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 저출산 대책에 여성은 없다!

저출산이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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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하철이나 공공시설 게시판을 통해 자주 볼 수 있는 공익광고다. 광고문구도 그럴듯하다. “내 아이를 갖는 기쁨과 나라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 주세요.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 그렇다.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희망일 뿐만 아니라 모두의 희망이다. 아이들이 적게 태어남은 어떤 사람들에겐 심각한 ‘걱정거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체의 사장님은 일손이 부족해서 걱정, 대학의 총장님은 학생이 줄어서 걱정, 교회 목사님은 신도가 안모여서 걱정, 병원장님은 환자가 안 와 걱정... 이렇게 아이들은 이 사회의 유·무형의 조직체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지탱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해 주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아이를 갖는 기쁨과 나라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 달라는 정부의 이 ‘간곡한’ 호소는 사뭇 절절하기까지 하다. 젊은이 한명이 노인 한명을 부담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젊은 노동인구가 부족해서 국가경쟁력이 위기에 처했다 등 이유도 다양하다. 2년전에 모 단체에서 큰 맘 먹고 내놓은 “1.2.3운동”(결혼 1년 이내에 아이 2명을 30세 이전에 낳아 건강하게 잘 기르자!)에서부터 최근의 비전2030까지, 정부는 마치 제2의 새마을 운동을 벌이는 것 같기도 하다.

“출산 권하는 사회”, 그 자체가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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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들 기억하겠지만 이렇게 야심차게 시작되었던 1.2.3운동은 곧장 ‘센스있는’ 네티즌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결혼 1년안에 임신을 하고 30세 이전에 아이 둘을 가지려면 최소한 27살에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연달아 두명의 아이를 갖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디시인사이드>등에서는 1.2.3운동의 패러디가 등장하기도 했다. (1.2.3운동: 하나기르기도 힘든데, 둘씩이나 낳자니,  혹시 IQ가 30?), (1,2,3,4운동: 결혼 1년 이내에 아이 2명을 30세 이전에 낳아 40대에 파산하자!) 이 패러디들에는 출산이 곧 많은 가임 여성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세계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한명 더 낳는다는 것은 곧 빚을 얼마간 더 짊어짐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회복지에 대한 책임을 공적으로 책임지기를 포기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 부담을 더 말해 뭐하랴?

하지만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의 문제점을 단지 경제적 부담의 문제로만 한정해서 보는 것은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 만약 정부에서 경제적 부담에 대한 부분을 덜어준다면 또는 부담을 덜어주는 어떤 정책적 제스쳐를 취해준다면 “출산 권하는 사회”의 모습은 바람직한 걸까? 그렇지 않다. 사실 정부에서 이리도 출산을 권하는 것은 출산이 여성의 의무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집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씨받이와 같은 악습이 있었던 것도, 여성의 마땅한 의무인 출산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가부장제 사회 나름의 ‘처벌’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여성차별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가임여성/불임여성을 나누어 여성 내부에서 신체를 매개로 한 차별을 제도화 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국민의 고령화가 가속화 되어 미래 국가 성장동력이 유실되기 때문에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엄연히 여성 스스로 통제해야 할 권리인 ‘출산’의 문제를 ‘국가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통제하려는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 정부가 상정한 국민개념에는 ‘여성’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출산 권하는 사회”의 가부장성을 제대로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연을 비롯한 주류 여성운동 진영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와 같은 기구에 참여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편 정부도 1.2.3운동과 같은 새마을 운동식의 ‘출산선동’이 별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작년부터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한 ‘실질적인’ 대책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새로마지플랜2010, Dynamic Women Korea 2010, 비전2030 등 이름도 화려하다. 이 정책들에서 여성과 관련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의 핵심은 바로 “여성인력활용”에 있다. 정부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출산율이 1.08명으로 세계 최저수준인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육아인프라를 구축하여 ‘직장과 가정의 양립기반 조성’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 보육서비스의 양적·질적 향상이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여성인력 개발·활용을 위한 ‘일자리 확대’와 ‘여성 능력개발’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가칭)여성경제활동촉진법’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포장지를 천천히 뜯어보다보면 정부가 제공하겠다는 여성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불안정 노동이 대부분이며, 노동시장에서 성별분업을 고착화시키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즉 정부의 정책들은 또 다시 여성에게 출산의 책임을 강요하면서 현재 신자유주의 경제위기의 책임을 여성의 불안정한 노동을 통해 지연시키고자 하는 속내가 드러날 뿐이다.

“여성인력활용”이 진정 노리는 것


정부는 2010년까지 여성일자리 60만개 창출 및 경제활동 참가율을 5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불안정한 여성고용 조건이 여성빈곤을 심화시키는 원인임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60만개 일자리 창출계획에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가 들어있지 않다. 여성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제시되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돌봄 도우미, 보육시설 노동자와 같은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들이다. 이것들은 ‘사회적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그 노동을 수행하는 주부나 여성노인 등 여성노동자에게 저임금을 감내하며 노동할 것과 봉사, 희생정신을 강요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정부가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를 부추기는 「사회서비스확충전략」을 들고 나오면서 사회서비스부문의 민간위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 이 부문의 저임금·불안정 노동화는 더욱 심각해 질 것으로 보인다.

이 “여성인력활용”의 방안이 갖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점은 노동시장에서의 성별분업을 고착화 시킨다는 데에 있다. 사실상 이 방안들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성일자리’라는 것들은 기존에 이미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해 오던 것들이며, 단지 여성의 일자리를 확충해 준다는 말로 포장하면서 노동시장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도록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일들을 공적 영역에서 부담하여 사회화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이들은 그저 이런 노동에서 이윤만을 내면 그만이고 공공성 확보에는 관심도 없다!)에 내 맡겨 버림으로써 가사와 양육, 노인요양과 같은 일들의 질만 떨어뜨리고 있다. 게다가 이런 여성노동의 상품화는 계층간의 구매능력의 차이가 다시 저소득층 여성의 가족 내 부담을 늘리는 악순환을 초래할 분만 아니라, 여성노동자 내부의 위계화도 심화시킬 것이다.

출산대책이 아닌 여성이 안정되고 당당히 일할 수 있는 권리를!


현재 정부의 저출산·고령화대책에는 여성의 시각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한미FTA추진과 함께 모든 공공부문을 열어젖히면서 “개방을 향한 경쟁”을 하면서 여성에게는 “바닥을 향한 질주”를 강요하고 있다. 기존에 여성이 전담해 오던 출산과 가사노동에다 이제는 ‘직장과 가정의 양립기반 조성’을 위하여 밖에 나가 돈까지 벌어오라고 한다. “여성인력활용”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겐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남성)자본가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의 힘만 불려주며 국가성장동력에 봉사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존엄성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안정되고 당당한 일자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사노동의 온전한 사회화와 공적인 부담을 위한 고민과 함께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여성에 대한 차별, 여성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필수적이다.

Posted by 행진

2007/03/20 08:03 2007/03/20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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