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1] 


경제위기가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이유




1. 경제위기와 여성의 관계

너는 아직도 페미니즘 얘기하니?
요즘 세상에 여자가 어디서 차별받는다고.

알파걸, 골드미스가 판을 친다는 세상에도 차별받는 여성들이 있을까? 있다. 단지 ‘몇몇이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러하며 앞으로 그러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는 여성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안겨주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는 것이 이번 글의 주제이다.

<잠깐 질문>

그러기에 앞서 첫 번째 질문을 던지자면, 우리는 왜 여성이 ‘더’ 착취 받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하는 것일까? 절대 ‘더 불쌍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가 인간의 권리를 확장시켜왔지만 많은 경우에 이것은 ‘여성’의 권리를 확장시키는 것과는 별개로 존재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투표권이 그러하다. 우리는 투표권이 여성에게도 주어졌을 때 비로소 투표권은 ‘평등’해 졌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이렇듯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권리라는 것은 없는데, 경제위기 하에서 성별 간에 다른 방식으로 착취가 진행되고 있다면 그 내용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만 경제위기 하에서 발생하는 착취와 동시에 여성에게 더욱 부과되는 착취를 함께 없앨 수 있다. 경제위기만 극복하면 여성에 대한 착취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고 믿는다던지 경제위기부터 해결하고 여성에 대한 또 다른 착취를 없애겠다는 것은 별로 믿지 못 할 얘기가 아닐까?

여성 노동의 신화

사실 자본주의 아래서 여성이 ‘부수적인 노동력’으로 취급받은 역사는 매우 길다. 생산력이 급격히 높아진 자본주의 하에서 많은 노동력 없이도 충분한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때 생산의 바깥으로 가장 먼저 밀려난 사람들은 여성이었다. 이와 동시에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사람으로 정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성은 자본주의 시장구조에서 담보되지 않는 ‘재생산’의 영역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어머니의 숭고한 역할이자 여자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에 생물학적인 근거를 들이대기도 하는데, 세계 대전 당시에 많은 공장과 일터에서는 여성들만이 일했었다는 사실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생물학적 차이’의 결과라는 것은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즉, ‘힘이 세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아빠’, ‘연약하고 늘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은 엄마’라는 것은 환상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런 배경은 경제위기 하에서 여성들이 더욱 착취받기 쉬운 빌미를 제공한다. 이후에 사례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여성에겐 특수한 역할이 있다는 환상이 있는 사회 속에서 늘 ‘더’ 요구 받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번의 경제위기 이전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IMF만 생각해보더라도 여성들은 직장에서 우선해고 1순위였고, 그 이유는 언제나 ‘경제가 어려우니 집으로 돌아가라’였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여성 취업률이 높아지지만 나빠지면 가장 먼저 여성 취업률이 떨어지는 상황, 과연 자연스러운 차이에 의한 것일까?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를 살펴보자.


2. 여성, 어디서 일하고 있나?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에 의한 대량 실업이 발생했다. 연일 뉴스와 신문에서는 ‘고개 숙인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고 한 광고에서는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를 불렀다. 경제위기 아래 수많은 여성들이 우선해고 대상에 오르고 직장을 잃고 다시 가정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피땀을 흘렸음에도 응원 받는 사람은 단지 ’가계를 책임‘진다는 남성 노동자 뿐 이었다. 경제위기와 함께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것은 실업자, 반대로 이야기하면 직장이 필요한 사람이다. 최근 많은 50대 이상 여성들이 직장을 갖기를 희망 한다. 사람들은 중년, 고령의 여성들이 직장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속된말로 ‘애들 학원비나 벌’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판단은 임금수준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출난 직능이 없는 50대 여성이 구할 수 있는 직장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대형 할인매장, 청소업무, 보험판매사, 주방보조 등이 떠오른다. 앞서 열거한 대부분의 직업은 기본급이 없거나 봉급이 최저임금의 수준을 유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정당한 노동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은 여성이 맡는 역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때문에 여성들이 종사하는 일자리는 어느 곳보다 빠르게 비정규직화, 외주화 되어 왔고 가장 저렴하고 쉽게 자를 수 있는 노동력으로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이 활용되고 있다.

여성의 섬세함이 21세기형 리더십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참담하다. 2004년 OECD에서 실시한 국가별 남녀 임금격차를 보면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40%로 OECD국가 평균 20%를 훌쩍 웃도는 수준이다. 분위별로 보면 소득의 상위 20% 남녀 임금격차는 30%이하인데 이것은 평균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일수록 성별간의 임금 차별이 더 심각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현상은 ‘차이’일까 ‘차별’일까? 동일한 생산성을 갖고 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낮은 임금을 받는다면 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생산성’을 확인받을 수 있어야 할 텐데 한국노동연구원의 ‘여성인력과 생산성’(2000)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격차 가운데 38% 정도만 생산성 격차로 설명되고 나머지 62%는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즉 62% 정도의 여성들은 단지 성별에 의해 차별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의 70%가 여성노동자’라는 집계를 통해서도 여성이 더욱 취약하고 열악한 업종에 분포되어 있으며, 이는 여성의 노동이 저평가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기에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임금으로 받고 있다. 최소한의 임금이 왜 열심히 일한 사람의 전체 임금이 되어야 할까? 심지어 많은 사업장에서는 이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데 지킨다 할지라도 그 임금은 별로 현실적이지 않다. 청소 업무를 하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용역업체에 근무하며 한주 5일, 공식/비공식 노동을 포함해 하루 10시간 이상의 일을 한다 해도 많은 경우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80여만 원의 돈을 받는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80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병원에 가야 한다 던지 급전이라도 생길라치면 어떻게도 여유를 만들기 힘든 돈이다. 충분히 일하고도 살만큼 받지 못하는 것, 일을 하면서도 빈곤할 수밖에 없는 많은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최저임금은 그 비현실성이 인정되어 몇 년간 인상을 시켜왔는데, 최저임금을 임금으로 받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이것을 수포로 돌리려는 일이 있으니 최근 최저임금법이 개악된다는 소식이다. 지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최저임금에 대한 준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각 지역이나 나이에 따라 다르게 구성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갖는데, 이는 실제로 최저임금조차 앞으로는 더욱 보장하지 않겠다는 말일 뿐이다. 앞으로 최저의 임금선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은 어떻게 더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3. 우리는 일하고 싶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많은 여성들은 경제위기 아래서 더욱 극심한 착취에 노출되어 있다. 여대생의 삶 역시 결코 화려하지만은 않은데 최근 경제위기와 함께 취직 대신 결혼을 고려하고 있는 여대생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아도 그렇다. ‘취집’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는 지금, 여성에게 결혼과 취직이 동일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여성들에겐 꽤나 많은 평등이 주어진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형식적인 평등이 확립된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 왜 아직도 여성들은 차별받고 있는가? 우리는 이에 대해서 고민해 보아야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출산과 육아를 여성노동자만 걱정하지 않는 세상, 여성노동이 저평가 되지 않는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경제위기는 소수 몇몇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생사의 경계로 몰아넣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성은 그 충격을 줄이는 완충망 역할을 사회와 가정 양쪽에서 기대 받으며 갖가지 요구를 강요당하고 있다. 자본의 무한 증식 속에서 만들어진 오늘의 경제위기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그 답은 더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데 있다. 더 많은 이윤, 더 많은 효율로는 누구의 삶도 나아지지 않는다. 여성이 경제위기 하에서 더 착취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대안이다.

Posted by 행진

2009/03/11 13:36 2009/03/1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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