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폭등의 배후세력, 투기자본에 대항하자!



기름값 폭등.


  6월 7일, 국제유가는 배럴 당 139달러로 폭등했다. 뉴스에서 거품이 꺼질 것 같다고 한지 이틀 만이다. 폭등 폭은 사상 최대였다. 여기저기서 “제 3의 오일쇼크” 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들려온다. 계속되는 유가 폭등이 낳은 결과는 사회 곳곳으로 침투했다. 석유류 제품이 특히 많이 올라, 5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001년 6월(5.0%) 이후 7년 만에 최대치인 4.9%에 이르렀다. 정부가 중점 관리한다는 52개 생필품의 경우 6.6%나 급등했다고 한다. 거품이 꺼질 것 같다고 말한 경제전문가, 물가안정이 중요하다고 52개나 관리 품목을 선정해주신 이명박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최대의 경멸을 담은 냉소를 날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유가 폭등의 결과가 삶의 질의 악화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대체 왜 이렇게 유가가 폭등하고 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모두 제각각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도 그렇다. 원인을 정확히 모르니 언제 오를지 내려갈지도 정확히 예상하지 못하고, 그저 요동치는 유가를 보며 뒷북치고 있을 뿐이다. 대체 무엇이 모두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유가를, 세계경제를 움직이고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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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후세력은 누구냐?


 우리는 유가 폭등의 여러 원인 중 핵심적인 배후세력을 밝힐 필요가 있다. (왜? 유행이니까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달러 약세로 갈 곳을 잃은 투기자본들이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은 올 초 애그플레이션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지적되었다. 그러나 당시에 투기자본의 영향력은 여러 원인 중 맨 뒤에 언급할 정도로 축소되었었는데,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 유가 폭등의 원인 중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은 석유 수요가 늘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잠시 유가가 내려갔을 때 온갖 공중파 뉴스에서 유가 상승으로 인해 수요가 줄 것이므로 이제 안정세로 들어갈 것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반박하고 있는 주장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일부 분석가들은 수급을 감안한 적정유가는 배럴 당 80달러에서 100달러 사이로, 유가인상은 수급 문제가 아니라 투기자금이 상품시장으로 몰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알리 이브라힘 알 나이미(All Naimi) 사우디 아라비아 석유장관은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며 불안하게 움직이는 이유는 수급(需給)이 맞지 않아서가 아니며, (투기자본이 득실거리는) 금융시장 탓"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의 국제 유가를 잡기 위해 사우디가 석유 생산량을 늘려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일본 산케이 신문 칼럼(일본 산케이 신문은, 한국 인사들이 가서 몇 번 망언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 대표적인 우익신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자. 이들도 더 이상 투기자본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에서도 투기자본의 유입을 우려하는 주장을 펼쳤다. 6월 4일자 칼럼을 보자.


원유가격 부분은 경제산업성이 작성한 2007년도 판 ‘에너지에 관한 연차보고’ (백서)에서도 가격의 1/3이상이 ‘수요 밸런스 이외의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투기자금의 흐름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 투기자금의 원류는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 서브프라임 문제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금융위기가 촉발되고 주식과 채권이 하락했다.

투기자금은 금융시장에서 원유와 곡물 등 상품시장으로 이동하면서 결과적으로 원유가격 상승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가격 상승은 원유에 국한되지 않고 식량 등 생활필수품의 가격을 끌어올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 일본경제도 소비가 억제되고 경기후퇴가 가속화될 정세이다.

 ...(중략)...

미국의 상품선물거래위원회는 원유거래의 감시강화책을 발표하고 일부거래에 시장 조작이 의심됨을 공표했다.


 지금 경제를 가장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투기자본들이다. 지난 뉴스레터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헤지펀드가 움직일 수 있는 돈이 G7 중앙은행의 돈을 모조리 끌어온 것의 몇 배가 된다는 것을. 그 많은 돈들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모기지 상품에서 빠져나왔다. 그 돈들이 지금 석유시장, 식량시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국제 원유의 흐름과 관련해 최근 두 전문가는 정반대의 진단을 내렸다. 영국-네덜란드계 국제 석유메이저 셸의 CEO인 제로엔 반 데르 베르는 5일 국제 석유시장과 관련해 “공급에 문제가 없다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많은 회원국들의 견해에 공감한다.” 고 이야기 했다. 또한 그는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여, “세계적으로 (석유)공급부족 문제는 없다”며 “중동에서 선적이 밀려 있지 않을 뿐더러 물량을 구하려 대기 중인 경우도 역시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월가의 ‘큰 손’ 짐 로저스는 확인된 원유 매장량이 달리기 때문에 유가가 몇 년간 강세를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누가 엄청난 유전을 발견하지 않는 한 유가가 계속 비싸질 수밖에 없다”며 “국제원유 가격이 배럴 당 150달러, 더 많게는 200달러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예상했다.

  이 월가의 ‘큰 손’ 이 한 말 중 ‘유가가 몇 년간 강세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사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를 비롯한 무수한 ‘큰 손’ 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더더욱 많은 돈을 원유확보를 위해 투자할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특별한 근거도 없이 150달러, 200달러로 오를 수도 있을 거라니, 이렇게 오를 정도로 투기를 계속하겠다는 뜻은 아닐까 생각이 들어 섬뜩해진다. 있는 식량도 없게 만들고, 있는 석유도 없게 만드는 것이 커다란 재주를 가진 투기자본, 이들이 바로 석유 폭등의 정말 제대로 된 배후세력이다.



사람의 말을 하자!


어제 나는 내 친구 L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은 그 자신과 가족들에게는 슬픈 일이다. 하지만 마을이나 고을로 보면 큰 일이 아니다. 더더욱 한 성(省), 한 나라 입장에서 보자면…….

L은 기분나빠하며 말했다. “그것은 자연(Nature)의 말이지, 사람의 말은 아니네, 자네 조심해야겠네.”

나는 그의 말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루쉰 산문집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중


  그들은 이상하게도 우리에게 항상 자연의 언어로만 말한다.  


  “1차, 2차의 석유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국민입니다.

 이번 고유가의 고통도 국민과 기업, 정부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현재의 고유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여 에너지를 절약하고, 에너지 사용 효율을 높이고, 신생에너지 산업을 일으키며 장기적으로 우리   나라의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높이는 계기로 삼는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8일 오전, 한승수 총리는 '고유가 극복 민생종합대책' 발표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발표문을 보는 순간 자신의 화물차에 타 분신을 시도한 한 화물노동자가 떠올랐다. 그들은 정말 쉽게 이런 말을 한다. 유가 폭등 전에도 적자운행과 신용불량에 시달리며 살아온 이들에게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라고 말이다!

  결국 화물연대는 6월 말로 예정하고 있던 파업을 앞당겼다. 기름값 부담을 견디지 못한 ‘생계 파업’이다. 화물연대는 기름값 폭등에 대한 대책 마련과 함께, 대형 운송업체와 화물주들에게만 유리하게 되어 있는 화물운송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8일 저녁, 이명박 대통령은 불법 ․ 폭력 촛불집회를 자제해 달라고, 경제위기니까 다같이 힘을 모으자고 담화를 발표했다. 광우병 쇠고기 말고도 여기저기서 우리를 더 이상 사람답게 살 수 없게 만드는데, 얼마나 더 희생해서 이 위기를 뛰어 넘자고 하는 것인가?

  자연의 말은 지금 남한 곳곳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때문에 절망해 자살을 택한 농민 앞에서, 기름값 밥값을 제하면 겨우 하루 1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트럭 과일 장수 앞에서, 한달에 100만원도 못 받고 일하는 비정규직 앞에서, 쿨 한척 하며 이건 작은 희생이고 곧 대한민국이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말은 이제 하지 말자. 대한민국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경제대국은 석유가격을 배럴 당 몇 십 달러씩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투기자본들이 눈길을 더 자주 주는 나라를 의미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투기자본이 떨어뜨리는 콩고물보다 그들이 파괴하고 나가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미국인들이 집을 잃은 것처럼, 우리도 무언가를 잃을 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안다.

  투기자본과, 그들을 유치하는 것이 희망이라고 믿는 자들에 대항해, 우리는 사람의 말을 하자. 건강하게 살고 싶다! 일한 만큼 받고 싶다! 가난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일한 만큼 받지 못하면 억울하고, 내 옆의 사람들이 가난으로 죽어 가면 가슴이 아프다. 왜냐면 우리는 투기자본이 배를 불리기 위해 일으킨 제3의 석유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린 배를 다시 졸라매는 너희들의 국민이기 이전에,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행진

2008/06/10 17:36 2008/06/1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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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한미FTA와 금융규제 완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면서,

펀드로 일확천금을 꿈꾸지 말자!

- 한미FTA와 금융규제 완화에 대하여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로 들썩이고 있는 와중에도, 정부는 계속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조치들을 하나씩 취하고 있다. 금융규제개혁심사단(이명박 정부 하에서 조직개편을 통해 새로이 생겨난 금융위원회에서, 4월 말 ‘새로운 금융규제개혁 접근방향’ 을 발표하고, 이후 위원회 내 “금융규제개혁심사단” 을 꾸려 규제완화를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금융경제개혁심사단”은 민간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금융회사 진입, 영업, 자산운용, 퇴출 등 4개 분야에 걸친 금융규제의 존폐여부를 심사한다.)은 23일 금융회사 업무영역 규제, 25일에는 금융회사 진입요건 규제, 29일에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관련 규제에 대한 심사결과를 발표했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개혁은 ‘규제완화’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은행이 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금융업을 손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심사를 거쳐 도출된 결론이다.

  원리는 잘 모르지만, 월급통장을 CMA통장(종합자산관리계좌를 가리키는 것으로, 예치된 자금을 채권에 투자하여 수익을 내는 금융상품이다. 최근 이를 이용한 고금리 월급통장을 상품으로 내놓고 있는데 이것이 CMA통장이다.)으로 바꾸면 돈이 늘어난다니까, 역시 원리는 잘 모르지만 펀드가 돈을 훨씬 빨리 불릴 수 있으므로 여윳돈이 생기면 무조건 펀드투자를 하는 시대에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규제완화가 뭐가 나쁘냐고, 광우병은 나쁘고 의료민영화도 문제인 것은 알겠지만, 이건 뭐가 안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명박이 설마 우리에게 좋은 일 하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금융규제 완화 조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한미FTA와 이 사안이 맞물려 돌아가는 매커니즘이 파악 안 되는 사람들 또한 태반이리라. 모두가 모르니까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금융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는 뭐가 뭔지 모르는 사이에 금융세계화 속으로 편입되었고, 지금의 모든 불행은 이 금융화가 초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말이다. 더 이상 모른 채 당하기 전에,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자.   


한미FTA와 금융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민주당을 비롯한 많은 야당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하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를 규탄했지만, 이것이 실은 한미FTA를 위한 선결조건이었음을 생각해보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반대하면서 한미FTA는 찬성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한미FTA는 양국의 비준절차를 거쳐 발효되면 물론 지금보다 훨씬 커다란 파급효과를 일으키겠지만, 그 전부터 한미 FTA의 정신에 맞게끔, 그리고 그 실현이 용이하게끔 한국의 제도를 차근차근 개혁해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미 FTA의 영향이 협상결과에 명시되어 있는 부분에만 미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화에 대한 이해는, 협상문의 ‘금융서비스’에 대한 부분을 넘어 그 전에 추진되는 여러 변화들만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그 각각이 낳는 효과를 따로따로 분석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한미FTA는 그 자체가 금융화를 위한 협정이고, 다른 여타의 협상 분야들은 그에 도움이 되도록 따라오는 것으로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다. 대체 금융화가 뭐길래 이것만이 살길이라고 이렇게 체질변화를 강요하는 것일까?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조금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1970년에 자본주의에 위기가 닥친다. 호황이었던 경제가 불황으로 돌아서고 실업이 증가했다. 사람들은 - 더 정확히 말하면 제도를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저 위에 있는 사람들! 지배계급들! - 케인즈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요새 모든 문제의 이유로 들고 있는 ‘신자유주의’ 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 ‘신자유주의’ 라는 말 안에 온전히 담아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이 방식이 금융자본의 권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으로는 수입이 보장되지 않자, 돈이 많은 이들은 공장에 투자해서 물건을 만들어 파는 과정을 기다리려고도 거기에서 고수익을 얻으려고 기대하지 않고,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곳, - 돈 놓고 돈 먹기가 가능한 바로 그 영역! -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의 영역을 강화하기에 이른다.

  초기엔 금융투자가들이 가장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금리인상 조치가 취해졌고, 뒤이어 다양한 금융상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금융화financiarization/financialization”라는 용어는 이러한 금융적 투자로의 새로운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금융부문(금융기업)의 규모는 그 수익성의 상승과 비례해서 상당히 증대되었다. 증권의 소유는 점점 더 뮤추얼 펀드와 연금기금과 같은 금융기관의 수중으로 집중되고 있다. 기업들은 더 이상 상품을 생산해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자산 가치를 높여 투자자들을 유치해서 돈을 벌어들인다. 주식시장에서 자산 가치를 높이려면 기업 간의 통합과 투자에 대한 규제철폐가 필연적이다. 이미 전 세계 경제가 실물경제 중심이 아니라 금융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GM도 자동차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금융산업을 통해 돈을 벌어들인다. 한국의 ‘현대’ 가 자동차뿐만 아니라 ‘현대캐피탈’ 로 돈을 벌어들이게 된 것과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FTA는 서로 잘 만들고 많이 나는 상품들을 사고파는 19세기 무역이 될 수 없다. 농업에서는 손해 봐도 자동차를 팔아서 상쇄하면 된다는 것은 따라서 한미FTA의 본질을 전혀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IMF구조조정 백배나 힘들어진다.” 라는 말은 한미FTA가 그만큼 강력한 금융화로의 체질개선을 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분야들은 나눠져 있지만 전 사회 전 영역을 금융자본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미 FTA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정말로 ‘금융’ 의 부분에서의 변화가 적극적으로 꾀해지고 있다. 금융규제 완화 조치가 바로 그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 금산분리 폐지, 헤지펀드 도입,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냐?!

 

 한미FTA 협상 타결과 비슷한 시기에 화제가 된 자본시장통합법부터 시작해서, 구체적으로 지금의 변화를 대표하는 제도들을 살펴보자. 구체적인 지식은 변화를 적확히 분석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2003년 3월, 금융통합법(은행, 증권, 보험) 제정 추진이 발표된다. 그리고 3년 뒤, 한미FTA 추진을 발표한 2006년 2월에, ‘자본시장통합법’으로 이름이 바뀌어 그 제정 방향이 발표된다. 한미FTA협상 타결 2개월 뒤인 2007년 7월, 자본시장통합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으나 공포 후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갖게 되어 2009년 초에 시행될 예정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은 ‘통합’ 이라는 말 그대로 여러 금융기관으로 이루어진 ‘자본시장’ 을 합치는 법이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종금사, 선물회사, 신탁회사 등의 금융기관들은 원래 각자 고유의 영역이 있어 판매하는 금융상품도 서로 다르고 적용받는 법도 제각각인데, 지금 이 각각의 자본들을 고유한 영역에만 규제하는 것을 풀고자 하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금융회사의 겸업이 가능하고, 관련 금융업을 다 다룰 수 있는 ‘금융투자회사’ 설립이 가능해진다. 이 회사의 상품과 영업 영역은 무한대이다. 자본시장통합법 이전에 금융산업은 자금중개의 기능을 맡아 왔다면 시행 이후에는 ‘금융투자회사’ 라는 명실상부한 금융자본이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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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참세상 「은행 ,증권, 보험의 무한도전 - 자본시장통합법이 추동하는 금융빅뱅」중)


 


  금산분리 폐지는 지난 3월 31일 금융위원회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금산분리 정책의 단계적 폐지를 밝힘으로써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 역시 말 그대로 현재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위한 제도들을 해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은 산업자본은 이미 금융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들은 각종 자산운용사, 보험사, 증권사를 소유하고 있다. 대부분 제2금융권이라 불리는 직접금융시장의 금융사들을 이미 산업자본이 손에 넣고 있다. 최근의 금산분리 폐지 조치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은행과 산업자본의 분리원칙을 깨고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조치다. 금산분리는 이미 깨진지 오래고 이제는 은산분리마저 깨겠다는 것이라고 지적받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문제는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그 은행의 돈을 마음대로 갖다 쓸 수 있게 된다. 예금을 한 사람들이 직접 통제할 수 없는 ‘눈먼 돈’에, 아무리 많이 빌려도 부도가 나지 않으면 기업의 소유구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돈’을 얻기 위해 산업자본은 은행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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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헤지펀드에 대해 보자.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30일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맞춰 헤지펀드 도입을 위한 1단계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헤지펀드는 100명 미만의 투자가들로부터 개별적으로 자금을 모아 위장거점을 설치하고 자금을 운영하는 투자신탁으로, 파생금융상품을 교묘하게 조합해서 도박성이 큰 신종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국제금융시장을 헤지펀드가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전 세계 헤지펀드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조지 소로스의 ‘퀀텀그룹’은 G7의 중앙은행들이 움직일 수 있는 자금규모보다 훨씬 많은 돈을 움직일 수 있다. 이 펀드의 사익을 위해 여러 나라에서 금융위기가 일어날 수도 있고, 위기가 일어났을 때의 국가가 위기를 해결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기존의 규제를 해체하려고 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규제들이 완화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금융규제개혁심사단’이 5월 말 연달아 발표한 심사 결과들을 살펴보자. 먼저 업무영역에서는 ○ 은행에 일반상품파생상품거래 및 파생결합증권 발행 허용 ○ 증권회사․신용카드사간 통합 제휴 신용카드 발급 허용 ○ 보험회사에 지급결제업무 허용 을, 진입규제 관련해서는 ○ 보험업 허가요건 및 보험회사 유지요건 완화  ○  예비 인․허가제도 등 진입절차 개선 등 진입절차를 간소화하는 여러 조치들을 발표하였고,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 신규펀드 설정 시 준법감시인의 확인 의무 폐지 ○ 신탁업과 집합투자재산의 보관 ․관리 업무의 임원겸직 허용 ○ 보험회사 임원의 자격 확인 관련 첨부서류 제출의무 완화를 심사결과로 제출하였다.

  이러한 규제 완화 혹은 철폐 조치의 특징은 첫 번째, 금융서비스 간의 경계를 계속 허무는 것이다. 자통법의 핵심 중 하나는 은행이 가진 지급결제 기능이 금융투자회사에 허용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보험, 은행 등 금융권별 업무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생기는 ‘금융산업’ 내의 구조 재편이다. 금산분리로 본래의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산업자본도 이런 금융서비스에 뛰어들게 된다. 심사결과 중 업무영역에 해당되는 부분을 보면 특히 잘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금융자본의 대형화, 겸업화이다. 앞서 말한 특징과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한 회사가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대형화도 쉬워지고, 겸업도 늘어날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렇게 되면 경제 내 여유자금을 금융시장으로 유도한 뒤, 금융시장에 모여든 자금을 경제 내 생산적인 부분으로 유통시켜 궁극적으로 경제전반의 생산성을 제고하는 효과를 가지고 오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금융시장에 모여든 자금이 생산적인 부분으로 유통이 잘 되지도 않을 뿐더러 생산부문에 자금이 투자되더라도 주주배당금 등을 제하면 산업자본이 성장할 만한 자본이 남지 않는다는 것 역시 역사적으로 증명되어 있다. (뒤메닐 ․레비 《자본의 반격》등 참조) 

  오히려 금융에 대한 규제 완화와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이 연계되어 추동하게 될 자본의 금융적 팽창은 국내 금융시장은 물론이고 실물경제의 버블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바로 이렇게 버블이 한 번에 꺼져 일어난 상황이 아니던가. 그러나 우리가 가장 최근의 이 사례에서 볼 수 있었듯이 이러한 실패로 인한 경제위기와 민생파탄의 책임은 가장 하층에 있는 사람들이 감당하게 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히스패닉과 흑인들이 집을 잃었듯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피해는 커다란 자본보다는 개미투자자들에게, 지배계급보다는 피지배계급에게 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구를 위한 금융화인가? 누구를 위한 규제완화인가?


누굴 위한 규제완화인가?

  “내 얘기 좀 들어 보쇼. 난 한글도 몰라요. 그나마 근근히 살았는데 IMF 지난 후에는 노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 노숙한지 7년 쯤 됐나. 근데 자다가 들고 나온 가방을 잃어 버렸어요. 주민등록증, 인감도장 다 들어있었거든요. 근데 2006년부터 무슨 우편물이 저한테 날아옵디다. 난 한글도 모르니까 처음에는 그냥 받아 두기만 했죠. 그러나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난, 써 보지도 못 했는데 누가 내 이름으로 1500만 원의 돈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기가 막히죠.”

  작년 11월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 에 모인, 금융화로 인한 여러 조치들 때문에 97년 이후부터 급증한 금융피해자들의 증언 중 일부다. 글을 읽을 줄 알고 고등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도 금융용어들 앞에서는 문맹이다.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금융위원회의 발표를 바로바로 분석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금융화로 인한 장밋빛 환상에 속고, 복잡한 현실을 분석하지 못하고 한미FTA 선결조건이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미리 막지 못했다.

  장밋빛 환상을 좀만 자세히 들여다보자. 펀드로 그래도 조금은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펀드 투자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더 넓게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봐야한다. 금융화로 힘을 얻은 투기자본들이 올해 원자재에 투기를 마구 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지금의 유가폭등도 수요가 늘어난 것이 주 이유가 아니라 투기자본의 원유로의 투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동네목욕탕은 문을 닫고, 물가는 여전히 폭등중이고, 화물차들은 멈춰 섰다. 이것이 금융화의 결과다. 이것이 우리들의 정직한 노동을 위협한다. 그들의 이익 때문에 우리가 먹고 못 살게 되었다. 이것이 금융화다.

  한미FTA에 대한 장밋빛 환상은 지금까지 유포된 것 중에 최고이다. 금융규제를 완화해서 외국자본을 유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금융규제를 푸는 것은 무엇을 자유롭게 해줄 것인가? 물론 금융자본이다. 금융자본의 자유가 보장되는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자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노후보장을 위한 보험 열개 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 어떤 펀드에 여윳돈을 넣을지 고를 자유? 하지만 우리에게 작은 그 자유가 나의 자유와 또 다른 누군가의 자유를 억압한다. 내가 국민건강보험만 가지고도 걱정 없이 살아갈 자유를, 연금만으로 노후보장이 걱정 없을 자유를, 그래서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현재를 저당 잡혀야 하고 지금 나의 삶을 나 스스로 온전히 결정할 자유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반대할 부분은 명확하지 않은가. 

  쇠고기 검역 기준 고시 이후 들고일어난 국민들을 보고, 정권은 놀라 우리를 어떻게든 눌러버리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그들의 계획을 지속시키고 있다. 규제완화조치도 마구 발표되고, 민영화 계획도 속속 논의되고 있다. 또한 이 순간에도 그들은 금융피해자들을 무능하다고 이야기하며 우리와 갈라치기 하고, 장밋빛 환상을 유포하면서 월급쟁이들도 잘 살 수 있다고 하면서 저들과 우리를 가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 나와 처지가 비슷한 다른 이들과 뭉치고 손잡을 수 있는 힘 - 연대의 힘! - 을 빼앗으려 한다. 거대한 금융자본 말고, 금융자본을 비호하면서 끝까지 좋은 쇠고기만 먹을 저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 말고, 노후 자금을 펀드로 밖에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 펀드할 여윳돈은 평생 꿈꿀 수 없는 비정규직들, 그리고 어디서부터 재개를 꿈꿔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금융피해자들까지, 우리는 모두 금융화의 피해자들이다.

  더 이상 무지로 인해 장밋빛 환상에 속지 말자! 더 이상 서로가 서로의 목을 조이는 금융화의 노예가 되지 말자! 그리고, 지금 쇠고기 투쟁을 통해 느끼는 너와 나의 연대를 지속하고 확장시키자. 한미FTA가 가져올, 금융화로 인한 재앙을 막고, 지금부터 다른 세계를 꿈꿔보자. 오늘 당신과 촛불을 함께 들었던 그 사람들과 함께.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 참세상 〈금융부문 규제철폐! 누구를 위하여? (1)>

- 참세상  <금융부문 규제철폐! 누구를 위하여? (2)>
- 금융위원회 홈페이지 (최근 금융부문 규제완화 관련 세부사항을 알 수 있음)


Posted by 행진

2008/05/31 17:31 2008/05/3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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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문맹 탈출 프로젝트 >>


최근의 경제위기와 인플레이션 사태 분석




남한에서 한 끼 식사를 가장 저렴하게 할 수 있는 라면. 지난 2월 말, 그 라면값이 50원 인상되었다. 그리고 인상 전, 라면 사재기가 일어났다. 물론 라면 한 개의 50원이 모이면 그렇게 작은 돈은 아니겠고, 몇 년 사이 500원에서 1000원에 더 가까워진 라면 가격에서 50원이 더 오른다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더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사회가 좀 더 여유로운 곳이었다면 이렇게 50원에 치열해져 미리 최대한 라면을 많이 사놓기 위해 머리를 쓰고 날짜에 맞춰 마트에 가는 일은 적지 않았을까. 라면을 미리 사놓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사회를 ‘알뜰한 소비자가 많은 곳’ 으로는 도저히 볼 수가 없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농산물 가격 폭등으로 인해 농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고 이집트에서는 배급되는 빵을 받으려 줄을 서는 과정에서 싸움이 나거나 쓰러져 사망자가 발생했다. 우울한 것은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이러한 식품 값 상승세가 10년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직후 밀 값에 이어 쌀값도 하루만에 30%가 가격이 오르는 등, 인플레이션은 점점 빠르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진짜 원인?!!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라면 가격이 50원, 100원씩 슬금슬금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예전의 소비자 물가가 완만히 오르는 것과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확실히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농산물과 그에 따른 식료품 가격 인상을 중심으로 한 인플레이션(이를 애그플레이션이라 한다. 애그플레이션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일반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고, 한국에서 상황이 이 정도일 뿐, 세계체계 속에서 이러한 인플레이션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곳들은 훨씬 상황이 좋지 않다. 한국에서 IMF의 구제금융 이후에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대대적인 보도가 나왔던 적은 거의 처음인데, 그만큼 지금의 인플레이션으로 드러나는 경제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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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히고 있는데,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유를 들면 ① 아시아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곡물 소비 증가 ② 바이오 연료 붐으로 에탄올 원료인 옥수수 가격 상승 ③ 지구온난화, 기상악화, 경작지 감소로 인한 생산량 감소의 세 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원인들은 분명 사실이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원인 만으로 하루 만에 쌀값이 30%나 인상되고, 이렇게 단 기간에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최근의 현상의 원인 중 어디에서나 ‘맨 마지막에’ ‘잠깐’ 언급되는 ‘유동성 증가에서 비롯된 투기자본의 유입’ 이라는 원인을 제대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곡물 재고량이 최저라고 하지만, 정말로 지금 이 ‘재고량 부족’ 이 지금 지구에 60억 명 분의 식량이 필요한데, 50억 명분 밖에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거대곡물회사인 카길이 남은 곡물을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곡물의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해 바다에 버리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지금 이 지구에서 무려 120억 명 분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짜 ‘주된’ 원인은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



‘유동성 증가에서 비롯된 투기자본의 유입’이 의미하는 바

매우 짧은 말이지만, 그리고 몇몇 경제에 밝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간단한 말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 말은 하나의 암호와도 같다. 대체 ‘유동성’ 은 뭔가? 유동성은 왜 증가하고 있는 것인가? 투기자본은 어디로 유입하고 있다는 말인가? 등등. 이것을 차근차근 풀어가 보자.

-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 암호를 풀기 위해서는 최소한 작년에 일어났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뉴스를 잘 챙겨보는 사람이라면 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경제 위기의 시작점이 된 사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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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택담보 대출(모기지대출)은 개인 신용등급에 따라 660점 이상은 프라임(Prime), 660점 미만 620점 이상은 알트-에이(Alt-A), 620점 미만은 서브 프라임(Sub-prime) 이렇게 3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이렇듯 서브프라임 모기지론(Sub-prime mortgage loan)은 신용조건이 가장 낮은 사람들을 상대로 집 시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대출을 해주는 대신 금리가 높은 미국의 대출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고금리’ 인 이 프로그램에 전 세계 투자 기관들이 돈을 많이 묻어놓았었다는 것, 그리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금리 인상 정책으로 미국의 부동산 투기 붐이 급격히 꺼졌다는 점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부동산 투기를 했던 이들이 고금리가 부담이 되어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손을 뗀 것이고, 그러자 주택 가격이 폭락하였다. 이에 따라, 서브 프라임 등급의 대출자들이돈을 빌릴 당시의 집의 시세보다 훨씬 떨어지게 되었고 이들은 집을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흑인, 히스패닉을 중심으로 한 서브 프라임 대출자들은 집을 잃었고, 투자 기관과 서브 프라임 모기지 회사는 손해 분을 감당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모기지 사태는 2007년 8월, 급락한 주택 시세로 인해 투자분을 회수하지 못한 미국 10위권인 아메리카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America Home Mortgage Investment)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전 세계적인 위기가 된 것은 모기지 업체 - 전 세계 투자기관 - 동네 은행의 고수익 펀드로 이어지는 연쇄 구조로 지금의 세계 경제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금융경제로 온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은 이윤율 저하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자본이 금융적 팽창을 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자.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바로 이 사태의 여파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다음으로 넘어가면 되겠다.

- 미국의 금리 정책

세계 자본주의의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의 통화정책은 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다른 나라들이 아무리 자국의 금리를 조정해도 미국의 통화정책에 비해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은 미국에 비해 콜금리를 계속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였는데 이도 금리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1년 IT 버블 붕괴로 인해 2003년까지 저금리 정책을 도입했으나, 2004년 6월부터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판단과 함께 1.00 % 였던 금리를 서서히 올려 2006년 6월 5.25% 까지 올린 이후 1년 동안 변동 없이 고금리 정책을 유지해왔다. (앞서 말했듯 이 고금리 때문에 부동산 투기 붐이 꺼졌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후인 2007년 9월부터 미국은 공격적인 금리 인하 정책을 취하고 있는데, 이전 금리 변동폭은 보통 0.25% 였는데 비해, 지금은 한번에 0,50% 혹은 0.75%씩 금리를 내리고 있다. 3월 18일에 다시 금리를 0.75% 인하하여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2.25%이다. 이를 1.5%까지 내리는 것이 미국 FRB의 현재 목표이다.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인하로 인해 통화량이 급격히 늘어났는데 (기본적으로 고금리는 통화량을 줄이기 위해, 저금리는 통화량을 늘리기 위해 취해진다! - 금리가 높으면 돈이 은행으로 몰리고 금리가 낮으면 돈을 은행에서 더 빌려가겠죠? ^^) 바로 이를 ‘유동성의 증가’ 혹은 ‘과잉유동성’ 이라고 한다. 보통 통화량이 이렇게 늘어나면 수요가 늘어나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는 것이 경제학의 보통 이론이다. 또한 이 미국의 저금리 정책으로 인한 통화량 증대 - 과잉유동성 확대가 바로 현재의 인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아직 암호는 반밖에 풀리지 않았다. 계속 가보자.

- 달러 약세

달러 약세는 2003년부터 지속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미국의 경기 침체 때문이다. 수출을 위해 일부러 달러 약세를 부추기기도 하고, 미국경제의 신뢰도가 약화되어 달러 가치가 떨어지기도 한다. 최근엔 공격적인 금리 인하가 달러 약세를 가속화하고 있다. 금리를 인하하면 투기 자본은 더 높은 이자를 찾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게 되는데,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팔고 다른 나라의 화폐를 사고자 하므로 달러 가치가 더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달러 약세가 원자재 가격 (석유, 금 , 농산물)의 상승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달러 약세가 지속되면 달러화에 픽스되어 있는 상품들의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달러가 약세인데다 인플레이션이 계속 되면 달러를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이 손해이므로 투기 자본은 달러를 팔고 다른 곳에 투기를 하기 마련인데, 바로 지금 투기 자본들에게 가장 좋은 투자처는 달러 가치가 떨어질수록 상대적으로 가격이 올라가는 석유, 금, 농산물인 것이다. 이것이 애그플레이션, 또는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모기지론 사태로 당연히 동네 은행의 투자 상품에 투자를 했던 한국의 사람들도 피해를 봤다는 것, 그리고 애그플레이션의 영향 역시 앞서 이야기 하였다.

여기에서 최근 요동치고 있는 환율 이야기도 잠깐 짚고 넘어가자. 이것도 앞서 설명한 것과 모두 연결이 되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에 빠져들면서 달러 유동성 부족 사태에 직면했고, 때문에 시장에 돈을 풀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외국 시장의 달러들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앞에서도 계속 나왔던 용어이지만 이 ‘유동성’은 기업의 자산을 필요한 시기에 손실 없이 화폐로 바꿀 수 있는 ‘안정성’을 의미하는 경제학 용어이다. 즉 유동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투자 대상을 바로바로 현금으로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여기서, 글을 읽으며 각 사안들의 연결고리를 잘 찾고 그림을 제대로 그려온 사람이라면,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분명 미국의 저금리 정책 때문에 ‘과잉유동성’ 상황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유동성의 부족 때문에 위기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문제는 통화량이 부족해서 유동성의 위기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인한 모기지 사태, 이를 이은 베어스턴스 부도로 갑자기 유동성 위기가 일어나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자본들이 이를 구제하기 위해 돈을 푸는 것이 아니라 다른 투기처로 이동할 뿐이고, 베어스턴스 등의 구제를 위한 미 정부의 저금리 정책이 역시 통화량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태가 아닌데도 돈을 시장에 푸는 것이 되므로 과잉유동성이 확대되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 내 부족한 달러를 어디에서 메꿀까, 라고 했을 때 한국이라는 신흥 시장이 가장 만만한 곳이라는 것! 이것이 세계적인 달러 약세에도 불구하고 한국 내에서는 달러 강세 - 원 약세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 발 금융위기에 매우 빠르게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국 투기 자본이 갑자기 원을 대규모로 팔고 달러를 사들여 최근의 환율급등이 일어났고, 이러한 급격한 환율변동으로 인해 한국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확대되었다.

이렇게 주식시장에서 외자 철수가 있지만, 또한 채권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이 그 몫을 늘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미국과 한국의 금리 차가 벌어져 그 사이의 재정거래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의 변동은 이 자금의 철수를 야기할 수 있고, 이러한 급격한 철수는 채권가격을 하락시키고 이자율을 급등시킬 수 있다. 최근 재정부는 금리 인하, 한국은행은 최소한 금리 유지로 물가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며 금리 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로 대립 중이다.



그들의 위기 극복 전략.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경제 위기는 한국의 이명박 정부의 인기를 하락시키고 있기도 하지만, 역시 전세계적으로 보면 식량위기에 처해 있는 나라들은 지배계급 또한 최대의 위기에 처해있다. 지배계급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민중들이 굶는 것’ 이 아니다. ‘민중들이 배고픔으로 인해 일으키는 소요’ 가 그들에게는 가장 큰 공포이다. 앞서 예를 든 아르헨티나, 이집트뿐만이 아니다. 예멘에서는 수도에서 수천명의 시민들이 물가안정을 잡지 못한 정부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고 아프리카 짐바브웨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의해 28년 동안 독재를 해왔던 여당의 지지율이 하락,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커다란 위기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대선 주자들간에 서브프라임 해법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을 정도로 지금의 사태는 쉽게 지배계급이 우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경제 살리기’ 하나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정부로서는 이런 대외적 조건을 어떻게 극복하고 경제 성장 6%를 달성하느냐가 큰 고민일 것이다. 우선 물가안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한 이명박 정부는 ‘생필품 52개 품목 집중관리’ 와 ‘곡물 ․사료 등 수입 원자재 관세 폐지’ 등을 그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모든 언론에서 ‘실효성 없을 것’ 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생필품 집중 관리’ 와 평상시 시행했다면 농민들의 반발에 부딪혔을 ‘곡물 관세 인하’를 해결책으로 제시한 뒤 결국은 현재의 인플레이션을 자신의 정책 기조와 맞게끔 활용할 수 있게끔 하는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물가안정이 7%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보다 시급해진 상황” 이라는 발언은 마치 자신의 기존 정책기조를 바꾼 듯한 느낌을 주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이명박은 23일 세계 4대 경제지와의 기자회견에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기업과 근로자들이 화합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 뿐”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과감히 역할을 줘야 한다는 관점에서 민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고 입장을 밝혔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이켜보았을 때 “기업과 근로자들의 화합” 은 생존권을 위한 노동자들의 파업을 억누르기 위함이었음을, “민영화를 통한 위기극복” 은 엄청난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생각해보라. 자본의 저항은 엄청나고 이미 올린 가격을 기업이 다시 내리지는 않는다. 결국 임금동결이 인플레를 막는 가장 쉬운 방법이며, 이미 많은 기업에서 올해 임금동결 조치를 취하고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지배계급은 경제위기를 또 다시 민중들에게 전가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앞에 서민들이 주로 사는 생필품을 관리해주겠다는 허울 좋은 정책을 방패로 한 채로 말이다.



기를 올곧게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 위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위기’ 에는 누가 그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좋을 때 우리에게 피부로 크게 와 닿지는 않지만, 경제 상황이 조금만 나빠지면 크게 타격을 받아 온 것을 떠올리면 답은 쉽게 나온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었지만 지배계급은 집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보다 파산한 금융회사에 대한 지원 대책을 세웠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는 회사 하나 파산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냐, 금융위기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노무현 집권기에 느리지만 국민 총생산이 서서히 증가했고, 결국 최근 누구나 잘 살게 될 거라는 기준처럼 여겨졌던 ‘국민소득 2만불’을 넘어섰지만 이상하게도 돈이 없어 식료품을 훔친 이들의 가슴 아픈 뉴스는 더 자주 인터넷 뉴스에 뜨는 것만 같다. 그렇게 느껴진다면 지금의 경제 상황에, 경제 정책에, 의문을 가져보자.

뉴스의 헤드라인에 ‘경제 성장보다 물가 안정을 중요시’ 한다고 떠도 내용을 들여다보니 결국은 그렇게나 비판받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지배계급이 위기를 어떤 식으로 전가하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다. FTA투쟁이 전국적으로 벌어졌을 때 ‘맞아, 다른 건 둘째치고 농민문제는 정말 심각하지’ 라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현재 ‘물가안정을 위한 관세인하’ 가 농민들을 다 죽이는 정책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이쪽과 저쪽문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지배계급은 어떨 땐 농민에게, 또 어떨 땐 소위 도시 중산층에게, 점점 위기를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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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비판하든 안 하든 결국엔 펀드 투자를 권하며 민중들을 모두 금융세계화 질서에 포섭시키는 것이 모든 경제뉴스나 경제지가 하는 일이고 그 속에서 서브프라임 - 미국의 저금리 정책 - 달러 약세 - 인플레이션 - 위기 전가의 방법을 제대로 분석해주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러한 경제기사에서 선동하는 ‘펀드 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다’ 는 것의 ‘누구나’ 가 왠지 뻥인 것 같다고 느껴진다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 속에서 도대체 어디가 거짓말인지를 찾아보자. 그러면 지금의 인플레이션의 진짜 주된 원인이 결국은 ‘투기 자본’ 이 농산물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투기 자본이 자신의 이윤을 증대시켜나가는 것이 경제 위기를 초래하고, 그 위기는 또 다시 지배계급이 아니라 민중들 개개인에게 전가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배계급의 만든 무수한 눈가리개를 걷어내고 이 구조를 온전히 볼 수 있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의 저항은 시작된다.

Posted by 행진

2008/04/01 02:10 2008/04/01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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