의 기업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고, 갈수록 심화되는 금융화 속에서 투기자본들의 이윤만 보장되고 우리의 권리는 야금야금 없어져 갈 것이다. 우리의 노동의 권리,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권리를 원한다면! 지금의 자리에서부터 실천을 시작해나가자.

투기자본들의 횡행,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G20-금융화 체제는 노동자서민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이 현 체제의 체질개선을 통해 더욱 안정적으로 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체제에 불과하다. 기업들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세계화가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 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그/녀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가 바로 우리의 대안이다. 초민족적 투기자본들이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기업이 철수했을 때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현재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외국투기자본의 문제점과 외투자본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파괴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자신의 공동체에서부터 알려나가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해 나가는 것이 일차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10/02/14 21:27 2010/02/1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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