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의료민영화, 어떻게 맞설 것인가?


 

본 글은 보건의료학생 [매듭]에서 기고한 글입니다.
건강한 세상, 더 큰 연대를 위한 보건의료학생 [매듭]은 현재 2010년 여름 건강현장활동(7/19-25)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http://knotforhealth.tistory.com/97을 방문하세요.



의료민영화, 이대로 현실화?

  의료민영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참여정부 때부터 '의료산업화' 혹은 '의료선진화'라는 거짓이름으로 시작된 의료민영화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인수위 시절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남한 의료의 체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당연지정제 폐지(당연지정제는 모든 의료기관과 국민건강보험과의 계약을 강제하는 제도로서, 공공병원의 비율이 10% 이하인 남한에서 공공보건의료체계를 유지시켜주는 필수적인 제도이다)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가 2008년 촛불의 여파로 인해 잠잠해진다. 2009년 다시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이라는 정책 속에 포함되어 흐름을 타던 의료민영화 시도는 12월에 발표된 KDI(한국개발연구원)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영리의료법인(현재 남한의 모든 의료기관은 비영리법인이어야만 하며, 자본의 출입과 이윤 배당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윤은 병원에 재투자된다) 도입 필요성에 대한 연구용역 보고서가 각기 다른 결론을 내며 모순에 부딪히면서 표류하고 만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2009년 12월 10일 관계부처합동 명의로 발표한 <2010년 경제정책방향과 과제>를 보면 정부가 제시하는 경제정책 6개 분야 주요과제 중 ‘서비스산업 선진화’가 핵심으로 들어가 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는 경제자유구역에서 외국교육기관이나 외국의료기관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 제ㆍ개정,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도입이 핵심 요지다. 아니나 다를까, 2010년 상반기 임시 국회에는 어김없이 의료민영화 5대 악법(의료법 개정안, 의료채권법, 보험업법 개정안, 경제자유구역 특별법, 제주도 특별법)이 모두 상정되었다. 또한 지난 5월 17일에는 치료를 제외한 검진, 예방, 관리에 관련된 의료서비스는 모두 민영화시키는 법안인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다. 진보적 보건의료 및 사회운동단체가 7년여 시간동안 맞서오던 의료민영화가 단 몇 달 사이에 국회를 통과할지도 모르는 매우 긴박한 상황이다.


  물론 아직까지 의료민영화에 찬성하기보다는 반대하는 국민이 많은 상황에서 정부도 쉽사리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예상 외로 고전하며 민주당에게 일시적으로 주도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6월 국회에서 의료민영화를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민주당 및 친노 세력 역시 궁극적으로 의료민영화 찬성 쪽에 힘을 싣기 때문이다(물론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소수의 의원들이 있긴 하지만, 사회운동단체들의 수차례 요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의료민영화 반대를 당론으로 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의료민영화 정책들의 대부분은 과거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절 현재의 민주당과 친노세력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른바 반MB 연합의 맹목성이 잘 드러난다). 지방선거 결과로 인해 조금 늦춰질 뿐, 의료민영화는 하반기부터 신속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지난 6일 청와대가 보건복지비서관으로 정상혁 교수를 내정한 일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당연지정제 폐지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주장하며 의료민영화의 첨병 역할을 해왔던 정상혁 교수를 그런 자리에 앉힌다는 것은 당연지정제 폐지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던 이명박 정부의 변명이 거짓임을 드러낸다. 또한 의료민영화 추동 세력 중 가장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장관 윤증현이 지난 5월 31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영리의료법인 도입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함께 실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다시 협의를 시작했다."라고 밝힌 것만 보아도 곧 의료민영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의료민영화의 두 축 중 하나인 영리의료법인 도입(다른 하나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이 구체적인 정책안으로 도출될 경우, 이 문제는 올 하반기 G20과 함께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영리 의료법인은 미국 베스트 병원 순위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곳이 하나도 없으며(낮은 질), 비영리법인에 비해 사망률은 2% 가량 높고 병원비는 19% 가량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높은 비용). 또한 영리 의료법인 도입은 단순히 의료공급체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연지정제 폐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과 긴밀히 연관되어 사실상 의료를 시장화시키고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하는 데 있어 단초가 될 가능이 크다. 이미 시장주의적 의료가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의 평균 수명은 OECD 국가 중 24위, 천 명당 영아사망률은 27위로 건강수준은 매우 낮다. 또 전 국민의 15.3%(4,570만 명, 2007년)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며 이로 인해 보험 미적용으로 추가로 사망하는 사람이 1년에 18000여명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의료비 부담으로 매년 2백만 명이 개인 파산하며, 이는 미국 전체 개인 파산의 50%에 달한다(파산자의 75%는 의료보험 가입자이다). 반면 총의료비 지출은 2007년 기준 GDP의 16.0%로 매우 높다(OECD 평균 9.1%). 이 중 대부분이 보험자본과 의료자본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제는 의료민영화에 맞서는 강력한 대중운동이 필요한 때이다. 하지만 최근 일각에서 의료민영화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되고 있는 ‘건강보험 하나로 OK’ 정책안은 많은 난점들과 위험을 안고 있다. 함께 살펴보자.

'건강보험 하나로 OK',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지난 6월 9일, 국민 1인당 월평균 1만1천원의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내면 선택진료비, 병실 차액, 초음파, MRI, 각종 검사의 의약품, 노인틀니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OK’ 시민회의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이들은 먼저 비용부담 방식의 변화를 꾀하여 현재 국민 1인당 월 평균 보험료 약 1만1천원을 더 내면 보장률을 90% 이상 수준으로 일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민중의 생존권을 위해서도, 병원 영리법인화와 민간의료보험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현 상황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현행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전국민건강보험을 통한 공적 의료재정체계와 민간중심의 의료공급체계(공공병원 비율 10% 이하)로 구성된다. 민간중심 공급구조는 행위별 수가제(진료 행위당 수가를 지급하는 제도로 과잉진료를 유발한다)가 결합되어 의료공급자의 영리추구행위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5배의 재정확충을 통해서 보장률을 90% 이상으로 확대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건강보험 재정은 82%, 1인당 보험료는 79%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장성 강화는 5.2%에 불과했으며, 연간 가계직접부담액은 43% 증가하여 물가상승률을 훨씬 상회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영리추구적 공급체계를 건드리지 못하는 재정확충을 통한 보장성 강화는 필연적으로 의료시장의 팽창을 가져올 것이며, 영리추구적 의료공급자만 배불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 '건강보험 하나로 OK' 안에는 보험자본과 제약자본에 대한 통제방안이 없다. 우리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민간보험자본과 제약자본에 대한 통제 없는 의료체계 개혁은 한계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오바마는 당초 건강보험 개혁안에서  공공의료보험을 만들어 민간의료보험과 경쟁시키려고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조항은 빠지고 보험 미가입자를 의무적으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시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결국 보험자본에게 더 큰 시장을 열어준 셈인데, 여기에 있어 보험자본의 로비와 압력이 상당했을 것이라 예측된다). 보건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이며, 신자유주의적 재편과정을 통해 더욱더 중심적 위치를 점하는 보험자본과 제약자본에 대한 인식이 없는 대안은 오히려 호랑이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꼴이 될 수 있다.

  보험료를 (우선적으로) 인상하여 재정을 확충하자는 제안 또한 문제가 있다. 이미 현재의 보험료 수준도 감당하지 못하는 체납인구가 상당한 규모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들이 보험료 인상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낙관할 수 없다. 또 정말 보험료를 적게 내서 보장성이 낮은 것인지에 대해서 검토가 필요하다. 유럽 복지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소득 대비 보험료 부담비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동시에 기업과 국고 지원의 부담비율이 낮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보장성 강화를 위한 재정확충은 국가와 자본의 부담을 늘리는 방식을 요구해야 하지 민중들이 적정한 부담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내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국가와 자본의 부담을 확대하는 것은 제도 개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계급역관계의 변화를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계급역관계를 역전시켜내는 투쟁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보험료 인상에 그치는 수준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더욱이 만약 의료민영화가 전면화 된다면 보장성이 강화된 건강보험도 무용지물이 된다. 민중의 건강을 심각하게 파괴할 의료민영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썩은 동아줄에 매달리기보다는, 보다 날카롭고 거센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의 기치 아래 모든 노동자-민중이 결집해야 한다.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의 의미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의료민영화 의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막아내는 싸움에 함께 해야 하는 당위성은 너무도 명백하다. 영리 의료법인 도입은 단순히 의료를 이윤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의료채권법, 병원경영지원회사(MSO) 등과 결합해 금융 자본에게 병원을 통째로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금융세계화의 모순이 곳곳에서 체제를 뒤흔들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마저 금융화시킨다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다. 더욱이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이 공공보험 설립안이 빠진 채 보험 자본에게 시장만 키워주는 반쪽짜리가 되어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한번 보험 자본에게 넘어간 우리의 건강을 되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되돌린다 하더라도 많은 대가가 필요하다(2009년 폴란드는 의료민영화를 철회하는 대가로 투자보호협정에 따라 네덜란드계 보험 자본인 Eureko에게 18억 유로를 지불해야만 했다).


  유럽발 재정위기가 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격 역시 거세다.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의 원인을 복지로 몰아세우며 민중의 생존권을 박탈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는 투쟁으로서, 생존권 투쟁을 모아내는 싸움으로서,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에 힘을 쏟아야 할 시기이다.


Posted by 행진

2010/06/23 11:48 2010/06/2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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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건의료와 관련된 문제들

요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몇 달째 사람들에게 공포로 다가오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 때문이다. 지난 8월 15일 한국에서 신종플루로 첫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에 계속해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고위험군으로 분류하지 않았거나 백신을 접종한 사람 중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신종플루의 변종이 만들어졌다는 보도도 나왔으며, 애완동물에게도 신종플루의 증상이 감지되었다. 11월이 되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북반구에 있는 나라들에서도 신종플루로 몸살을 앓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사망자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 심각성에 대응하여 ‘중앙재난 안전대책 본부’가 국가전염병재난단계를 ‘심각’으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미진한 대책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신종플루의 대유행은 한국 공공의료가 부실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전반적인 한국 의료체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였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의료의 공공성을 줄이는 ‘의료서비스선진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경쟁원리를 도입하여 서비스의 질을 상승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의료법인 경영지원회사(MSO) 설립, 병원채권 발행, 병ㆍ의원 간 합병,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의료 기관 설립과 같은 것들이 의료 서비스를 선진화한다며 나온 정책들이다. 하지만 의료 부문에서 이러한 정책들을 이전부터 사용한 미국과 같은 나라의 의료 실상은, 영화 ‘Sicko’를 비롯해 여러 대중매체들을 통해서 알려진바 있다. 그리고 정부가 의료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정보를 누락시키거나,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는 등 추진과정에서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우리들의 건강을 둘러싼 위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일정한 지식과 실습을 갖추지 않은 보건의료 ‘비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저 질병이 자신은 비껴가주기를 바라기만 할 수도 있고, 정부를 압박하여 더욱 많은 의료적 지원을 확대하게 할 수도 있다.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 것인가? 여기에서는 ‘바이러스의 체내 침투 → 발병 → 바이러스의 제거 → 치료’로만 생각되는 보건의료 문제에서, 이를 넘어서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실천들을 논의하겠다.

2.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들이 다시 증가하고 북반구의 겨울은 신종플루로 인한 공포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신종플루가 전염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치사율은 독감보다 낮고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국가들이 겪고 있는 말라리아의 공포에 비하면 아주 큰 위험은 아니다. 그럼에도 신종플루는 몇 가지 지점에서 보건/의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전 세계적으로는 식량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돼지를 집단사육하고, 생태계의 파괴를 초래하면서 새로운 전염병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광우병 파동에 이어 자본주의적 식량 생산체계의 위험성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신종플루는 ‘빈곤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 질서가 혼란에 빠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지역에서 유행하였다. 이는 신종플루에 대한 항생제인 타미플루와 라렌자를 생산하는 로슈사가 지적재산권을 행사하며,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신종플루의 유행이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1, 2, 3차로 나누어지는 의료체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신종플루의 검진-치료를 어디에서 받아야 할 것인지 혼란이 생겼다. 이는 신종플루의 위험을 사전에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정부의 안일한 태도도 한 몫을 한다. 그렇지만 ‘저공급-저수가-저보장’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 보건의료체계가 근본적인 문제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위와 같이 신종플루가 전 세계적인 위협이 되고 한국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된 과정을 살펴보면, 이것이 개인의 신체에 대한 바이러스의 예방과 치료를 넘어서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근대 자본주의가 태동할 때부터 탄생했던 대규모의 유행병은 기존에 겪어왔던 건강에 대한 위협과는 다른 것이었다. 도시와 농촌이 분리되면서 대규모 단종 경작에 따르는 생태계 취약성의 증가, 도시와 인구 규모가 성장함에 따라 바이러스가 창궐할 조건이 만들어진 것, 전 세계적인 무역과 이동이 증가함에 따라 질병이 퍼져나간다는 점 등에서 그러하다. 대규모 유행병과 질병이 사회-생태적인 문제를 통해서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주류적인 보건의료는 '생의학적 모델'에 기초하고 있었다. 즉 질병은 개인의 몸에 침투한 바이러스의 작용으로 발생하고, 이에 대한 치료법은 역시 개인의 몸에 대한 항바이러스를 투입함으로서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개인의 몸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것이 조건이 되는 질병을 '감염성 질병'이라고 부른다. 1970년대 보건의료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생명공학기술과 의학의 발달로, 인류가 감염성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 더욱 강력한 내성과 복잡한 구조를 가진 바이러스들이 출현하였고, 종간 교차로 인해 발생하는 바이러스 역시 증가하였다. 지난 10년간 조류독감, SARS, 신종플루와 같은 세계적인 유행성 질병이 10차례나 발생하며 공포를 겪어야 했다. 물론 의학 기술과 공중 보건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이것으로 인해 대규모 사망사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경제 수준이 낮고 이로 인해 의료적 자원에 대한 접근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많은 지역에서는 고질적인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 그렇지 않은 지역이라고 할지라도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새로운 보건의료 문제로 인해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한편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보건의료는 새로운 문제에 맞부딪히게 된다. 자본주의적 노동 통제가 심화되고 이에 따른 스트레스와 육체적 부담은, 현대병과 각종 비감염성 질병의 위험을 한층 상승시켰다. 이에 따라 의료비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이는 경제위기와 결합하여 '보건의료의 위기'로 가시화된다. 이에 대해 신자유주의자들은 의료 체계의 비효율성이 문제였음을 지적하며, 보건의료 부문에 대해 기업의 원리를 도입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따라 공적 비용이 투입되던 보건의료 부문이 사적인 투자로 대체되어가고, 외부에 있는 금융자본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제약ㆍ병원 등 사적 의료자본은 세계적 인수ㆍ합병과 직접 투자를 통해 수익성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분야를 다면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결합상품들을 개발해낸다. 그리고 보험자본과 같은 금융자본의 영향이 증대하며, 이른바 '보건의료의 금융화 현상'이 나타난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한국에서도 '의료서비스 선진화 방안'이 추진되며, 의료분야에서의 공적 책임이 약화되고, 금융자본이 침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이는 그간 나타났던 한국사회 보건의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신종플루 사태에서 보았듯이 공적 의료 체계 아래에서 정부는,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양의 타미플루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로슈사에게 휘둘려야만 했다. 의료 민영화가 추진되고 공적 의료 체계가 붕괴한다면, 새로운 질병의 위험에 대해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신종플루 사태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나라가 의료 민영화가 상당한 정도로 추진된 미국과 멕시코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지금까지 이야기한 바와 같이 현재 보건의료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새로운 질병의 위험이 출현한다는 점, 공적의료체계가 붕괴하며 의료 민영화 현상이 강화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보건의료의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각종 사회-생태적인 쟁점들을 함의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응하여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불행하지만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보건의료 영역의 문제는 이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하는 일로 인식되기 쉽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손쉽게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 문제에 대해 사회-생태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현재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 바뀌어야 할 방향에 대해 인식하는 것으로도 상당한 진전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을 학생사회와 같이 우리가 있는 곳에서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한 집단적인 움직임, 그리고 보건의료 부문에서의 대안을 만들 수 있다. 어떤 지점들에서 어떤 인식을 공유해야 할 것인가?

대규모 유행병으로 인한 재앙은 민중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이지만, 초민족적 제약 자본들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무역관련 지적 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은 의약품 제조과정과 의약품 자체에 대한 특허권을 출원한 날부터 20년 동안 독점할 수 있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렇게 지적 재산권에 따른 지식과 상품의 독점은, 자연스럽게 상품의 가격까지도 초민족적 자본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 신종플루로 인해 로슈사가 엄청난 이득을 얻은 것, 말라리아에 대한 치료제를 개발하는 비용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제약 자본이 이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약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적 재산권의 성격을 확연히 보여준다. 우리는 정당화 되어 있는 초민족적 자본의 특허권과 지적 재산권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고, 민중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지식을 확산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만이 제약자본의 횡포를 막고, 의료적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모든 부문에서 금융자본이 배타적인 이윤을 추구할 수 있도록, 사회 체계 전반의 변화를 초래한다. 보건의료 부문 역시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고, 이것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의료 민영화이다. 효율성의 논리로 포장하며 추진하고 있는 의료 민영화 정책이, 민중들의 건강에 어떤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의료법인 경영지원회사(MSO), 거대 병원의 탄생, 병원 채권 발행 등은 보건의료 부문에 기업의 원리를 도입하는 것이다. 즉 보건의료 기관은 지금까지 당위적일지라도 천명해오던 민중들의 건강보다는, 이윤추구를 제 1의 목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의료서비스 선진화 방안'에 대한 명확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의료적 지원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신자유주의에 맞서야 한다.

우리는 현재 어떠한 체제 아래에서 살고 있는가? 자본주의 체제는 지난 수만 년간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거대한 생산력의 발전을 땅 속으로부터 끄집어내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는 거대한 인구의 증가와 이에 따른 도시화를 가져왔으며, 이를 부양하기 위해 사회와 자연이 맺는 관계를 변화시켰다. 이는 효율성에 바탕을 둔 대량생산체제였고, 가장 대표적으로는 단종 경작이나 대규모 축산 공장과 같은 자본주의적 식량 생산 방식을 가져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규모 질병이 발생했던 사례들은, 이러한 식량생산 방식이 생태계와 자연의 면역성을 파괴시키며 바이러스에 취약하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즉 자연과 사회가 맺는 유기적인 물질순환 메커니즘으로서 신진대사가 자본주의적 식량생산 아래에서 파괴되었고, 이 과정에서 민중들의 건강이 파괴되기도 하였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묵과될 것이고, 자연과 사회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계획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적 식량생산 방식을 변화시킬 방법을 마련하고, 자연과 사회의 유기적인 물질 대사가 이루어지는 신진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인류의 건강을 위해 요긴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이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모든 성과들을 파괴하고, 원시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회가 자연이 맺는 관계는 필연적으로 인류의 시각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지만, 이것이 꼭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적 방식일 필요는 없다. 새로운 관계를 마련할 사회-생태적인 인식과 전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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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진

2009/11/24 16:19 2009/11/2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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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정권과 민중 건강권>

월례포럼 자료 모음




■광우병에 맞서 민중의 식량주권을!

| 이슴산 (월간 사회운동 2007년 9월호)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인간 광우병의 위험

| 박상표 (월간 함께하는 길 2006년 겨울호)

 

■한미FTA에 숨어있는 괴물 - 초국적 농식품복합체

| 윤병선 건국대 교수 (2006 활력충전소 자료집 中)

 

■건강보험증을 내놔라! 돈없으면 생명을 포기하라!

| 공공의약센터 권미란 (2006 활력충전소 자료집 中)

 

■이명박 정권 의료보험 민영화의 진실

| 사회화와 노동 389호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9일에는 촛불집회가 열린 요 며칠 사이에 가장 많은 인원인 3만명이 모여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쳤다고 합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25%로 추락할 정도로 민심이반이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현재 광우병 쇠고기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의료보험 민영화 등 국민건강권과 관련된 다른 사안으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등 지배계급들은 이 논란을 그저 쇠고기문제로만 가둬두려 합니다. 사실 대중의 불만이 쇠고기에 대한 쟁점을 넘어서는 순간, 그것은 이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처럼 한미FTA에 대한 불만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기에 지배계급은 거의 사활을 걸고 광우병 문제를 봉합하려 할 것입니다.

▶우리는 발 빠르게 지금의 국면을 "(한미FTA를 밀어붙이려는) 지배계급 vs (민중의 건강권을 지키려는) 광범위한 대중"이라는 대립전선으로 확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 하에서 '자본주의 농업-상품체계'에 의해 안전하지 못한 식량이 생산되고, 그것의 유통을 방기하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비판하는 한편, 건강보험 민영화, 의약품 특허권 강화 등을 통해 민중의 건강권을 투기자본에 떠넘기려는 무책임한 의료산업화 정책을 비판합시다.

▶이런 입장에 입각해 광범위한 대중적 토론 또는 월례포럼을 기획하시기 바랍니다. 토론자료가 유용하게 활용되길 바랍니다.

Posted by 행진

2008/07/14 15:10 2008/07/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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