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특호_각론1] 학생회/학생사회

자치-저항-연대의 가치로
대학사회를 다시 세워내는 실험을 지속하자!



0. 들어가기

 지난 해 ‘미국 발 금융위기’는 예고가 아닌 현실로 닥쳐왔다. 그 이후 나타난 남한의 경제위기, 용산참사, 쌍용차 투쟁 등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는 수많은 경험과 교훈, 평가의 지점을 얻었다. 문제가 없는 곳은 없고 그 농도는 짙기만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위기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겐 해야 할 일이 매우 많다. 광범위한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불만, 정권에 대한 불만은 반역으로 폭발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대, 여성에 대한 폭력, 더 많은 경쟁의 내면화로 귀결되고 있다. 거대하게 결집했던 촛불은 각 공간으로 흩어져 대안적 힘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렇듯 대안을 창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알고 있고, 대안을 희망하고 있는 우리가 한발 앞서 고민하지 않는다면 변혁은 더욱 요원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경찰과 법의 권력, G20 개최와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발전주의 전망의 살포로 더욱 더 강력한 통치성을 유지하고자 투쟁하는 지배계급에 맞서기 위해서는 당장 내년 한해, 가장 구체적으로 ‘융합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한 첫걸음을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대중과의 융합의 태세를 준비한다는 것은 한방의 가장 멋진 정책을 만들어내자는 뜻은 아니다. 융합의 조건은 항시적인 긴장감과 노력 속에 창출되는 것이며 한 발 앞선 대중으로 사는 헌신적인 활동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기에 이번 학생사회 각론에서는 학생회라는 쟁점을 중심으로 학생사회의 정치의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학생회라는 공간이 최근 몇 년간 어떻게 비/반권 세력에 의해 규정되어 왔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작년과 올해를 경유하며 그것이 변화했던 양상, 2010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바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이 안의 목표이다.


1. 2009 학생사회

 2009년 남한사회의 키워드는 죽음과 생존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숱한 연예인, 유명인사의 죽음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수장을 했었다던 사람도 죽음을 택했다. 이 죽음에 열렬히 자신의 삶을 투영시켰던 많은 사람들은 그 웅장하고도 슬픈 하나의 내러티브를 위로하고 삶으로 돌아선다. 그러나 돌아선 삶의 모습은 또 다시 죽음, 혹은 생존이라는 팍팍한 선택지였다. 공존을 외쳤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택배노동자를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달라던 박종태 열사의 외침은 죽음과 죽음보다 더 한 폭력으로 답변 받았다.
 경제위기의 출구를 벗어났다고 샴페인의 터트리는 신문과 기업인들의 말이 더 이상 달콤한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을 통한 학습이었다. 인간의 역사이래, 민중이 고달프지 않았던 시간이야 정도를 달리할 뿐 없던 적이 있겠냐고 질문하겠지만,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박탈당한 사람의 몫은 피로가 아닌 절망이었다.

1.1 2010의 새로운 비전을 외치며 달려왔던 대학들. 21세기 들어 변화한 대학의 발전주의 이데올로기는 어디로 가고 있나?

 남한의 모든 대학들은 학교발전 이데올로기를 공세적으로 퍼붓는데 여념이 없다. 발전주의 이데올로기의 실체는 등록금을 더 올릴 구실, 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울 플랜, 대학 배치표에 좀 더 위 칸에 위치하고자 것일 뿐이었다. 대학들은 교육이 상품임을 자신 있게 천명하고 있으며, ‘더 질 좋은 교육이라는 상품을 더 많은 돈을 주고 사는 게 뭐가 나쁘냐?’는 말이 이제 어색하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2010년의 비전을 각자 앞세우며 성과를 내겠노라고 미래의 희망을 팔았던 대학들의 성적표는 그리 좋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어난 학과 구조조정, 기초학문의 파괴, 교수들의 성향분석을 통한 학풍마저 바꿔 버리기만으로도 각 대학은 일정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였는데, 앞으로 더욱 심화될 신자유주의 교육 구조조정의 조건을 확립한 것이다. 이것은 지배계급의 단결을 더욱 도모하게 해줬고 장기적으로 남한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 이다. 나름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무’를 갖고 있던 대학의 신자유주의 교육 재편으로 드러나는 이후의 폐해는 민중들의 삶에 고스란히 이전될 것 인데, 현재 측정되지 않는 위협의 종류는 다양하다. 오른 등록금으로 인해 빚더미에 앉아 사회로 나간 청년들과 가계를 탕진한 가정들 역시 그 위협의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대학의 발전주의 이데올로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각 학교의 캠퍼스 신설, 학과 구조조정과 재배치, 대학 통폐합이 지속될 전망이다. 서울대를 시작으로 본격 궤도에 오르게 될 국립대 법인화는 이제 각 지역의 국립대에게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다. 법인화에 따른 경쟁에 참여하는 것은 도태되지 않기 위한 필수 과정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각 학교는 더욱 더 효과적이고 간편한 학교 내 구조조정을 달성하기 위해 학생들의 자치를 탄압할 수 있는 계획을 적극적으로 내고 있는데 이들의 목적은 학내 학생들의 자치활동,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자치 동아리나 학생회에 대한 지원은 줄어가고 학생들을 위한 지원은 학과 내의 취업동아리, 학교가 지원하거나 멘토 교수님과 함께하는 공모전 동아리들 뿐 이다. 성균관대의 경우는 3년 전부터 학교와 농협이 주최하는 농촌봉사활동에 지원금을 주고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농민학생 연대활동을 정치활동이라는 이름으로 탄압하고 있다. 성신여대의 경우에는 외부 단체에서 강의실을 빌릴 수 없게 하는 것은 물론 학교의 학생들이 대여하는 경우에도 외부인이 한명이라도 참가할 시 사용료를 지불하게 할 방침이라고 한다. 중앙운영위원회나 총투표를 통해 발의되거나 가결된 안은 학교의 일방적인 통보에 따라 무시당하기 일쑤고 몇 해 전부터 ‘개인정보 보호’라는 이름으로 새로배움터에 참가해야 하는 새내기들의 연락처도 주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다. 과를 통폐합하고 축소하면서 이전의 과방을 열람실로 변경하거나 없애버리는 것, 밴드의 연습공간을 소음을 이유로 폐쇄하는 일들이 각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다. 학교의 이러한 행태는 교육의 상업화를 위한 구조조정과 이를 저지하려는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기 위한 플랜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를 막아내는 투쟁 벌이지 않고는 학내 정치는 그 운신의 폭을 계속해서 좁혀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투입해 새로운 캠퍼스를 만들고 학사제도를 개편하고 학과를 구조조정하는 과정에는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 자치와 연대의 공동체는 발붙일 곳이 없다. 하기에 적극적으로 학교의 발전주의와 대결하는 것,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늦출 수 없는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단지 학교의 계획을 저지하는 것을 넘어서 대안과 희망이 되어야 할 것이다.

1.2 시지프스의 하루, 하지만 우리에게도 꿈은 있습니다.

 지금의 대학생들이 스무 살이 되자마자 들었던 이야기는 88만원 세대라는 호칭이었다. 시대인식이 없고 책임감이 떨어지는 세대, 인내가 부족한 세대...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입시교육, 조기교육에 지쳐있는 세대에게 더 빨리 자라라는 어른들의 투정은 이미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호탕하게 세상을 호령하던 세대도, 미래에 대한 걱정과 의심이 없던 세대도 지금 이 시대의 청년은 아니다.
 
‘청년들은 너무 자주 미래에 의해 방해 받는다’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살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발버둥 쳐야하지만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약속은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냉정한 현실이다. 끊임없이 경쟁을 내면화하고 초중고 시절 내내 사교육으로 교육받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토익학원부터 각종 자격증 학원을 뺑뺑이 돌며 한편으로는 과외선생님으로서 사교육 시장의 한 축이 되는 대학생들은 꿈조차 사랑조차 사치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생산적인 어떠한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잉여인간’으로 자신을 재빨리 규정하고 패배감을 내면화하며, 언제나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마음이 편한 지금의 청년들은 꽤나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20대에게 한 평의 집도, 괜찮은 미래도 쉽게 약속하지 않는다. 심지어 촛불이라는 정치적 반란의 시기도 시작은 10대에게 마무리는 386에게 빼앗긴 20대는 통째로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인 것 같기도 하다. 동아리도 ‘스펙’을 위해 선택해야 하는 시대, 야망은 적고 상처는 많다.
 이러한 좌절과 상처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2009년 청년들의 모습은 그리스신화의 시지프스를 떠올리게 한다. 끊임없이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산 위로 올려놓는 노동을 반복하는 시지프스, 21세기의 시지프스들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오를 산과 바위를 고르고, 바위를 굴리는 방법을 학습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좀 더 좋은 산, 바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할 수 있다는 점일까. 복잡한 세상을 살고 있는 시지프스들은 스스로를 ‘중립’으로 규정지으며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투여된 노력만큼의 분명한 성과를 끊임없이 구별할 것을 교육받았다. 자신의 삶에 대한 더 많은 개입으로부터 셔터를 내리고 외로운 사회에서 자신의 공간을 찾고 인정받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모두에게 이것은 선택의 여지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일상’일 뿐 이다.
 하기에 세상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듯한 청년의 모습만 눈앞에 보일 지라도 청년들은 세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세계화의 거대한 피해자가 누구고 누가 전쟁으로 돈을 벌고 누가 생명을 잃는지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으며 그것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은 어디에나 숨어있다. 때가 아니라고 포기하기 쉬운 때일수록 지금 여기서 시작하는 마음과 계획이 절실하다. 혼자만의 시도와 좌절이 아닌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현실에 맞추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있는 삶의 조건을 다시 구성해 나가는 행동이 지금 이곳에 필요하다.    


2. 학생회를 둘러싼 쟁점과 전망

2.1 학생회를 둘러싼 쟁점

비/반권의 자태변환
 소위 촛불 정국, 시국선언 정국을 맞이하며 2000년대 초반부터 우경화 혹은 소멸로 수렴되어가던 학생회의 모습에 반전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총투표를 거쳐야 하니, 말아야하니 말도 많았지만 비/반권 학생회들이 깃발을 들고 거리에서 학생들과 함께 달렸고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동참하며 ‘준엄한 목소리’로 시대를 타일렀던 것이다. 깃발을 들고 거리를 달리며 대표를 자임하는 학생회는 권력적이며 편협하다고 말하던 그들이, 더 많은 숫자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던 그들이 학교 바깥을 향해 발언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비/반권의 자태변환에 대해 한 쪽에서는 섣부른 기대를 걸기도 했고, 한 쪽에서는 냉소를 보내며 ‘니네도 별 수 없더냐’는 눈길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와 복지를 이분화 했던 그들의 정치학이 틀렸음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왜 이들이 거리로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는지, 학우들은 왜 학생회에 이것을 요구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비권’을 표방하던 학생회가 이야기하던 정치와 복지의 구분, 학내 사안과 학외 사안의 구분이 허구적이었으며, 학생사회 역시 남한 사회의 모순이 투영되는 공간이기에 캠퍼스 밖 사회와 학생들의 이익이 분리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 운동장을 유명 연예인의 콘서트 장으로는 사용하는 것은 용인하면서 노동자들의 집회장소로 사용 것에는 반대해 왔던 그들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며 그들이 기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경계를 우리는  ‘폭발적인 정세’ 속에서 가로질렀다. 그러나 이러한 자태변환은 학생들의 요구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또한 기억해야만 한다. 학생들은 학생회가 해야 되는 역할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했고 비/반권 학생회는 그/녀들의 이러한 요구를 수행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비/반권 학생회는 이러한 정치적 행위를 ‘대리’하는 것 이상으로 하지 않았는데 지속적으로 싸움을 만들어가는 것, 정치의 결실을 다시 학생사회의 공동체에 축적해 나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학우들은 거리에 나섰고 지신의 입장을 개진했지만 정치의 공간은 실제로 확장되지 않으며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원동력은 학생사회에 지속되지 않고 논쟁과 투쟁은 하나의 국면이 지나자 증발되었다. 반면 역사적으로 있었던 변혁의 성과는 공동체에 남아 구성원들의 인식과 삶을 재구성하며 축적되었다. 하기에 우리는 이 쟁점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 학우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실천을 던지기 위해 노력했었고 더 많은 사람과 논쟁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나, 이들은 학우들의 요구만을 받아 안는 액션만을 취할 뿐 근본적이고 집단적인 정치를 외면하고 ‘한방의 시국선언과 가장 큰 촛불 집회로의 규합’ 으로 요구를 마무리 지었던 것이다.

 연세대 총학생회의 경우를 보자. ‘학생을 향합니다, 연세 36.5+’를 걸고 ‘학생권 학생회’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당선된 그들은 오직 학생만을 위한 학생회를 만들겠다고 했었다. 이렇게 학생운동에 대한 선긋기에 여념이 없던 그들이 연세대 총학생회가 지난 노무현 추모국면에 추모 촛불 집회에 참가, 추모 콘서트를 학교 안에서 개최하려다가 학교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들의 이러한 행보는 특정 정세 안에서 그들이 스스로를 분리시키던 ‘운동권’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실제 학교의 몇몇 학생들은 ‘너희가 운동권과 다른게 뭐냐, 왜 학교를 소란스럽게 만드냐’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이들은 추모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은 ‘비정치’적이고 ‘순수한’ 추모 활동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정치는 정당이 관계 되었나 아닌가, 정치인이 참석 하는가, 그렇지 않나가 아니다. 이미 이것은 통속적 의미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라고 보여 졌을 뿐만 아니라, 정치란 우리가 생각하고 발언하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발언해야 하는 것은 이 정치적 콘서트의 개최를 막았던 연세대 대학 본부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비판하고 논쟁하는 것이었다. 연세대 총학생회가 추모 콘서트의 ‘비정치성’을 부각시키는 순간 오히려 연세대 학생들의 ‘정치적 입장’은 설 자리를 잃었고, 추모 콘서트에 참여하고 제 자리로 돌아가는 행위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한정지어야만 했다. 바로 이것이 공동체의 정치를 허물어트린, 오히려 민주주의의 진짜 실현을 가로 막은 ‘정치적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는 시국선언을 한 몇몇 교수님들, 순수한 총학생회장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가 역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결론의 전부는 아니다. 계속해서 진행되던 학생회, 학생사회의 비가역적인 해체가 촛불 투쟁을 겪으며 학생회의 역할에 대한 기대의 변화를 가져왔고, 운동권/비반권 학생회로 역할 구분을 하던 2000년대 초중반의 프레임과는 달라졌다. 우리는 학생회를 통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재진단할 수 있었다. 학우들이 학생회를 통한 집단적인 문제해결을 다시 호출하기 시작했다면 우리는 자치, 연대, 저항이라는 가치를 통해 그 동안 어떠한 세력도 하지 못해 온 학생사회 정치의 복원을 아래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민주/비민주, 복지/정치
 학내 민주주의의 표상이며 저항, 자치, 연대를 구현한다던 학생회는 학생사회의 비가역적 해체 이후 학우들에게 비민주, 심지어 권력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에 기여한 것은 시대의 흐름, 그리고 그 흐름에 대응하지 못하던 운동세력뿐만 아니라 조직화된 비/반권의 움직임이 있었다. 비/반권은 2000년대 초반부터 대학 내에서 ‘탈정치’, ‘학생만을 위한’, ‘복지중심’ 학생회를 만들겠다고 선동했고 이러한 정치와 복지의 이분화는 학우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공감을 얻어갔다. 정치적 입장을 강변하는 학생회가 아니라 제대로 된 복지서비스를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진짜 학우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민주적’인 학생회라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과연 학생사회의 민주주의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학생회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치를 통한 학생권력의 획득, 만인이 정치의 주체일 수 있는 것, 논쟁이 기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있다. 현재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대의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최고형태가 될 수 없음을 인식하며 학생회라는 자치공동체가 만들어졌고 학생회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공간이었다. 본디 민주주의는 확장적인 개념이다. 민주주의는 특정 형태와 결합하며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합의를 만들어가는 ‘논쟁’ 그리고 그 논쟁이 생동할 수 있는 ‘공동체’가 살아있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다.
 바로 이것이 학생회, 학생사회가 지향하던 자치의 원리였다면 비/반권 학생회에 2000년대 초반 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정 반대의 방향이었다. 학생회가 함께해야 하는 것은 ‘일반 학우’의 이해라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인정하는 사업이 아니면 대표를 맡고 있는 학생회는 수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비/반권 학생회의 행보는 학생사회의 해체를 가속화 시키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최근 촛불이라는 국면 속에서도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거나 학생회의 정치적 입장을 대리주의에 가두는 편향은 학우대중의 분노를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결하고 오히려 잠정적 표류국면을 쉽게 형성함으로써 논쟁의 조건을 허물어버렸다. 공동체는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일순간 결집하는 듯 보였다가 사라지며 허물어졌다. 이러한 경험은 결국 ‘우리는 힘이 없다’는 패배적 교훈을 안겨주었다. 거리가 만, 삼만, 오만, 십만의 촛불로 그 세를 불리는 동안 보였던 잠깐의 희망, 스스로의 힘에 대한 감동은 ‘그리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더 큰 패배감으로 돌아왔다. 공동체의 정치는 좀 더 많은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입장’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하고 행동을 유발할 수 있어야만 입장은 힘을 갖는다. 모든 의견을 존중하나 가장 보편적인 ‘일반학우’를 존중해야 한다는 애매한 정치적 다원주의의 표방은 사실 침묵보다 더 지독히 현실을 은폐했으며 정치의 공간을 파괴했다.
 이러한 비판의 대상은 비/반권 학생회만이 아닐 것이다. 대중이데올로기와의 융합의 계획을 내지 않는 순간 공동체의 정치와 저항을 이야기하는 우리 역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최근 몇 해 간 한국대학생연합은 이 지점에서 복지와 정치의 이분법으로 수렴되어가는 우려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일단 ‘대학생들의 공동의 이해와 요구’를 중심으로 투쟁하고 이후 다른 쟁점으로 이동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것은 앞에서 밝혔듯 복지와 정치의 분리가 허구적이라는 것, 정치적 대리주의는 공동체의 정치를 질식시키는 효과를 낳는 다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전 사회적인 연대에 기반 하지 않고 당사자들의 이해에 착목해 벌이는 운동은 지배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기보다는 자기사안에 갇힐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남한사회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현 시기 가장 필요한 정세적 투쟁이 무엇인지 판단하는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일반학우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진짜 학생회라고 소리 높였던 학생회들이 있었으나 일반학우라는 언명은 사실 정체가 없는 슬로건에 불과했다. 정치/복지의 이분법이 허구적이듯 비/일반의 학우로 나뉠 수 있다는 것 역시 허구였다. 학생회라는 것, 학생이라는 것은 ‘대학’이라는(경계 지을 수 없는) 울타리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모두가 사회의 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의 입장으로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 환상에 가깝다. 입장의 차이는 차이가 있는 부분을 채택하지 않고 발언하지 않음으로써 존중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차이를 부각시키고 토론할 수 있어야만 민주주의는 그 이념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허구적인 선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딪히며 ‘입장’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진짜 민주주의다.

2.2 논쟁의 공간, 정치의 공간을 여는 학생회

 비/반권들도 그들의 정치학에 따른 입장과 계획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자기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정치를 안 하겠다’는 말이 정치로부터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지도,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면죄부를 주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즉, 입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되 어떠한 ‘입장’을 가질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어떠한 입장과 태세로 학생회를 준비할 것인가?
 많은 학생들은 정치로부터 자신의 과소 참여시키고 있으며 정치는 박근혜, 이명박, 노무현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법안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바꾸고, 부자감세, 대운하 사업은 우리의 삶으로 깊숙이 전달된다. 등록금 문제는 우리 가정 경제 문제나 학교와의 협상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적인 문제이며 전 사회적인 차원에서 발언되지 않으면 해결 역시 가능하지 않다. 이렇게 정치는 이름 있는 정치인들의 이전투구가 아니라 우리의 삶 가장 깊숙한 곳으로 침투하고 개입하는 문제이며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바라는 사회, 발언하고 표현하는 모든 것에 녹아들어 있다. 하기에 공동체가 논의하고 논쟁하고 함께 해결해야 하는 진짜 문제는 학교 주변 상점에서 할인받을 수 있는 카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을 실업자로 만들고 가난하게 만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등록금에 대해서, 재개발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이다. 논쟁의 공간을 연다는 것은 하나의 결과물, 한 번의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서울대 법인화 문제와 관련하여 총학생회는 총투표를 발의하고 진행했으나 적극적으로 집단적 논쟁을 만들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총투표 결과 79%의 학생들이 법인화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의 학생회는 이 결과를 가지고 정치의 공간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우들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그것을 대리하며 움직이는 학생회가 아니라 대중들의 고민과 요구를 받아 안아 논쟁의 공간을 열고, 집단적으로 문제 해결의 과정을 만들어 나가는 학생회다. 논쟁과 갈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학생회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논쟁의 공간을 여는 것뿐만 아니라 논쟁이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 바로 그 역할일 것이다. 논쟁이 가능한 기층 공동체의 복원에 복무하고 지적 차이를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 중요한 사안이 더 많이 학우들에게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총체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학생사회 안에서 학생회가 해야 하는 역할이다. 현실의 침묵을 깨뜨리는 정치, 그것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진정 오늘 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각개분산하지 않고 규합될 수 있는 집단적 저항을 창출하는 것, 그리고 그 힘으로 서로가 서로를 배반하는 경쟁이 아니라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의 돈 놀음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에 내몰렸던 금융화, 노동자와 여성, 이주민에 대한 차별, 돈을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는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 공동체를 통한 정치, 연대의 가치는 바로 이것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입장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입장’을 통한 학생회, 더 많은 민주주의를 스스로 구현하는 학생회를 통해 정치의 복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3. 학생사회 재구조화를 향한 헌신, 그리고 새로운 실험!

학생회의 표상을 다시 세워내고 자치의 원리를 구현하자!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더욱 더 폭압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정세와 빠르게 자신의 준거점을 이동시키는 대중이데올로기 사이에서 예각화 된 실천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을 발언하고 무엇을 제안할 것인가, 무엇과 대결하고 무엇에 저항할 것인가?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양면적이고 돌출적이다. 대중운동 활동가라면 비단 선거기간이 아니라 언제나 대중과의 융합의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선거라는 집중적인 정치의 장이 열리는 시기엔 어떠한 입장과 정책으로 학생사회와 공동체의 재건을 제안할 것인지 원칙을 확인하고 각급 단위와 학생대중이데올로기에 맞게 실천 방향을 짜나가자.

학교는 광장이 되어야 한다.
 지난 6월, 연세대 정문은 거대한 셔틀버스로 막혔다. ‘사법고시 시험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위해 콘서트를 불허’한다는 학교의 입장에 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콘서트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성신여대에서는 모든 행사에 강의실 대여료 매기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담장없는 대학을 지향하고 대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논하던 대학은 상업적인 공간으로 스스로를 자임하는데 익숙해져가고 있다. 이러한 학교의 계획은 대학의 상업화, 학생 공동체의 파괴와 그 궤를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은 ‘광장’이 되어야 한다. 모든 공간과 지식이 돈에 의해 점유되고 있는 시대에 노동자와 빈민에게 대학이 문을 닫는다면 연대와 대안은 더 멀어져가게 될 것이다. 평등하게 열린 공간으로서 대학을 사수하고 학내 자치와 민주주의를 바로세우는 싸움을 시작하자. 모든 기층 단위 학생회의 자치권을 보호하고 학교의 담장을 높이려는 본부의 상업적 계획을 저지하며 자치-연대-저항의 원리를 실현시키자.

기층 공동체를 재건하는데 복무하자!
 기층 공동체의 재건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정치 재건의 조건이 될 수 있는 기층 공동체의 복원이 절실하다. 기층 공동체의 복원은 각급의 단위마다 그 위상과 목표를 달리할 수 있을 것이며 각자의 위상과 목표에 걸맞는 계획을 제출할 수 있을 것이다. 단위학생회가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방식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많은 실험을 해왔다. 소식지 발간과 소리통, 운영위원회와 집행부 운영의 정상화 등이 지금까지 제기되고 노력했던 것들이었을 것이다. 각급 단위 학생회에서 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계획을 장기적인 안목 속에 배치하며 단위의 자치, 자활력에 복무할 수 있는 활동을 지속하자.

학교발전 이데올로기와 적극적으로 대결하자!
 발전주의는 다양한 형태의 이데올로기와 만나며 권리를 포기하거나 폭력을 정당화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연세대 송도캠퍼스 이전, 서울대 법인화, 중앙대와 동국대 등에서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학과 구조조정은 학교발전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은 이것이 자신에게 ‘더 나은 교육’을 보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안이 없다’는 것 때문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을 보류하고 있다.
  공세적으로 학교발전 이데올로기를 살포하고 있는 학교본부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중앙운영위원회 의결, 총투표 정도의 계획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학생사회의 물질적 조건 상 이것만으로 담보할 수 있는 정치의 공간은 넓지 않기 때문이다. 총토론회, 만민공동회와 같은 좀 더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기획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앞에서 주지했던 원칙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계획은 한 번의 기획, 한 번의 자리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지속적으로 쟁점을 추동하고 다양한 급에서 학우들과의 접면을 넓히는 계획 속에 학교발전 이데올로기, 넓게는 발전주의 이데올로기와 대결하며 대안을 찾아나가자.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집단적 인식, 논쟁의 공간을 열자!
 ‘대학’이라는 공간이 대안 담론, 대안 교육, 다른 목소리를 발언하는 집단이자 공동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로 문을 활짝 열고, 민중들과 연대해왔기 때문이었다. 사회문제에 대한 집단적 인식이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새로운 담론이 있는 열린 공간에서 논쟁하고 토론하며 만들어져왔던 결과물이었다. 최근 몇 해간, 학내 집회나 문화제 등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 한다’등의 논리로 개최가 금지되고 있는 양상은 매우 우려할만한 수위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도, 모일 수 있는 장소도 없는 노동자, 빈민, 농민들에게 대학이라는 공간이 열리는 것은 대학의 사회적 책무인 동시에 대안적인 담론, 논쟁의 공간을 여는 행위이기도 하다.
 학교의 담장이 높아져가고 사회문제에 대한 ‘대학생’이라는 공동체의 집단적 인식이 부재한 지금, 대학이라는 공간을 통해 지향해야하는 가치와 인식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제기하자. 왜 대학생이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하는지, 왜 노동자 민중, 빈민들과 연대해야 하는지, 왜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금융화에 반대해야 하는지, 여성의 문제가 왜 우리 사회의 주요 쟁점이 되어야 하는지 말해야 한다. 대학이 단지 전공과목을 공부하고 사회에 나가기 전 ‘스펙’을 쌓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영역을 이해하고 관점과 입장을 키우며 그를 통해 논쟁할 수 있는 공간임을 학우들과 함께 실험해나가자.


Posted by 행진

2009/11/24 12:42 2009/11/2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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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전망] 


왜 미국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경제는 몸살에 걸리나요?




1. 들어가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경제상황은 계속 요동치고 있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현재의 위기는 실물경제에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며 확산되고 있다.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최대 자동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위기를 맞아 미 재무부에 자금요청을 하고 또 추가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응해 오바마 정부는 ‘신뉴딜 정책’과 제로 금리를 기반으로 한 ‘무제한 달러 공급’을 핵심으로 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미 수천억 규모의 금융 구제안이 시행중인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이것이 금융위기의 2라운드 혹은 ‘디플레이션’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헝가리ㆍ크로아티아ㆍ루마니아ㆍ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집단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동유럽발(發) ‘2차 세계 금융대란’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 국가가 서유럽 은행에서 대출받은 자금은 총 1조6000억 달러(국제결제은행 추산)에 이르는데, 만약 이들 국가가 연쇄적으로 채무불이행 선언을 하게 되면 서유럽 은행들의 부실채권은 급격히 늘어나고, 이는 다시 서유럽의 금융불안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언론에서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는 1,500원대로 치솟은 환율, 초민족자본의 탈출 러시, 외화유동성 부족 등 널려있는 악재들은 ‘제2차 금융위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외에도 한미 FTA와 자본시장통합법으로 미국 중심의 금융세계화에 더욱 깊숙이 발을 들여놓으려는 한국으로서는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며 동시에 미국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 뻔하다. 이 글에서는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를 한국과 미국의 경제관계의 역사를 훑어보면서 파악하고,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향방을 가늠해보도록 한다.

2. 한국과 미국 경제관계의 역사와 본질

한국이 미국과 정치ㆍ경제ㆍ군사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1945년 한국의 해방 이후 주변에 있던 소련과 중국은 현실 사회주의의 2대 강국이었고, 미국은 동아시아에 사회주의의 물결이 넘치지 않도록 전략을 세웠다. 경제적으로는 한국에 소비물품 중심의 원조를 하였고, 정치ㆍ군사적으로는 주한 미군을 배치하고 한국 정치에 대한 관여를 심하게 한다. 이것은 1950년대까지 이어지는 데 자본주의 세계의 최강국으로서 미국의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인들의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게 하여 사회주의로 경도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한편 단순한 원조정책은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를 미국경제의 구조와 긴밀히 연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방향은 지금까지도 한국 경제의 특징으로 남아있지만,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모습이 변화함에 따라 함께 변화해간다.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가 호황에 있을 때에는 한국의 경제상황 역시 나아지지만,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미국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경제는 감기에 걸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한국경제가 미국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서, 한미 경제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 1960년대 초~1970년대 말: 발전주의의 시대

냉전시기 동아시아가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바로 자본주의의 싹을 무럭무럭 기르는 것이었다. 이에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경제구조가 확립되어 가는데, 한국ㆍ대만ㆍ홍콩ㆍ싱가폴은 ‘동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서 급격하게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해 들어간다. 1965년 체결된 한일회담은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받거나 수출자유무역지구를 설립하여 외국으로부터 직접투자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자본을 바탕으로 군부독재정권이었던 박정희 정권은 ‘조국 근대화’라는 명목아래 강력한 국가 중심적 경제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런 정책은 주로 자본을 집중하여 한 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었고, 이로 인해 한국만의 독특한 기업형태인 ‘재벌’이 등장한다. 당시 추구했던 공업화의 내용은 1960년대 노동집약적 경공업에서 1970년대 중화학 공업으로 바뀌는데, 이러한 산업들은 미국ㆍ유럽ㆍ일본과 같은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발달한 산업들에 비해 이윤창출이 작은 부분들이었다.

한편 지금도 한국경제의 가장 큰 특징인 수출중심의 경제구조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자국시장을 활짝 열어주되 한국에 시장개방을 강요하지 않았다. 한국은 적극적으로 수출주도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자국시장은 개방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제품을 중심으로 미국에 대한 수출을 꾸준히 늘릴 수 있었다. 한국경제는 미국의 지원과 국가중심의 강력한 경제정책으로 신흥공업국(NICs)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1960~1970년대의 한국경제를 일컬어 ‘발전주의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사회는 급격히 변하기 시작한다. 점차 노동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농촌에서 유입된 인구로 도시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국가 중심의 동원을 강화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반공주의’가 강화된다. 이런 반공주의는 미국의 영향 아래 있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던 이데올로기였고, 이를 위해 국가를 중심으로 한 폭력과 억압이 심화된다.

□ 1980년대~1990년대 중반: 미국의 개방 압력과 3저 호황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와 독일ㆍ일본 등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추격으로 인해 미국은 최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잃어나간다. 또한 경제가 계속 악화되며 1970년대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미국은 1980년대부터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실시한다. 또한 쌍둥이적자(무역적자, 재정적자)에 시달리게 되자 미국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제 3세계 국가들에게 노골적인 경제적 압박을 가한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경제위기를 기회로 미국 자본이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제구조를 바꾸어나간다. 물론 냉전이 지속되는 시기라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던 한국은 라틴 아메리카와 같이 완전한 경제적 압박을 하지는 못한다. 한편 무역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의 엔화를 평가절상하는 내용의 플라자협약은, 80년대 중반 한국에서 ‘3저호황’(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저금로 많은 자본을 빌릴 수 있고, 저달러로 수입 비용이 줄어들며, 저유가로 생산단가가 낮춰지게 된 것이다. 3저 호황으로 무역 흑자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토대로 한국의 구조조정은 늦추어진다.

그런데 89년 폴란드를 시작으로 소련ㆍ헝가리ㆍ체코 등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한다. 미국에 대한 한국의 정치적 의미는 퇴색하였고, 미국의 한국시장 개방 압력은 가속화되었다. 어릴 때 들어봤을 법한 무시무시한 수퍼 301조’는 미국이 불공정한 무역행위를 하는 국가에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다. 그 ‘수퍼 301조 협약’을 89년 미국과 한국은 맺는다. 92년에는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미국계 초민족자본의 ‘국내 증권시장 투자‘가 가능해졌고,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되면서 농업 등의 분야가 대폭 개방된다. 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이에 가입하였고, 96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하며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에 강력하게 편입해 들어간다. 이런 흐름들 속에서 세계화나 경쟁 같은 담론들이 강하게 유포되어 가고, 국내 법제도 역시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는 미국계 금융자본에 유리하게 바뀌어 간다.

□ 1990년대 후반~2000년대: IMF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90년대 중반 이후 ‘4마리의 용’이라고 불리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자본의 불안정성에 타격을 받게 된다. 97년 12월 급격히 줄어든 외환보유고를 지탱할 능력이 없었던 한국정부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 IMF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맺은 ‘IMF 구조조정 협약’을 계기로 한국경제는 이전과는 다른 체제에 진입한다. 즉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한국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거의 완전히 개방되었고, 한국기업에 대한 외국인 주식의 총 보유한도가 점점 증가하게 된다. 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미국계 자본은 적극적인 투자/투기를 통해 헐값에 매입하게 된다. ‘바이 코리아’(Buy Korea)의 결과 투자자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그 수익률 또한 막대했다. 그 결과 외국인 보유 상장주식가액은 91년 당시 약 2.4조원 대, 97년 10조 원대였다가 99년에는 약 76.6조 원으로 대폭 증가하였다. 2000년 주식시장 거품이 거지면서 그 해 12월에는 약 56.6조 원까지 하락했지만 이후 다시 증가하여 04년 173.2조 원, 05년에는 급기야 260.1조 원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외국은행 자회사 및 외국증권사 현지법인 설립이 허용되었고, WTO 양허계획에 맞춰 각종 규제와 제도가 철폐되었다.

2003년 이후로 여러 국가들의 다자간 협상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무역기구와 도하개발아젠다(DDA)는 제 3세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저항에 부딪힌다. 이 때문에 국가와 국가가 직접협상(양자간 협상)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증가하는데, 한국에서는 2004년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동시 다발 FTA를 추진하고 있다. 그 내용은 DDA가 포괄하는 협정의 대상과 개방 수위를 훨씬 높여, 한국의 경제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의 FTA는 한국경제의 구조를 완전하게 금융자본이 가장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바꿔놓을 것이다. 한미 FTA가 시행된다면 이미 그 불안정성이 가시화된 세계 자본주의에 긴밀하게 통합하게 되며, 한국에서 초민족적 자본의 활동과 지배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초민족적 자본의 이득 면에는 민중의 삶과 권리가 파괴되는데, 이미 IMF 이후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등 노동 불안정성이 심화되었고, 복지제도가 공격 받으면서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수는 한국인구의 6분의 1에 가깝게 되었다.



3. 향후 한국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위에서 한국경제가 미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되는 상황을 역사적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런 연관은 향후 한국경제가 나아가는 방향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주식시세가 급격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롤러코스터 시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당장 하루하루의 전망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서는 다만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향후 경제위기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단상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키워드 ① : 동아시아와 미국경제

1980년대 이후 미국 경제가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면서도 계속해서 세계 최강국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동아시아의 역할이 크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의 이중 적자를 메워주고 있는 메커니즘으로서 동아시아 외환보유고 증가에 기반을 둔 달러환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에서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여 얻은 달러가 미국의 증권시장에 다시 투자되거나,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미국으로 자본이 도피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동아시아는 이에 걸맞은 체계로 바뀌어 가는데, 기존의 신흥공업국에서 벗어나 금융자본의 유출입을 쉽게 하는 신흥시장으로 탈바꿈한다. 미국에 의한 달러환류가 가능한 이유는 미국의 달러가 다른 통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이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미국의 발권이익(seigniorage, 액면가치와 발행비용의 차액)때문이다.

동아시아 달러환류 메커니즘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었던 이유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고가 1990년대 말 금융위기의 이후에 급격히 증가했던 데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정부정책상 외환보유고를 증가시키기 위해 통화안정채권이나 외평채의 발행을 통해 인위적으로 달러보유액을 늘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대하게 늘어난 외환보유고는 집중적으로 미국 재무부 증권에 투자되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의 지속적인 생산이 줄곧 미국 시장의 팽창에 의존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미국 시장의 성장지속과 동아시아의 성장지속은 서로에 대한 긍정적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동아시아에서 외환보유고가 늘어나게 되는 주원인 중 하나는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이면서, 또한 이를 가지고 미국 경제의 소비의 지속을 지탱해주는 메커니즘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IMF 구조조정 등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세계적 금융위기의 가능성에 매우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었지만,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장치나 제도가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이렇게 금융위기에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외환위기 가능성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체적으로 외환 보유고를 늘리는 것뿐이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동아시아는 미국의 경제위기를 떠안는, ‘미국의 금고’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메커니즘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미 미국 내에서도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달러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다. 이는 수출달러 환류를 가능하게 했던 미국의 지위, 즉 세계자본주의의 최종 소비자로서 미국의 지위가 언제 소멸하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다. 미국 재무부와 연준의 경제위기 극복방향은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과 인수ㆍ합병을 주도함으로서 금융자본을 구제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정책기조가 약간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현재의 위기를 몰고 온 ‘금융화’를 더욱 지원한다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시작하는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되고, 그 직격탄을 맞는 것은 미국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동아시아일 것이다.

키워드 ② : 자본시장통합법은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나?

장기화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5대 증권사를 미국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처럼 거대한 ‘금융투자회사’ 로 만들어, 금융시장을 발전시키겠다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이 지난 2월 4일부로 시행되었다. 07년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통합법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련된 기존의 6개법을 통합하고 관련 제도를 크게 바꾼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의 핵심은 지금까지 증권사ㆍ자산운용사ㆍ종금사ㆍ선물회사ㆍ신탁회사 등이 각각 판매하는 금융상품도 다르고 적용받는 법률도 달랐지만 이제 업종의 벽을 허물겠다는 것이다. 즉 증권사가 지금까지 선물사, 종금사에서 하던 일도 할 수 있고,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금융상품도 자유롭게 판매하며, 결제송금서비스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CMA(자산관리계좌)와 같은 방식으로 노동자의 임금도 금융의 변화에 긴밀히 연결시켜, 증권사(투자은행)가 모든 노동자를 금융투자자가 되게 한다.

또한 이명박 정권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의 후속조치로 각종 법령 개정을 추진하여 법 시행에 따른 제반조건을 보완하고,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완화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은행주식 보유규제 및 금융지주회사 제도 합리화 방안>(금산분리완화방안)의 요지는, 국내외 산업자본(기업)이 현재 4%로 되어 있는 시중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10%까지 늘릴 수 있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이나 사모펀드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증권회사나 카드회사를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까지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허용했고, 이에 따라 금융과 비금융회사들이 섞여 있는 기업집단(=재벌)이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기업과 금융회사가 함께 위험을 공유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지주회사는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제해 왔다. 하지만 금산분리가 완화된다면 재벌체제가 더욱 강고해지는 것은 물론 기업의 부실, 금융의 부실이 서로에게 전이될 수 있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동반 위기 폭발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 활성화와 금융투자기관 대형화를 초래할 자본시장통합법으로 한국에서의 금융화는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위기로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세계화가 급격히 붕괴되어 이미 작년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이 파산하거나 독자 생존을 포기했고, 자본시장과 투자은행 육성이라는 목표는 무색해진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은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지속되는 이윤율 하락과 금융거품까지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시장 육성으로 한국경제가 독자회생할리는 없다. 이번 경제위기의 시발점이 통제되지 않는 파생상품의 확산으로 형성된 금융거품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오히려 금융시장 육성은 금융위기의 위험도를 더욱 높일 것이다. 자본시장 육성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때맞지 않게 편승하는 조치는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하고, 민중의 생존의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키워드 ③ : 한-미 통화스왑(SWAP)은 환율불안을 해결할 것인가?

2008년 10월 한국과 미국은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맞교환) 계약을 체결하였고, 이것이 치솟았던 환율을 크게 하락시키고 1000선을 붕괴시킨 코스피를 급반등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 계약은 한국에 달러가 부족할 때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기금(FRB)에 원화를 제공하면 달러를 받고, 계약만기 시에는 다시 빌린 달러를 돌려주고, 원화를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최대 300억 달러까지 이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데, 미국은 규모 확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한 연장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빌린 달러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수료로 미국에 지불해야 한다. 이명박은 이러한 통화스왑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미국 국채 매각 카드로 ‘협박’까지 했다고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이제 통화스왑으로 인해 미국의 국채를 자연스럽게 매입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ㆍ멕시코ㆍ싱가포르와 통화스왑을 체결했고, 비슷한 시기 긴급경제구제책으로 쓰이는 7000억 달러 또한 국채 발행으로 해결했다. 이렇게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달러가 중요시되면서 미국경제가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달러강세를 지속시키고 있다. 위기는 당장 지연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은 미국을 중심으로 서로의 배를 쇠사슬로 묶어둔 것과 같이 다 같이 재앙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통화스왑은 환율불안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외환사정이 호전되려면 현재로서는 그 유일한 길이 경상수지 흑자를 통한 외환확보인데 이에 대한 전망이 별로 밝지 않다. 지금은 1997~98년과는 다른 상황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에는 원화의 평가절하와 수출 호조가 뒤따랐다. 미국 등 아시아 외 지역경제의 상대적인 안정 속에서 당시 막 붐이 일던 정보기술 제품의 대대적인 수출이 가능하였기에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반해 지금은 비록 원화가치가 하락했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나 지역의 경제도 부진하여 수출이 크게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어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4.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정부와 자본은 한미 FTA 체결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을 통해, 금융규제를 점차 완화가고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강행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더더욱 미국계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종속되고,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자본을 유출시키면 환율이 급등하고 한국경제는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위기가 중첩되어 한국경제는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위기로 인한 투자손실은 물론이고, 미국의 경기침체로 인해 무역적자가 증가하면서 외환위기가 재발할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우울한 전망은 금융위기의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한국경제는 벌써 환율인상ㆍ물가인상ㆍ신용경색ㆍ주식시장 하락ㆍ금리인상 등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본격적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자본이탈ㆍ거대자본 파산 역시 예상할 수 있고, 이는 실물경제 전 부분에 걸친 고용불안과 임금 삭감으로 민중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이미 IMF 때 우리는 ‘환란(患亂)’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주류 경제학자나 경제전문가들이 금융선진화를 이야기하며 미국경제로의 긴밀한 통합을 이야기하고 있는 현재,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혹자는 박정희 정권 시절과 같이 국가 중심의 경제정책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실물(산업)자본을 키우는 것이 현재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 역시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와의 긴밀한 연관 속에 가능한 것이었고, 이 시기에 만들어진 유산이 현재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미 경제구조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긴밀히 편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의지’만으로 상황을 역전시킨다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한편 세계최강대국이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이전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경제에 편입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의견 역시 제시되고 있다. 2008년 7월말 현재 중국의 미국 재무부 증권 보유액은 5187억 달러로 외국인 보유액의 20%를 차지하고 있고, 2007년 말 미국의 대 중국 무역적자는 2562억 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중국 금융이 양적인 면에서 크게 확대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오히려 중국이 강하게 미국경제의 운명에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것은 중국의 외환보유고의 상당부분이 대미 수출 시장 팽창에 의존하고, 이는 다시 미국 소비시장 팽창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경제 역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제 위기 부담을 계속 넘겨받으며 미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성장은 새로운 최강대국이 형성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왔던 한국경제는, 현재 금융위기 속에서 ‘감기’를 넘어 ‘몸살’, ‘중병’에 걸릴 지경이다. 한미 FTA에 반대하고 미국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단순히 ‘반미감정’에 호소하는 일부 ‘반미세력’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국가가 민중들의 삶을 책임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한미 FTA에 반대하고 미국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불안정한 금융세계화에 몸을 내맡기지 않겠다는 생존의 목소리이다. 현재 우리는 이런 목소리를 높여 나가며 한국과 미국의 부정적 관계를 끊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의 메커니즘이 만들어진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 분석을 해야 하며,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넘어설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의 시작이다!

Posted by 행진

2009/03/11 13:51 2009/03/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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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한국에서 '경제성장
 이데올기'의기원에 대해



2학기의 시작과 함께 ‘2008, 한국현대사를 만나다’의 연재가 다시 시작됩니다. 주로 다루게 될 부분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로, 발전주의 시대의 한국이 될 것입니다. 이때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반공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남한’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 세계체계 속에 한국이 강하게 포섭되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요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더욱 극성을 부리며 출현하고 있는,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출현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은 각종 경제정책이 시작되고, 실제로 한국에서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던 물질적 조건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했던 국가장치들의 현대화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도입이라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무능했던 시절로 평가받는 1950년대에도 꾸준한 경제상승이 있었고, 그 이후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부동의 대통령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일국의 경제정책만으로는 불완전한 것이었고, 세계적 통치성의 개입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의 총론에 따라서 이후의 연재에서 꾸준히 살펴볼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신에게 내재적인 ‘부당한 대립물’을 토대로 계속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 평가할 때 ‘경제는 잘 했지만, 정치는 잘 못했다.’라는 식의 평가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로, 이명박 정권은 경제에 봉사하는 정치를 만들겠다는 선언을 하기도 합니다. 국가와 시장, 성장과 분배, 민주주의와 독재 등은 한국에서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만드는데 있어서 ‘비적대적 모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와 그를 토대로 하는 정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은 민중들에게 끊임없이 두 가지 대립물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그런 식으로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내재화합니다. 우리는 이와 맞서야 하고, 본질을 볼 수 있는 ‘역사과학’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1. 국가와 시장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국가와 시장’ 혹은 ‘정치와 경제’를 끊임없이 대립시키는 방법일 것입니다. 각 개인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적인 시민영역과, 거기서 생기는 각종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공적 기구라는 국가영역이라는 도식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체제의 기본적인 관계설정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순수한 도식은 역사적으로 나타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가능하지도 않았습니다. 국가를 ‘부르주아지의 공동업무를 처리하는 위원회’로 설정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도, 이런 도식은 은연중에 재생산되었습니다. 그것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건축학적으로 나누는 도식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서로 영향은 미치지만 두 개의 영역이 ‘순수하게’ 나눠 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론들은 역사를 평가할 때 마찬가지로 드러나게 됩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IMF 구제금융 이후의 위기를 분석할 때, 가장 기본적인 틀은 ‘시장 중심론’과 ‘국가 중심론’의 대결입니다. 시장 중심론자들과 같은 경우 정경유착과 재벌에 대한 특혜적인 지원 등이 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을 저해하였고, 그것이 장기적으로 경제위기를 낳았다고 간주합니다. 국가 중심론자들은 정부를 매개로 한 강력한 경제정책이 한국에서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었고, 세계화 이후 급격한 시장 개방과 그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경제위기의 원인이 되었다고 간주합니다. 이런 틈을 비집고 국가와 시장의 보완이라는 절충론이 대두하고, ‘유교식 자본주의’와 같은 문화 중심론의 주장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주장들은 끊임없이 국가영역과 시장영역을 대립시키면서, 국가 혹은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들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냅니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토대로 하는 시장영역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것을 조정하기 위해 국가영역이 만들어졌다는 식의 선후관계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체계를 만들어냈던 ‘본원적 축적’은 항상 국가에 의한 억압과 강제; 도시로의 강제 이주, 식민지 건설, 규율체제의 확립, 강력한 폭력을 바탕으로 하는 이주자와 여성에 대한 배재 등을 동반했습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자본의 축적체계를 만드는 과정은, 그를 뒷받침하는 헤게모니적 기획으로서 ‘국가간 체계’를 반드시 성립해야 했습니다. 그런 기획은 부에 대한 접근 정도를 기본을 하는 ‘세계체계’를 만들어냈고, 중심/반주변/주변에 대한 배제와 포섭이 나타납니다. 한국 자본주의에서 경제성장과 위기의 역사는, 이런 세계체계에서의 포섭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빼놓고는 절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시장중심론과 국가중심론을 끊임없이 대립시키는 것은, 일국의 경제정책에 따라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심어줍니다.


2. 성장과 분배

한국의 ‘성장과 분배’라는 쟁점은 토착적인 이데올로기 지형을 형성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남아 있습니다. 흔히 성장담론은 파이를 키워야 함께 나눠먹을 수 있다는 ‘선성장 후분배’를 이야기하고, 분배담론은 파이에 대한 분배가 경제성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선분배 후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정확하게 대치되는 양자의 담론은 국가의 복지정책ㆍ경제정책 등과 결부되어 좌/우파를 나누는 기준, 한국에서 따라야 할 경제모델로 전용되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 시기에는 성장담론이 우세하게 됩니다. 경제위기의 원인을 너무 많은 분배정책으로 일할 동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장 위주의 정책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성장과 분배’라는 대립물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관점에서도 엄밀하지 못한 개념에 불과합니다. 역사적 자본주의의 물질적 국면에서 정부지출을 늘리는 성장정책(케인즈주의), 금융적 확장 국면에서 금융자본의 안정적인 투기를 가능하게 하는 금리 인상과 같은 안정화정책(신자유주의)이 부르주아 경제학의 기본 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정과 안정’ 담론이 제 3세계에서는 ‘성장과 분배’ 담론으로 나타나는 것은, 계급투쟁을 억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담론일 뿐입니다. 경제학 비판에서 가정하듯이 전체 국민소득에 대한 이윤 몫(Π/Y)과 노동 몫(W/Y)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계급투쟁으로 인해서 거의 동일하게 유지가 됩니다. ‘성장과 분배’ 담론이 중심이 된다면 이윤 몫과 노동 몫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투쟁이 주된 담론이 될 수 밖에 없고, 경제정책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어집니다.

한편 ‘성장과 분배’ 담론은 가치체계의 부당한 대립을 상정하기도 합니다. ‘성장 = 자유중시’, ‘분배 = 평등중시’라는 식으로 자유와 평등이 서로를 억압할 수밖에 없다는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합니다. 게다가 시장과 경제는 자유를 담지하고, 국가와 정치는 평등을 담지한다는 관념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것은 대중들의 봉기적 권리인 ‘인권의 정치’를 억압하는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은 정치가 자유와 평등 각자가 서로 다른 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 즉 자유와 평등 중 하나에 대한 억압이나 제한이 다른 것의 그것을 불가피하게 초래한다는 점을 잊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독재와 민주주의

한국 현대사에서 경제성장에 대한 논의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정치체계의 문제와 곧장 연결되곤 합니다. 박정희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에 이르는 시기와 동시에 일어났던 급격한 경제성장은, 군부독재체제가 가장 효율적인 정치체계라는 일반화로 이어집니다. 80년대의 가열찼던 민주화 투쟁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비가역적으로 만들지만, 여전히 암묵적으로는 군부독재체제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기도 합니다. 이명박 정권 시기에 빈발하고 있는 공안정국의 조성과 ‘정치를 경제에 봉사하게 한다’라는 논의는, 이런 향수를 신자유주의적으로 변용한 인민주의적 행태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 독재체계와 강력한 정권을 바탕으로 했던 경제성장이, 장기적으로 비효율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사회가 민주주의 체계였다면 비록 성장은 조금 늦게 되었을지라도, 탄탄한 경제구조를 만들어서 IMF의 외환위기와 같은 것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은 IMF 이후에 재벌 투명성 제고와 전문 경영인 도입 등, 경제선진화 방향으로 귀결됩니다. 이런 주장은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돕는데 활용되고는 합니다.

독재와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한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과도 연결되고는 합니다. 이에 대한 연원은 한국전쟁 전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북한과 휴전 중인 상황에서는 민주주의적 가치보다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하는 안보체계의 확립이 더욱 우선적인 과제라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통해, 체제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났던 형태는 1971년부터 나타났던 유신체제일 것입니다. 유신체제 아래에서 한국식 민주주의는 정식화되어 각종 국가장치들을 통해서 재생산되었고, 여전히도 그런 영향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ㆍ평등’과 같은 가치들보다는 안보가 여전히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쟁점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일반적인 경향인 궁핍화ㆍ과잉인구의 증가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의문을 낳게 하고, 정치가적 인민주의자들의 등장은 정치에 대한 환멸자체를 낳게 합니다. 이처럼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쟁점은 한국 현대사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쟁점입니다.

하지만 통치스타일에서 나타나는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쟁점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와 함께 나타나는 정치 체제는, 그것이 자본축적과 노동력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부르주아 독재체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발전주의 시대 제 3세계에서는 국가를 매개로 하는 강력한 경제정책 및 공업화 전략(수입대체공업화 or 수출지향공업화)이 나타나고, 이를 위해서 군부독재체제가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제 3세계의 구조조정을 담은 매뉴얼로 ‘워싱턴 콘센서스’가 제시되고, 구조조정에 따른 민중들의 저항을 무마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진보’세력들에 의한 민주화가 추진됩니다. 이처럼 한국에 적합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쟁점을 놓고 나타나는,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쟁점은 ‘자본축적에 걸 맞는 통치성’을 우회하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에서 군부독재체계에 맞서, 거대한 민주화 투쟁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는 쟁점이 등장합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결과론적으로 민주화가 되었을 것이다거나,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만들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당한 평가가 아닙니다. 군부독재폐기라는 강령을 내걸고 싸운 투쟁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그 의미의 중요성을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 반역과 군부독재라는 정세가 만나 이루어진 계급투쟁이었고, 역사를 움직여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후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된 역사에 대해서는, 연속적으로 일어난 지배계급들의 계급투쟁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1990년대 재민주화 전략과 세계화라는 새로운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의 도입, 그에 뒤이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라는 계급투쟁을 주목해야 합니다.


4.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의 기원

-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

위와 같은 대립물들은 발전주의 시대와 관통하는 1950 ~ 70년대를 거치면서 발전해왔고, 고유한 방식으로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했습니다. 각 시대를 특징짓는 기조와 경제정책들은 그런 대립물들을 물질화시켰고,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는 그것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즉 한국현대사에서의 극단적인 반공 이데올로기는, 경제성장이라는 자신의 타자를 통해서만 공고하게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경제와 정치에 대해서 이중의 잣대를 들이미는 일련의 평가들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역사 인식을 낳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선 정치에서의 민주화를 달성했으니, 이제는 경제에서의 민주화를 달성하자는 단계론적 진보사관 역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1950 ~ 70년대의 역사를 통해서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와 반공이데올로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950년대 삼백산업으로 대표되는 소비재 중심의 공업화, 1960년대 1-2차 경제개발계획과 경공업 중심의 공업화, 1970년대 3-4차 경제개발계획과 중공업 중심의 공업화. 발전주의 시대의 일련의 공업화 정책들은 일견 상관없어 보이는 반공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사람들의 무의식에 경제성장에 대한 가치를 주입시킬 수 있었습니다. 수출지향공업화,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다층적 하청체계로의 편입 등은 현실사회주의 국가에 맞서 자본주의 세계체계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데올로기들은 발전주의 시대에 폭발적인 계급투쟁이 전개되는 것을 막았고, 한국사회를 반동적으로 재편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의 ‘한국현대사를 만나다’ 기획연재에서, 그런 구체적인 계기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현대사를 만나다’ 기획연재를 통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적 관계가 확립된 사회에서는 경제성장이라는 것이 역사를 움직이고,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거의 유일한 동력처럼 간주됩니다. 즉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사회에 고유한 것이고, 한국에서는 발전주의와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위와 같은 대립물들을 기반으로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만연합니다. 또 다른 한축에 있던 반공이데올로기는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면서,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이는 흔히 경제주의로 빠졌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도 나타났던 오류로, 생산력의 발전을 역사를 움직인 최초의 동역학으로 간주하는 경향입니다.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며 자본주의로 수렴되는 과정에는,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라는 매개항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경제성장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최초의 동력 및 결정점으로 파악하는 것은, 역사를 단선적으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정확히 전도시켜 정신적인 힘이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관념론에 불과합니다. 역사는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단선적인 모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다양한 요소들이 개입하는 복잡한 비선형체계입니다. 물론 자본주의의 역사에서는 이윤율의 저하와, 궁핍화 및 과잉인구의 발생과 같은 장기적인 경향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요인들을 벗어버리고 투명하게 나타났던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일련의 정세 속에서 다양한 제 모순들이 결합하여, 역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됩니다. 여기서 계급투쟁은 다양한 제 모순들을 결합시키는 매개고리가 되며, 따라서 역사를 움직여가는 힘은 계급투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 이후 강력했던 피지배계급들의 계급투쟁을, 다양한 기획을 통해 억압하며 지배계급들의 계급지배를 강화할 수 있었던 시기가 바로 발전주의 시대, 즉 1950 ~ 70년대입니다. 경제성장이데올로기와 그에 대한 타자로서 항상 전자를 뒷받침했던 반공이데올로기 역시, 이런 계급투쟁의 산물로서만 파악해야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공부하면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계급투쟁입니다. 이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역사의 동학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고, 또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을 회복하는 것 많이, 현재 경제성장이데올로기를 매개로 계급지배를 실현하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 저항하는 무기로서 역사를 자리잡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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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21:08 2008/09/0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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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08/09/28 07:35 # M/D Reply Permalink

    이제까지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
    이것을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태클이 아니라, 역사의 동인이 무엇이었냐를 판단하는 건 역사에서 무엇을 볼것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아닙니까?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 '2008, 한국현대사를 만나다' 총론 -



0. 들어가며

 한국 현대사는 많은 단위에서 진행하는 세미나/교양 주제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시기에 맞춰(3. 8 → 4. 3 → 4. 19  → 5. 1 → 5. 18 → 6. 10 ) 교양을 진행하거나, 한 학기의 세미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운동성이 있는 단위들은 현대사를 새롭게 바라보고, 의식을 전환하기 위해서 학습을 진행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단위들에서 최소한 한국현대사는 알아야 한다는 의식으로, 교양을 진행하곤 합니다. 대중교육의 커리큘럼에서 사회과학의 과소교육이 존재하고, 이에 대해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교양을 진행하는 것은 일정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대사에 대한 학습을 진행하는 것이 단지 사실관계만을 훑고 지나가거나, 어떤 교훈집 정도로 끝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역사의 총체로서의 현재라는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고, 과거의 일들은 현재와 별로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진보적인 목적의식으로 현대사 학습을 진행하는 경우조차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짚고 넘어가며, 2008년 신자유주의가 고도화된 현재의 한국사회와 연관관계를 찾지 못합니다. 이런 경우 결론은 기껏해야 일반 민주주의자(GD)들이 이야기하듯이 지금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달성되었으니, 신자유주의 속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그치고 맙니다. 2008년 현재 신자유주의가 고도화 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현대사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에 훑고 지나간다는 당위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사회에서 한국현대사 학습의 이론적-실천적인 무능력은, 물론 현대사에 대한 학습을 진행하는 단위들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연구자 집단의 무능력에도 일정정도의 책임이 있습니다. 1980년대의 폭발적인 대중운동은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에게,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을 시도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한국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로 인해, 이러한 역사해석들은 위기를 자초했던 한계들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마르크스주의의 대안처럼 다가오기도 했지만, 역사에 대한 일종의 허무주의나 미시사에 대한 집착을 낳을 뿐이었습니다. 진보적 역사해석의 무능력 속에서 뉴 라이트의 역사해석이 나오며 보수반동화 경향마저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지 30년이 지나고 있고,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함께 2008년에는 신자유주의의 자태변환까지도 예상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는 것은, 현재와 과거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커다란 단절이 있었다는 일종의 환상까지 유포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교양이나 회고를 넘어서, 의미 있는 한국현대사의 재구성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행진에서 추진하는 정책 사업인 '2008, 한국현대사를 만나다'는 이러한 재구성을 위해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점과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업은 지식 탐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만드는 실천들과 함께 해야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분량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내용은 아래 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행진

2008/02/26 22:40 2008/02/26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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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h 2009/08/27 16:10 # M/D Reply Permalink

    파일 다운이 안 되네요ㅠ

  2. 행진 2009/09/08 14:50 # M/D Reply Permalink

    말씀해 주신 것처럼 현재 블로그에 첨부된 파일들이 정상적으로 다운되지 않고 있습니디. 급하신 내용은 요청하시면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복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