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동향1]저들만의 경제성장 정책,
사유화/선진화 방안




■ 공공부문 사유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는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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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촛불이 사그라지길 기다렸다는 듯 지난 8월 11일, 1차 공기업선진화방안 발표를 시작으로 추석 이후 3차 방안 발표에 이르기까지 원래 계획대로 '공공부문 사유화 계획'을 착착 추진하고 있다. 이는 불과 몇 달 전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가 ‘물·전기·가스·의료보험’ 4대 분야 민영화는 없다고 말했던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방향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기업 선진화방안의 흐름을 봤을 때, 당시 대통령의 발언은 촛불을 잠재우기 위한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애초 대선 시기부터, 그리고 대통령직 인수위 시기에도 이명박 정권은 경제성장의 해법 중 하나로 정부예산을 20조 절감하겠다는 의지를 굳게 내비쳤다. 이 20조라는 규모의 예산 절감은 정권이 주장하듯 그저 정부 부문의 운영 효율화만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이는 필연적으로 공공부문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과 공공서비스의 축소를 불러올 것이다. 노무현 정권 시기에 진행된 이른바 ‘소프트웨어 구조조정’은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의 운영에 시장 원리를 적용하는 데에 집중한 반면, 이명박 정권은 그에 기반을 두어 ‘하드웨어 구조조정’, 즉 직접적인 예산, 인력, 조직의 축소를 감행할 것이다.

지난 8월 11일 발표된 1단계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의 핵심은 산업은행, 기업은행 및 자회사의 민영화와 공적 자금 투입기업의 매각 그리고 주택공사와 토지공사의 통합과 자회사 매각 등이다. 이에 대해 재계 등에서는 '강도와 범위가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고 더 광범위한 민영화를 주문해왔다. 하지만 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과 공적자금 투입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민영화 계획은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재벌들에 대한 특혜지원, 부동산 관련 공기업의 통합과 대형화 및 관련 자회사의 민영화를 통해 부동산투기의 폭을 넓혀줄 것이다. 금융기관의 민영화 중 첫 대상으로 거론된 산업은행은 총자산이 145조원으로 국내은행 중에 최고로 큰 규모의 자산인데, 이를 매수할 수 있는 것은 해외의 투기자본이 아니면 국내재벌들 뿐이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금융기관의 민영화에 앞서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막고 있는 금산분리(금융의 특성(금융기관은 자기자본 비율이 작고 대부분 고객·채권자의 자금으로 영업)을 감안하여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결합하는 것을 제한하는 원칙)를 완화 내지 폐지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순자산액의 40%를 초과해 국내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 제도)를 완화하여 국내외 독점재벌들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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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발표된 1,2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서 대상이 된 기업은 319개 검토대상 기관 중 79개 기관이 해당하고 , 민영화, 즉 팔려나가는 대상은 28개이다. 대표적으로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 같은 금융공기업이 있고, 공적자금이 투여된 구조조정기업, 대우해양조선이나 현대건설 같은 14개 기업이 있다. 통합을 계획하고 있는 공기업은 31개→14개, 아예 폐지되는 기관 3개, 기능조정 기관 19개로 발표가 났다. 9월 중으로 발표될 3차 추진계획에는 20여 개의 기관이 포함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통합, 전력과 발전 부문에 대한 구조개편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여 파장이 클 것이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공부문 사유화 계획 중 우선적으로 살펴보아야 부분은 공기업의 사유화와 매각이다. 현재 국내 공기업 수는 총 102개인데 이 중 시장형 혹은 (준)시장형으로 분류되는 24개의 공기업 - 한전, 가스공사, 철도공사, 지역난방공사, 인천공항공사 등 - 의 대부분이 그 사유화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 정권이 이처럼 경제를 살리기 위한 효율성 제고의 방안으로 에너지 공기업, 부동산 공기업, 교통 공기업을 중심으로 한 공기업들의 매각을 추진하는 이면에는 한국경제의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의 안정적인 투자처가 절실하다는 현실이 있다. 또한, 경영권까지 매각이 되지 않더라도 지역난방공사 등은 이미 증시상장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기업의 증시상장이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공공요금이 인상될 것은 사실 뻔한 일이다.

한편 정부는 이러한 매각, 축소, 혹은 통폐합에 더불어 공기업의 비효율적인 경영을 개선하고 대국민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경영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를 위해 도입될 시장 원리는 결국 대대적인 내부 구조조정을 뜻할 뿐이다. 민간 기업이 공기업을 인수하도록 유인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정리해고 등의 구조조정을 감행할 것이고, 특히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우선적인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당연히 감축된 인원에 대한 신규채용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남아 있는 인원 역시도 민간위탁, 외주화, 자회사 설립 등의 방식으로 간접고용의 형태로 돌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정권이 언급하고 있는 ‘최저가낙찰제’는 이러한 고용불안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빠르게 공기업 사유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이러한 공기업 사유화 방안이 경제성장의 해법이 아닐뿐더러 투기자본에게는 이득을 가져다주고 대부분의 서민들에게는 공공요금 인상과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댈 것임을, 그로 인해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시민들이 사유화를 반대하는 촛불을 들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촛불이 제기했던 사유화 반대의 움직임을 이어나갈 투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사회공공성 투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부터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투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찾아보자. 그리고 지금까지 정부의 체계적인 공공부문 사유화에 맞선 공공성 투쟁이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살펴보면서, 투쟁의 한계를 짚어보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우리의 전략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 사회공공성 투쟁이란 무엇일까?

한국사회에서 '공공성'의 의미는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된 혹은 다수를 위해 존재하는 또한 개인적인 영역이 아닌 집합적인 영역 등 매우 다양하다. 이렇듯 공공성의 의미가 애매모호한 이유는 그 의미가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과 권력관계에 의해서 그 의미가 규정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공공성의 의미는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인 속성으로서 공적 영역의 속성, 또는 특정한 집단에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공공영역을 제공하는 주체는 국가이며, 국가가 어느 정도 중립적인 외관을 띠면서 국민들의 일반이익을 대변한다고 불리는 부문을 공공부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지금의 공기업민영화에 대한 분노도 바로 국가가 이러한 역할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만으로는 '왜 국가는 공공부문을 만들었는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공부문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계적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공부문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 '공공성'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 간단하게 살펴보자.

쉬잔느 드 브뤼노프(Suzanne de Brunhoff)는 '공공부문'이 형성되는 이유를 자본에게 필수적인 (그러나 자본이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특수한 상품으로서 '화폐'와 '노동력'의 (재)생산과 관리가 국가적 차원에서 요구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전경제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국가의 개입이 시장경제의 발전에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 자체가 국가의 개입을 적극 요청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그 자체로 자본주의의 기능 작용의 핵심에 개입하며 이로써 억압적, 이데올로기적 역할과 구별되는 '경제적 역할'을 갖는다. 브뤼노프는 이러한 국가의 역할을 가리켜 '경제적 국가장치'라 불렀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공부문'이란 '국가/경제와 분리된 독자적인 영역'일 수 없으며, 경제영역의 지배적 생산관계가 직간접적으로 투영되어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공공부문'은 자본축적에 기여하는 국가장치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물/에너지/의료/교육 등과 같이 인간으로써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장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가 사람을 재생산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사회재생산 관련 영역에서의 공적 시스템 구축을 위한 투쟁은 가장 광범위한 투쟁으로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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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공성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 실현을 지향해야 하며, 재산권의 재구성과 소유의 사회화를 이루어가야 한다. 또한 우리의 노동이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성찰을 통해 공공부문운영에 대한 문제와 생산수단 사회화를 실현시키는 시스템 전반의 구성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민중의 통제와 자치를 통해 이룩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사회공공성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개개인의 삶을 사회 구성원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보편적 권리의 실현'이다. 하지만 국가 - 시민사회 - 경제의 도식처럼 사회의 영역을 인위적으로 가르는 담론으로 인해 그 실현이 왜곡되고 있다. 전 사회를 가로지르는 모순의 한 장(場)으로서, 공공영역을 자본의 논리에 팔아치우려는 정권에 맞서 공공영역이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도록 민중들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어떤 선험적인 정의(定意)가 아니라 우리의 실천적 활동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정치적인 담론이다.

■ 빼앗길 수 없는 민중의 권리, 사회공공성 투쟁의 쟁점들을 구체적으로 제기하자!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공공부문 사유화 정책은 필연적으로 공공성의 파괴를 동반한다. 정권은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에 발맞추어 혹은 구조조정을 불러오는,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정책들을 끊임없이 발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의료․복지 영역의 경우 일명 ‘성장 복지’ 정책으로 경제가 성장해야 복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대어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를 둘러싼 끊임없는 논쟁을 만들고, 민간보험의 활성화 등을 복지 정책이랍시고 내세우고 있다. 또한 사회복지서비스의 경우엔 ‘민간이 공급’하게 하겠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계획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등의 공기업 축소, 구조조정 계획과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이와 같은 공공성 파괴 -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흐름은 언론부문에서도 마찬가지이며 특히 연기금(국민연금)의 경우에는 펀드매니저가 기금의 운용위원이 되도록 하여 금융화의 능동적인 주체가 되도록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실행될 경우 민중은 ‘노동자’로서 일터를 잃어버리거나 불안정한 고용 형태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고, ‘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들, 위의 경우에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들을 빼앗길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공기업 사유화 전략이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격렬한 반대의 목소리들을 일정 부분 잠재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갖 규제들은 철폐되고 있으며 노동은 점점 더 불안정해져가고 있고, 선진화라는 허황된 희망 속에 삶의 권리들은 하나하나 좌절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정권의 기만적이고 교묘한 공공부문 파괴의 전략의 맞선 투쟁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우리는 공공성으로 뭉뚱그려지는 ‘사회 복지 확충’급의 요구에 우리의 투쟁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구체적인 의제들 속에서 투쟁의 매개점을 발견하여 이를 신자유주의 반대의 맥락에서 재구성함으로서 운동으로 제기하고 그를 통해 투쟁을 확장시켜야 한다.

특히 사회서비스시장화저지 같은 의제에 주목하면서 여성권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8월부터 치매/중풍 등 장기요양이 필요한 노인을 위한 장기요양보험 제도 시행을 시작했고 이에 수도권 요양시설 확충 대책 추진, 재택서비스 강화, 요양서비스 제공 인력인 요양보호사 · 간호사를 최대 7만 명 양성할 것이라고 발표하는 등 사회서비스에 관련한 다수 정책들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기간 대다수 노동운동은 ‘재생산 영역’에 대해 갖는 맹목으로 인해 오히려 비판해야할 정부의 사회서비스전략과 맥을 같이하는 대응을 하기도 하는 현실이었다. 지금까지의 사회공공성 강화 투쟁은 보육/의료 등 재생산 영역의 상당부분을 주요 의제로 삼기는 했었지만 여성들이 가족 내에서 수행해왔던 가사노동-돌봄노동은 그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사회공공성 투쟁에서 ‘가족 내에 한정되어 가시화된 적 없는 가사노동이라고 하는 것‘도 말해야한다고 포괄의제를 넓히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다. 생산과 재생산의 영역을 분리하여 재생산 영역을 가족에 할당하는 구조 하에서는 정책대안을 모색하거나 국가지원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안적인 상이 확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핵심적으로는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라는 대안적인 상을 모색하는 방안을 사회운동의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교육 역시 공공성 투쟁의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 ‘계급화-서열화를 부추기는 교육 시장화 반대‘의 내용을 분명히 하여 민중들의 교육/지식에 대한 권리를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획과 공간을 늘려가야 한다.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으로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제중 설립'문제가 있는데, 이에 대응하는 투쟁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나 에너지, 보건의료의 문제 역시 단순히 ‘사회복지 확장’이라는 인식 틀에 갇히지 않는 제기가 필요하다. 에너지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대해 ’발전량을 높이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 추가 건설‘을 하는 식(정부의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의 대응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요금 인상 반대‘를 넘어서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생산된) 안전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재화/서비스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드러낼 수 있는 투쟁을 만들어야한다.



■ 공공성 투쟁의 새로운 전략과 방향을 세우자

공공성을 파괴하는 정책은 공공부문 구조조정으로, 또 반대로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공공성 파괴로 이어지게 마련이고 결국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직접적인 구조조정의 위협과 동시에 공공서비스의 상업화로 인한 위협에 이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뿐만 아니다. 민중들은 구조조정으로 잘려나가는 노동자들을 보며 고용불안을 체감할 수밖에 없고, 직접적으로는 공공서비스의 박탈로 삶의 질이 저하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공공성 투쟁은 두 가지 모두에 대한 투쟁이 되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진영에서는 정부의 이데올로기적 공세와 시민운동의 성장에 따라 시민 - 계급의 분리가 전개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고 오히려 정부의 그러한 관리 전략에 조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공성이라는 담론을 스스로에게서 탈각시켜버렸다. 이후 운동 진영의 공공성 투쟁은 공무원의 집단이기주의적인 행동으로 매도당하기 일쑤였고, 이들을 ‘대신해서’ 공공성 담론을 대표하고 있는 시민운동은 공공성 강화를 국가부문 강화와 동일시하면서 국가 역할의 확대를 주장할 뿐이기에 진정한 민중의 권리로서의 공공성을 전혀 짚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의 위기라고 이야기하는 지금, 그리고 공공성 담론을 이미 빼앗겨버린 것 같은 지금, 공공성 투쟁은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위해 전개되어야 하는가? 이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일부 운동 진영에서 주장하는 국유화의 문제이다. 공공부문의 비자본적인 성격은 이윤 창출을 유일한 목표로 하는 민간 기업에서 담보할 수 없는 것이기에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운영해야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인데, 앞서 언급했던 공공부문의 본질을 생각해 볼 때 이는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공공부문은 국가와 자본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는 국가의 보조적인 기능에 해당했다. 현재와 같은, 자본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가 개입을 강화한다는 것은 결국 공공부문을 권리로서 사고할 수 없게 할 것이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 제기해야 할 쟁점은 실질적 통제권의 확보일 것이다. 공공부문이 국가 소유로 남고, 사회 복지와 같은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사회화가 강화된다 하더라도 공공부문이 민중의 실질적인 통제 하에 놓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국가 역할의 확대와 이데올로기적 개입의 통로가 될 뿐 공공성 강화와는 연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와 같은 소유나 사회화의 문제는 실질적인 민중 통제권의 쟁취 속에서만 그 의미를 획득한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통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결국 기술의 개발 단계에서부터 적용의 단계까지 전 과정을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고 환경 파괴를 저지하며 자본의 통제권을 축소할 수 있도록 노동자․민중이 개입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러한 민중 통제의 시스템이 구축될 경우, 노동자의 고용과 환경 파괴가 부딪히지 않는, 안전성의 확보와 장애인 이동권이 만나는, 전 민중의 삶의 질이 확장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민중 통제의 쟁취는 전 민중적인 연대 전선의 구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것은 그저 국회에 ‘진보적’ 정당이 몇 석을 차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전사회적으로 노동자․민중의 목소리가 얼마나 힘을 가지느냐의 문제이고, 이는 전 민중의 연대전선의 구축에 달려있다. 그러나 97년 이후 강화된 시민 - 계급의 분리 속에서 심지어는 노동자조차도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보다 몰계급적 시민, 즉 사교육비를 더 벌어야 하고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민간 보험을 알아보러 다니는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물론 97년 이후 세련된 방식으로 삶에 깊숙이 침투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공세의 탓이기도 하지만 노동운동이 개인의 삶을 포괄하는 진정한 ‘계급’운동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며, 이는 곧 노동운동이 구체적 삶의 양상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요원해 보이는 공공부문에서의 전사회적 연대전선의 구축은 그러나, 오히려 ‘공공부문’이기에 더욱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공공성의 파괴는 당연히도 서로 분리되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기에 소위 노동자적인 이해와 시민적인 이해는 일치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까지 지배 계급의 공세 속에 그 일치는 힘겨웠지만, 그 공세가 강력했다는 것은 동시에 그 부분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약한 고리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뜻하기도 한다. 하기에 공공부문은 이제까지 평행선을 이루어왔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만날 수 있는 접합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지배 계급의 저 세련된 ‘초계급적 시민의 이해’라는 말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노동자계급의 투쟁 과제로서 공공성을 인식하고, 동시에 그것이 ‘시민적’ 요구이기도 함을 알려내고 결합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Posted by 행진

2008/09/10 12:06 2008/09/1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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