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한국에서 '경제성장
 이데올기'의기원에 대해



2학기의 시작과 함께 ‘2008, 한국현대사를 만나다’의 연재가 다시 시작됩니다. 주로 다루게 될 부분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로, 발전주의 시대의 한국이 될 것입니다. 이때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반공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남한’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 세계체계 속에 한국이 강하게 포섭되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요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더욱 극성을 부리며 출현하고 있는,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출현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은 각종 경제정책이 시작되고, 실제로 한국에서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던 물질적 조건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했던 국가장치들의 현대화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도입이라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무능했던 시절로 평가받는 1950년대에도 꾸준한 경제상승이 있었고, 그 이후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부동의 대통령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일국의 경제정책만으로는 불완전한 것이었고, 세계적 통치성의 개입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의 총론에 따라서 이후의 연재에서 꾸준히 살펴볼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신에게 내재적인 ‘부당한 대립물’을 토대로 계속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 평가할 때 ‘경제는 잘 했지만, 정치는 잘 못했다.’라는 식의 평가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로, 이명박 정권은 경제에 봉사하는 정치를 만들겠다는 선언을 하기도 합니다. 국가와 시장, 성장과 분배, 민주주의와 독재 등은 한국에서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만드는데 있어서 ‘비적대적 모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와 그를 토대로 하는 정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은 민중들에게 끊임없이 두 가지 대립물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그런 식으로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내재화합니다. 우리는 이와 맞서야 하고, 본질을 볼 수 있는 ‘역사과학’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1. 국가와 시장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국가와 시장’ 혹은 ‘정치와 경제’를 끊임없이 대립시키는 방법일 것입니다. 각 개인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적인 시민영역과, 거기서 생기는 각종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공적 기구라는 국가영역이라는 도식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체제의 기본적인 관계설정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순수한 도식은 역사적으로 나타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가능하지도 않았습니다. 국가를 ‘부르주아지의 공동업무를 처리하는 위원회’로 설정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도, 이런 도식은 은연중에 재생산되었습니다. 그것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건축학적으로 나누는 도식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서로 영향은 미치지만 두 개의 영역이 ‘순수하게’ 나눠 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론들은 역사를 평가할 때 마찬가지로 드러나게 됩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IMF 구제금융 이후의 위기를 분석할 때, 가장 기본적인 틀은 ‘시장 중심론’과 ‘국가 중심론’의 대결입니다. 시장 중심론자들과 같은 경우 정경유착과 재벌에 대한 특혜적인 지원 등이 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을 저해하였고, 그것이 장기적으로 경제위기를 낳았다고 간주합니다. 국가 중심론자들은 정부를 매개로 한 강력한 경제정책이 한국에서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었고, 세계화 이후 급격한 시장 개방과 그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경제위기의 원인이 되었다고 간주합니다. 이런 틈을 비집고 국가와 시장의 보완이라는 절충론이 대두하고, ‘유교식 자본주의’와 같은 문화 중심론의 주장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주장들은 끊임없이 국가영역과 시장영역을 대립시키면서, 국가 혹은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들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냅니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토대로 하는 시장영역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것을 조정하기 위해 국가영역이 만들어졌다는 식의 선후관계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체계를 만들어냈던 ‘본원적 축적’은 항상 국가에 의한 억압과 강제; 도시로의 강제 이주, 식민지 건설, 규율체제의 확립, 강력한 폭력을 바탕으로 하는 이주자와 여성에 대한 배재 등을 동반했습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자본의 축적체계를 만드는 과정은, 그를 뒷받침하는 헤게모니적 기획으로서 ‘국가간 체계’를 반드시 성립해야 했습니다. 그런 기획은 부에 대한 접근 정도를 기본을 하는 ‘세계체계’를 만들어냈고, 중심/반주변/주변에 대한 배제와 포섭이 나타납니다. 한국 자본주의에서 경제성장과 위기의 역사는, 이런 세계체계에서의 포섭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빼놓고는 절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시장중심론과 국가중심론을 끊임없이 대립시키는 것은, 일국의 경제정책에 따라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심어줍니다.


2. 성장과 분배

한국의 ‘성장과 분배’라는 쟁점은 토착적인 이데올로기 지형을 형성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남아 있습니다. 흔히 성장담론은 파이를 키워야 함께 나눠먹을 수 있다는 ‘선성장 후분배’를 이야기하고, 분배담론은 파이에 대한 분배가 경제성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선분배 후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정확하게 대치되는 양자의 담론은 국가의 복지정책ㆍ경제정책 등과 결부되어 좌/우파를 나누는 기준, 한국에서 따라야 할 경제모델로 전용되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 시기에는 성장담론이 우세하게 됩니다. 경제위기의 원인을 너무 많은 분배정책으로 일할 동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장 위주의 정책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성장과 분배’라는 대립물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관점에서도 엄밀하지 못한 개념에 불과합니다. 역사적 자본주의의 물질적 국면에서 정부지출을 늘리는 성장정책(케인즈주의), 금융적 확장 국면에서 금융자본의 안정적인 투기를 가능하게 하는 금리 인상과 같은 안정화정책(신자유주의)이 부르주아 경제학의 기본 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정과 안정’ 담론이 제 3세계에서는 ‘성장과 분배’ 담론으로 나타나는 것은, 계급투쟁을 억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담론일 뿐입니다. 경제학 비판에서 가정하듯이 전체 국민소득에 대한 이윤 몫(Π/Y)과 노동 몫(W/Y)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계급투쟁으로 인해서 거의 동일하게 유지가 됩니다. ‘성장과 분배’ 담론이 중심이 된다면 이윤 몫과 노동 몫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투쟁이 주된 담론이 될 수 밖에 없고, 경제정책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어집니다.

한편 ‘성장과 분배’ 담론은 가치체계의 부당한 대립을 상정하기도 합니다. ‘성장 = 자유중시’, ‘분배 = 평등중시’라는 식으로 자유와 평등이 서로를 억압할 수밖에 없다는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합니다. 게다가 시장과 경제는 자유를 담지하고, 국가와 정치는 평등을 담지한다는 관념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것은 대중들의 봉기적 권리인 ‘인권의 정치’를 억압하는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은 정치가 자유와 평등 각자가 서로 다른 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 즉 자유와 평등 중 하나에 대한 억압이나 제한이 다른 것의 그것을 불가피하게 초래한다는 점을 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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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재와 민주주의

한국 현대사에서 경제성장에 대한 논의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정치체계의 문제와 곧장 연결되곤 합니다. 박정희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에 이르는 시기와 동시에 일어났던 급격한 경제성장은, 군부독재체제가 가장 효율적인 정치체계라는 일반화로 이어집니다. 80년대의 가열찼던 민주화 투쟁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비가역적으로 만들지만, 여전히 암묵적으로는 군부독재체제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기도 합니다. 이명박 정권 시기에 빈발하고 있는 공안정국의 조성과 ‘정치를 경제에 봉사하게 한다’라는 논의는, 이런 향수를 신자유주의적으로 변용한 인민주의적 행태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 독재체계와 강력한 정권을 바탕으로 했던 경제성장이, 장기적으로 비효율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사회가 민주주의 체계였다면 비록 성장은 조금 늦게 되었을지라도, 탄탄한 경제구조를 만들어서 IMF의 외환위기와 같은 것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은 IMF 이후에 재벌 투명성 제고와 전문 경영인 도입 등, 경제선진화 방향으로 귀결됩니다. 이런 주장은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돕는데 활용되고는 합니다.

독재와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한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과도 연결되고는 합니다. 이에 대한 연원은 한국전쟁 전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북한과 휴전 중인 상황에서는 민주주의적 가치보다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하는 안보체계의 확립이 더욱 우선적인 과제라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통해, 체제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났던 형태는 1971년부터 나타났던 유신체제일 것입니다. 유신체제 아래에서 한국식 민주주의는 정식화되어 각종 국가장치들을 통해서 재생산되었고, 여전히도 그런 영향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ㆍ평등’과 같은 가치들보다는 안보가 여전히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쟁점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일반적인 경향인 궁핍화ㆍ과잉인구의 증가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의문을 낳게 하고, 정치가적 인민주의자들의 등장은 정치에 대한 환멸자체를 낳게 합니다. 이처럼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쟁점은 한국 현대사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쟁점입니다.

하지만 통치스타일에서 나타나는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쟁점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와 함께 나타나는 정치 체제는, 그것이 자본축적과 노동력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부르주아 독재체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발전주의 시대 제 3세계에서는 국가를 매개로 하는 강력한 경제정책 및 공업화 전략(수입대체공업화 or 수출지향공업화)이 나타나고, 이를 위해서 군부독재체제가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제 3세계의 구조조정을 담은 매뉴얼로 ‘워싱턴 콘센서스’가 제시되고, 구조조정에 따른 민중들의 저항을 무마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진보’세력들에 의한 민주화가 추진됩니다. 이처럼 한국에 적합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쟁점을 놓고 나타나는,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쟁점은 ‘자본축적에 걸 맞는 통치성’을 우회하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에서 군부독재체계에 맞서, 거대한 민주화 투쟁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는 쟁점이 등장합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결과론적으로 민주화가 되었을 것이다거나,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만들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당한 평가가 아닙니다. 군부독재폐기라는 강령을 내걸고 싸운 투쟁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그 의미의 중요성을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 반역과 군부독재라는 정세가 만나 이루어진 계급투쟁이었고, 역사를 움직여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후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된 역사에 대해서는, 연속적으로 일어난 지배계급들의 계급투쟁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1990년대 재민주화 전략과 세계화라는 새로운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의 도입, 그에 뒤이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라는 계급투쟁을 주목해야 합니다.


4.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의 기원

-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

위와 같은 대립물들은 발전주의 시대와 관통하는 1950 ~ 70년대를 거치면서 발전해왔고, 고유한 방식으로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했습니다. 각 시대를 특징짓는 기조와 경제정책들은 그런 대립물들을 물질화시켰고,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는 그것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즉 한국현대사에서의 극단적인 반공 이데올로기는, 경제성장이라는 자신의 타자를 통해서만 공고하게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경제와 정치에 대해서 이중의 잣대를 들이미는 일련의 평가들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역사 인식을 낳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선 정치에서의 민주화를 달성했으니, 이제는 경제에서의 민주화를 달성하자는 단계론적 진보사관 역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1950 ~ 70년대의 역사를 통해서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와 반공이데올로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950년대 삼백산업으로 대표되는 소비재 중심의 공업화, 1960년대 1-2차 경제개발계획과 경공업 중심의 공업화, 1970년대 3-4차 경제개발계획과 중공업 중심의 공업화. 발전주의 시대의 일련의 공업화 정책들은 일견 상관없어 보이는 반공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사람들의 무의식에 경제성장에 대한 가치를 주입시킬 수 있었습니다. 수출지향공업화,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다층적 하청체계로의 편입 등은 현실사회주의 국가에 맞서 자본주의 세계체계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데올로기들은 발전주의 시대에 폭발적인 계급투쟁이 전개되는 것을 막았고, 한국사회를 반동적으로 재편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의 ‘한국현대사를 만나다’ 기획연재에서, 그런 구체적인 계기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현대사를 만나다’ 기획연재를 통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적 관계가 확립된 사회에서는 경제성장이라는 것이 역사를 움직이고,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거의 유일한 동력처럼 간주됩니다. 즉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사회에 고유한 것이고, 한국에서는 발전주의와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위와 같은 대립물들을 기반으로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만연합니다. 또 다른 한축에 있던 반공이데올로기는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면서,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이는 흔히 경제주의로 빠졌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도 나타났던 오류로, 생산력의 발전을 역사를 움직인 최초의 동역학으로 간주하는 경향입니다.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며 자본주의로 수렴되는 과정에는,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라는 매개항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경제성장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최초의 동력 및 결정점으로 파악하는 것은, 역사를 단선적으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정확히 전도시켜 정신적인 힘이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관념론에 불과합니다. 역사는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단선적인 모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다양한 요소들이 개입하는 복잡한 비선형체계입니다. 물론 자본주의의 역사에서는 이윤율의 저하와, 궁핍화 및 과잉인구의 발생과 같은 장기적인 경향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요인들을 벗어버리고 투명하게 나타났던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일련의 정세 속에서 다양한 제 모순들이 결합하여, 역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됩니다. 여기서 계급투쟁은 다양한 제 모순들을 결합시키는 매개고리가 되며, 따라서 역사를 움직여가는 힘은 계급투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 이후 강력했던 피지배계급들의 계급투쟁을, 다양한 기획을 통해 억압하며 지배계급들의 계급지배를 강화할 수 있었던 시기가 바로 발전주의 시대, 즉 1950 ~ 70년대입니다. 경제성장이데올로기와 그에 대한 타자로서 항상 전자를 뒷받침했던 반공이데올로기 역시, 이런 계급투쟁의 산물로서만 파악해야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공부하면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계급투쟁입니다. 이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역사의 동학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고, 또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을 회복하는 것 많이, 현재 경제성장이데올로기를 매개로 계급지배를 실현하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 저항하는 무기로서 역사를 자리잡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행진

2008/09/09 21:08 2008/09/0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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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08/09/28 07:35 # M/D Reply Permalink

    이제까지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
    이것을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태클이 아니라, 역사의 동인이 무엇이었냐를 판단하는 건 역사에서 무엇을 볼것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