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경험은 앞으로 학회학술 활동을 준비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흘에 걸쳐 15시간이 넘게 진행되는 ‘장시간 강연’에 과연 얼마만큼의 사람이 올지, 행여나 역량에 비해 욕심이 앞선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를 확인하면서, ‘자기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욕구와 의지를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설문을 수합해 본 결과, “강연 내용이 앞으로의 기층 세미나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내용이 조금 어려웠지만, 책을 미리 읽는다면 그리 알아듣기 어렵진 않았다. 오히려 성과가 남기 위해선 이 정도 수준의 학습은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많았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이 많았다. 매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징후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운동의 위기를 넘어 대중운동의 보편적인 정형을 다시금 만드는데 있어, ‘지식’과 ‘교육’은 결코 빠질 수 없는 화두이다. ‘지식을 매개로 하는 대중운동’이라는 표현은 사실 말이 안 되는 표현일지 모른다. 왜냐면 ‘지식을 매개로 하지 않은 대중운동’이라는 것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존재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그 어떤 대중운동도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포함하지 않고서는 충분히 비판적, 혁명적일 수 없었다. 지식(그리고 문화)에 대한 고민이 없는 대중운동, 오로지 거리에서의 순간적인 결의만으로 위태위태하게 저항주체화를 해나가려는 운동은 언젠간 한계에 봉착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듯 지식의 문제는 운동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굳이 ‘지적 차이’에 대한 발리바르의 철학적 언급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도 너무나 당연한 우리의 핵심 과제인 것이다.
학회학술의 골간을 복원하고 자기교육의 문화를 아래에서부터 보편화하기 위한 의식적인 역량투여가 앞으로도 전체 행진 차원에서, 또 캠퍼스 차원에서 꾸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월례포럼의 활성화는 이런 점에서 여러모로 유의미할 것이다. 각 캠퍼스/지역별로 월례포럼의 내용을 선정하고 준비해나가는 그 ‘과정’ 자체가 교육-훈련을 위한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기층에서 학습, 교육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지지보족해야 한다. 백승욱 교수도 뒤풀이 자리에서, “앞으로 이런 대공업적 강연이 없어도 각 단위에서 알아서 잘 할 수 있도록, 학습이 조직적, 체계적으로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라며 이 점을 강조하지 않았는가? 강연 참가자들이 자기 단위로 돌아간 다음, 강연에서 다룬 ‘역사적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분석’ 등을 각자의 단위에서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이번 강연은 그것만으로도 그 소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강연에서 백 교수는, 모든 담론이 가지는 ‘지식 효과’와 ‘정치적 효과’를 강조한 바 있다. 즉, 우리 눈앞에 보기좋게 주어진 ‘객관적 지식’을 그저 수동적으로 ‘습득’하기 위해 우리가 이번 강연을 들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강연을 듣고, 그 내용을 이해하고, 이후 이에 대한 집단적인 사고와 교통(communication)을 이어가는 것은 엄연히 ‘정치’의 과정이다. 그리고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능동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본 강연의 ‘지식 효과’와 ‘정치적 효과’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그 공백을 메우면서 긍정적 효과를 이어가기 위한 주체들의 의식적인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일단 동지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강연에서 다룬 내용이나 책에 나온 내용에만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 함께 더욱 노력하자는 것이다. 이번 강연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룬 것이 결코 아니었다. 어떤 익명의 분은 설문에서 “역사적 자본주의에 대한 페미니즘적 분석, 예컨대 ‘역사적 가족 형태’에 대해 체계적으로 다루지 않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자리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너무나도 중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의문을 온라인/오프라인 상에서 제기하고, 그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토론을 조직하거나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 때로는 본 강연 교재에만 의지하지 않고 마르크스, 알튀세르, 뒤메닐, 월러스틴, 아리기 등의 저서를 직접 찾아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강연자의 생각과 비교해보는 것...... 이런 것이 바로 능동적인 태도가 아닐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강연을 듣는다는 것은 단지 먹기 좋게 차려진 음식을 받아먹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강연자와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우리의 집단적 논의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강연을 듣는 것이다. 지적 차이를 감축한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역사적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커리큘럼을 사전에 제시하고 이로써 좀 더 체계적으로 방중학습을 조직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이런 점을 더욱 신경써야 할 것이다. 이후에도 이 주제에 대한 사후학습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자본주의 역사 강의』가 앞으로도 널리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조만간 백승욱 교수에 의해 번역이 완성될 죠반니 아리기의 『장기 20세기』 등, 관련 서적들이 많이 읽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서 죠반니 아리기의 작업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세계체계 분석/역사적 자본주의론’의 의의에 대해서는 윤소영 교수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중 2, 3강이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을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그 내용은 결코 쉽지 않은데, 이번 강연은 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사전워크샵 자료로 제시된 것들도 일반자료실에 등록되어 있는데, 참고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올해 전국대학생대회의 학회학술 포럼 자료,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은 흔히들 ‘정치경제학’이라고 부르는 ‘경제학 비판’의 학습 방향을 전반적으로 잡기 위해 제출되었다. 물론 분량이 많고 쉽지 않은데, 관련 문의는 행진 메일(stulink@hanmail.net)을 이용해주기 바란다.모두들, 긴 강연 듣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Posted by 행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