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호] 촛불문화제에 관한 몇 가지 단상

 

촛불문화제에 관한 몇 가지 단상


성균관 학생행진 회원 P



 매일 저녁 시민들의 촛불이 시청광장을 넘어서 광화문까지 번져가고 있다. 시청광장을 꽉 채웠을 때만 하더라도 정말 많이 모였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현충일부터는 도로를 소위 도로교통법상 불법적으로 점거하지 않으면 안될정도로 10만여 명의 시민들이 모이고 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부터 4.19혁명때 고등학생이었다는 할아버지, 교복을 입고 삼삼 오오 나오고 있는 중고등학생들과 자신의 소속을 나타내는 깃발을 들고나오는 대학생등... 이 촛불집회에는 그 누구도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다. 사실 이런 최대규모 집회를 처음 가보는 관계로 이런 사람들과 바로 옆에서 함께 촛불에 불을 붙이고 같은 구호를 외친다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감동이었다. 그리고 이 글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하지만 어쩌면 어느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고민을 하게 했던 촛불문화제의 단면들은 그 감동을 그저 감동만으로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에 다니고 있는 한 학생이 전경이 과잉진압을 한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또는 대중매체의 뉴스에서 한두 번쯤 보았을 것이다. 본인 역시도 그 집회에 있었던 터라 그 다음날에 바로 인터넷 기사를 훑어보고 있었고 충격적인 여러 동영상 가운데서도 그 동영상을 보면서 참으로 분개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우린 여기서 한 가지 큰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영상을 보고 정말 21세기에도 이런 폭력이 일어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분노하기에 앞서서 어쩌면 이 동영상의 당사자는 하루에도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이 영상을 보면서 어떠한 생각이 들었을까라고 생각해볼 수는 없었을까? 실제로 행진 자유게시판 5156번 글을 보면 이에 대한 서울대 26대 인문대 학생회의 성명서가 있다. 길지 않기 때문에 전부 내용을 실어보고자 한다.


언론의 무분별한 실명공개에 항의하며, 익명으로 교체할 것을 요구한다!


 서울대 한 학우가 5월 31일부터 6월 1일 새벽에 걸친 시위 현장에서, 전경의 군홧발로 구타당한 현장이 제보되어 화제가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이 퍼지면서 국내의 유명 언론사에서는 이 학우에 관해 계속해서 취재를 요청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 학우는 스스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 언론의 보도에 의해 피해자의 신원이 모두 드러났다. 당사자의 말에 의하면, 어느 언론사에서도 신원 공개의 여부에 대해 보도 전에 당사자에게 합의를 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많은 메이저 언론사와 포탈을 통해, 실명이 공개된 기사 및 인터넷 동영상이 확산되면서 이 학우의 동영상은 공권력의 ‘피해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보여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대상화되고 있다. 또한, 무분별한 실명 공개로 인해 징계를 받을 경찰에 의해 보복 행위가 있을지 모른다는 압박감과 더불어 일반인으로서 언론에 신원이 노출되어 겪을 수밖에 없는 심리적 압박감이 이 학우를 2차, 3차의 가해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피해자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가십거리로서 선정적으로 여론화하고 있는 언론사에 강력히 항의하며, 언론에서는 현재 보도되고 있는 모든 기사에 서울대 학우의 이름을 익명으로 교체해줄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 멈출 수 없는 변혁의 심장  26대 인문대 학생회


 사실 이 성명서를 보았을 때 아~ 그 사람이 서울대였어? 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피해자공개로 인한 제2,제3차 피해 역시 직접적인 폭력보다 더 무서운 간접적인 폭력일수 있다. 그리고 이 영상이 퍼져나가면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자 “대한민국 남성들이여! 우리 함께 나가서 여성분들 대신 물대포를 맞읍시다” 류의 피해자 여성보호론이 들끓었다. 물론 자발적으로 이미 나오기 시작했지만 군복을 입은 예비군들이 각 학교에서 함께 모여서 가자는 등의 이야기가 각 학교 자게에 올라오고 촛불소녀를 지키는 예비군 오빠들 이라는 기사들이 신문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비군으로 촛불시위대와 전경 사이에 일어날지 모르는 폭력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설 것을 자처하고 군복을 입고 집단적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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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읽으면서 당신이 언제 어디서 어떠한 느낌으로 군복을 입은 예비군들을 만났는지를 떠올려보라. 내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넥타이 부대에 이어 군복 부대까지? 라는 느낌에 처음에는 무척이나 신선했다. 그들 역시도 새로운 집회문화에 등장한 아이콘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터뜨려가면서 그들의 등장을 놀라워했다. 그런데 그 날 바로 앞에 있는 같은 학교 학우를 따라가기 위해서 뛰어가던 도중에 뛰지 마세요 라면서 막았던 예비군을 보았다.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전체가 뛰면 못 따라가는 사람도 있겠거니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물대포가 쏟아졌던 새벽에 여자들은 뒤로 가라고 하면서 남자들을 앞에 내세우는 모습은 그냥 고개를 갸웃거리기에는 너무 확연한 남성 중심적인 집회모습이었다. 애써 무시하고 우리학교는 다 같이 행동하자라는 판단이 있었기에 같이 싸우고 같이 빠지고 그렇게 집회에 참여를 했다. 하지만 여자분이 ‘남자분들 앞으로 나오세요~’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냥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 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뒤로 가면 되는거 아닌가. 다들 똑같은 결의가지고 자발적으로 나오는건데 성별로 꼭 나눠야 하나?


나 뿐만이 아니라 벌써 이러한 고민을 진보넷 블로그에 올린 분들도 있었는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러한 고민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었다. 예비군이었다는 분은 “힘이 빠지네요”라는 반응은 평범한 편이었고 “직접 곤봉에 맞아봐야 아픈줄 알겠냐”식의 폭력적인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이 이번 촛불문화제를 알리는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앞에서 말한 동영상에 대한 반응이나, 분명 집회 현장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여성들의 고민을 담은 글에 이렇게 폭력적인 반응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인터넷이 가진 ‘양날의 칼’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분들 뒤로 가세요”라는 말로 함께 싸우기 위해 나온 사람들 중 누군가를 배제하고 보호 받아야 할 존재로 만들기 보다는 이들도 안전하게 싸울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지 않을까?


그래서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에 주목하기로 했다. 사실 대치가 길어지면 곳곳에서 자유발언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자리에서 구구절절히 모든 상황을 다 이야기할 수 없겠지만 우리가 고민해 온 집회문화의 남성중심성에 관해서 용기 내어 말해볼 수 있지는 않을까?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이번 촛불문화제에 함께 오는 정말 다양한 학우들과 오는 길에라도 이와 같은 고민을 함께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Posted by 행진

2008/06/10 17:08 2008/06/1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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