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 저출산 대책에 여성은 없다!

저출산이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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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하철이나 공공시설 게시판을 통해 자주 볼 수 있는 공익광고다. 광고문구도 그럴듯하다. “내 아이를 갖는 기쁨과 나라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 주세요.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 그렇다.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희망일 뿐만 아니라 모두의 희망이다. 아이들이 적게 태어남은 어떤 사람들에겐 심각한 ‘걱정거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체의 사장님은 일손이 부족해서 걱정, 대학의 총장님은 학생이 줄어서 걱정, 교회 목사님은 신도가 안모여서 걱정, 병원장님은 환자가 안 와 걱정... 이렇게 아이들은 이 사회의 유·무형의 조직체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지탱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해 주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아이를 갖는 기쁨과 나라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 달라는 정부의 이 ‘간곡한’ 호소는 사뭇 절절하기까지 하다. 젊은이 한명이 노인 한명을 부담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젊은 노동인구가 부족해서 국가경쟁력이 위기에 처했다 등 이유도 다양하다. 2년전에 모 단체에서 큰 맘 먹고 내놓은 “1.2.3운동”(결혼 1년 이내에 아이 2명을 30세 이전에 낳아 건강하게 잘 기르자!)에서부터 최근의 비전2030까지, 정부는 마치 제2의 새마을 운동을 벌이는 것 같기도 하다.

“출산 권하는 사회”, 그 자체가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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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들 기억하겠지만 이렇게 야심차게 시작되었던 1.2.3운동은 곧장 ‘센스있는’ 네티즌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결혼 1년안에 임신을 하고 30세 이전에 아이 둘을 가지려면 최소한 27살에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연달아 두명의 아이를 갖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디시인사이드>등에서는 1.2.3운동의 패러디가 등장하기도 했다. (1.2.3운동: 하나기르기도 힘든데, 둘씩이나 낳자니,  혹시 IQ가 30?), (1,2,3,4운동: 결혼 1년 이내에 아이 2명을 30세 이전에 낳아 40대에 파산하자!) 이 패러디들에는 출산이 곧 많은 가임 여성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세계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한명 더 낳는다는 것은 곧 빚을 얼마간 더 짊어짐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회복지에 대한 책임을 공적으로 책임지기를 포기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 부담을 더 말해 뭐하랴?

하지만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의 문제점을 단지 경제적 부담의 문제로만 한정해서 보는 것은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 만약 정부에서 경제적 부담에 대한 부분을 덜어준다면 또는 부담을 덜어주는 어떤 정책적 제스쳐를 취해준다면 “출산 권하는 사회”의 모습은 바람직한 걸까? 그렇지 않다. 사실 정부에서 이리도 출산을 권하는 것은 출산이 여성의 의무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집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씨받이와 같은 악습이 있었던 것도, 여성의 마땅한 의무인 출산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가부장제 사회 나름의 ‘처벌’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여성차별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가임여성/불임여성을 나누어 여성 내부에서 신체를 매개로 한 차별을 제도화 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국민의 고령화가 가속화 되어 미래 국가 성장동력이 유실되기 때문에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엄연히 여성 스스로 통제해야 할 권리인 ‘출산’의 문제를 ‘국가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통제하려는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 정부가 상정한 국민개념에는 ‘여성’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출산 권하는 사회”의 가부장성을 제대로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연을 비롯한 주류 여성운동 진영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와 같은 기구에 참여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편 정부도 1.2.3운동과 같은 새마을 운동식의 ‘출산선동’이 별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작년부터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한 ‘실질적인’ 대책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새로마지플랜2010, Dynamic Women Korea 2010, 비전2030 등 이름도 화려하다. 이 정책들에서 여성과 관련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의 핵심은 바로 “여성인력활용”에 있다. 정부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출산율이 1.08명으로 세계 최저수준인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육아인프라를 구축하여 ‘직장과 가정의 양립기반 조성’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 보육서비스의 양적·질적 향상이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여성인력 개발·활용을 위한 ‘일자리 확대’와 ‘여성 능력개발’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가칭)여성경제활동촉진법’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포장지를 천천히 뜯어보다보면 정부가 제공하겠다는 여성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불안정 노동이 대부분이며, 노동시장에서 성별분업을 고착화시키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즉 정부의 정책들은 또 다시 여성에게 출산의 책임을 강요하면서 현재 신자유주의 경제위기의 책임을 여성의 불안정한 노동을 통해 지연시키고자 하는 속내가 드러날 뿐이다.

“여성인력활용”이 진정 노리는 것


정부는 2010년까지 여성일자리 60만개 창출 및 경제활동 참가율을 5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불안정한 여성고용 조건이 여성빈곤을 심화시키는 원인임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60만개 일자리 창출계획에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가 들어있지 않다. 여성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제시되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돌봄 도우미, 보육시설 노동자와 같은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들이다. 이것들은 ‘사회적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그 노동을 수행하는 주부나 여성노인 등 여성노동자에게 저임금을 감내하며 노동할 것과 봉사, 희생정신을 강요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정부가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를 부추기는 「사회서비스확충전략」을 들고 나오면서 사회서비스부문의 민간위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 이 부문의 저임금·불안정 노동화는 더욱 심각해 질 것으로 보인다.

이 “여성인력활용”의 방안이 갖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점은 노동시장에서의 성별분업을 고착화 시킨다는 데에 있다. 사실상 이 방안들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성일자리’라는 것들은 기존에 이미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해 오던 것들이며, 단지 여성의 일자리를 확충해 준다는 말로 포장하면서 노동시장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도록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일들을 공적 영역에서 부담하여 사회화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이들은 그저 이런 노동에서 이윤만을 내면 그만이고 공공성 확보에는 관심도 없다!)에 내 맡겨 버림으로써 가사와 양육, 노인요양과 같은 일들의 질만 떨어뜨리고 있다. 게다가 이런 여성노동의 상품화는 계층간의 구매능력의 차이가 다시 저소득층 여성의 가족 내 부담을 늘리는 악순환을 초래할 분만 아니라, 여성노동자 내부의 위계화도 심화시킬 것이다.

출산대책이 아닌 여성이 안정되고 당당히 일할 수 있는 권리를!


현재 정부의 저출산·고령화대책에는 여성의 시각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한미FTA추진과 함께 모든 공공부문을 열어젖히면서 “개방을 향한 경쟁”을 하면서 여성에게는 “바닥을 향한 질주”를 강요하고 있다. 기존에 여성이 전담해 오던 출산과 가사노동에다 이제는 ‘직장과 가정의 양립기반 조성’을 위하여 밖에 나가 돈까지 벌어오라고 한다. “여성인력활용”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겐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남성)자본가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의 힘만 불려주며 국가성장동력에 봉사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존엄성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안정되고 당당한 일자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사노동의 온전한 사회화와 공적인 부담을 위한 고민과 함께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여성에 대한 차별, 여성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필수적이다.

Posted by 행진

2007/03/20 08:03 2007/03/20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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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보육노조와의 간담회

전국보육노동조합 교육선전국장 김지희
전국학생행진(건) 회원 JS


현 정부는 출산의 위기를 극복하겠답시고 몇몇 가지 정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보육을 사회적으로 책임지겠다면 제시된 보육정책들이 또 다시 보육시설 내의 여성노동자들의 착취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은 정말 슬픈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당당히 맞서 싸우는 여성들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금 용기를 얻는다. 8월 10일 오후 2시, 학생행진에서는 보육노조에서 일하시는 분을 찾아뵙고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서 싣는다.

행진    안녕하세요? 저희는 전국학생행진(건)입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보육노조    저는 전국보육노동조합에서 교육선전국장을 맡고 있는 김지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희 노조는 2005년 1월에 출범했습니다. 아직 얼마 오래되지 않았지요. 보육을 담당하는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교사, 청소부 등 시설관리노동자 등)이 들어올 수 있는 노조입니다. 현재 어린이집에는 생후 4개월부터 초등학생 방과 후까지, 굉장히 넓은 연령대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근무시간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형식적으로 정해져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근무형태는 매우 다양합니다. 덕분에 근무시간 같은 경우도 대단히 탄력적이에요. 아이를 토요일에 맡겨 월요일에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러면서 어린이집이 '24시간제'로 운영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이 경우 야간교사를 따로 둡니다. 이 야간교사들은 저녁 7,8시부터 그 다음 날 아침 7,8시까지 밤새 12시간 노동을 하게 되지요. 임금의 경우 최근 어떤 통계를 보니 월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고 나왔는데,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00만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전형적인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지요. 그리고 거의 99%가 여성이지요. 여성가족부에서 조사한 남녀 비율 통계를 보니 아예 ‘100% 여성’이라고 나와있더군요.^^ 전형적인 여성 중소영세사업장이에요.

행진    24시간 노동이라… 참 충격적이군요. 이 외에도 교사들에게 주어진 ‘실제’ 점심시간은 11.1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접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업무의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겠죠. 노동시간과 非노동시간의 구분이 모호한 돌봄 노동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가치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구요.

보육노조    그렇죠. 특히 요즘 많이 생기고 있는 간병이라든가, 보육이라든가 이런 업무들은 사회의 약자들이 주로 담당해온 일이에요. 그리고 집안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이 바로 그 약자였구요. 요즘은 간병과 보육을 나름대로 ‘사회화’한다고 하면서, 직업군이 창출되어 왔죠. 특히 IMF 전후해서 맞벌이부부가 이전보다 많이 생겨나면서 보육산업이 일반화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보육산업이 생기고, 그리하여 보육이라는 것이 ‘노동’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노동에 대한 가치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간병과 보육 같은 것에 대해서는 “맨날 여자들이 하던거”라고 다들 ‘저평가’하는거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봤을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돌보는 일’을 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만 따져봤을 때는 ‘가시적인 수익’이 창출되지 않는다고 여겨지거든요. 그리고 아이를 한 명 돌보는데, 여성가족부의 ‘보육비용 연구자료’에 따르면 만 1세 아동의 경우 최소 70만원 이상이 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한테 받을 수 있는 돈은 민간시설에서는 법적으로 최대 35만원밖에 안 되지요. 사실 부모들한테 그 이상을 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부당한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면 그 나머지라도 나라에서 책임을 저야 하는 것이지요. 그 책임을 지지 않으면 보육이 말 그대로 ‘버려진’ 사회이고… 그런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보육이 한창 필요할 때에, 정부가 그저 시설 자체만 많이 늘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를 정부 책임하에 두지 않고 민간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셈입니다. 지금 95% 이상이 ‘민간’ 어린이집입니다. 민간이 운영해서는 안 되는 부분을 민간에게 운영하게 함으로써, 보육공공성 자체도 엄청나게 침해되고 노동자들의 상황도 아주 열악해진 것 같아요.

행진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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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노조    어린이집을 보면, 국공립 어린이집이 4.8%고 나머지가 완전 민간입니다. 그리고 그 4.8%의 국공립이라는 것도 사실은 정부의 직영이 아니라 ‘민간위탁’입니다. 예컨대 건물만 정부 소유이고 그 실제 운영은 민간에서 위탁받아서 하는 식이죠. 절대다수가 민간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그 운영실태를 보면… ‘근로계약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노조가 생긴 2005년 1월 전후로 사업장에서 근로계약서 작성 붐이 일어났어요. 즉 그 전에는 근로계약서조차 없었던거죠. 그리고 그나마 괜찮은 어린이집, 예컨대 국공립 어린이집들부터 근로계약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조건이 비교적 괜찮다는 곳에서 쓴 근로계약서를 봐도, ‘1년짜리 단기 계약직’에 그쳤습니다. 즉 근로계약서를 써봤자 비정규직이니,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겠지요? 사실 대부분의 민간 어린이집은 아직도 근로계약서 자체가 없어요. 원장이 “내일 나가”라고 명령하면 그냥 나가는 거죠. 이야기하다보니 한 가지 웃지못할 사례가 떠오르네요. 어떤 원장이 하루는 우리한테 전화를 한 다음 “1년짜리 근로계약서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다.”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달랑 1년 쓰고 버릴려고 하나요?”라고 반문했죠. 그런데 그 원장의 답이 가관이었죠. 교사들이 너무 힘들어하면서 1년을 못 버티고 나간다, 그래서 적어도 1년 이상 일을 할 수 있는 강제장치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는거에요. 완전히 우리 의도와는 거꾸로 이야기하는거죠. 이만큼 노동상황이 많이 열악해요. 설움도 많구요. 다들 “내가 지금 당장 짤려도 나 대신 내일 누군가가 들어오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생각을 못하는거죠. 현장의 관리자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매우 불안정한 사업장입니다.

행진    보육노조의 요구안 가운데, ‘평가인증제’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보육노조    일단 ‘평가’라는 말 속에는 맥락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요새 워낙 저출산 고령화가 문제라고 많이 왈가왈부 하면서, 심지어 여성가족부도 ‘공공성’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정부 부처 중에 ‘공공성’을 쓰는 데는 거의 유일무이하죠. 그리고 그 공공성을 지킨다면서 ‘평가’라는 기제를 도입하겠다고 여성가족부는 말합니다. 하지만 그 ‘평가’라는게 우리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방향과 다른 것 같아요. 현재 존재하는 시설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하고, 그 평가에 따라 그 시설의 환경을 업그레이드를 충실히 하고, 또 민간 시설들의 보육여건이 낙후하면 그것을 국공립으로 전환해서 정부 책임 아래 두고, 이런 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지원은 하지 않은 채 내부에서 경쟁만 부추기는 식입니다. 현재 평가과정을 받는 것이 ‘필수’는 아니라고 하는데, 원아모집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평가인증마크’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半강제적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평가를 수행한 후, ‘평가미달’인 것은 보육시장에서 ‘날려버리겠다’, 이런 의도를 깔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많은 아이들이 각각의 시설에 다니고 있고 그 시설이 없어지면 갈 곳이 사실상 없지요. 그런데 정부는 각각의 시설을 정상화하려고 하기는커녕 날려버릴 생각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진    그 평가의 항목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요?

보육노조    인천 같은 곳을 보면, 인천시가 ‘처우개선비’라는 수당과 관련시키면서 그 평가에 대해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평가를 위해 한 1년 정도 기획회의를 먼저 한다고 하네요. 외관이나 이런 것들도 다 뜯어고쳐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또 보육과정에서 교사와 아이들의 상호작용 같은 것도 중요하게 다뤄진다고 합니다. 감독관이 파견되서 이를 살펴본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평가 그 자체를 나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니, 보육노조 안에서도 많은 이견과 토론이 있었습니다. 현재 노조 내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부분은, 평가항목들 자체가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평가라는 것이 실제 필요한 지원은 하지 않은 채 경쟁만 부추기는 등 허구적인 면이 많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만 죽어나는 거구요.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말씀드릴게요. 인천의 사례들을 보면, 평가인증을 준비하는 기간에도 아이들은 당연히 시설에 오지 않겠어요? 그러니 일단 아이들 보육은 하던데로 한 다음,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평가 관련된 서류준비에 모든 사람들이 동원되는거죠. 준비해야할 서류가 대단히 많다고 하더군요. 또 외관도 좀 보기좋게 고치고 청소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주말에 많은 선생님들이 동원되고 있다고 합니다. “주중에는 보육노동을 하고, 주말에는 건설노동을 한다”라고 다들 그래요. 이러니 아이들 보육에 집중을 잘 할 수 있을리 만무하지요.

행진    이번 <새로마지 플랜>을 봐도 평가인증제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어떤 변화가 생기는 건가요?

보육노조    작년부터는 시범으로 했고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하는데, <새로마지 플랜>에서 ‘평가인증제’ 관련하여 뭔가 새로운 내용은 없는 것 같아요. 보육노동자 입장에서 봤을 때 이번 <플랜>에서 걸리는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바로 ‘기본보조금 도입’과 ‘보육비 상향선 다원화’이지요. 이 두 가지가 제일 많이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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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보조금’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아까 아이 한 명 키우는데 적어도 70만원이 든다고 이야기했지요? 그리고 학부모가 35만원만 낸다고 했지요. 그러면 70만원에서 35만원을 뺀 나머지 35만원치가 문제인데, 이 나머지 35만원 부분을 정부에서 대갰다, 이렇게 말하는게 바로 기본보조금이에요. 아이들 머릿수 당 일정액을 정부가 가정에게 지원하겠다는 거지요. 즉, 부모가 내는 돈은 이전에 비했을 때 결코 줄지 않는다는 거에요. 물론 그 동안 그 나머지 35만원분이 제대로 시설에 지원이 되지 않으면서 많은 문제가 생겼죠. 아이들 급간식비를 무리하게 깎고, 또 사람들 인건비를 깎고… 그래서 고질적인 열악함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번에 정부에서 선심쓰듯이 말하면서 그 나머지를 (물론 얼마까지 지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주겠다는 거에요. 사실 아이들 머리수 당 액수를 정해서 학부모들한테 주는 방식은 여러모로 비합리적인 점이 많아요. 만약 한 보육반에 8명이 원래 들어가야 하는데 아이가 다 차지 않아 5명반 들어간다면 3명 분의 지원액의 나오지 않겠죠. 이렇게 기본보조금 지원 수준은 유동적이지만, 반면에 인건비는 고정적입니다. 아이가 5명이든 아님 8명이든 반드시 교사는 1명 이상 필요하거든요. 기본 보조금을 가지고는 임금을 비롯한 각종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는 이미 일본에서도 증명된 것이에요. “학부모들이 원하는 건 아동수당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보육시스템이다. 보육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여성들의 정상적인 노동이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이런 주장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시설에 대한 직접 지원 대신) 아동수당이니, 보조금이니 하면서 각 가정에게 직접 돈을 지원하는 방식은, 보육의 공공성보다는 대다수 선거권자인 부모들에게 잘 보이려는 현 노무현 정권의 선택입니다. 어쨌든 기본보조금으로 시설을 정상화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한다는 것은 저희가 볼 때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육료 상한선’ 관련해서는, 2004년 말부터 이미 이야기가 되어온 것이에요. 앞에서 말했듯이, 보육료가 원래 상한선이 있거든요. 그 이상은 보육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보육공공성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구요. 만약 상한선이 없다면 어디 고급시설은 100만원 이상 받고, 반면 다른 낙후한 곳은 적게 받는 대신 보육환경이 대단히 열악하고, 말그대로 부익부빈익빈이겠지요. 그런데 여성가족부에서 상한선을 없애고 자율화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본보조금을 받는 곳, 안 받는 곳 이렇게 나눈 다음, 보조금 받지 않아도 된다는 곳에서는 이전보다 상한선을 더 높여서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끔 한다고 합니다. 결국 상한선을 다양하게 한다는 거고, 이것은 상한선을 없앤다는 말에 다름아니에요.

행진    <플랜>을 보니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에 대한 언급도 있던데, 실현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나요?

보육노조    사실 여성가족부는 항상 의지가 없었죠. 이전에도 현재의 4.8% 수준에서 10%까지 높인다고 했는데, 물론 이 자체도 터무니없이 적긴 하지만 예산의 문제로 인해 이마저도 실행되지 않았죠. <플랜> 보면 국공립 확충에 대한 계획이 있긴 있어요. 그런데 몇 %나 될지 모르죠. 참고로 저희는 국공립시설이 적어도 50% 이상은 되어야 공공성이라는 것을 말할 자격이 있다, 이렇게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는 차치하고, 과연 이름만 국공립인 것 외에 얼마나 공공적으로 운영이 될지 믿음이 안 가네요. 예컨대 정부 계획을 보면 국공립 시설을 확충하는 것과 더불어, 교사들에 대한 임금지원 비율을 조정하겠다고 합니다. 현재 어린 아이(영아)를 보는 교사들에게는 임금의 80%, 그리고 큰 아이를 보는 교사들에게는 30%를 지원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는 이전의 90% / 50%에서 그 비율이 준 거에요. 그리고 여성가족부 계획에 따르면 2008년에는 모두 0%입니다. 임금 지원이 하나도 없는 것이 과연 어떻게 국공립 시설이 될지 모르겠네요. 인건비가 운영부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사실상 ‘민간’인거죠. 상식적으로, 정부 직영이 아닌 것을 가지고 국공립이라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다시 민간시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자기 이윤을 챙기려고 불법비리를 저지르고, 교사들을 부당해고 하는 등 민간/민간위탁 시설장들의 횡포와 부정으로 애꿎은 아이들고 부모, 보육노동자들이 모두 피해자가 되고 있습니다.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직영’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는 그럴 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행진    <새로마지 플랜>에 대한 간략한 총평 부탁드릴게요.

보육노조    제 개인의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저출산 고령화 위기 담론’이라고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정부가 손쉽게 내세우는 것이 바로 보육과 노인 요양 보험, 이 두 가지입니다. 보육과 노인 요양 모두 민간화되어있는 상황에서 기본보조금 같은 것 주겠다, 이렇게 나오고 있는데, 사실 현실성이 전혀 없는 것이죠. 이도 이렇거니와, 저는 기본적으로 보육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저출산 문제’를 건드린다는 것이 제대로 되었든 되지 않았든 그 영향이 실제로 대단히 미미하고 현실성도 없다고 봐요. 그저 ‘보육’이라는 것이 가장 손 쉽고 가장 외곽에서 건드리기 쉬운 아이템이니까 뭔가를 하는 것처럼 시혜적으로 보여줄 뿐이죠. 저출산 위기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따라서 출산율이 낮을 것을 가지고 사회의 위기를 운운하기 전에, 여성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전반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여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사회구조를 여성주의적으로 바꾸고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정부가 하고 있는 ‘보육’이나 ‘노인요양’같은 것은 어떻게 되었든 그 영향력이 미미할 뿐입니다.

결국 <새로마지 플랜>에 나오는 각종 경제적 지원이라는 것들은 정부의 무기력한 쇼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이 여성의 삶을 더욱 더 악화시키는 어떤 새로운 괴물이라고 보기는 좀 그런 것이, 이것이 아니라도 이미 여성들의 삶은 구조적으로 악화될 때로 악화되었죠. 또 사회구조를 바꾸지는 않은 채 계속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결국 출산과 보육에 대한 여성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데올로기’가 강화될 따름입니다. 결과적으로 여성의 일만 더 늘어날 뿐입니다.

행진    ‘가사노동의 사회화’에 대한 보다 발본적인 고민이 필요한데, 저희도 그렇고 다들 어디서부터 출발할지가 막막한 것 같습니다. 일단은 보육노동자들의 투쟁에 열심히 연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겠어요.^^ 아까 99%, 그리고 정부 통계로는 100%가 여성이라고 나왔다는데, 여성에 대한 제약이 많은 사회구조 속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조직하는 것 또한 어려움에 종종 부딪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육노조    아무래도 여성이 중심에 설 수 있는 조직, 조직화, 투쟁방향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아직 조합에 가입이 안 된 사람들을 만나고 이 사람들을 조직화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데, 사실 모든 중세 영세 사업장이 같은 경향을 보이는 것 같아요. 예컨대 5인 미만 사업장과 같은 영세 사업장이 많은데, 이 경우 시설장과 교사들, 노동자들 간의 관계가 문제가 되죠.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 같은데, 때로는 ‘공동체’성을 강조하면서 관계를 끈적끈적하게 만들어요. 예컨대 “내 딸 같은 애들” 운운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니가 이 월급을 받지 않으면 여기가 망한다.”라고 호소하거나, “너 아니어도 여기 들어올 사람 있다. 니가 이런 식으로 나가면 다른 어린이집에 들어가기도 쉬울 줄 아느냐” 식으로 협박도 종종 하지요. 이는 다른 중소 영세 사업장과 양상이 비슷한 것 같아요.

투쟁문화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다수 여성을 포함해서 이런 것들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죠. 팔뚝질하는 거나, 집회 나가는 거나, 전경과 대치를 하는 거나… 물론 이는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가능하긴 해요. 하지만 이 차원을 넘어서, 문화제라든지, 아니면 가두투쟁이라든지 모든 것에 있어서 여성들이 좀 더 주체적으로 나설 수 있는 투쟁방식에 대해서는 또 많은 고민이 드네요.

그리고 노동조합 운영 역시도 바뀌어야 할 부분이 크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이 부분이 앞의 것들보다 더욱 더 적응하기 힘들 것일 수도 있죠. 안에서 성폭력 문제가 생겼을 때 노조가 처리하는 방식들도 변화할 필요가 있고. 이런 부분이 좀 걸리죠. 노조가 운영되는 것을 보면 지침을 중심으로 해서, 위원장의 지시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방식이 많잖아요? 그런데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방식이 좀 동화되기 힘든 부분도 있죠. 여성들은 남자들이 한 10분 이야기할 것을 2,3시간 동안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고… 우리는 생긴지 얼마 안 된 노조인데, 일단 각 지역에서나 전체 노동조합에서나 좀 어떤 문제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를 하고, 각 단위의 입장을 모으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려고 노력해온 편이에요. 그런데 이런 면이 기존의 노조 스피드와는 맞지 않게 보일 수도 있는거고…

행진    말씀 잘 들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하네요.^^ 행진 차원에서도 고민과 실천을 가져가고 싶은데요, 앞으로의 투쟁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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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노조    일단 올해는 여성가족부가 주무부처이기 때문에 여성가족부를 대상으로 투쟁을 계속하기로 노조 내에서 합의가 되었습니다. 일단 8월 25일까지 조합원들이 주축이 되서 1인 시위를 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수요일마다 ‘온라인집회’를 해오고 있구요. 그리고 8월 26일에 전국 집중 집회가 있어요. 행진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연대 투쟁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9월부터는 서울, 인천, 부산 등 각 지역별로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투쟁을 벌일 예정입니다. 이렇게 투쟁의 경험을 쌓아나가고 정부를 압박하는 것과 동시에, 내년에는 좀 다른 단위들, 예컨대 사회복지노조나 자활노조 등과 연합을 해서 공통의 투쟁을 만들어가면 어떨까, 이런 계획도 있어요.

행진    지금 많은 학생들이 선봉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꼭 많은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네요. 긴 인터뷰 감사합니다.

Posted by 행진

2006/08/14 06:49 2006/08/14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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