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건의료와 관련된 문제들

요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몇 달째 사람들에게 공포로 다가오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 때문이다. 지난 8월 15일 한국에서 신종플루로 첫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에 계속해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고위험군으로 분류하지 않았거나 백신을 접종한 사람 중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신종플루의 변종이 만들어졌다는 보도도 나왔으며, 애완동물에게도 신종플루의 증상이 감지되었다. 11월이 되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북반구에 있는 나라들에서도 신종플루로 몸살을 앓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사망자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 심각성에 대응하여 ‘중앙재난 안전대책 본부’가 국가전염병재난단계를 ‘심각’으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미진한 대책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신종플루의 대유행은 한국 공공의료가 부실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전반적인 한국 의료체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였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의료의 공공성을 줄이는 ‘의료서비스선진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경쟁원리를 도입하여 서비스의 질을 상승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의료법인 경영지원회사(MSO) 설립, 병원채권 발행, 병ㆍ의원 간 합병,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의료 기관 설립과 같은 것들이 의료 서비스를 선진화한다며 나온 정책들이다. 하지만 의료 부문에서 이러한 정책들을 이전부터 사용한 미국과 같은 나라의 의료 실상은, 영화 ‘Sicko’를 비롯해 여러 대중매체들을 통해서 알려진바 있다. 그리고 정부가 의료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정보를 누락시키거나,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는 등 추진과정에서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우리들의 건강을 둘러싼 위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일정한 지식과 실습을 갖추지 않은 보건의료 ‘비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저 질병이 자신은 비껴가주기를 바라기만 할 수도 있고, 정부를 압박하여 더욱 많은 의료적 지원을 확대하게 할 수도 있다.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 것인가? 여기에서는 ‘바이러스의 체내 침투 → 발병 → 바이러스의 제거 → 치료’로만 생각되는 보건의료 문제에서, 이를 넘어서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실천들을 논의하겠다.

2.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들이 다시 증가하고 북반구의 겨울은 신종플루로 인한 공포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신종플루가 전염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치사율은 독감보다 낮고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국가들이 겪고 있는 말라리아의 공포에 비하면 아주 큰 위험은 아니다. 그럼에도 신종플루는 몇 가지 지점에서 보건/의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전 세계적으로는 식량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돼지를 집단사육하고, 생태계의 파괴를 초래하면서 새로운 전염병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광우병 파동에 이어 자본주의적 식량 생산체계의 위험성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신종플루는 ‘빈곤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 질서가 혼란에 빠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지역에서 유행하였다. 이는 신종플루에 대한 항생제인 타미플루와 라렌자를 생산하는 로슈사가 지적재산권을 행사하며,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신종플루의 유행이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1, 2, 3차로 나누어지는 의료체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신종플루의 검진-치료를 어디에서 받아야 할 것인지 혼란이 생겼다. 이는 신종플루의 위험을 사전에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정부의 안일한 태도도 한 몫을 한다. 그렇지만 ‘저공급-저수가-저보장’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 보건의료체계가 근본적인 문제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위와 같이 신종플루가 전 세계적인 위협이 되고 한국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된 과정을 살펴보면, 이것이 개인의 신체에 대한 바이러스의 예방과 치료를 넘어서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근대 자본주의가 태동할 때부터 탄생했던 대규모의 유행병은 기존에 겪어왔던 건강에 대한 위협과는 다른 것이었다. 도시와 농촌이 분리되면서 대규모 단종 경작에 따르는 생태계 취약성의 증가, 도시와 인구 규모가 성장함에 따라 바이러스가 창궐할 조건이 만들어진 것, 전 세계적인 무역과 이동이 증가함에 따라 질병이 퍼져나간다는 점 등에서 그러하다. 대규모 유행병과 질병이 사회-생태적인 문제를 통해서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주류적인 보건의료는 '생의학적 모델'에 기초하고 있었다. 즉 질병은 개인의 몸에 침투한 바이러스의 작용으로 발생하고, 이에 대한 치료법은 역시 개인의 몸에 대한 항바이러스를 투입함으로서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개인의 몸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것이 조건이 되는 질병을 '감염성 질병'이라고 부른다. 1970년대 보건의료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생명공학기술과 의학의 발달로, 인류가 감염성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 더욱 강력한 내성과 복잡한 구조를 가진 바이러스들이 출현하였고, 종간 교차로 인해 발생하는 바이러스 역시 증가하였다. 지난 10년간 조류독감, SARS, 신종플루와 같은 세계적인 유행성 질병이 10차례나 발생하며 공포를 겪어야 했다. 물론 의학 기술과 공중 보건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이것으로 인해 대규모 사망사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경제 수준이 낮고 이로 인해 의료적 자원에 대한 접근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많은 지역에서는 고질적인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 그렇지 않은 지역이라고 할지라도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새로운 보건의료 문제로 인해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한편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보건의료는 새로운 문제에 맞부딪히게 된다. 자본주의적 노동 통제가 심화되고 이에 따른 스트레스와 육체적 부담은, 현대병과 각종 비감염성 질병의 위험을 한층 상승시켰다. 이에 따라 의료비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이는 경제위기와 결합하여 '보건의료의 위기'로 가시화된다. 이에 대해 신자유주의자들은 의료 체계의 비효율성이 문제였음을 지적하며, 보건의료 부문에 대해 기업의 원리를 도입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따라 공적 비용이 투입되던 보건의료 부문이 사적인 투자로 대체되어가고, 외부에 있는 금융자본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제약ㆍ병원 등 사적 의료자본은 세계적 인수ㆍ합병과 직접 투자를 통해 수익성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분야를 다면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결합상품들을 개발해낸다. 그리고 보험자본과 같은 금융자본의 영향이 증대하며, 이른바 '보건의료의 금융화 현상'이 나타난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한국에서도 '의료서비스 선진화 방안'이 추진되며, 의료분야에서의 공적 책임이 약화되고, 금융자본이 침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이는 그간 나타났던 한국사회 보건의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신종플루 사태에서 보았듯이 공적 의료 체계 아래에서 정부는,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양의 타미플루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로슈사에게 휘둘려야만 했다. 의료 민영화가 추진되고 공적 의료 체계가 붕괴한다면, 새로운 질병의 위험에 대해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신종플루 사태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나라가 의료 민영화가 상당한 정도로 추진된 미국과 멕시코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지금까지 이야기한 바와 같이 현재 보건의료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새로운 질병의 위험이 출현한다는 점, 공적의료체계가 붕괴하며 의료 민영화 현상이 강화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보건의료의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각종 사회-생태적인 쟁점들을 함의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응하여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불행하지만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보건의료 영역의 문제는 이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하는 일로 인식되기 쉽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손쉽게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 문제에 대해 사회-생태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현재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 바뀌어야 할 방향에 대해 인식하는 것으로도 상당한 진전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을 학생사회와 같이 우리가 있는 곳에서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한 집단적인 움직임, 그리고 보건의료 부문에서의 대안을 만들 수 있다. 어떤 지점들에서 어떤 인식을 공유해야 할 것인가?

대규모 유행병으로 인한 재앙은 민중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이지만, 초민족적 제약 자본들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무역관련 지적 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은 의약품 제조과정과 의약품 자체에 대한 특허권을 출원한 날부터 20년 동안 독점할 수 있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렇게 지적 재산권에 따른 지식과 상품의 독점은, 자연스럽게 상품의 가격까지도 초민족적 자본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 신종플루로 인해 로슈사가 엄청난 이득을 얻은 것, 말라리아에 대한 치료제를 개발하는 비용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제약 자본이 이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약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적 재산권의 성격을 확연히 보여준다. 우리는 정당화 되어 있는 초민족적 자본의 특허권과 지적 재산권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고, 민중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지식을 확산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만이 제약자본의 횡포를 막고, 의료적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모든 부문에서 금융자본이 배타적인 이윤을 추구할 수 있도록, 사회 체계 전반의 변화를 초래한다. 보건의료 부문 역시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고, 이것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의료 민영화이다. 효율성의 논리로 포장하며 추진하고 있는 의료 민영화 정책이, 민중들의 건강에 어떤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의료법인 경영지원회사(MSO), 거대 병원의 탄생, 병원 채권 발행 등은 보건의료 부문에 기업의 원리를 도입하는 것이다. 즉 보건의료 기관은 지금까지 당위적일지라도 천명해오던 민중들의 건강보다는, 이윤추구를 제 1의 목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의료서비스 선진화 방안'에 대한 명확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의료적 지원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신자유주의에 맞서야 한다.

우리는 현재 어떠한 체제 아래에서 살고 있는가? 자본주의 체제는 지난 수만 년간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거대한 생산력의 발전을 땅 속으로부터 끄집어내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는 거대한 인구의 증가와 이에 따른 도시화를 가져왔으며, 이를 부양하기 위해 사회와 자연이 맺는 관계를 변화시켰다. 이는 효율성에 바탕을 둔 대량생산체제였고, 가장 대표적으로는 단종 경작이나 대규모 축산 공장과 같은 자본주의적 식량 생산 방식을 가져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규모 질병이 발생했던 사례들은, 이러한 식량생산 방식이 생태계와 자연의 면역성을 파괴시키며 바이러스에 취약하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즉 자연과 사회가 맺는 유기적인 물질순환 메커니즘으로서 신진대사가 자본주의적 식량생산 아래에서 파괴되었고, 이 과정에서 민중들의 건강이 파괴되기도 하였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묵과될 것이고, 자연과 사회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계획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적 식량생산 방식을 변화시킬 방법을 마련하고, 자연과 사회의 유기적인 물질 대사가 이루어지는 신진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인류의 건강을 위해 요긴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이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모든 성과들을 파괴하고, 원시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회가 자연이 맺는 관계는 필연적으로 인류의 시각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지만, 이것이 꼭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적 방식일 필요는 없다. 새로운 관계를 마련할 사회-생태적인 인식과 전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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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진

2009/11/24 16:19 2009/11/2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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