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를 읽고

회원 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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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베스트셀러를 뉴스레터에 소개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지네요. 올해 뉴스레터에 신설된 코너인 ‘우리들의 이야기’에 다른 분들이 좀 편하게 글을 쓰셨으면 하는 생각에...ㅎㅎ 사실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본 적 없이 이 책만을 소개한다는 것이 성급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하지만, 일단 ‘남쪽으로 튀어’는 재밌고 통쾌합니다. 일상의 활동에서 지치고 가끔 푹 쉬고 싶을 때 한번쯤 읽어보면 유쾌한 활력소가 될 것 같네요. 특히나 기본적인 집회의 자유마저 허락되지 않는 요즘, 무력감이나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분이 있다면... ^^;;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이 소설은 꽤나 무거운 주제와 여러 이야기들을 매우 경쾌하고 부담 없이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고 적절한 진지함을 유지하면서 풀어갑니다. 이런 부분들은 소위 ‘대중운동’을 고민하는 우리들도 항상 고민해야 할 부분일 것 같아요.

‘남쪽으로 튀어’는 아나키스트 아버지를 둔 초등학교 6학년 지로의 특별한 성장 이야기입니다.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는 과거 부르주아 국가의 전복을 목표로 하는 혁명당인 혁공동(아시아 혁명 공산주의자 동맹)의 전설적인 행동대장으로, 현재는 프리 라이터를 자처하고 무정부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인물입니다. 국민연금 납부는 국민의 의무라는 구청 담당자에게 “그러면 난 국민을 관두지”라고 당당히 선언하고, 지로에게는 “학교 같은 거, 다니지 않아도 괜찮다”고 충고하는 속 시원한(?) 아버지이지요. 소설 전반이 이런 아버지 이치로의 투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긴 하지만, 지로의 사춘기 성장통 문제나 모두 독특한 캐릭터와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는 엄마, 누나, 동생의 이야기와 후반부의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한 온가족의 투쟁이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재미를 엮어냅니다.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든 프롤레타리아든 집단이 되면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개인단위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얏!

하지만, 단순히 재밌게만 이 소설을 읽을 수는 없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위의 대사에서 보듯이 집단과 개인의 문제에 대해서 아직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소위 말하는 현실 운동이나 우리가 하고 있는 활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개개인에게 평등하고 행복한 공간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도 쉽게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이유로 떠나가는 친구들도 많이 봤구요. --;; (물론 일본은 우리와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래서 조금 기대를 하면서 읽어갔는데, 이 소설의 결론은 결국 제목처럼 지로네 가족은 남쪽으로 도망가는 길을 택하는 걸 보면서 답답해지기도 하더군요. 어쨌든, 우리에겐 지금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있는데, 결론은 결국 남쪽으로 도망가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후반부 이리오모테섬에서의 생활 중 마을 사람들과의 매일 같은 연대(?)나 외국인 체류자 베니 와의 만남, 그리고 지역경찰도 지로의 가족을 보며 혼란을 겪는 부분에선 무언가 답이 좀 보이는 것 같기도 했어요. ‘문제해결’이라는 것이 집단적으로 가능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집단 혹은 공동체에 속한 개개인들 모두에게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간으로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야기가 너무 멀리 왔나요? ^^;;

아무튼 요즘처럼 일정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아 심신이 지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거나 혹은 튀고(?) 싶을 때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무언가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웬만한 만화책보다 재미있다는...

Posted by 행진

2007/03/20 18:43 2007/03/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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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생행진(준) 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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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연세대학생행진(준)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석이라고 해요. 같은 캠퍼스의 행진 활동을 하는 선배에게서 이번에 전국학생행진에서 빈민현장활동(아래 빈활)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한 번 가고 싶었답니다. 빈활이라고 했을 때 막연히 제가 떠올리던 이미지들은 추운 겨울과 침낭, 철거촌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이러한 막연한 이미지는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 작)을 통해서 생겼던 것들이고, 이번 겨울 빈활 과정동안 마침 그런 이미지들은 현실과 맞아 떨어졌어요. 70년대를 배경으로 했던 소설과 다를 바 없는 지금의 현실을 직면했을 때는 참으로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어요. 빈활을 진행하기 전에 빈활 오리엔테이션을 1회 했었고, 성평등 내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들과 주거권과 관련된 인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3박 4일 동안 저는 학교에서 4명의 학우들과 함께 미아 뉴타운 개발지구로 빈활을 다녀왔어요.(총 학생 참가자는 20~30명 정도였어요.) 세입자 철거 투쟁을 하고 계신 분들의 사정을 들어 보면 70년대의 삶과 2000년대의 삶이 달라진 게 거의 없는 채로, 결국 가난한 민중은 가난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알 수 있었어요. 황당하게도 남한 사회에서 집이 제일 많은 사람이 1000채가 넘는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았지요. 빈활 내내 가장 큰 화두였던 ‘신개발주의’가 어떻게 서울시라는 공간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만들어 내는지 목격할 수 있었으며, 또한 용역깡패 2~3명이서 거리를 다니는 모습을 볼 때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 전에 사실 공포라는 감정이 더 먼저 마음에 퍼졌어요. 돈 3000만원이 없어서 그리고 월세 낼 돈이 없어서 정부의 임대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한 채로 이곳에서 떠나야 할지도 모를 그들. 뉴타운 개발 후에 재정착률이 대부분 10% 대인 사실들. 그들의 생존공간을 빼앗긴다는 것 외에도 그들이 만들어온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참으로 마음 아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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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바로 '공동체'라는 것인데요. 저의 그러한 고민의 지점이 미아 철거촌 지역의 세입자들도 저처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마음과 만났을 때, 그리고 그 고민이 미아지역과 저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와 너의, 바로 우리의 고민지점이 - 혹은 해방지점이 -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짜릿한 감정이었을까요. 세입자는 철저히 무시된 채로 이루어지는 뉴타운 개발에 대해서 빈활에 함께 참여했던 민노당의 김종철 당원이 강연을 했었는데 그 분은 대안으로 개발주의의 포기가 아닌, 민중을 중심으로 둔 개발주의를 역설했어요. 물론 그에 대한 많은 반론이 있었고 순환식 개발과 재생식 개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죠. 또한 행당동에서 세입자 투쟁을 하셨던 주거권연합의 유영우씨가 강연을 하셨는데, 그 분 또한 공동체 자체에 많이 주목을 하셨고 당시 세입자 투쟁을 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해 하셨다고 역설하셨어요. 개발 지역 속의 한 지역에 100가구가 넘는 세입자들이 가건물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투쟁을 해왔고, 그렇게 세입자들이 가건물 안에서 재개발 기간 동안 공동체를 유지할 수도 있었죠. 물론 개발이 끝난 뒤에는 임대 아파트로 입주를 했고요.

진보진영 내부에서의 이성애 비장애 남성 중심주의적 가부장제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번 빈활 기간 동안 많이 집중을 기울여서 모두가 평등하게 함께 활동해 나가는 기간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어요. 여성주의 교양도 있었고, 성평등 내규도 우리가 직접 만들었으며 많은 활발한 논의가 있었어요.

이번에 우리가 빈활 갔던 지역이 미아 6지구와 미아 12지구인데 미아 6지구는 서울시가 관리처분이 되서 90% 이상의 주민들이 지역에서 살지 않더라고요. 집에서 주민이 나가는 순간 용역들이 멀쩡했던 집을 부수어 버렸기에 6지구는 실상 사람이 아닌 귀신 사는 마을이 되어버린 듯해요. 12지구는 아직 관리처분이 안 되서 여전히 세입자들과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곧 관리처분이 떨어진다는 말도 있답니다.

18일 오후엔 법외 집회를 하면서 도로를 행진했어요. 동사무소 앞에 가서도 간단한 항의 집회를 했고 삼양 사거리라는 곳에 가서 집회를 했답니다. 미아 뉴타운 지구 곳곳을 돌며 문제 상황을 적은 유인물도 나누어 드리고 마을 곳곳에서 즐겁게 구호를 외치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19일엔 학생들, 사회활동가들, 세입자 주민들이 함께 강북구청에 찾아가서 집회를 하고 부구청장 면담을 하고 왔어요. 그래서 부구청장이 사전 조사를 한 뒤에 다음 주 26일 2시에 대책을 세워서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그 때 다시 만나자고 했답니다. 면담에 들어가서 보니 뉴타운 개발을 맡은 담당 공무원들은 정말로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세입자들의 상황을 전혀 모른다며 다른 말로 돌리기만 바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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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빈활 중에 다른 지역의 세입자 철거 대책위 분들과 간담회를 가졌었는데, 그 중에 중화 2동 세입자들의 사정이 가장 안타까웠어요. 사정을 들어보니 세입자들 몰래 집주인이 기업에 집을 팔아버리고 그 집엔 세입자 두 가구가 있었는데, 이들은 정부의 이주비보조(이주비가 400만원 정도 나와요)는커녕 집주인의 보증금조차 못 돌려받은 상태에서 용역깡패들이 (고작 2가구니깐) 와서 많이 괴롭혔다고 하더라고요. 협박을 하거나 단전 단수를 해버린다거나 매일 새벽 1~2시에 공사를 한다거나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구청이나 경찰에 신고를 해도 구청이나 경찰은 절대 오지 않았다고 해요. 이미 구청과 경찰이 감싸주기 때문에 그들 용역은 아무 문제가 없었거든요. 건설기업의 사유지가 되었으니깐 오히려 세입자들이 법외활동을 하고 있는 거였죠. 그래서 밑에 집에 사시는 가구의 택시 운전을 하시는 아저씨가 건설사에 항의를 하러 갔다가 심한 인격 모독을 받고 괴로워하시다가 결국 자살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작 2가구지만 너무나도 억울한 마음에 세입자 투쟁에 나서게 되었대요.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 학생들한테 도와달라고 연대 투쟁해달라고 요청하시더라고요. 세입자 투쟁을 하는 사람들은 변호사도, 법관도, 정치인도, 경찰도,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사회적으로는 법외적 활동이라고 하시며 많은 도움, 많은 연대활동을 해주기를 바라시더라고요.

빈활에 참여 했던 사람들과 함께 미아 6지구와 12지구의 세입자 가구 곳곳에서 지지방문을 해나가면서 지속적인 연대활동을 펼치기로 결의했어요. 클럽도 만들었는데 ‘미아지킴이’라는 이쁜 이름이지요. 후속 모임은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후속 모임을 지속적으로 미아 지역에서 이어나가기로 했어요. 여력이 된다면 주민 컴퓨터 학교나 공부방을 만들고 싶다는 의견도 있으나 사람들이 부족해 쉽지 않아 보여요.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학우들과 함께 미아로 가고 싶어요.

Posted by 행진

2007/03/20 18:33 2007/03/2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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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백승욱 교수 기획강연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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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일, 2일, 4일, 5일 이렇게 나흘간 세종대에서 열렸던 기획강연이 성황리에 끝났다. 세종대 사회과학연구소가 주관하고, 전국학생행진과 사회진보연대가 공동주최했던 [세계체계 분석과 역사적 자본주의]에 연 250명의 인원이 참석했다. 장소 준비 등 강연 준비 과정에서 세종대 분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세종대 사회과학연구소 동지들께 다시 한 번 격려의 박수를 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시간을 선뜻 쪼개주신 백승욱 교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번 경험은 앞으로 학회학술 활동을 준비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흘에 걸쳐 15시간이 넘게 진행되는 ‘장시간 강연’에 과연 얼마만큼의 사람이 올지, 행여나 역량에 비해 욕심이 앞선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를 확인하면서, ‘자기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욕구와 의지를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설문을 수합해 본 결과, “강연 내용이 앞으로의 기층 세미나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내용이 조금 어려웠지만, 책을 미리 읽는다면 그리 알아듣기 어렵진 않았다. 오히려 성과가 남기 위해선 이 정도 수준의 학습은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많았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이 많았다. 매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징후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운동의 위기를 넘어 대중운동의 보편적인 정형을 다시금 만드는데 있어, ‘지식’과 ‘교육’은 결코 빠질 수 없는 화두이다. ‘지식을 매개로 하는 대중운동’이라는 표현은 사실 말이 안 되는 표현일지 모른다. 왜냐면 ‘지식을 매개로 하지 않은 대중운동’이라는 것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존재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그 어떤 대중운동도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포함하지 않고서는 충분히 비판적, 혁명적일 수 없었다. 지식(그리고 문화)에 대한 고민이 없는 대중운동, 오로지 거리에서의 순간적인 결의만으로 위태위태하게 저항주체화를 해나가려는 운동은 언젠간 한계에 봉착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듯 지식의 문제는 운동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굳이 ‘지적 차이’에 대한 발리바르의 철학적 언급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도 너무나 당연한 우리의 핵심 과제인 것이다.

학회학술의 골간을 복원하고 자기교육의 문화를 아래에서부터 보편화하기 위한 의식적인 역량투여가 앞으로도 전체 행진 차원에서, 또 캠퍼스 차원에서 꾸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월례포럼의 활성화는 이런 점에서 여러모로 유의미할 것이다. 각 캠퍼스/지역별로 월례포럼의 내용을 선정하고 준비해나가는 그 ‘과정’ 자체가 교육-훈련을 위한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기층에서 학습, 교육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지지보족해야 한다. 백승욱 교수도 뒤풀이 자리에서, “앞으로 이런 대공업적 강연이 없어도 각 단위에서 알아서 잘 할 수 있도록, 학습이 조직적, 체계적으로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라며 이 점을 강조하지 않았는가? 강연 참가자들이 자기 단위로 돌아간 다음, 강연에서 다룬 ‘역사적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분석’ 등을 각자의 단위에서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이번 강연은 그것만으로도 그 소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강연에서 백 교수는, 모든 담론이 가지는 ‘지식 효과’와 ‘정치적 효과’를 강조한 바 있다. 즉, 우리 눈앞에 보기좋게 주어진 ‘객관적 지식’을 그저 수동적으로 ‘습득’하기 위해 우리가 이번 강연을 들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강연을 듣고, 그 내용을 이해하고, 이후 이에 대한 집단적인 사고와 교통(communication)을 이어가는 것은 엄연히 ‘정치’의 과정이다. 그리고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능동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본 강연의 ‘지식 효과’와 ‘정치적 효과’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그 공백을 메우면서 긍정적 효과를 이어가기 위한 주체들의 의식적인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일단 동지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강연에서 다룬 내용이나 책에 나온 내용에만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 함께 더욱 노력하자는 것이다. 이번 강연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룬 것이 결코 아니었다. 어떤 익명의 분은 설문에서 “역사적 자본주의에 대한 페미니즘적 분석, 예컨대 ‘역사적 가족 형태’에 대해 체계적으로 다루지 않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자리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너무나도 중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의문을 온라인/오프라인 상에서 제기하고, 그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토론을 조직하거나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 때로는 본 강연 교재에만 의지하지 않고 마르크스, 알튀세르, 뒤메닐, 월러스틴, 아리기 등의 저서를 직접 찾아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강연자의 생각과 비교해보는 것...... 이런 것이 바로 능동적인 태도가 아닐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강연을 듣는다는 것은 단지 먹기 좋게 차려진 음식을 받아먹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강연자와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우리의 집단적 논의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강연을 듣는 것이다. 지적 차이를 감축한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역사적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커리큘럼을 사전에 제시하고 이로써 좀 더 체계적으로 방중학습을 조직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이런 점을 더욱 신경써야 할 것이다. 이후에도 이 주제에 대한 사후학습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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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 강의』가 앞으로도 널리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조만간 백승욱 교수에 의해 번역이 완성될 죠반니 아리기의 『장기 20세기』 등, 관련 서적들이 많이 읽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서 죠반니 아리기의 작업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세계체계 분석/역사적 자본주의론’의 의의에 대해서는 윤소영 교수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중 2, 3강이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을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그 내용은 결코 쉽지 않은데, 이번 강연은 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사전워크샵 자료로 제시된 것들도 일반자료실에 등록되어 있는데, 참고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올해 전국대학생대회의 학회학술 포럼 자료,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은 흔히들 ‘정치경제학’이라고 부르는 ‘경제학 비판’의 학습 방향을 전반적으로 잡기 위해 제출되었다. 물론 분량이 많고 쉽지 않은데, 관련 문의는 행진 메일(stulink@hanmail.net)을 이용해주기 바란다.

모두들, 긴 강연 듣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Posted by 행진

2007/03/20 18:27 2007/03/2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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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난 (금속노조 남부지역지회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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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여성의 날 행사에 갔다가 시그네틱스지회 투쟁이 담긴 <얼굴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늘 만나는 시그 동지들이 집안일과 투쟁을 힘겹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2005년에 투쟁을 막 시작했을 때, 고3이던 작은 딸에게 물질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정서적으로도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2005년 8월, 파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집에서 협조를 많이 해줬다. 하지만, 1년 반 정도 지난 지금은 눈치가 많이 보인다. 애 아빠는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애 아빠도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길어지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애들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또, 아이들 교육이며 집안에 들어가야 할 돈은 많은데 그걸 혼자 다 감당하려니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애들이 착하고 많이 이해해줘서 고맙고 투쟁하는데 큰 힘이 된다. 많이 도와주고 내가 밖에 나가서 다칠까봐 늘 걱정을 한다. 그래서 애들한테는 많이 미안하다. 얼마 전, 딸애가 졸업식인데 나에게 말을 안 하고 혼자 다녀온 것을 뒤늦게 알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침에 출근투쟁 때문에 일찍 나와야 해서 애들 얼굴을 못보고 나오는데, 그래도 꼭 밥상은 차려놓고 나오려한다. 얼마 전 한 쪽 손을 다쳤는데, 나머지 한 쪽 손으로 빨래를 하다 보니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여성이라는 것은 집 안에서 뿐만 아니라 일할 때 처절하게 느꼈었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라는 것은 정말... 나는 기륭전자에 들어오기 전까지 정규직으로 일을 했었다. 그때는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이든 경조사가 있든 마음 편하게 휴가를 쓸 수가 있었고 현장 분위기도 가족적이었다. 그런데 기륭전자는 몸이 아파도 경조사가 있어도 해고의 위협 때문에 휴가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고 동료들끼리도 살갑게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생리휴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자식들과 함께 살아가야하는 엄마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지 여성노동자들을 문자 하나로 자르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는 신체적인 이유까지 언급하면서 해고를 했다. 월급은 또 어떻고. 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한 달에 잔업을 40시간만 해도 100만원이 넘었는데, 여기서는 80~90 시간을 해도 100만원이 안되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자 직원과 임금의 차별도 있었다. 정규직일 때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는데,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는 버는 돈은 얼마 안 되고 체력은 딸렸다. 밤늦게 까지 일하고 집안일 까지 하고나면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났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대우와 비인간적인 해고였다. 그래서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투쟁을 하면서 기쁜 일, 통쾌한 일도 많았다. 현장 안에서 농성을 할 때, 사측에서 우리를 셔터로 가둬놓았었다. 나는 그 위 6개월 동안 불면증에 시달릴 만큼 갇혀있는 것이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웠다. 그 때, 언제인가 한 번 한 조합원이 그 셔터를 발로 뻥 차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 뻥 찼는데, 얼마나 시원하던지! 2005년 10월 17일, 공권력 침탈로 현장농성이 중단되고 경찰서로 연행이 되었었다. 그 때, 알몸 수색을 거부했던 일이며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 신문을 볼 권리 등을 요구하고, 나올 때 교통비까지 받아갖고 나온 일은 정말 통쾌했던 일이다. 하지만,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처음으로 설치했던 우리들의 천막을 용역과 전경들이 부수었던 것은 정말 가슴 아픈 기억이다. 투쟁을 하면서 무엇보다 기뻤던 일은 전국의 노동자들을 많이 만난 것이다. 특히, 코롱, 하이닉스, 하이스코, 한국합섬 등 장기투쟁 사업장 동지들은 서로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큰 힘이 되었다. 우리도 힘들지만, 다른 사업장 동지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우리도 그렇지만,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도 빨리 해결이 되어 그 동지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기륭 투쟁에 물심양면으로 연대해준 동지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그 날, 오후에 집회가 있었는데 김성만 가수가 축가를 불러주고 조합원들이 케익을 준비해주었다. 노래를 듣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눈물이 났다. 또, 조합원들이 연락을 했는지 내가 아끼는 많은 연대동지들이 알고 축하메시지를 보내주어서 참 기뻤다. 다들 힘들 텐데, 정성껏 생일을 챙겨준 우리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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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기륭분회는 대오가 그리 많지 않다. 일을 못하게 되면서 다들 방세며 전기세, 전화세도 못내는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식뻘 되는 회사 용역이나 전경들과 싸우고 그러다가 다칠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특히, 지난해 3월 6일 회사 용역들의 폭력과 회사에서 하루 종일 쏘아댄 물대포, 그리고 이를 방관하던 경찰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그렇지만 우리 조합원들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없는 세상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연대도 열심히 다니면서 550일이 넘는 투쟁을 하고 있다. 조합원들 모두가 밥 잘 챙겨먹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오늘, 집회를 하는데 지나가던 한 시민이 우리 조합원 아가씨들을 보고 나이 들어 보인다고 해서 속이 상했다.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여유 없는 투쟁이지만, 우리 조합원들이 건강도 잘 챙기고 피부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고...”

우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삶이 이미자의 노래에 나오는 동백아가씨처럼 오늘은 아프고 ‘멍’ 투성이지만, 오늘 단결되어 열심히 투쟁하는 우리가 있기에 반드시 기쁜 내일이 올 것임을 믿는다.

Posted by 행진

2007/03/20 18:21 2007/03/2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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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예고된 참사, 그리고 그 이후...


2004년 11월~2005년 3월까지 5개월간 실시된 불법체류자 단속 때 무려 8명이 숨졌다. 4000여명을 적발하는 과정에서 강제추방에 대한 두려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단속을 피하다가 노상에서 얼어 죽었다.

- 경향신문,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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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생존자체가 끊임 없이 위협당해 왔다. 그리고 지난 2월 11일의 여수화재참사는 명백히 현 정부의 이주노동자정책 자체가 부른 예고된 살인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을 미등록의 상태로 내모는 잘못된 이주노동자 정책, 이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이루어지는 단속추방,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이 되지 않고 있는 반인권적 ‘강제수용소’, 이 모든 것이 끔찍한 화재 참사의 근본적 원인임이 명명백백하다. 심지어 경찰은 확증도 없이 '도주 목적의 방화'라고 막무가내식 결론을 내렸다.

심지어 화재 참사 이후에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의 강도는  여전하다. 여수화재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12일 현재, 청주외국인보호소에 재 구금된 생존자 22명은 그처럼 엄청난 사건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을 돌볼 틈도 없이 출국 당했다. 또한 얼마 전, 필리핀 여성노동자 레티는 임신 7개월의 상태에서 출입국 직원들에게 붙잡혔고, 그 과정에서 3일 동안이나 구금당해있어야 했다. 그뿐 아니다. 3월 7일 청주보호소는 현재 남아있는 여수 화재 사건 피해자들 중 여성 2인에 대해 강제 격리 조치를 취했다. 이처럼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여러 끔찍한 사건 이후에도 정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인권적인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7일, 오전에는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의 30층 주상복합건물 공사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다친 몽골 출신 등 외국인 노동자 네 사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사라졌다. 이들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로, 신분이 드러났을 때 입을 피해를 우려해 치료마저 포기한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보호소 안팎 모두가 ‘감옥’인 것이다.

둘이 같이 아픈 마음 위로해주면서 형제처럼 견디어 왔는데 3월 7일 갑자기 갈라지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아직까지 우리의 마음은 불안한 상태고 두려워 떨고 있는데 우리 제발 같이 있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안 떨어지려고 껴안고 있는데 남자 직원 열 명 정도가 들어와서 억지로 갈라놓으려고 폭행하고 결국에 홍매 옷이 다 벗겨지고 저는 옷이 다 찢어지고... 한 남자는 발로 차고 하니까 힘이 없는 홍매와 나는 결국 떨어져서 홍매는 쓰러진 상태여서 남자 4명이 팔, 다리 각각 쥐어서 옆방으로 강제로 끌고 옮겼다.

- 청주 보호소에 재수감된 장**씨의 진술

이주노동자들만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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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한편으로 중심부와 주변부 간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이렇게 발생한 각 국가 간 경제적 차이는 개별 노동자들이 경계를 넘어 이주를 하는 위험을 무릅쓰도록 한다. 노동력 수용국들은 저임금에 매우 유연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주노동자들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들은 자국 노동시장 내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지 않을 정도로 이주노동자들의 도입 규모를 조절하며 또한 장기적으로 체류하거나 정주하지 못하도록 주기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을 강제로 추방하거나 출국시킨다. 그리고 사업장 이동의 권리나 단결권과 같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여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억압과 차별, 착취는 점점 더 심화된다. 그속에서 그들은 분명 어떠한 사회에 소속되어 있는 구성원이지만 그 사회의 정치적 구성원, 주권자, 시민은 아닌 존재로 간주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적대에서부터 동정적 시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안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또 국적, 성별, 언어, 인종등에 따라 이중 삼중의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운동사회 내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여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우리는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은 억압받는 민중들 사이에서도 서로간의 다양한 적대를 유발하는데, 노동자들 내에서도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누고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로 분할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들은 이주노동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오늘날의 모든 노동자 그리고 모든 차별받는  이들의 문제이다. 이주노동자투쟁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동등하게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투쟁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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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이미 오랜 기간 목숨을 건 싸움을 벌여왔다. 또한 현재, 더 이상 죽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함께 싸울것을 호소하고 있다. 오는 4월 1일이 여수참사 희생자들의 49재가 되는 날이며,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중단과 반인권적인 보호소 폐지를 위한 행동의 날이 준비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싸움에 이전보다 더욱 힘차게 연대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받아 안으며 야만적인 단속추방을 중단시키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하고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의 전면적인 보장을 요구하는 싸움, 나아가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저지하는 싸움이 필요하다.

Posted by 행진

2007/03/20 08:09 2007/03/2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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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저출산 대책에 여성은 없다!

저출산이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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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하철이나 공공시설 게시판을 통해 자주 볼 수 있는 공익광고다. 광고문구도 그럴듯하다. “내 아이를 갖는 기쁨과 나라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 주세요.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 그렇다.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희망일 뿐만 아니라 모두의 희망이다. 아이들이 적게 태어남은 어떤 사람들에겐 심각한 ‘걱정거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체의 사장님은 일손이 부족해서 걱정, 대학의 총장님은 학생이 줄어서 걱정, 교회 목사님은 신도가 안모여서 걱정, 병원장님은 환자가 안 와 걱정... 이렇게 아이들은 이 사회의 유·무형의 조직체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지탱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해 주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아이를 갖는 기쁨과 나라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 달라는 정부의 이 ‘간곡한’ 호소는 사뭇 절절하기까지 하다. 젊은이 한명이 노인 한명을 부담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젊은 노동인구가 부족해서 국가경쟁력이 위기에 처했다 등 이유도 다양하다. 2년전에 모 단체에서 큰 맘 먹고 내놓은 “1.2.3운동”(결혼 1년 이내에 아이 2명을 30세 이전에 낳아 건강하게 잘 기르자!)에서부터 최근의 비전2030까지, 정부는 마치 제2의 새마을 운동을 벌이는 것 같기도 하다.

“출산 권하는 사회”, 그 자체가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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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들 기억하겠지만 이렇게 야심차게 시작되었던 1.2.3운동은 곧장 ‘센스있는’ 네티즌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결혼 1년안에 임신을 하고 30세 이전에 아이 둘을 가지려면 최소한 27살에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연달아 두명의 아이를 갖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디시인사이드>등에서는 1.2.3운동의 패러디가 등장하기도 했다. (1.2.3운동: 하나기르기도 힘든데, 둘씩이나 낳자니,  혹시 IQ가 30?), (1,2,3,4운동: 결혼 1년 이내에 아이 2명을 30세 이전에 낳아 40대에 파산하자!) 이 패러디들에는 출산이 곧 많은 가임 여성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세계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한명 더 낳는다는 것은 곧 빚을 얼마간 더 짊어짐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회복지에 대한 책임을 공적으로 책임지기를 포기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 부담을 더 말해 뭐하랴?

하지만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의 문제점을 단지 경제적 부담의 문제로만 한정해서 보는 것은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 만약 정부에서 경제적 부담에 대한 부분을 덜어준다면 또는 부담을 덜어주는 어떤 정책적 제스쳐를 취해준다면 “출산 권하는 사회”의 모습은 바람직한 걸까? 그렇지 않다. 사실 정부에서 이리도 출산을 권하는 것은 출산이 여성의 의무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집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씨받이와 같은 악습이 있었던 것도, 여성의 마땅한 의무인 출산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가부장제 사회 나름의 ‘처벌’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여성차별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가임여성/불임여성을 나누어 여성 내부에서 신체를 매개로 한 차별을 제도화 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국민의 고령화가 가속화 되어 미래 국가 성장동력이 유실되기 때문에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엄연히 여성 스스로 통제해야 할 권리인 ‘출산’의 문제를 ‘국가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통제하려는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 정부가 상정한 국민개념에는 ‘여성’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출산 권하는 사회”의 가부장성을 제대로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연을 비롯한 주류 여성운동 진영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와 같은 기구에 참여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편 정부도 1.2.3운동과 같은 새마을 운동식의 ‘출산선동’이 별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작년부터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한 ‘실질적인’ 대책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새로마지플랜2010, Dynamic Women Korea 2010, 비전2030 등 이름도 화려하다. 이 정책들에서 여성과 관련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의 핵심은 바로 “여성인력활용”에 있다. 정부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출산율이 1.08명으로 세계 최저수준인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육아인프라를 구축하여 ‘직장과 가정의 양립기반 조성’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 보육서비스의 양적·질적 향상이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여성인력 개발·활용을 위한 ‘일자리 확대’와 ‘여성 능력개발’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가칭)여성경제활동촉진법’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포장지를 천천히 뜯어보다보면 정부가 제공하겠다는 여성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불안정 노동이 대부분이며, 노동시장에서 성별분업을 고착화시키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즉 정부의 정책들은 또 다시 여성에게 출산의 책임을 강요하면서 현재 신자유주의 경제위기의 책임을 여성의 불안정한 노동을 통해 지연시키고자 하는 속내가 드러날 뿐이다.

“여성인력활용”이 진정 노리는 것


정부는 2010년까지 여성일자리 60만개 창출 및 경제활동 참가율을 5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불안정한 여성고용 조건이 여성빈곤을 심화시키는 원인임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60만개 일자리 창출계획에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가 들어있지 않다. 여성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제시되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돌봄 도우미, 보육시설 노동자와 같은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들이다. 이것들은 ‘사회적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그 노동을 수행하는 주부나 여성노인 등 여성노동자에게 저임금을 감내하며 노동할 것과 봉사, 희생정신을 강요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정부가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를 부추기는 「사회서비스확충전략」을 들고 나오면서 사회서비스부문의 민간위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 이 부문의 저임금·불안정 노동화는 더욱 심각해 질 것으로 보인다.

이 “여성인력활용”의 방안이 갖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점은 노동시장에서의 성별분업을 고착화 시킨다는 데에 있다. 사실상 이 방안들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성일자리’라는 것들은 기존에 이미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해 오던 것들이며, 단지 여성의 일자리를 확충해 준다는 말로 포장하면서 노동시장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도록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일들을 공적 영역에서 부담하여 사회화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이들은 그저 이런 노동에서 이윤만을 내면 그만이고 공공성 확보에는 관심도 없다!)에 내 맡겨 버림으로써 가사와 양육, 노인요양과 같은 일들의 질만 떨어뜨리고 있다. 게다가 이런 여성노동의 상품화는 계층간의 구매능력의 차이가 다시 저소득층 여성의 가족 내 부담을 늘리는 악순환을 초래할 분만 아니라, 여성노동자 내부의 위계화도 심화시킬 것이다.

출산대책이 아닌 여성이 안정되고 당당히 일할 수 있는 권리를!


현재 정부의 저출산·고령화대책에는 여성의 시각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한미FTA추진과 함께 모든 공공부문을 열어젖히면서 “개방을 향한 경쟁”을 하면서 여성에게는 “바닥을 향한 질주”를 강요하고 있다. 기존에 여성이 전담해 오던 출산과 가사노동에다 이제는 ‘직장과 가정의 양립기반 조성’을 위하여 밖에 나가 돈까지 벌어오라고 한다. “여성인력활용”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겐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남성)자본가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의 힘만 불려주며 국가성장동력에 봉사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존엄성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안정되고 당당한 일자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사노동의 온전한 사회화와 공적인 부담을 위한 고민과 함께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여성에 대한 차별, 여성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필수적이다.

Posted by 행진

2007/03/20 08:03 2007/03/20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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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등록금도 못내줘” 40대 가장 분신 자살
아내약값과 대학등록금 마련키 위해 건축폐기물 훔친 아버지와 아들 경찰에 붙잡혀...
두 자녀 ‘대학 등록금’ 고민에 40대 주부 자살...
대학등록금 1000만원 시대, 07학번 새내기,‘알바도 정규직처럼 준비해야’

등록금 폭등!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얼마 전, 한 인터넷사이트에서 ‘나의 대학등록금은 얼마인가’라는 주제의 글에 수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등록금 액수를 리플로 남기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화제가 되었다. 어느 해를 막론하고 인상해온 대학등록금이라지만, 올 해는 바야흐로 대학 등록금 천만원 시대! 돈 없으면 대학은 꿈조차 꾸지 말라던 누군가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다. 학교는 물가인상률을 기본으로 각종 구조조정에 드는 비용, 타 대학과의 인상률 비교, 발전기금 등을 들먹이며 등록금인상을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고스란히 대학운영에 드는 비용을 학생들에게 전가시키면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학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자살을 하고, 절도를 하고, 이미 대학등록금인상은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변하고 있다. 빈곤이 만연한 신자유주의 시대, 교육, 의료, 수도, 전기 할 것 없이 도미노처럼 파괴되고 있는 공공성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요금인상에 민중들은 ‘못 살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고 있다. 

최소한의 박탈할 수 없는, 누구나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배워 온 것들이 경쟁의 영역으로 내몰리며, 점점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한 ‘서비스’로 둔갑하고 있다. 그들은 돈이 없는 자들은 ‘서비스’를 누릴 혜택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괴물 같은 신자유주의는 거침없이 대학을 집어삼키며 민중들의 교육권을 앗아가고 있다. 정부에서 확보하고 충분히 지원해야 할 교육재정 역시 ‘선택과 집중’이라는 미명아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착실히 수행한 학교, 돈벌이가 잘 되는 학문에만 집중 투자하면서 끊임없이 대학 간 서열화, 학문간 서열화를 고착시키고 있다. 더 이상 대학이라는 공간은 민중들의 자기교육과 계발을 위한 공간이 아닌 하나의 상품을 소비하는 공간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빈곤을 심화시키는 등록금인상, 절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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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을 맞이하고 각 캠퍼스별로 교육투쟁의 열기가 뜨겁다. 학교마다 투쟁을 진행하는 상황과 배경들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폭등하는 등록금인상과 관련하여 우리는 최소한의 교육비문제조차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국가와 대학당국에 그 책임을 물어야한다. 돈이 없으면 교육조차 받을 수 없는 이런 상황 속에서 나의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오히려 등록금을 대폭 인상시키며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력들에게 호통을 쳐야한다. 특히나 등록금인상의 주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금의 대학구조조정은 산학연계강화라는 미명하에 진행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유연한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구조조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900만인 시대에 대학에서부터 이루어지는 이런 구조조정은 민중들의 기본적인 노동권과 교육권을 박탈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제 대학당국과의 등록금 %를 조율하는 싸움을 넘어 전반적으로 민중들의 삶의 빈곤하게 만드는 등록금인상,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싸움을 만들어가자.

등록금 인상에 반대한다면, “No! FTA!”


한-미 FTA 8차 협상이 민중들의 끊임없는 저항에도 불구하고 바로 얼마 전 끝이 났고, 이제 그 타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 사실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교육의 문제는 큰 쟁점이 되지 못했다. 이는 이미 한국의 교육은 대부분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이 협상에서 더 논의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 FTA가 민중들의 삶 전반에 대해 총체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요구한다고 했을 때, FTA 이후 교육의 조건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미국과의 FTA를 먼저 체결한 나라들의 교육비 폭등 사례에서도 예측할 수 있는 지점이다. FTA가 다양한 경쟁을 통해 부문별 경쟁력을 강화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사회공공성을 파괴하면서 그에 대한 비용을 민중들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으로 드러날 것이 분명하다. FTA가 체결되면 공공성의 성격을 띄고 있는 교육 역시 이러한 논리로 무분별한 구조조정 될 것이며, 교육비 폭등 역시 뻔할 것이다. 등록금 인상문제가 대학인들의 분노로 투쟁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했을 때, 삶의 권리를 박탈하는 신자유주의 맞선 투쟁이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기에 빈곤 심화 속에서 등록금 인상반대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세계 재편의 한 축으로, 모든 영역을 자유경쟁으로 내몰며 진행되고 있는 FTA에 대해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외치자.

만물이 소생하는 봄,
빈곤을 확산하는 신자유주의, 등록금 인상, 한-미 FTA에 맞서
민중들의 가장 보편적인 권리를 향한
전국대학생들의 힘찬 행진을 시작하자.


Posted by 행진

2007/03/20 07:56 2007/03/2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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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6호를 발간하며

안녕하세요? 동지들.  오래 기다리셨죠?

너무 오랜만에 찾아뵙네요. 원래 계획은 개강 전에는 발간할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쉽질 않았어요.(사실, 뉴스레터 편집진이 바뀌었거든요.^^) 작년보다 잘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는데, 막상 그러질 못한 것 같아 많이 아쉽네요. 다음호 정도엔 더 좋아질 거란 생각이 들구요. 동지들이 많이 도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특히, 올해 뉴스레터에는 ‘회원 마당’이라는 코너가 신설되었습니다. ‘회원 마당’은 행진 회원들의 자유로운 공간인데요. 누구라도 전국의 회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거침없이 stulink.jinbo.net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형식이나 소재는 자유롭게 열려있답니다. 예를 들면, 영화나 연극을 보고나서 감상평을 보내주셔도 좋고 풀리지 않는 고민을 함께 나누자는 방식의 글을 보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기대되시죠?

첫 번째 글, 「등록금에 반대한다면, No! FTA!」는 빈곤을 심화시키는 등록금 인상과 한-미 FTA에 관한 글입니다. 3월 교육투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요즘, 등록금투쟁이 그 자체로 가지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고민을 함께 나눴으면 합니다.

두 번째 글, 「저출산 대책에 여성은 없다!」에서는 정부에서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일환으로 펼치고 있는 새로마지플랜2010, Dynamic Women Korea 2010, 비전2030 등 이름도 화려한 정책들에 대한 비판을 담아 보았습니다. 이름은 화려하지만 여성들에겐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게 될 이런 갖가지 정책들에 대해 항상 민감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 글,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한 달 전 여수화재참사이후에도 계속되는 정부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에 대한 글입니다.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바라보고 앞으로 적극적으로 연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네 번째 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삶을 딛고」는 600일여 가까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기륭분회의 박행난 조합원의 기고글입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삶을 생생하게 전해주셨는데, 문서나 책을 통해서 보았던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노동자의 삶에 대해 보다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어 글을 써주신 박행난 조합원과 기륭분회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백승욱 교수 기획강연을 마치고」는 지난 2월 나흘간 세종대에서 열렸던 기획강연 후기입니다. 앞으로 이런 대공업적 강연이 없어도 각 단위에서 알아서 잘 할 수 있도록, 학습이 조직적, 체계적으로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라는 백승욱 교수님의 이야기처럼 이번 경험이 앞으로의 학회 학술운동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키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회원 마당’에는 연대의 현석동지가 ‘빈활 수기’를, 그리고 DS 동지가 서평을 보내주셨습니다. 앞으로 이 코너가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네요. 회원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행진

2007/03/20 07:54 2007/03/20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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