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34호] 발간사

자아도취에 빠진 정권에 맞서는 2010년


“어둠 속에서 새로운 밝음을 찾아냈습니다.”

2010년 1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의 간략한 평가와 올해의 의지가 담긴 짧은 신년사를 발표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형식적으로라도 새해에는 자신의 과오를 고쳐나가겠다는 식으로 발표한 것과는 달리, 그의 메시지에는 오히려 ‘자신감’이 묻어나왔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예전부터 그랬듯이 올 한해도, 설사 전 국민적 반발을 사는 일이 있어도 ‘자신감’을 갖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선진적인 국정 운영을 해 나가겠지요. 그의 말대로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자 주최국이 되고, 원자력 발전소 수출의 길을 열어 한국이 선진 일류국가로 도약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날이 갈수록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불안정노동이 확대되는 우리 사회의 서민들이 과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명박 정권에게 ‘밝음’은 선진화고, 일류국가겠지만 이를 근거로 추진하려는 정책들은 우리의 삶을 어둡게 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단적인 예지만, 국가 품격을 높이기 위해 노사화합을 강요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전가하기도 하고, 공기업선진화를 내세우며 각종 사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비용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국가를 앞세운 담론들은 역사적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키면서 가진 자들을 더 배부르게 만든 것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말한 선진화/일류국가 담론의 숨은 의의를 잘 경계하면서 2010년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올해의 첫 발간호인만큼, 이명박 정권이 새해 벽두부터 포부를 밝힌 선진화 담론을 주목하면서 올 한해를 넓게 바라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정세동향으로는 중앙대에서 진행되려 하는 메가톤급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분석을 실었습니다. ‘백화점식 학과 재편’, ‘경쟁력 없는 학과 퇴출’을 이야기하며 계획되는 구조조정의 목적은 ‘일류대학’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일류국가’를 이야기하는 논리와 매우 비슷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 어떤 곳으로 기능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교육과 학문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의견을 담았습니다. 중앙대에서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완료된다면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 이번에 실린 정세동향을 참고하면서 이후의 상황을 슬기롭게 대비합시다.
이어서 연초부터 정신없이 일어난 여러 사건들에 대해 입장을 담았습니다. 일단 서두에 언급한 대통령 신년사와 연설을 토대로 이 정권이 지금의 상황을 평가한 것과 향후 방향을 밝힌 부분을 정리해 봤습니다. 올 한해를 관통할 정부의 기만적 담론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으니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새해 첫 날에 통과된 노조법 개악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고민한 내용을 실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권리가 어째서 중요할 수밖에 없는지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극적으로 타결되어 얼마 전 장례를 치른 용산참사에 대한 입장을 담았습니다. 총리가 유감 표명을 했지만 정부가 진심으로 이 사건을 책임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용산참사가 어째서 끝나지 않은 싸움인지, 우리가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일로영일’(一勞永逸, 지금의 노고를 통해 오래 안락을 누린다)이란 말을 하며 일류국가 도약을 위해 서로 노력하자고 했습니다. ‘혹세무민’(惑世誣民,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미혹하게 하여 속임)이란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가진 자들을 위한 서민들의 노고를 이제는 멈춰야 합니다. 우리를 더 불행하게 할 선진화 담론에 맞서 보편적인 권리를 쟁취하는 싸움을 2010년 학생사회에서부터 힘차게 만들어 갑시다!!

Posted by 행진

2010/01/15 01:58 2010/01/15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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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메가톤급 구조조정,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앙대 메가톤급 구조조정안이 지난 12월 29일에 발표됐다. 18개 단과대학을 10개로, 77개 학과(학부)를 40개로 줄이는 한국 대학 사상 초유의 대규모 학과 구조조정안을 두고 시대의 흐름에 따른 바람직한 또는 어쩔 수 없는 변화다, 기업의 논리로 학문의 다양성을 침해한다는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대학교들은 중앙대 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들이 장기적으로 추구해야할 방향임이 틀림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 어떻게든 대학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이것이 중앙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 거세어질 대학의 거대한 변화,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계열별 경쟁을 유도하는 5계열 책임부총장제

"일류 대학을 만들고 싶은데 지금처럼 백화점식 학과를 갖고 어떻게 경쟁하겠나? 너무 다양해 선택과 집중이 안 되고, 시대 흐름에 뒤처지는 분야도 있으니 중앙대 특성에 맞게 구조조정하자는 것이다. 힘들더라도 일부 손대는 차원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백지 위에 다시 그려야 제대로 된 개혁이 된다고 보았다. 그동안 많은 준비를 해왔다. 단과 대학별 구조조정위원회도 구성했고, 본부 구조조정위도 가동했다. 심지어 외부 컨설팅 회사에 외국 대학들과 비교해 미래 지향적 대학 모델을 만들어달라고 해 그 의견도 이번 안에 담았다."
- 중앙대 박범훈 총장 인터뷰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쟁력 강화, 행정적 편의 개선. 이것이 중앙대학교에서 말하는 주된 구조조정의 이유다. 이를 위해 핵심적으로 현재 단과대 체제가 5계열 책임부총장제로 재편된다. 각 학과에 대한 평가를 통해 집중육성학과 7개, 개편대상학과 26개, 통폐합대상 28개 학과를 선정하여 18개인 단과대를 10개로 줄인다. 이를 ▲인문·사회·사범 ▲자연·공학 ▲의·약학 ▲경영·경제 ▲예·체능 등 5개의 계열별로 묶어 5명의 '책임 부총장'이 예산과 교원임용, 인사, 교육, 연구지원 등 모든 권한을 가지게 된다. 그 목표는 ‘명품학과 12~15개를 집중육성하기 위한 자율 경쟁체제 도입’이라 한다. 학교본부가 그 이상을 공개하고 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각 계열 간/학과 간에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정도는 누구든 예상할 수 있다.

"기업이든 대학이든 투입한 자원에 비해 가장 큰 효과를 내는 것이 경영이다. (대학과 기업은) 다를 게 없다."
- 박용성 이사장 인터뷰 中 [조선일보, "대학이 문화센터냐… 학과 완전히 다시 짜겠다.", 2009.06.09]

 학교본부가 제시한 이번 구조조정안의 핵심은 ‘평가’이다. 평가를 통해서 학과 통폐합을 이끌어내고, 평가를 통해서 학과 간 경쟁을 유발하며, 평가를 통해서 학과를 죽이고 살리는 학교 ‘경영원리’가 구조조정 혹은 학문단위 조정으로 표현된 것일 뿐이다. 그 중심에 5계열 책임부총장제가 있다. 각각의 부총장이 예산 및 연구지원을 차등화해서 단위별 경쟁을 시키기 위해서는 ‘상시적인 평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이들 학과/학문을 평가할 것인가? 소위 잘 나가는 경쟁력 있는 학과는 대폭적인 재정지원을 받고 이외의 학과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당장에 폐과시킬 경우 예상할 수 있는 강력한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합법적으로 도태시키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경쟁력 있는 학과라는 것은 곧 취직에 유리한 학과, 기업이 원하는 지식을 가르치는 학과를 의미한다. 대학에서 생산하고 유통하는 지식을 이윤추구를 중심으로 재편시키는 힘, 상시적인 평가는 대학의 기업화를 추동할 것이다.

 사실 현재 발표된 구조조정안 자체만 보아서는 각 과가 어떻게 변화할지 제대로 예측할 수 없고, 노골적으로 경쟁력 있는 학과만 남기겠다는 의도를 투명하게 읽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위에서 말한 것들이 대학교의 운영원리 자체를 바꾼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 대학이 변화할 지를 예측가능하게 해준다. 즉, 당장의 구조조정 계획안에서 살아남은 과도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될 시에 충분히 ‘사실상 포기학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오히려 지금 제출된 구체적인 안 자체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니, 5계열 책임부총장제라는 대학 운영원리가 의미하는 바를 통해서만 구체적인 학과 개편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시대에 따른 학문 수요의 변화, 대학 기업화는 필연인가

“비싼 등록금 받고 사회에 나가서 써먹지도 못하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죄 받을 일이다. 교수들 스스로 뒤떨어진 것 인정하고 매달려야지, 그렇지 않고 예전처럼 안일하게 가르쳐 졸업생을 실업자로 만들어 놓으면 학문 분야도 손해가 된다.”
- 중앙대 박범훈 총장 인터뷰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경쟁력 없는 학과가 도태되는 것이 문제인가? 이러한 질문은 학문과 교육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생산하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다는 관점을 기반으로 한다. 즉, 학문의 수요자가 기업과 사회라는 것이다. 일면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가 어렵다’는 불만과 ‘대학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은 얼핏 보면 같은 것이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 어렵다는 것은 대학에서 실용적인 학문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대학이 너무 많기 때문도 아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이 사회 전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아무리 기업에서 써먹기 좋은 실용적인 지식을 가르친다 해도, 너도 나도 그러한 변화를 꾀하는 가운데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 어렵다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학교가 아닌, 내가 다니는 학교만 기업이 원하는 방식으로 재편될 때 내가 더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이에 비해 대학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은 전 사회적인 문제로 여겨지지만 사실 정확히 ‘기업만’의 문제이다. 금융화되는 사회에서는 소수의 고급지식노동자가 필요한 한편, 그 외의 모든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는 가운데 이에 적응할 수 있는 노동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업과 정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이를 담당하는 것이 교육체계, 그 중에서도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인 것이다. 때문에 대학의 변화는 변화된 산업구조에 맞는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다. 대학구조조정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학문수요의 변화’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회 전반적인 문제인 실업을 개인의 스펙 부족으로 정당화하고, 대학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가운데 대학은 조금 더 기업이 원하는 노동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배출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지식과 교육은 이윤추구를 위한 것으로만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학문수요는 결국 기업경영에 필요한 지식이고,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은 일상적으로 평가받고, 잘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는 것을 당연한 삶의 원리로 삼는 수 많은 노동자군을 생산할 수 있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대학의 기업화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변화가 아니라, 명확하게 기업의 입장에서 필요한 대학의 변화다.


대학 위기의 원인

 대학구조조정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배경은 교육에 대한 위와 같은 관점이 밑거름이 되는 한편, 실제로 많은 대학들이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의 비대화․부실화는 사학 자본들의 난립과 경쟁으로 인해 심화․확대되었으며, 경쟁력 이데올로기가 학생, 교직원사회에 퍼지면서 대학과 학문이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대학의 위기는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한국에서 대학은 과거 산업 자본의 수요 충족과 대중들의 계층상승 욕구가 결합하여 양적인 팽창을 거듭했다. 고도의 산업성장과정에서 대학은 국가와 자본에게 고급 노동력의 공급을, 개인에게는 부와 지위의 획득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줌으로 해서 양적팽창의 정당성을 확보해왔다. 하지만 불황으로 인해 이제 대학에서 양산한 노동력을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대학은 ‘과잉노동력’을 양산하며 계층상승은커녕 안정적인 일자리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1980년대까지 정부는 고등교육의 확대를 제어하는 방향으로 일관하다가 5공화국 들어 이른바 7․30교육개혁조치로 대학의 문호를 개방한다. 이후로 꾸준하게 대학의 규모가 증가하다 90년대 중반에 또 한 차례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95년 5․31교육개혁조치의 일환으로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도입되면서 96년도 이후부터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대학정원과 대학수가 증가했고, 199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10년 만에 대학생 수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대학의 양적 팽창은 산업성장과정에서 시장의 필요와 정부의 정책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대학의 변화는 필연이 아니라, 자본과 정부의 ‘선택’이었다.

 때문에 현재 대학의 위기라고 불리는 상황은 자본과 정부의 선택이 이제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게 된 것일 뿐이고, 때문에 새로운 재편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대학이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점점 기업의 입맛에만 맞는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을 이 사회에 필요한 지식과 동일시하는 현상, 서로가 서로를 밟고 올라서기 위해서 경쟁하는 천편일률적인 ‘인재’만을 길러내는 것이 진정한 대학의 위기 아닐까. 

우리에게 교육과 학문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학문의 수요자는 기업인가? 아니, 학문에 공급자와 수요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관점 자체가 이미 기업의 시선으로 교육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기업이 원하는 노동자로 자라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내가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즉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대학의 구조조정이 위험한 이유는 결국 모든 교육과정이, 세상에서 ‘지식’이라고 인정받는 것들이 모두 ‘기업이 원하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만 존재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지금 중앙대학교에서는..

 12월 29일의 구조조정안 발표는 중앙대학생들에게 충격적이었다. 08년 때부터 조금씩 구조조정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이에 학생대표자들이 총장님께 사실 확인을 요구했는데 총장님의 대답은, ‘허위사실 유포하는 자를 데려오라’였다. 시간이 지난 지금,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던 학생들에게 날벼락 같은 학과통폐합 계획안이 언론을 통해 뿌려진 것이다. 일찍부터 학생들은 학교에 구조조정에 대한 계획을 함께 논의하고자 수차례 요구했다. 그런 요구를 무시하고 특히 구성원들이 학교에 없는 ‘방학’기간에 구조조정 계획안을 발표한다는 것은 대화하겠다는 의지조차 사라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개편 대상 학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았고, 학우들에게 돌아온 것은 평가된 ‘결과’일 뿐이었다. 학교는 방학동안 의견수렴 기간을 거쳐 3월에 최종안을 결정한다는 입장이지만 방학 기간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다.
 대학 자체를 뒤바꾸는 대규모 구조조정계획에 대해 중앙대 학생들은 ‘구조조정에 맞선 학생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긴급 토론회, 질의서 발송, 학생 요구안 수합, 확대운영위원회 개최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구조조정계획이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학내 구성원들이 ‘정보’를 알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도록 각 과별 간담회 등을 기획하고 있다.

더욱 본격화될 대학구조조정에 맞서, 대학 기업화의 진실을 폭로하자!

 “향후 10년간 대학과 기업의 불편한 동거가 아니고 찰떡 궁합의 행복한 상생이 될 것입니다.
10년을 지켜보신 후에 이와 관련된 글 하나를 써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경향신문 기사 ‘대학과 기업의 불편한 동거’에 대한 반박, 중앙대학교 이사장 박용성

  중앙대학교 이사장은 자신만만하다. 개혁의 결과는 기업 개혁의 결과와 같이 실적으로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그 실적은 중앙대의 대학서열 상승, 취업률 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중앙대 구조조정은 앞으로 대학이, 교육기관의 발전이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어떤 대학이 필요한지 대중들에게 강력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때문에 이 싸움은 중앙대 학우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모든 대학생,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문제다. 우리 모두, 우리들에게 필요한 학문과 교육에 대한 논쟁을 시작할 때다!   



[참고자료]

1. 인문/사회계열
1.1. 인문대학
민속학과가 폐지되고 역사학과에 통폐합 될 예정이다. 아시아문화학부, 유럽문화학부가 기존 학과들의 통합을 통해 신설되었다. 아시아문화학부 내에는 인도문화가 신설되었다. 이번 구조조정에서 기초학문분야인 인문학을 육성하겠다고 학교 본부는 천명했고, 실제로 완전폐지의 경우는 거의 없었다.

1.2. 사회과학대학
낮은 평가를 받은 복지계열학과가 사회복지학부로 통합되었고 신문방송학과와 광고홍보학과가 합쳐진 미디어홍보학부가 생겨났다. 공공인재학부 역시 이곳으로 배치되었으며 도시계획․부동산학과가 안성 캠퍼스의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에서 변경되었다. 심리학과, 문헌정보학과, 사회학과는 좋은 평가를 받아 학과체제로 존속되었지만 정치외교학과/국제관계학과는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폐과대상이 되었다.

인문대학과 사회과학대학의 대부분의 학과들이 학부제 모집으로 통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구조조정안에서 전반적으로 학부제 모집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유독 인문/사회계열, 자연계열에서 저평가를 받은 것으로 짐작되는 학과들이 학부제로 묶이는 경향을 보였다. 학교 측은 ‘기초학문분야 육성을 위해’ 학문단위 광역화를 실시한다고 하지만 뚜렷한 목표나 전략이 없이 단지 비슷하기에, 또는 행정적인 편의라는 이유로 묶는 학부 광역화는 걱정되는 부분들이 많다.

1.3. 사범대학
체육교육과와 가정교육과가 폐지되었다. 그 이유는 평가안에서 ‘下’ 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국어교육과, 수학교육과가 신설. 교육학과의 경우는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1년 간 유예기간이 주어졌다고 한다.

2. 경영/경제계열
경제학과, 경영학과, 통계학과가 한데 묶였다. 또 글로벌지식학부가 신설되었다. 글로벌지식학부의 경우 총 정원이 145명이며 교육과학기술부와 중앙대가 처음으로 도입한 학과이다. 실업계 고교 출신 직장인들 중 3년 이상 일한 사람들에 한해 수능성적 없이 입학할 수 있게 한 제도. ‘학사MBA’라 불리고 있으며 경영학을 배우며 평일 야간, 주말 등에 주로 운영된다.

3. 자연/공학계열
흑석캠퍼스의 자연대학과 안성캠퍼스의 응용생명과학부가 통합되어 자연과학대학이 되고 공과대학이 같은 계열로 묶이게 되었다.

3.1. 공과대학
공과대학은 신설되는 학과가 많고 그만큼 없어지는 과도 많다. 건축학부만이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건설환경공학과, 도시공학과가 폐과되며 건설플랜트공학과가 신설된다. 건설플랜트공학은 건설환경공학과 도시공학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공학 인프라 구축-해외 담수시설, 원전 플랜트 공사 등- 을 주되게 연구한다. 두산건설, 두산인프라코어 등의 존재를 생각했을 때 대학에서 생산된 지식이 두산 계열사에 직접적으로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계공학부와 신설학과가 합쳐져 E/S공학부가 신설된다. 추가되는 전공은 로봇공학, 의료공학으로서 기계공학부의 세부전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3가지 전공이 동등한 지위로 설정이 되어있다. 전자전기공학부와 컴퓨터공학부가 합쳐지고 인공지능 전공이 신설되어 IT공학부가 생겨난다. 마지막으로 화학신소재공학부와 신설된 에너지환경공학의 구성으로 에너지공학부가 탄생한다. 공과대학은 그 어느 단과대학보다 학과 통폐합-재배치가 많은데 이는 ISB계열을 주력사업에 둔 두산그룹이 공과대학을 많이 신경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건설플랜트공학과, E/S학부, 에너지공학부 등의 신설에서 두산그룹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즉 두산그룹의 사정에 따라, 또는 시장상황에 따라 앞으로도 학과 재조정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불안정성에 처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3.2. 자연과학대학
지난 10월 19일 문제의 한국일보 기사에서 ‘사실 상 포기’대상에 들어갔었던 자연과학대학이 공과대학과 같은 계열로 묶이게 되었다. 수학과와 물리학과가 합쳐져 수학물리학부를 신설되고, 99년 정경대에서 적을 옮겼던 통계학과는 또다시 자연과학대학에서 나와 경제․경영 계열로 가게 되었다. 또한 화학과와 생명과학과를 합쳐 화학생물학부를 만든다. 2캠퍼스의 산업과학대학/생활과학대학의 과들이 응용생명과학부로 재편되는데, 생명공학과를 통합시켜 의생명공학 전공을 새로이 두게 되었다. 앞서도 지적했다시피, 자연과학대학 역시 ‘순수학문 육성을 위해 학부제로 광역모집’되는 주된 단위가 되었다.

4. 예체능계열
4.1. 예술대학
공연영상창작학부와 디자인학부, 미술학부, 음악학부, 전통예술학부로 구성된다. 이 중 공연영상창작학부는 문예창작, 연극, 영화, 사진, 현대무용 전공으로 나뉜다. 연극, 영화전공의 경우 이미 3년 전에 미디어공연영상대학으로 바뀐 적 있는 연극영화학부가 다시 분리되어 구조조정되는 다소 어이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2006년 당시 학교 측은 정경대 신문방송학과와 예술대 연극학과, 영화학과 3과를 통합하여 미디어공연영상대학을 만들었다. 당시 미공영대는 연극․영화학과가 수도권 대학 특성화 사업에 선정되면서 받은 정부지원 121억 원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창조적 융합 교육을 위해’, ‘공연 영상 중심의 교육을 통한 차세대 전문 인력 육성’이 그 목표였다고 한다. 그러나 3년 만에 계획은 뒤바뀌어 신문방송학과는 사회계열로, 연극․영화학과는 예술대로 재편성되었다.

4.2. 체육대학
안성 캠퍼스의 사회체육학부와 흑석 캠퍼스 사범대학 체육교육과가 통합되어 체육학부 단일 학부 대학으로 구성된다. 사회체육학과의 성격이 강할 것으로 보이며 체육교육과의 특성은 거의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행진

2010/01/15 01:54 2010/01/15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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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신년연설을 통해 본 2010년 예상도


■“2009년, 우리가 얻은 것은 자신감입니다.”

  집권 3년차를 맞는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신년연설에서 '더 큰 대한민국'을 내세우며 2010년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보면, 올해 3대 국정운영기조로 ▲글로벌 외교 강화 ▲경제 활력 제고 및 선진화 개혁 ▲친서민 중도실용을, 5대 국정과제로 ▲경제회생 ▲교육개혁 ▲정치선진화 개혁 ▲전방위 외교 및 남북관계 변화를 각각 제시했다.

  지난 해 신년연설의 기조 및 과제와 비교해보면 내용에 있어서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었으나, 지난 해 연설에서 '위기'를 29차례나 언급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국민들의 고통분담 강조에 중점을 두었다면, 올해 연설은 '대한민국'을 14차례, '변화'를 13차례 언급하면서 2010년을 향한 긍정적, 희망적인 비전을 중점적으로 전달했다.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G20 정상회의 2010년 개최국', '원자력 수출 협정 체결'은 대한민국의 변화된 위상을 보여주었고, '선진 일류국가'라는 브랜드에 '외환보유고 6위', 사상최대 무역흑자, 내년 경제 성장률 4.5% 예상' 등 희망적인 수치들을 새겨 넣었다.


■  “올해 우리 정부는 '일자리 정부'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

  여러 정책 중에서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중점을 두면서 스스로를 ‘일자리 정부’라 명명하며 특히 이 부분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정부가 창출하는 일자리의 월평균 임금은 최저임금(83만6천원. 2009년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며 초단기 일자리가 대부분이어서 2010년에도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결국 더 많은 불안정 노동을 양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자리를 20만개 창출하겠다고 발표하고 있으나 수치만 높여서 강조할 뿐, 실제로는 올해에도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자리 정책이 시행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작년을 돌이켜보면, 정부에서 일자리 정책 중 매우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청년인턴 사업은 이로 인해 6만 6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혜택을 봤지만 몇 개월이 지나고 곧 다시 일자리를 잃었다. 이러한 땜질식 일자리 대책으로 일시적으로 공식 실업자 수를 낮추면서 정부는 경제 위기 속에서도 OECD국가 중 실업률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고 선전하지만, 공식 실업자 수에 취업준비생이나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한 ‘사실상 실업자’는 지난 11월 300만 명을 넘어서고 있어 사실상 실업률이 12.6%를 기록했다.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실업률(3.3%)의 4배 가까이 되는 실업률이 은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정책은 결국 당장 실업률을 끌어내리기 위한 불안정 일자리 만들기에 불과했다.

  올해 연설에서 추가적으로 실업 해결책이라고 제시한 ‘직업 훈련 체제 강화’나 ‘노동력 수요-공급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한 통합정보망 구축’ 등 어느 것도 궁극적인 원인에 대한 처방을 비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신년 연설에서 실업과 단기적 취업을 오갈 수밖에 없는 현재 사람들의 불안정한 상황을 ‘복수 직업 시대’라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평생 하나의 직장만 갖는다는 고루한(!) 생각에서 벗어나 일자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경제 수단이 아닌 ‘자아실현’ 수단으로서 일자리를 바라볼 것을 당부하지만, 자아실현은커녕 경제 수단에도 미달하는 것이 현재 사람들의 일자리이다.


■ “'일로영일(一勞永逸)'의 자세로 선진 일류국가로 가는 초석을 확실히 다지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드러나는 자신감은 지지율 상승에 힘입은 것이다. 올해는 임기중반을 통과하는 해로 초기의 지지율을 다시 되찾기 위한 이미지 쇄신을 꾀하고 있다. 그 결과 촛불집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태이래로 급격히 하락했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50%대를 회복했으며, 모 언론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70%에 가까운 사람들이 내년 우리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로영일의 마음으로 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닦겠’다고 말하면서 신년화두를 ‘일로영일’로 삼았다. 청와대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일로영일(一勞永逸)’이란 ‘지금의 노고를 통해 이후 오랫동안 안락을 누린다’라는 뜻이 담긴 것으로, 정책을 택함에 있어서 지금 당장의 효과도 중요하지만 먼 미래 후손의 안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 사자성어를 택했다고 청와대는 그 취지를 밝혔다. 마치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는 당장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후대의 경제번영까지 생각할 줄 아는 ‘현인’으로 승격시켰으며, 이에 대조하여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당장의 잇속밖에 차릴 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로 격하했다. 올해에도 다시 한 번 어떠한 저항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밀어붙이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올해는 또 어디서 용산에서와 같은 불꽃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지, 쌍용자동차 공장에서처럼 매캐한 최루액이 쏟아져 내릴지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잘 살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경제성장 정책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짓밟을 것이라는 것이다.

  당장의 노고와 어려움은 고통분담으로 함께 이겨내자고 말한다. 신년 연설에서 ‘세계에서 경제위기를 가장 잘 극복한’ 것은 ‘고통을 분담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국민들이 너무도 잘 참고 잘 호응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년 연속 임금 동결을 감내해준 공무원들에게 감사의 말까지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처럼 과대 포장된 2010년 경제성장률을 마치 고통을 분담하여 대한민국 특유의 저력으로 경제위기를 잘 이겨낸 결과 얻어진 것으로 만들면서, 더 큰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올해에도 아낌없는(!) 고통분담을 주문했다. 그러나 최근 5년간 경제위기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의 매출이 꾸준히 증가했던 것에 반해, 평균 임금인상률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1.7%(물가상승률을 적용하면 사실상 ‘삭감’이다)에 머물렀다는 점을 볼 때, 그토록 지난 해 호소했던 ‘고통분담’이 민중에 대한 일방적인 책임 전가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우리 목을 조여 올‘선진화’라는 환상을 벗어던지자!

  신년을 맞이하여 모 언론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10년 안에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과반수에 이르렀다. G20 개최, 원자력 수출 등 지난 해 쏟아져 나왔던 몇몇 상징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선진 일류 국가’로서의 이미지에 사로잡히게 했다. 그러나 이처럼 정부에서 유포하는 ‘선진국’이라는 이미지에 집단적으로 도취되어 있다면 정부에서는 끊임없이 이러한 환상을 부추기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당장의 고통 감내, 즉 ‘일로영일’ 정신을 내세워 우리의 생존권을 공격해 올 것이다.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지만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경기 침체는 계속되고 있고 더블딥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경제와 연동되어 작동되고 있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경제위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얼마간은 경제위기가 계속될 것인데, 경기 침체의 장기화는 실업, 부채 증가 등 사람들이 삶의 질을 점점 더 악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선진화’, ‘선진화’를 외치면서 더 악화된 삶의 조건마저 장밋빛 미래를 위해 감내하게 만들 것이고 이에 대한 저항은 ‘생각, 행동양식의 선진화’를 내세우면서 다시 억압당할 것이다.

  “오늘 소담스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며 새해의 시작을 축복하는 듯합니다.”라는 말로 시작된 신년 연설에서처럼 그날은 유례없이 많은 눈이 내렸던 하루였다. 새해 첫 근무일에 예상치 못한 폭설로 서울의 온 교통은 마비되었지만 어쨌든 눈은 그러한 세상사에는 초연한 듯 쏟아져 내렸다. 이처럼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우리의 목소리 위에도 ‘선진국’이라는 새하얀 이미지가 뒤덮으려 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 당신의 고통은 대한민국이 아직 선진화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경제성장에 방해가 되는 어떤 걸림돌도 제거할 기세이지만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는 언젠가는 녹아 없어져버릴 환상일 뿐이다. 경제 위기 시기 어느 때보다도 거세질 노동에 대한 공격에 맞서 진짜 우리의 삶을 선진화시켜낼 수 있는 대안을 이야기하자.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분담을 명분으로 노동자들의 탄압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사실상 단기간, 저임금 일자리 양산에 불과함을 적극 알려내자. 우리의 생존권은 선진화 정책에 의해 오히려 억압될 것임을 폭로해내는 2010년을 만들어가자.


Posted by 행진

2010/01/15 01:46 2010/01/15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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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에도 멈추지 않는 노동자 탄압
- 노조법 통과에 부쳐-



1. 신년과 함께 찾아온 노조법 통과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줘야 할 2010년 1월 1일, 새해가 밝기도 전에 우리는 노조법 날치기 소식을 전해 들어야 했다. 개정은 없을 것이라던 임태희 노동부장관이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꿔 노조법을 꼭두새벽에 통과시킨 것이다. 이번 노조법 개정안처리과정에서는 노동부장관의 말 바꾸기부터 자기당위원의 출입을 막은 환노위 회의까지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들이 벌어졌다. 정권에게 있어선 이번개정안 통과는 더 이상 법의 테두리에는 노동자들이 있을 곳은 존재치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개정안에는 복수노조 시행 유예, 타임오프제, 복수노조 단일창구화, 노조전임자임금 지급 금지를 골자로 하고 있다. 본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민주노조는 그 존립마저 위기에 처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정권과 여당, 경영계는 전임자임금지급이 노조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노사관계를 망친다며 지급 금지를 강도 높게 주장 해왔다. 이번 개정안 날치기통과로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는 올해 7월 1일로 시행되게 된다. 하지만 지난 96년 제정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그동안 노동계 및 학계 등의 강력한 반발과 폐지요구 속에 13년 동안 계속 유예되었던 조항이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보장된 권리들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장선이 노동조합이다. 더욱이 한국은 고강도 장시간노동이 일반화되어 있고 300인 이하사업장 노조가 전체노조의 90%를 차지하는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일을 하며 노조활동까지 병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노조전임자는 노조운영, 노무관리 외에도 민주노조로서 정치적 활동과 조합원 조직, 교육활동에 있어 없어선 안 될 존재이다. 게다가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대부분의 노조전임자 급여는 투쟁과 단체협상의 결과물로 쟁취해왔던 권리이다. 민주노조 와해와 같은 목적이 있지 않은 이상 회사가 나서서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회사의 개입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부당노동행위로 현행법상에서도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권과 여당은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7월부터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된다면 노조는 전임자임금부담으로 인해 운영에 있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소속노조의 노동조합비로 운영되는 상급단체 역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레 노동조합 전체의 무력화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전체 노조전임자 임금이 노동조합비보다 많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노조의 약화는 피할 수 없다. 이런 정황들을 보더라도 정권은 겉으로는 법과질서 노조의 자율성을 말하지만 노조에 경제적 압박을 가하여 활동을 축소하고 약화시키겠다는 것이 속셈임을 보여주고 있다.

- 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시행될 타임오프제는 노조전임자의 업무시간에 있어 노조활동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얼핏 보면 전임자임금이 금지되는 와중에 전임자의 임금지급이 가능한 활동시간을 보장해줌으로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타임오프제는 전임자의 ‘기업의 노무관리를 대행하는 활동’ 에 있어서만 인정되며 전임자의 노조 교육 및 정치활동을 배제하고 있다. 이는 노조전임자의 역할을 노무관리수준으로 제약하고 있어 전임자임금만 금지되었을 현행법보다 더 후퇴한 것이다. 수많은 워크샵에서도 타임오프제가 노조의 자율성을 훼손할 치명적인 제도임이 지적되었다. 게다가 개악안이 통과한 것도 모자라 시행령 예고안에는 노조전임자수 제한규정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는 전임자의 활동자체와 그 숫자를 법적으로 규제하여 노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정권과 여당의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복수노조 자체는 노조결성의 자유라는 차원에서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 권리다. 군사정권 하에서는 민주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법적으로 단일노조를 강제되어왔다. 민주화이후 노동계는 복수노조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권과 사측은 이를 노조 전임자임금지급 문제와 연동시켜 노사 간 타협과 흥정거리로 전락시켜왔다. 13년 동안 이를 유예시키며 버텨온 정권은 복수노조 허용시기가 가까워 오자 이를 무력화 시키고자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복수노조가 있어도 교섭권을 한 창구로 만드는 교섭창구 단일화는 교섭권을 두고 노노간 싸움을 야기하여 실질적으로 복수노조를 허용치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자율적 단일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과는 달리 노조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노조 간 경쟁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단일화 실패 시 조합원 수 산정 시점까지 약 1달의 여유동안 사측은 언제든 어용노조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조항까지 담고 있어 노조탄압을 부추기고 있다. 현안대로 시행될 시 노조 간의 이해가 상충될 때 힘과 규모가 약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 여성과 같은 소수노조의 발언권 자체가 소멸될 위험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창구단일화는 노사 간 교섭에 노조의 참여를 막고 있어 노동3권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에 다름없다. 이번 개악안에 의해 복수노조허용은 그 실질적 효과를 잃게 될 수밖에 없으며 오히려 노동자들 간의 경쟁, 대립과 어용노조의 난립으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2. 현 정권의 노골적인 노조 말살정책

 비단 이번 날치기뿐만이 아니다. 정권은 작년 통합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자 정치활동을 벌이는 노조에 가입했기 때문에 공무원노조를 불법이라 규정하였다. 이후 노동조합설립을 반려하였으며 사무실압수수색/폐쇄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노조를 탄압하였다. 철도파업에서도 다를 바는 없었다. 공사의 일방적인 협약에 맞서 철도노조가 파업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준법투쟁이었다. 하지만 정권은  공공부분 선진화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적 파업이기 때문에 이를 불법파업으로 규정하였다. 여론과 대통령은 철도파업을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한 이기적인 불법파업이라며 철도노조를 몰아세웠다. 공무원, 철도의 사례에서 보여주듯이 공공부분선진화 노조의 파업을 공권력으로 탄압하는 것을 넘어 노조자체를 와해시키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자신들의 국가정책에 적극적인 방해요소가 될 수 있는 민주노조자체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 전태일의 분신부터 시작된 노동운동자체를 사회적 악으로 규정하고 파업과 같은 활동부분의 통제를 넘어 노조자체를 와해시키려 하는 현 정권의 탄압은 더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번 신년연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동자들이 참고 노력하면 경제위기가 해결되고 좋은날이 온다며 ‘일로영일’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은 지난 97년 IMF당시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IMF 고통분담 속에서 기업과 주주들은 민중들의 고통위에 살아남았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노동권의 전반적인 후퇴와 전 국민의 빈곤화, 실업대란이었다. 정권은 지난 97년IMF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이익보장을 위해 민주노조의 투쟁을 말살하고 민중들에게 고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97년의 파괴된 서민경제가 회복되지 않은 만큼 민중들의 삶은 더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민중들의 불만 관리는 정권의 최우선 목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기만적인 서민정책과 함께 더 강도 높은 노조말살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3. 노조가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만드는 것이며 국가는 노조의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의무를 지켰던 정권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전태일의 분신 이후 본격화된 노동운동과 민중들의 투쟁은 항상 정권의 모진 탄압을 받아 왔다. 자본과 정권의 힘 앞에 미약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노동이 보장되기 위해선 연대와 단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연대와 단결을 모아내는 노동자들의 공간이 바로 노조였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은 좋아졌다고 이정도면 된 것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정권은 시기별로 파견법, 비정규직보호법, 노조법개정안 등 계속해서 노조와 노동운동을 탄압해왔다. 이는 작년 말부터 더욱 심화되어 이젠 노골적으로 노조를 말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의 시작이 노동권의 시작이었듯이 노동권에 대한 말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노동자들의 파업은 단순히 그들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넘어 이 사회 전체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인 것이다.

4. 연대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우리에게 노동권이라는 말은 아직도 어색한 말이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에서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일 수도 없다. 하지만 정권과 여론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을 집단이기주의, 불법폭력행위로 몰아가면서 자신들의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을 사회저해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이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노동권을 빼앗기고 있으며 우리의 노동권을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다. 850만 명이 비정규직인 사회, 경제위기속에서 기업의 이윤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부터 해고되는 사회에서 정부의 反노동정책에 맞선 노조의 투쟁은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권의 노조공격은 노동권 일반에 대한 공격이며 이에 맞선 노조의 투쟁은 이 땅 노동권의 최후 보루이다. 정권의 탄압이 완성될 경우 우리의 노동은 더 이상 권리가 아닌 고역으로 전락 될 수밖에 없다. 시작부터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2010년, 우리의 내일은 어둡기만 하다. 하지만 넋 놓고 구경하고 있다간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생존조건에도 미달하는 열악한 저질의 일자리 일수 밖에 없다. 돌아오는 7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누군가의 권리가 아닌 우리 모두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노동권의 최후보루인 노동조합을 지키는 싸움에 우리 모두 함께하자!!!


Posted by 행진

2010/01/15 01:36 2010/01/15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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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치러도
용산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355일 만이다. 삶의 터전을 떠날 수 없어 망루에 올랐지만 살아서 내려올 수 없었던 그 철거민들의 장례를 치르는데 꼬박 일 년이 걸렸다. 언제나 회피하려고만 했던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용산참사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한 채 외로움 싸움을 벌이다 산화한 고인들의 장례를 늦게나마 치를 수 있게 된 건 분명 다행인 일이다. 냉동고에 있는 아버지, 남편의 주검을 곁에 두고 장례식장에서 일 년을 지낸 유가족의 고통도 조금은 덜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용산참사는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내달리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주거권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던 뉴타운/재개발의 문제를 고발하는 대가는 결코 적지 않았다. 정부의 거듭된 탄압을 견디면서도 이 문제의 해결을 바란 양심 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총리의 불만족스런 유감 표명을 끌어내는 일조차 난망했을 것이다. 이렇듯 용산 문제가 다른 궤도에 접어든 데에는 많은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의 힘이 컸다. 다만 서울시가 연말에 갑자기 태도를 달리하며 협상을 요구한 일은 어딘지 미심쩍다. 일 년 가까이 아무런 진전도 없었던 데서 볼 수 있듯 용산참사를 망각시키려는 정부의 의지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서울시와 정부의 태도 이면에 숨겨진 계산법은 무엇일까.


선거를 앞둔 서울시의 이미지 관리

서울시와 용산범대위는 작년 수차례 대화를 진행했지만 번번이 정부 사과 부분에서 막혔다. 사과 얘기가 나올 때마다 서울시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며 문제를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용산참사는 돈 없는 사람들을 내쫒으면서 도시를 '디자인'하는 정부가 빚어낸 학살이기 때문에, 정부에게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서울시의 퇴짜로 대화는 번번이 결렬되었고, 그 동안에도 용산과 관련된 기자회견․캠페인․문화제는 불법으로 간주되어 참가자들이 연행당하는 등 정부의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연말이 되자 서울시는 갑자기 용산범대위와 물밑 접촉을 하며 대화 재개를 요구했다.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서울시의 '협조적'인 자세는 정부가 그토록 기피하려 애쓰던 책임 인정의 문제를 이끌어냈다. 갑자기 진행된 대화에서 일 년을 두고 싸웠던 핵심 사안 중 하나가 합의된 것이다. 어딘가 변한 것처럼 보이는 서울시의 달라진 태도는 올해 그들이 생각하는 '중요한 일정'과 관련이 있다. 6월에 예정된 지방 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경쟁자들의 상호견제가 벌써부터 뜨거워지는 가운데 현 서울시장인 오세훈의 마음은 조급하다. 만약 용산참사가 해를 넘겨 올해까지 사회적으로 쟁점화 된다면, 쟁쟁한 라이벌과의 선거 경쟁에서 오세훈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장례를 치른 것을 이유로 용산 문제가 더 이상 불거지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서울시가 도움을 주려 노력했기 때문에 고인의 장례나마 치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일관되게 용산 문제를 억압해왔던 서울시는 정부 사과를 제외한 다른 핵심 쟁점을 오히려 무마시키면서 자신이 해결에 앞장섰다는 거짓말로 추락한 이미지를 개선시키려 한다. 오세훈과 서울시가 진심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면 일 년 동안의 숱한 탄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번 협상으로 유가족에게 마치 자선사업이라도 한 것처럼 광고하는 서울시의 의도는 지방선거 재선을 위한 이미지 만들기에 다름 아니다. 장례 하루 전 처음으로 빈소를 찾아가 유족들에게 "유사한 사례가 발생되지 않도록 …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한 오세훈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살인 재개발은 계속 된다

핵심 쟁점이었던 정부의 사과는 받아냈지만 용산범대위가 요구한 다른 문제들의 해결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용산 범대위는 △대통령 사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 △명예 회복 및 정신적, 물질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 △재개발 관련 법제도 개선 △전철연과 범대위에 대한 공안 탄압 중단 등을 요구했다. 대통령이 아닌, 그것도 참사가 일어날 당시에 임기가 아니었던 총리의 사과가 정부의 완전한 책임을 공표했다고 보긴 어렵다. 더욱이 '떼잡이', '도심 테러리스트' 운운하며 구속한 용산의 철거민들에게 징역 *년의 중형을 선고하는 등 철거민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재개발 법안(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 11군데 개정하긴 했지만 보상을 조금 늘리거나 집행력이 없는 분쟁 조정 기구를 세우는 등 실효성이 없고 형식만 갖춘 것이라며 전문가들에게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 2, 제 3의 용산참사를 불러올 '살인 재개발'이 지금도 버젓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과 올해 주요 건설사들이 재개발하며 분양하는 지역만 봐도 서초구, 동대문구 제기동/답십리, 옥수, 동작구 흑석동, 성동구 금호동, 마포구 아현동 등으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여기에 서울시가 5년 이후를 보며 계획하는 재개발 지구까지 포함한다면 사실상 도시 전체에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용산이 분명하게 보여주었듯이 개발을 통해 이득을 얻는 자, 그리고 얻어맞고 쫓겨나도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개발이익을 둘러싼 가진 자들의 동맹은 삼성물산․대림건설․포스코 같은 자본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직접 개발에 투자하거나 승인/감독하며 계획을 세우는 지자체, 용역깡패의 불법적 행위를 묵인하고 동조하는 경찰, 사법적으로 이 모든 과정을 비호하는 검찰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포함한다. 있던 곳에서 묵묵히 삶을 일궈온 사람들을 내몰고 세워진 휘황찬란한 건물에 그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돈이 없어 살던 곳을 잃고, 다시 형편에 맞는 집을 찾아 헤매다 어딘가 정착할 그곳도 결국은 재개발이다. 주거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면,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을 위한 개발인가?

4일에 있었던 대통령의 신년연설은 “잘 될 것”이라는 자화자찬과 추상적 의지만 가득했다. 그가 이야기 한 ‘일로영일(一勞永逸, 지금의 노고를 통해 오래 안락을 누린다)’이란 말에는 우리가 먼 훗날엔 마치 안락을 누릴 수 있을 것처럼 믿게 만드는 환각효과가 있다. 그리고 기약할 수 없는 미래를 담보로 현실의 고통을 정당화한다. 지금도 경제 위기 하에서 대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노동자 서민들은 실업과 구조조정, 실질임금 하락, 복지예산 감축 등으로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 고생하는 사람과 안락을 누리는 사람은 서로 일치되지 않는다. 서울시가 이야기하는 재개발 담론은 집을 빼앗기는 사람과 그럼으로써 이익을 얻는 자를 만드는 구조를 은폐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연설과 닮았다.
장례를 치른 이후 건설자본과 서울시는 그 동안 중단된 용산 재개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보수 언론에서는 철거민들의 보상 문제로 몰아가지만, 용산이 제기하는 것은 철거 당사자나 보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용산참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답게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묻는 것과 같다. 우리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권리들을 보장받고 있는가. “올 부동산투자 이렇게 하세요”(2010.01.01, 머니투데이), “한강변 재개발․재건축 최고 블루칩”(2009.12.31, 해럴드경제) 같은 기사를 보며 돈 벌 궁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집은 곧 자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은 곧 생활이며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는 보편적인 권리로서 주거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용산참사는 보상금을 둘러싼 철거민들만의 문제로 남고, 집은 사는(Buy) 것이 된다. 보상금이 합의 된 지금, 정부와 개발사들은 용산 문제가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용산범대위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장례를 치렀어도 용산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인들은 이제 없지만, 자본을 위한 재개발은 없어지지 않았다. 2010년에도 멈추지 않을 살인 재개발에 맞서,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 나가자!!



Posted by 행진

2010/01/15 01:14 2010/01/15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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