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향한 진군


투쟁의 망치로 노동자의 하늘을 열던
가슴 시리게 사무치는 총파업 기억으로
어깨를 맞대고 노동자의 힘 모아
마침내 전노협 전선에 우뚝 서라

투쟁은 가슴속에 살아 심장으로 뛰고
동지는 가슴속에 살아 해방을 노래하리
소나기 퍼붓는 옥포의 조선소에서
눈보라 휘날리는 서울 철로위로

어깨를 맞대고 노동자의 힘과 뜻 모아
잡은 손 놓지 못하는 놓지 못하는
노동해방의 약속으로. 전노협 전선으로.

2-5. 85년 후반~87년 6월 항쟁 : 개헌 정국과 5공화국의 몰락

85년 4월 대우차 파업, 5월 미문화원 점거 농성, 6월 구로동맹 파업, 7월 소몰이 시위 등을 지나며 형성된 정세는 전두환 정권을 동요시키며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에 5공은 다시금 강경정책으로의 선회를 도모하게 된다. 이러한 지배계급의 공세에 맞서서, 학생운동은 상당히 많은 쟁점들을 담고 있기도 한 개헌 문제를 점차 제기하며 이른바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개헌정국’을 열게 된다.

이러한 정국에서 86년 초 민청련 전 의장 김근태 씨에 대한 고문사실이 폭로되고, 7월에는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이 폭로, 결정적으로 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계기들은 정권의 도덕적 파산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사건들이었으며 4월의 호헌조치와 맞물려 대중들의 분노는 폭발하였고, 87년 6월 항쟁이 시작되었다. 역사적 사건이었던 6월 항쟁은 지배세력과 제야세력들에 의해 ‘협상된 이행’을 통해 형식적 민주화라는 이데올로기를 남기며 봉합된다.

2-6. 87년 노동자 대투쟁

비록 6월 항쟁은 봉합되어 마무리되긴 했지만, 그 동안 억눌려왔던 노동자들은 6월 항쟁 당시의 대중적 열기 속에 그 분노를 폭발적으로 분출함으로써 6월 항쟁의 봉합으로 조성된 정치적 교착국면의 역동성을 대폭 강화하였다. 그리고 이는 85년 이후의 일시적인 이윤율의 반등에 따른 호황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은 변하지 않았을 뿐더러 억압적인 작업장체제에 대한 불만(그 당시 구호 중 하나가 ‘작업화 신고 조인트 까지 마라’) 역시 조건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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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진

2007/12/18 22:02 2007/12/1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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