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얼마 전 그리스에서 온 소식이 신문경제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나타나는 이 ‘위기’는 유럽을 포함한 모두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총리부터 그리스의 국민들까지,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앞으로의 세계경제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기에 세계는 그리스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이미 그리스에서는 위기 비용을 뒤집어 써야 할 노동자들이 생존을 건 총파업을 시작했다. 3월 3일, 그리스 정부의 재정긴축안 발표에 따른 노동자들의 봉기이다. △부가가치세 인상(19%→21%) △공무원의 특별보너스 30% 삭감 및 복지수당 삭감폭 확대(10%→12%) △2010년 연금 동결 △유류세·담뱃세·주류세 추가 인상 등을 담은 추가 긴축안이 발표된 이후, 각 50만명과 200만명을 조합원으로 둔 그리스 공공노조연맹(ADEDY)과 노동자총연맹(GSEE) 등 양대 노총은 정부의 재정 긴축안에 반대하며 총파업에 나섰다. 아테네의 시내버스, 전차, 지하철, 교외철도 등 대중교통은 24시간 멈추었고, 교사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병원 역시 비상근무 체제로 운영됐고, 중앙·지방정부의 대민 서비스 업무도 오후부터 중단됐다. 그리스 인구 5명 중 1명이 일손을 멈추었다. 위기를 해결한다며 긴축재정을 하려는 그리스 정부의 모습에 최고 수위의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파업, 그리고 이러한 파업의 시초인 그리스 위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그리고 이 위기가 내포하고 있는 함의는 어떤 것이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인가?
그리스 위기의 시작
유럽 내에서의 경제통합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일 때, 그리스는 유럽의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 무리한 과정을 밟으면서 유로존에 합류했다. 국가 안의 재정적자와 부채의 규모를 숨기면서 단일화폐동맹을 맺기 위해 투기 세력들과의 연합을 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리스는 2001년 100억달러의 달러 및 엔화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채무를 졌는데, 이 채무는 국가부채로 잡히지 않았다. 그리스가 들어온 원금 100억달러로 골드만삭스와 통화스왑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는 약 10억 달러의 이익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만삭스는 이 계약으로 그리스 정부로부터 3억 달러나 받았다고 계약에 정통한 은행가들이 전했다. 그리스 정부는 골드만삭스와 같은 국제 금융회사의 도움을 받아 첨단 금융상품과 회계기법으로 국가 장부와 통계를 조작하면서 재정적자나 공공부채의 규모를 속이고 유로존에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로존의 ‘환상’을 쫒아 유로단일통화권에 가입함으로 인해 그리스는 국가 차원의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단일통화인 유로화에 매여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고작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높이는 일 뿐이다.
이러한 와중에 골드만삭스의 주도로 파생상품 전문가들이 그리스 사태를 활용해 돈을 버는 상황도 생겨났다. 상호 정보교환 등으로 그리스 경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예측한 그들은 2008년 이후 그리스 국채에 대한 CDS(대표적인 신용파생상품인 신용부도 스왑. 투자 상품의 부도 시 손실 보상을 받기 위해 지급하는 일종의 보험료)를 엄청나게 사들였다. 그리스 국채 CDS는 당시만 해도 0.2%에 불과한 헐값이었는데, 그리스 위기가 불거지면서 CDS를 매입하려는 채권자들이 폭증하여 CDS는 3%에 다다랐다. 한편으로는 CDS를 고가에 팔고 한편으로는 헐값에 쏟아지는 국채를 매입하는 전략으로 돈방석에 앉은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담합을 통해 보험 성격의 CDS를 투기적 거래에 활용하여 그리스의 위기를 더욱더 증폭시킨 사례이다.
<CDS(신용부도스와프(Credit Default Swap))이란, 국가나 기업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채권을 발행하면 투자자들이 채권의 부도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매입하는 보험증서라고 보면 된다. CDS를 판매한 금융회사들은 수수료를 받지만 부도가 발생할 경우 손실을 보전해줘야 한다. 거래되는 CDS의 프리미엄(가산금리)은 국가와 기업의 부도 리스크를 반영하는 신용등급과 동일하게 인식된다. 자세한 것은 전국학생행진 일반자료실『2009 경제위기대응 자료집』을 참고하시길.>
현재 그리스 정부는 긴축재정과 동시에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채발행을 실시하고 있다. 해외 금융기관들이 선뜻 그리스 국채를 매입하게 하기 위하여 3월 4일, (독일 국채금리보다 무려 3% 높은) 6~7%의 높은 금리에 50억 유로 국채를 발행하였다. 그리스 정부는 그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기존 부채의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채가 또다시 ‘투기’의 위험을 불러오고 있는데, 이러한 위험성에 그리스 정부는 국채입찰 당시 '헤지펀드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운용사, 연기금, 생명보험사 등의 기관투자자들은 국채를 장기 보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헤지펀드들은 단기 차익을 노리는 경우가 많아 채권 가격의 급격한 변동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최근 헤지펀드들은 그리스 재정 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키웠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한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리스 정부가 헤지펀드 투자 금지령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자태변환하며 이익을 내려는 투기세력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헤지펀드 투자금지만으로는 ‘투기’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으며, 이는 위기를 전가 받는 민중들에 대한 기만일 뿐이다.
문제는 금융세계화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공공부문의 비대화’를 그리스 위기의 원인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 사회보장비의 과다한 지출이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복지비용으로 지출되는 비용을 줄여 국가 재정을 확충하면 경제가 다시 되살아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경제위기는 국가의 재정구조에만 의지하지 않는다. 경제위기는 시장의 자율이 중시되는 신자유주의 국가에서도, 사회보장 망이 잘 구축되어있는 국가에서도 일어난다. 공공복지의 확대가 한 국가를 위기로 몰고 갔다는 분석은 (복지를 인기몰이에 활용한다는)포퓰리즘이라는 오명을 앞세운 보수진영의 책임전가일 뿐이다. 오히려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축소시키고 시장의 자율성을 확대시켜 ‘투기’가 활성화될 때,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도미노처럼 경제위기가 몰아친다. 기초적인 생활조건의 하나인 ‘집’이 없어 빚을 내어 집을 구해야만 했던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파산당하고 금융시장에서의 혼란이 최고로 가중되었던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대표적인 예이다.
더불어 이러한 시각 하에 그리스위기 해결책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 역시 위험한 논리이다. 공기업을 팔아서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득으로 국가위기를 해결해야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공공부문이 책임졌던 민중의 기본권을 포기하는 것이며 더욱더 철저한 자본의 논리로 대다수 민중의 삶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이는 온전히 ‘자본’을 살리기 위한 해결책으로만 가능할 뿐, 전 민중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대안을 향한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지난 달 말, 그리스가 지구 어느 편에 붙어있는지 모른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또 한 번 누리꾼들이 조소를 흘렸다. 유럽발 금융위기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세계는 하나다. 그리스가 들어보기는 했지만 지구상 어디 붙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문제 생겨도 우리 주가가 떨어진다"면서 "외국이 도와주고 싶어도 노조가 반대하니 나라는 어려워지고, 이것 때문에 (우리) 주가가 떨어진다"며 "우리나라는 직접 관계가 없다. 금융 거래도 없고 상품 파는 것 얼마 없다. 그래도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하면서 세계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렇다. 금융세계화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위기’를 조성하고, 이러한 ‘위기’를 담보로 자신의 이윤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복되는 위기와 위기의 지연 속에 제 2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제 3의 그리스 위기가 우후죽순으로 폭발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다.
현재 그리스에서는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고통감내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유포되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듯이 그리스의 자본 역시 ‘노동조합의 투쟁’이 경제위기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를 불러온 것은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이 아니라 자본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리스의 젊은 그래픽 디자이너인 조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5백 유로[약80만원]세대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 정도밖에 벌지 못합니다. 우리는 먹고살기도 빠듯합니다. 그런데 이제 정부는 우리가 가져갈 돈을 더 줄이려 합니다. 유럽연합은 우리한테 경제 위기의 대가를 지불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소리치고 있다.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마라! 부자들이 위기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라!”
지금 그리스에서 노동자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투쟁’은 바로 새로운 사회를 향한 움직임이다. 자본이 만들어 놓은 위기와 그것의 책임전가를 거부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노동자 스스로가 제시하고 실천하고 있다. 투기자본의 이윤추구에 노동자가 희생될 수 없다. 그리스 노동자민중이 소리치고 있듯이, 우리도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그들의 싸움에 지지의 목소리를 보내자.
“노동자에게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
Posted by 행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