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사건’과 ‘여성’에 대한 폭력

 

○ '조두순 사건'을 바라보며
 얼마 전 일어난, '조두순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포털 싸이트 메인 뉴스에는 매일 한두 개씩 성폭력관련 뉴스가 자리하였고, 사람들은 마치 이전에는 성폭력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분노하고, 두려워하였다. 다음 아고라 등에서는 한 아이의 인생을 망친 조두순이 12년 징역형을 받는 것은 너무 '가벼운' 형벌임을 주장하며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둘러싼 높은 사회적 관심과는 달리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말로 성폭력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토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잣대와 판단의 기준
 이 사건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된 데에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잔혹함과 극단적 폭력이었다는 점과 그 폭력의 피해자가 아동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단지 ‘아동’에 대한 성폭력으로 바라볼 경우, 사회전반에 깔려있는 여성의 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에 눈 감는 것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성폭력’은 한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는 극단적 폭력으로 인식되지 못했으며, 특히 그것이 성인 여성에 대한 폭력인 경우 여성이 술을 마셨다든가, 짧은 치마를 입었다든가, 심지어 목숨 걸고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조차 ‘성폭력’을 당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인 양 이야기되어왔다. ‘얼마나 끔찍한 일을 당했는가’를 증명하지 않고는 성폭력 ‘피해자’임을 이야기하기 어렵기도 하다. 물론, 가해자에 비해 훨씬 어리고 저항 능력이 없는 아이에게 폭력을 가한 사건이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성폭력이라는 사건에 대한 사회적 잣대와 판단의 기준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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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이 발생하는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성폭력은 ‘싸이코패스’가 저지르는 행위이며, 그런 ‘싸이코패스’들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통해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인식 역시 문제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폭력은 '싸이코'들이 저지르는 '특수한' 범죄가 아니다. 성폭력 가해자의 83%가 가족 혹은 친지, 이웃 등의 지인이라는 통계(한국성폭력상담소, 2006년 상담통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성폭력이라는 극단적 폭력은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가하는 '일상적'인 폭력이기도 한 것이다.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가학적 내용의 포르노나 일상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만드는 미디어가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고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성폭력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된다는 것을 간과하고서는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결코 문제해결의 방안일 수 없다.

○ 노동자운동이 여성억압에 맞선 투쟁에 나서야 한다.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은 남한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노동자운동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는 특히 올해 초 민주노총 성폭력사건과 이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은 ‘부도덕한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페미니즘을 몇몇 여성들의 처우 개선 요구로만 받아들였던 운동사회 내 ‘여성권’에 대한 공백이 이 사건의 진짜 이유다.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모든 인간의 '권리'라면, 여성들에 대한 구조적 폭력에 저항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몫일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9/11/09 15:15 2009/11/0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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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폭력에 대한 짧은 생각

전국학생행진(건) 회원 M
 

1. 글을 쓰며


나는 전국학생행진 회원이다. 어떤 계기로 인해 뉴스레터 편집국 측으로부터 ‘폭력’에 대한 글 청탁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글 형식을 어떻게 할지 조금 난감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참 고민해본 후 나서, 나는 “나 개인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편집국 측에 양해를 구했다. 이 주제에 대해서 학생행진 차원에서 토론이 이루어진 적도 없거니와, ‘폭력’이라는 것은 여러 토론거리 중에서도 대단히 ‘까칠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 개인의 입장’을 뉴스레터라는 매체를 빌려 ‘행진의 입장’인 양 일반화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글의 위상을 한 단계 낮추더라도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번 선봉대에서도 ‘폭력투쟁’에 대한 논의가 잠깐 오고갔었는데, 앞으로 학생행진에서 이에 대한 토론을 많이 했으면 한다. 물론 우리의 곤란함이 몇 번의 토론을 통해 일순간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 곤란함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함께 토론해보면서 그것을 ‘언어화’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각종 오해와 편견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고, 생산적인 소통과 정치의 가능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다.

2. 소위 '미시적 폭력'에 대한 나의 생각


‘폭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래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국가폭력’이다. 노무현 정권의 무자비한 평택 침탈, 하중근 열사의 죽음… 우리는 폭력의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또 ‘폭력’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얼마간 논의되었던 ‘미시권력’ 혹은 ‘미시파시즘’이라는 화두이다. 물론 캠퍼스 별로 차이가 좀 있다. 어떤 캠퍼스에서는 이 같은 논의가 기층에서 하루를 멀다하고 계속 이야기되어왔어며, 또 어떤 곳에서는 이것들이 별로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 내가 활동해온 캠퍼스에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편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그 같은 논의가 그닥 생산적인 모습을 띤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때는 차라리 이 같은 것에 대한 관심을 뚝 끊고 그저 하루하루 묵묵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국가폭력’의 경우는 사실 너무나 뚜렷한 분노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당위적인 말 이외에는 할 말이 별로 없다.(물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이에 반해 ‘미시권력’과 ‘미시파시즘’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말이 좀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것이 뭔지 잘 감이 안 잡히는 분들은, 당대비평의 『우리 안의 파시즘』과 같은 책들을 짬이 날 때 몇 장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당대비평은 1990년대 말, ‘우리 안의 파시즘’ 논의를 학계에 공개적으로 제안하였다.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이름 자체가 보여주듯이, 이것의 관심사는 ‘우리의 의식 심층에 내면화된 일상적 파시즘의 위험성’이다. 이 일상적 파시즘의 위험성은 지금도 다양한 곳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반공주의, 민족주의, 규율과 복종을 내면화시키는 학교교육, 가부장주의, 그리고 많은 구성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학생운동 문화까지… 이러한 주장을 하는 논자들은 이것들이 모두 과거 군사독재에 따른 긴 어둠의 터널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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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진

2006/09/07 08:16 2006/09/0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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