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분석]막 나가는 교육, 이래도 괜찮나?"

- 08년 대학교육 재편의 천태만상(千態萬象) -




1. 자본의 입맛에 꼬옥 맞춘 대학교육의 천태만상

대학교육에 대한 자본의 입맛은 까탈스럽기 그지없다. "대학 졸업자들을 기업에 적응시키는 재교육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둥, "전인교육도 중요하지만 기업 생리에 맞는 교육이 절실하다"는 둥 참 말이 많다. 과거 군사정권의 정당성 확보라는 정치적 목적과 산업자본의 수요 충족이라는 경제적 목적, 그리고 대중들의 계층상승 욕구가 결합되어 양적인 팽창을 거듭해왔던 남한 대학은 대중교육으로 자리잡은 지 이미 1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자본의 축적위기로 인해 이러한 ‘타협’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자, 대학이 이러한 외부적 환경과 수요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빌미로 대학을 재편하고 있다. ‘다양화/특성화’라는 명분으로 장사가 안 되는 대학과 학과를 대폭 없애고, 기업과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경제성장의 수단으로 탈바꿈시키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교육은 강산도 변한다는 그 시간 동안 변하고 또 변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데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정부였다. 양적인 구조조정과 편중된 재정지원을 통해 경쟁력 있는 소수만 살아남으라 하고,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하며 NURI사업을 통해 지방대학의 기업 예속화를 강요하면서 한편 교육개방을 통해 교육시장화를 촉진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은 현 국면에서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교육모순의 격화로 인해 표출될 수밖에 없는 대중의 불만을 호도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게 반영되는 데, 08년 대학의 캠퍼스에 펼쳐지는 풍경 또한 이러한 설명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까다로운 입맛의 기업들과 함께 만드는 맞춤교육

한창 '계약학과'가 인기란다. 성균관대는 올해부터 대학원과정에 '초고층·장대교량학과(Department of Mega Buildings and Bridges)'와 ‘임베디드소프트웨어학과(Department of Embedded Software)’를 신설하였다. 그리고 조만간 '보험금융석사과정'(MBA) 또한 개설할 예정이다. 서울대 역시 개교 이래 첫 계약학과인 ‘E-MBA(Executive MBA)’를 경영전문대학원 안에 신설하였다. 계약학과는 2003년 개정된 산업교육진흥법 및 산학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것으로서, 기업 혹은 정부기관의 계약을 통해 '실무형 고급 인재' 양성을 목표로 운영된다. 심지어 선발부터 교육과정 개발과 강사진 운영, 졸업생 채용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기획, 운영하거나 기존 계약학과를 직원의 재교육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각 대학별로 세부적인 차이가 존재하나, 기업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재를 교육시켜서 좋고, 대학은 그 반대급부로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따로 없다.

유행에 민감해져라! 학과 통폐합 리모델링

반면 기업의 입맛에 맞지 않는 메뉴들은 점차 메뉴판에서조차 치워지고 있는 추세이다. 연초에 성균관대는 지원자가 적은 사회복지학과를 폐지하려다 구성원의 반발로 취소하기도 했고, 성신여대가 삼성경제(!)연구소에 맡긴 연구용역을 통해 학사 개편을 추진하였다는 사실은 실로 낯 뜨거운 장면에 다름 아니었다. 동국대도 매년 학과별 평가를 통해 평가 결과가 낮은 학과에 대해선 정원을 줄이고, 우수한 학과엔 정원을 늘려주는 '입학정원관리 시스템'을 가동할 예정이다. 주요 평가항목은 입학경쟁률, 재학률, 취업률 등인데, 사실상 사회적 수요에 따른 구조 조정을 단행한다는 것이다. 예감했듯이, 대학본부로부터 정원감축을 통보받은 학과는 철학·사회학·물리학·수학·독어독문학·윤리문화학과·기계공학 등이었다.

이런 현상이 더욱 심각한 지방의 대구가톨릭대의 경우, 3~4년 전부터 실시중인 ‘폐과 예고제’를 통해 철학 등 기초학문 분야 10여개 학과를 이미 없앤 바 있는데, 지방대에서 시작된 폐과 방식의 대학 구조조정이 최근 국립대와 서울지역 사립대에 이르며 점차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과부도 취업률, 장학금 지급률, 교원확보율, 학생 충원율 등을 기준으로 평가해 각 대학에 재정을 차등 배분하는 '우수인력양성사업', ‘우수인력양성대학 교육역량 강화사업’ 등 갖가지 대학정책을 펼치면서 지원금을 미끼로 하여 비인기학과 위주의 구조조정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각 학교들의 학과 구조조정의 움직임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상위서열의 대학이라고 해서 '돈 안 되는 학문'에 대한 구조조정의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서울대 인문대학 또한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의 ‘3사(史)과 통합’을 예고한 바 있고, ‘인문학의 위기 극복’을 들먹이면서 학과 별로 세분화된 전공을 융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통합된 학문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일부 기대와는 달리 ‘학부제 전환’ 해프닝의 또 다른 버전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 재정지원과 연동된 정부의 강력한 구조조정의 시책으로 너도나도 학부제 체제로 전환하였다가, 지금에 와서는 원래의 취지에 맞는 제대로 된 내용을 교육하지도 못하고 인기/비인기학과로의 진입을 위한 경쟁만을 초래한 바 있다.

한편, ‘학문융합 추세에 맞춰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도입되어 올해 대학 수시모집에서 상당히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명품 전공’으로 부상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자유전공학부’이다. 각 대학에서도 자유전공학부 혹은 자유전공학부와 비슷한 성격의 학과 등 전형을 통해 우수 인재를 들여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학금 등의 각종 특전을 주고 지원을 집중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여기 지원하는 이들을 끌리게 하는 것은 고시 준비에도 유리하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 몇몇 대학들을 들여다보면 법학전문대학원이나 행정고시나 외무고시 등의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데 최적의 조건들을 갖춰 놨다. 로스쿨 진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편 재학 중 국가고시 합격자에게 장학금 지원 혹은 고시 관련 특강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기도 하며, 편법 논란을 피하기 위해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특히 일부 대학에서 이미 시행 중인 자유전공학부가 ‘취업전공학부’로 전락한 선례 또한 있는 마당에 실제 운영은 프리로스쿨, 프리메디컬스쿨, 혹은 고시준비의 과정 그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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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율’이라는 포장지, 까보니 ‘기업화’!

교육내용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최근 들어 사립, 국공립 할 것 없이 '기업화'의 흐름이 도드라지고 있다. 교육기관이 본업이라 할 수 있는 '교육' 보다도 오히려 '돈 벌이'와 '경제적 효율성'에 집착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대학들이여, 마음껏 돈을 벌라!

최근 노골적으로 사학의 영리행위 허용하고 있는 추세인데, 학교기업에서 백화점, 부동산임대업, 골프장, 도박장 운영 등의 업종을 통해 영리사업을 할 수 있게 길을 터놓았을 뿐만 아니라, 대학의 적립금으로 주식투자까지 허용하여 ‘자율’을 내세워 대학의 기업화를 전면 지원하고 있다. 교과부는 작년 대학들의 적립금 투자 규제를 완화한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을 개정하였다. 개정안은 대학 적립금의 최대 50%까지 수익증권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전체 사립대에 누적된 적립금은 6조 5122억 원(07년 현재)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50%인 3조가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 펀드 투자로 사용가능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실제 연세대는 이화여대와 함께 이미 03년 ‘삼성 아카데미 YES’펀드를 설립하여 ‘공격적인 투자’로 자금운용을 하고 있다. 그 외 대학들의 적립금 자금운용 현황(06년)을 살펴보아도, [고려대](적립금 3784억원) △정기예금, 채권 등 50~60% △사모펀드 20~30% △금융파생상품 5%, [서강대](적립금 1634억원) △정기예금 10% △회사채, 채권형 펀드, 양도성예금증서(CD),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어음 등 90%이며 심지어는 [서울대](적립금 약 2천억원) △채권 40% △주식 15%% △사모펀드 15%, △해외투자펀드 10% △머니마켓펀드(MMF) 10% △금융파생상품 10%의 상황이다.

며칠 전, 국내 최초의 대학기술지주회사 ‘HYU 홀딩스’가 한양대학교 내에 설립되었다. 한양대 산학협력단이 35억여 원을 출자해 설립한 ‘HYU 홀딩스’는 통화잡음제거 기술을 보유한 ㈜트란소노와 과학교육컨텐츠를 보유한 ㈜크레스코 등 2개 자회사를 통해 해당 업계의 기업체에 관련 기술을 판매하게 되며, 2012년까지 12개의 자회사를 설립, 매출 규모 조만간 자본금 100억 원대의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런 대학기술지주회사는 개정된 <산업교육진흥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대학이 직접 기업을 설립하여 대학연구 성과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지분의 51% 이상을 대학이 소유해야 하고 나머지 49% 이하는 외부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도 있다. 올해 초부터 서울대, 포스텍, 연세대, 고려대 등 10여 곳의 대학들도 ‘학문의 상아탑을 넘어 수익창출기관으로 거듭나겠다’며 앞 다퉈 설립을 적극 추진 중에 있다.

이러한 것들이 ‘록금 외에 별다른 재원확보책이 없는 대학들의 자구책이라 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등록금이 싸지거나 할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발표된 <대학자율화 2단계 1차 과제>의 ‘사립대학 교비회계 수입의 산학협력단회계 전출 일부 허용’은 대학등록금이 학교교육이 아닌 다른 곳에 사용될 수 있게 하는 방안이다. 국가나 지자체의 재정지원이 있을 경우, 매칭펀드(matching fund) 방식으로 교비회계에서 산학협력단회계로 전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산학협력단을 통해 사업을 하다가 손실을 입을 경우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조성된 교비회계에서 충당할 수 있게 되어 학생들이 애꿎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특히, 등록금 자율화로 등록금이 계속 오르고, 산학협력이 보다 강화되는 추세 속에 이런 경향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학교법인이 재산을 처분할 때 처분재산이 10억 원 미만인, 경미한(!) 경우 기존의 사전신고가 아닌 사후보고만 하면 되고, 재산처분의 보고가액도 상향 조정하여 앞으로는 보다 많은 액수의 학교법인 재산 처분을 용이하게 해줄 것이다. 이제 여타 사업들처럼 대학도 돈을 벌기 위해 설립하고 운영하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문 닫는 ‘영리법인’이 된 거나 마찬가지이다.

자율화의 최상위버전, 국립대 법인화!

교과부는 23일 국립대의 재정 운영 자율성과 효율성,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국립대학 재정ㆍ회계법(안)> 제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서울대 등 국립대의 발전기금은 현재 '공익법인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아 수익사업을 할 수 없고, 사용할 때도 관할 지역 교육청의 관리 감독을 받도록 되어있는데, 이르면 2010년부터 외부에서 기부 받는 발전기금의 경우 앞으로 특수법인을 설치해 교육 목적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채권투자나 부동산임대 등 수익사업 용도로 쓸 수 있게 된다. 또한 수익사업을 위해 교비회계와 산학협력단회계, 발전기금회계간 재원 간에 상호 전입/전출을 허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 투자한 외부자본에 대해서는 무상으로 건물 및 시설을 사용하여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길까지 터놓고 있다.

재정회계법은 사실상 국립대 법인화의 사전단계, 과정이라 불린다. 교과부는 전국 54개 국공립 대학 가운데 이미 여건이 되는 대학은 먼저 법인화를 추진하고, 그렇지 않은 대학은 재정회계법으로 돌파한다는 전략 속에서 촛불국면 속에 폐기된 <국립대학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올 하반기 법안을 국회에 다시 제출해 통과시킬 계획이다. 이 상황에서 서울대 이장무 총장은 지난 8월, “대학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9월 중 ‘법인화 추진 위원회’를 구성한 뒤 임기(2010년 7월) 안에 서울대의 법인화를 이뤄내겠다”고 밝혀 대학가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방대들은 “서울대 법인화 땐 지방 국·공립대 망한다”며, 애당초 독점적 지원과 지위를 가진 서울대가 독자적으로 법인화를 추진할 경우 기업 등의 대규모 기부 등 모든 돈과 힘이 서울대로 빨려 들어가게 되고, 이로 인해 지방의 다른 국·공립대는 존립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는 진단 때문이다.

교과부 말대로 ‘정부의 행정 규제가 대폭 축소된다는 점에서 높은 수준의 대학자율화’인 국립대 법인화는 국립대를 국가로부터 독립된 법인으로 전환해 인사, 조직, 재정, 운영 등의 자율성을 확보하도록 하자는 게 핵심이다. 국립대에도 경쟁과 자율의 운영방식을 도입해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립대 법인은 학내/외 인사가 참여하는 이사회가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고 총장은 최고경영자가 되어 대학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권한과 책임을 지게 된다. 최근 종종 튀어나오는 '총장직선제 폐지'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강력한 구조조정과 하나의 독립적 기업으로서 학교를 경영해나갈 CEO로서의 총장은 대학법인의 이익을 위해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여 학내 구성원들의 휘둘림 없이(!) 대학을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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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막 나가는 교육, 이러다 맛 가겠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교육, 대학의 ‘자율화’, ‘다양화’는 이처럼 천태만상(千態萬象; 세상 사물이 한결같지 아니하고 각각 모습·모양이 다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정부의 정책은 성공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을 제대로 들여다본다면, 이것을 결코 ‘자율적인 운영과 그 결과로서의 다양화’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양한 모습들이 ‘획일적’으로 대학의 기업화로, 대학교육의 기업예속화로 드러나고 있으며, 이 흐름을 가속화시키는 것은 결코 대학 구성원의 자율적인 동인이 아닌 재정지원이라는 미끼 혹은 학교발전이데올로기의 강조를 통한 ‘강제적’인 구조조정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학교육의 사사성(私事性)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지’로서의 대학은 온데간데없고 대학의 운영자들이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추진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고, ‘학문의 상아탑’도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허물고 대신에 산학협동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이 대학을 직접 지배, 통제하면서 ‘자본의 입맛에 맞는’ 지식생산만을 담당하고 있다. 반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고양하는 지식을 학습하는 모습은 대학가에서 나날이 모습을 감추고 있다. 이런 ‘우리의 입맛을 잃어버리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한 마디 내뱉을 수밖에 없다. “막 나가는 교육, 이러다 맛 가겠다!”

Posted by 행진

2008/09/30 15:38 2008/09/3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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