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경제위기, 어디에서 왔는가?
지난해 심각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곳곳에서 거대 금융자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최근엔 거대금융자본 - 초민족 은행 - 을 적으로 삼은 ‘인터내셔널’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자본주의의 심장을 적으로 삼는 영화를 만들다니 아이러니하지만 (게다가 정의의 편은 인터폴과 뉴욕지방검사라는 공권력이다!) ‘눈에 보이는 적을 해치워도’ 금융자본의 세계 지배는 계속되는 이 영화를 보고 관객들은 “아무리해도 세상은 안 바뀌는군.” 하고 돌아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 액션영화에 비해 폭력성․선정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이 영화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매긴 것은 금융자본을 비판하는 어떤 내용의 영화도 최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싶은 정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일 게다.
어설프게 초민족 금융자본을 비판한 영화와는 달리 10년도 전부터 진지하게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분석하며, 금융위기가 초래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파괴를 막고자 했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해 온 경제학자들, 대안세계화 운동가들이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는 금융자본의 지배가 쉬워지게끔 온갖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을 밝혀 케인즈주의 하 큰 정부, 신자유주의 하 작은 정부라는 허구적인 쟁점을 해체하려 하였고,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에 맞선 시위를 조직하고 세계사회포럼을 개최하여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화가 전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으며, 금융자본을 비판할 수 있는 경제지식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교육 사업을 진행하여 비판적 시각과 저항의 언어를 민중들에게 돌려주고자 했다. 남한 전체가 경제위기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적 시각’과 ‘저항의 언어’ 가 절실히 필요하다.
1. 경제위기가 도래한 이유
대학생인 나에게 최근 가장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제 이슈는 뭘까? 우선 몇 달 전에 비해 엄청나게 급등한 환율로 인해 성인이 되어 해외에 한번 나가보겠다는 꿈은 저 멀리 사라졌다. 몇몇 등록금을 동결한 대학이 그 사실을 자랑스레 떠벌리고 있지만 사립대학 등록금은 평균 7.1% 상승하여 물가상승품목 중 상위권을 차지했다. 설상가상으로 자취비용도 점점 더 많이 들지만 부모님의 월급은 동결되거나 삭감되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청년실업이 문제된 것이야 옛말이지만,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1년짜리 일자리인 ‘청년인턴제’ 이고, 돈 많이 벌 때 임금 팍팍 안올리던 대기업은 위기가 오니까 대졸자 초봉을 깎을 ‘결의’를 했다. 누구든 여기에 몇 줄이고 더 힘든 경제상황을 나열할 수 있겠지만, 이쯤에서 그만하도록 하자. 어쨌든 이렇게 아직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삶, 그리고 미래까지 팍팍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작년 9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이후로 점점 더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리먼 파산과 더불어 메릴린치, AIG와 같은 투자은행과 보험회사가 매각되거나 국유화되더니, 지금은 메릴린치를 인수하면서 더 세를 키울 거라 여겨졌던 BOA(Bank of America)와 거대금융그룹이었던 시티은행, 미국경제를 선도했던 GM과 GE까지 주가가 폭락하면서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가 시작된 이후로 진행상황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지경에 이른 ‘원인’을 찾을 수는 없다. 조금 더 앞으로 돌아가, 2000년 이후 핵심 키워드를 가지고 위기의 원인을 찾아보자.
IT붐
2000년, 미국은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 말기, 한창 고어와 부시가 대통령 선거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김대중 정부 하에서 엄청난 구조조정을 통해 IMF위기를 막 극복할 즈음이었다. 지난 몇 년간 세계경제의 희망은 IT산업이었다. 재정적자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역플라자 현상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많은 양의 자본이 들어오는데, 이러한 자본이 당시 각광받는 산업이었던 IT관련 주식으로 몰리게 되고, IT분야를 중심으로 미국의 주식시장은 크게 성장한다. 당시 Yahoo와 같은 포털사이트 주식이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산업혁명과 IT를 비교하며 산업혁명에는 뒤졌지만 IT혁명에는 뒤질 수 없다며 컴퓨터와 인터넷을 빠르게 보급, IT벤처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IT붐을 보고 ‘신경제’라 일컬으며 희망을 갖던 사람들은 그러나 IT붐은 새로운 경제발전 메커니즘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만들어낸 거품(버블)이었음을 곧 깨닫게 된다. 어떤 산업이든 기업이든 주식이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되면 버블이 생겨난다. 주식의 평가기준은 모호한데, 사람들은 ‘미래수익’을 예상하며 주식에 투자하고, 그러면 그 종목에 또 돈이 몰리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의 특성 상 실물영역에서 수익을 내는 것보다 훨씬 단기적인 수익이 많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이미지’를 잘 설정하여 가치를 순식간에 높이고 거기서 발생하는 주식의 차액을 챙기는 것이 최근 주식투자의 공식이기 때문이다. IT기업들의 가치는 다른 기업보다 훨씬 가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 대체 인터넷 안의 가상공간은 어느 정도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느냐? - 특히 과하게 고평가된 측면이 있었다. 버블은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고, 2001년 IT주가는 크게 하락, 결국 신경제는 붕괴한다.
부동산의 증권화
IT붐이 꺼지자 미국은 즉시 경기침체에 빠져든다. 여기에서 미국의 FRB는 조치를 취한다. FRB는 오랫동안 경기침체기에는 저금리 정책을 통해 돈을 시중에 풀어 경기 활성화를 꾀하고, 호황기에는 고금리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고자 해 왔다. 의도한 대로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많이 빌려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렇게 돈을 빌려서 어디에 투자하느냐가 문제이다. FRB의 저금리 정책은 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어온 부동산 호황과 맞물린다. 시장에 풀린 돈은 부동산시장으로 몰리게 된다.
그렇다면 미국 경제의 침체기에 왜 부동산경기는 계속 호황이었을까? 그 이유를 살펴보자. 미국 정부는 다양한 세금제도상의 특전과 보조금으로 주택소유를 지원해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도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는데 여러 혜택을 주었고, 모기지(주택저당금융)론이 바로 그러한 방법이었다. 즉 사람들은 국가정책의 도움으로 부채 증가를 통해 소비를 늘리고 있었는데, 부동산도 그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저금리정책의 영향을 받아 2002년부터 주택경기는 더욱 활성화되고, 모기지론이 급증하게 된다. 그 중 특히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의 비율이 크게 늘어나, 2002년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의 3.4%만을 차지했던 서브프라임 등급은 2006년 말에는 13.7%가 된다.
이 모기지론이 최근 금융위기의 핵심에 있다. 2002년 이후 금융혁신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여러 파생상품들이 생겨나는데, 이 금융혁신의 핵심이 바로 ‘부동산의 증권화’이다. 같은 대출이지만, 남한에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다면, 미국은 모기지 회사에서 대출을 받는다. 모기지 회사는 은행이 아니라 모기지론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특수한 금융기관인데, 은행이 아니므로 사람들의 예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발명해 낸 것이 바로 모기지를 증권화하여 증권회사에 판매하는 방법이었다. (증권회사는 이것을 가공하여 다른 금융기관에 판매한다.)
모기지회사와 증권회사가 판매하는 증권이 바로 파생금융상품의 일종인 ‘MBS(주택연계증권)'와 ’CDO(부채담보부증권)' 이다. 이러한 증권과 이 증권에서 파생된 또 다른 증권 등이 전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갔고, 세계경제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자, 모기지 회사, 증권회사, 금융기관, 기관투자가를 비롯하여 증권에 투자한 모든 사람들의 순으로 긴밀히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2007년부터 우리 눈으로 확인했듯이 무너지기 쉬운 연쇄 구조였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금융혁신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채 비율이 급상승하고 있던 것과 동시에, FRB는 2004년부터 2006년 중반까지 여러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1%에서 5.25%까지 인상시켰다. 그러자 결국 주택거품이 폭발했다. 주택판매, 주택건설, 모기지 대출, 주택가격이 모두 급락하기 시작했다. 2007년 2∼3월 모기지 대출회사의 부실화와 파산 위기라는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의 태풍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이자율 상향조정의 첫 번째 물결이 강타했다. 금융위기의 신호탄이 쏘아진 것이다.
모기지 대출은 보통 3년 이상 운영되며 3년 이후에는 변동금리로 전환된다. 저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서브프라임 대부기관은 처음 2년 동안의 1% 수준의 매우 낮은 미끼금리가 이후에 변동금리가 적용되면 18% 수준까지 재설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았다. 즉 많은 사람들이 빌릴 당시의 금리가 낮았어도 몇 년 후 변동된 금리대로 돈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모른 채, 주택가격의 상승이 낮은 금리를 상쇄해줄 것이라 믿고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계부채를 계속 늘려왔다.
그런데 금리는 올라가고, 그로 인해 부동산 거품이 꺼져 주택가격이 하락하자 서브 프라임 등급의 대출자들이 돈을 빌릴 당시의 집의 시세보다 훨씬 떨어지게 되고 이들은 집을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흑인, 히스패닉을 중심으로 한 서브 프라임 대출자들은 돈을 갚지 못하여 담보로 잡혀있던 집을 잃고 (당시 연체율이 약 20%로 급상승한다.), 역시 빌려준 돈을 제 기간에 받지 못한 투자 기관과 서브 프라임 모기지 회사도 타격을 입었다. 2007년 4월, 미국 제2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회사인 뉴 센트리 파이낸셜이 파산 신청을 내는 것을 시작으로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가 시작된다.
2007년 8월, 미국에서 역시 급락한 주택 시세로 인해 투자 분을 회수하지 못한 미국 10위권인 아메리카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America Home Mortgage Investment) 역시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프랑스계 투자은행 베엔뻬 빠리바가 서브프라임 관련 두 종류의 펀드에 대한 환매를 중단하자 세계적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채권과 관련된 파생금융상품의 가격폭락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MBS 시장이 사실상 소실되었고, 이는 모든 층위의 부채담보부증권(CDO) 시장을 동결시켰다.
앞서 언급했던 연쇄구조는 빠르게 무너진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회사들이 순식간에 파산위기에 몰리고, 주가가 하락하면서 주식에 투자한 개인들도 손해를 입고, 금융에서 시작된 위기가 실물경제까지 영향을 미쳐 실업이 늘어나고… 하지만 이렇게 금융업에 너무 깊게 발을 들여놓은 회사들이 파산하고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금융은 모든 경제영역과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왜 평범하게 일한 사람들이 소위 ‘금융의 탐욕’으로 먹고 살 권리를 빼앗기게 되는 걸까? 우리는 어느새 금융자본에 지배당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필요하다.
2. 왜 금융자본이 경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나?
때는 70년대, 미국에서는 71년 닉슨이 금창구를 폐쇄하였고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났으며 미국이 베트남과의 정전을 합의한 2년 뒤인 75년에 베트남 전쟁은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이 난다. 70년대 들어 케인즈주의는 약발이 안 먹히기 시작했고 그동안 케인즈주의를 비판해왔던 세력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를 ‘신자유주의’라 부르기 시작했다. 결국 1979년, ‘불의의 일격’ 또는 ‘볼커의 반혁명’ 이라 불리는 사상최대의 금리인상이 이루어진다. 남한에서 70년대는 박정희의 시대였다. 79년, 그의 독재는 부마항쟁을 비롯한 민중들의 저항이 아니라, 김재규의 총성으로 끝마치게 되었다. 우리는 아주 나중에서야, 70년대 말에 박정희가 그의 경제정책을 발전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바꾸려 했던 것, 그것이 79년 4월에 실시된 ‘경제안정화종합시책’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국의 대공황 이후 억압받고 있던 금융자본이 반격을 꾀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70년대이다. 보통 70년대를 신자유주의의 과도기, 80년대부터 본격화된다고 본다. 초기에는 대부자본(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이익을 취하는 자본) 중심의 금융세계화가 진행된다. 이를 또 두 가지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73~79년의 저금리 대부자본 중심의 금융화, 두 번째는 79년부터 86년까지의 고금리 대부자본 중심의 금융화이다. 마지막 단계인 86년 이후부터는 증권시장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가공자본 중심으로 금융화가 전개된다.
대부자본 중심의 금융화
70년대 초반, 미국 경제는 자국 내 투자가 기대한 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자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이제 막 고도성장을 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산업자본에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79년까지의 저금리는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에 다다를 정도의 초저금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은행이 입는 손해는 커지고, 이와 동시에 달러가 시장에 엄청 풀리고 여러 가지 국제 정세가 더해져 달러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한다. 이에 대해 미국 재무부는 특단의 조치를 택한다. 이것이 79년 ‘볼커 반혁명’이다. 이로부터 금융화의 두 번째 국면이 전개된다. 이 조치로 인하여 마이너스였던 실질금리는 82년 최고 8~9%까지 상승한다. 금리가 높으니 당연히 전 세계의 달러들은 다시 미국으로 집중되기 시작하고, 금리가 높아지니 제 3세계 국가들은 갑자기 엄청난 이자를 감당해내야만 하게 되고, 결국 산더미 같은 빚을 감당하지 못한 채 ‘외채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더 이상 빚을 갚을 능력도 없는 제 3세계 국가들은 국가파산을 하거나 아예 돈 갚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구제금융조치와 모라토리움 선언들을 떠올려 보면 된다.) 이렇게 남미를 중심으로 제 3세계 국가들의 경제는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자 초기엔 고금리를 받았던 은행들도 위기에 처한다. 돈을 빌려간 사람이 파산신고를 하고 더 이상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하면 은행은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고금리에, 가뜩이나 산업도 잘 되지 않으니 새롭게 돈을 대출하지도 않는다. 빌려가는 사람도 없고, 돈을 빌려간 사람은 돈을 갚지 않아 미국의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기 시작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금융화의 단계는, 86년 무렵, 즉 대부자본이 줄줄이 파산하고 고금리 정책이 끝이 나는 시기부터 시작한다. 이전에 산업자본들은 대부분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재정을 마련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금리가 높으니 은행에서 더 이상 돈을 빌려서 쓰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그 재정은 어디서 마련하게 되었을까? 미국의 법인자본이 생겨날 때 취했던 방법, 바로 주식을 발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86년 이전에는 ‘유로달러’ 시장으로 재기를 노렸던 영국이, 이번에는 자국의 주식시장을 전면적으로 개방하고 각종 금융규제 조치를 철폐 하는 ‘빅뱅’을 일으켰다. 이에 각국도 앞 다투어 주식시장을 개방하고 금융규제를 없앰으로써 이제 은행 중심의 금융화 국면은 끝이 나고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화가 도래하게 된다.
가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사회로
이제 가공자본, 즉 주식시장이 경제를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 이전 시기는 대부자본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형식, 은행이 중심이 된 금융세계화였다. 반면, ‘가공자본’ 이란 말은 현실의 가치를 가지지 않고, 장래 수익을 낳게 하는 원천으로서 가공적인 자본의 형태를 말한다. ‘미래소득에 대한 청구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대부자본과 다르다. 대표적인 것이 주식인데, 예를 들어 내가 어떠한 주식에 일정한 돈을 투자를 하면, 투자한 돈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낸 이윤에 대해 자신이 투자한 만큼의 돈을 받게 된다.
그러나 주식은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데, 한편으로 금융자본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주식을 사야 산업자본이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공자본(주식)을 통해 주주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배당금, 경영권, 시세차익이다. 본래 금융세계화 전에는 앞서 설명한 대부자본을 비롯하여 배당금, 시세차익을 노린 가공자본의 이동이 철저히 금지되고, 경영권만을 목적으로 한 가공자본의 이동은 허용된다. 여기서 배당금과 시세차익을 노린 주식투자를 금융적 목적의 주식투자, 즉 포트폴리오 투자라 하고 경영권을 목적으로 한 주식투자를 산업적 목적의 주식투자, 즉 해외직접투자(FDI)라 한다. 이 두 형태의 가공자본을 구분하는 기준은 조금 애매한데, 다소 인위적인 기준을 설정하여 대충 10% 또는 15% 정도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면 금융적 목적이 아닌 경영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자로 간주되어 허용된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핵심은 이러한 가공자본을 비롯한 금융에 대한 규제를 없애는 것, 즉 금융해방이다. 지금까지 대부자본(은행)이나 가공자본(주식)에 가했던 온갖 규제들을 풀고 자유화하는 것인데, 국제적 이동 뿐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그러하다. 예컨대 은행은 과거에 주식시장에 투자하지 못했으나 점차 이를 가능케 하고, 이자율의 상한선 규정도 풀리고, 은행이 부동산시장에 투자하지 못했던 것을 풀고, 이런 세세한 제도들을 하나하나 다 없애가는 것이다. 미국에서 글래스-스티걸 법은 80년대부터 점점 해체되어가다, 99년에 완전히 폐지되었고, 남한에서는 겸업은행을 만들고자 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최근 발효되었다. 물론 그 전부터 각종 규제가 해체되어 왔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규제를 푸는 목표는 물가나 환율의 안정을 통해 금융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앞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해서 이야기했는데, 60년대 말에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초민족 법인기업은 외형상으로는 산업자본이지만 금융그룹처럼 움직이게 된다. 즉 ‘산업을 지배적인 요소로 하지만 금융그룹’ 이 되어간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인 GM, 가전제품회사인 GE 등도 금융적 활동을 통해 돈을 벌었고, 바로 최근까지 금융부문에서 낳는 이윤이 4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이 회사들의 위기는 이러한 금융부문으로의 무분별한 확장이라고 이야기된다.) 남한에서도 쉽게 예를 찾을 수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인 현대에서 ‘현대 캐피탈’이 나오고, 이 활동으로 많은 이윤을 남기는 사례가 그러하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금융자본의 이익이 여러 제도와 이념을 통해 비호되고, 전통적인 산업자본도 금융그룹의 성격을 띠면서, 금융은 거의 모든 부문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삶 구석구석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금융의 헤게모니 역전 전략은 사회제도도 변화시킨다. 단적으로 IMF구조조정과 같이 위기에 처한 국가의 체질개선 조치가 있다. 선진국들은 위기에 처한 제 3세계 국가들을 도와준다는 명목 하에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국가경제의 구조를 바꾸도록 종용한다. IMF는 외채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돈을 갚기 위한 효율적인 경제구조로 재편하라는 압력 또한 가한다. 여기서 말하는 ‘효율적인’이란 얼마나 그 나라에서 돈이 나오느냐, 이지 그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잘 사느냐가 아니다. 따라서 구조조정은 보통 사람들에게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M&A (기업들을 인수, 합병하는 것)를 보자. IMF에 의한 인수합병 절차는 단순히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하나로 뭉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업들을 정리 및 다운사이징하여 금융적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투자 가치를 상승 시키는 것이다. 또한 해고와 임금삭감을 통한 구조조정은 위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수많은 위기극복 전략 중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가장 고통을 많이 전가하는 방식이었다. 그 뒤에 다시 승승장구한 기업이 많았지만, 매번 ‘IMF보다 힘들다’는 말들이 나왔던 것을 떠올려보자.
또한 각국의 금융시장들은 철저히 개방된다. 물론 여기서 명목은 그 나라에 투자를 유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개방된 그 나라의 주식시장에 거대자본들이 들어와서 거품을 형성하여 재미를 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이제 ‘신흥공업국’ 은 ‘신흥시장’으로 변화하는데, ‘신흥공업국’이 산업 영역에서 새롭게 부상한 국가를 뜻한다면, ‘신흥시장’ 은 새로운 ‘주식시장’ 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신흥시장이 바로 남한과 대만이고, 이러한 국가들에서 외국자본은 자국에서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 바로 자본을 회수하고, 최근이 바로 그러한 상황이다. 환율이 몇 달 사이에 두 배 가까이 폭등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신흥시장에서 외환위기의 위험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각국의 목적은 자신들의 나라를 금융자본이 들어오고 싶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외국자본들에 의해서 자국의 존망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제 3세계 국가들은 점점 더 금융화를 가속화하게 된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위험요소를 더욱 끌어들이는, 생명을 건 줄타기를 하며 생존해나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3. 사이비 대안 말고 진짜 대안을!
우리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많은 것들을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30여년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처럼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이 흐름이 당연하다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 왔다. ‘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우리도 막을 수 없어’ ‘이것 말고 무슨 대안이 있단 말이야?’ 등등의 얘기들을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혹은 윽박지르면서 말이다.
위기가 심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추진했던 세력들도 뭔가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 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정책으로, 온갖 언론에서도 이 정책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본은 하나도 내주는 것이 없이 노동자들이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면서 해고를 막는 방법이다. 위기의 부담은 노동자들이 나눠서 지는 것이다.
청년실업이 더욱 심해지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청년인턴제도, 1년짜리 비정규직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우습게도 한나라당 김문수 같은 자들이 청년인턴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도 나이든 노동자들이 빨리 일자리를 그만두고 그 자리를 젊은 사람들로 채우라는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또 다시 노동자 내부에서의 싸움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경제학자들과 활동가들은 이러한 사이비 대안이 아니라, 진정한 대안을 찾으려 해 왔다. ‘위기라고 해서 사람들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면 안 돼. 기업에 투여하는 공적자금을 평범한 사람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금으로 주자.’ ‘돈 많은 사람만 더 돈을 많이 불릴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해. 금융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많이 걷자.’ ‘이런 상황을 우선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해. 교육 사업을 하자’ 등등으로 말이다. 이런 시도 중 현실화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으로 유럽에서는 자본의 이익을 비호하는 유럽헌법을 부결시켰으며, 남미에서는 FTA와는 다른 대안무역협정을 맺기도 하였다.
남한에서는 아직 크게 이렇다 할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의 활동가들은 WTO협정에 반대하는 남한 농민들의 활동으로 희망을 얻기도 하고, 몇몇 이들은 작게나마 자신의 권리를 찾기도 했다. 너무나 거대한 문제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는 대안은 실은 가장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우리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아지려면 어떻게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가? 어떤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하는가?’ 이렇게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가보자.
이 글에서 ‘금융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사람들의 삶을 팍팍하고 만드는 원인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는 이 원인에 맞선 실천을 고민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공부를 해갈수록, 그리고 구체적으로 노동자 민중이 어떤 부분에서 힘에 겨워하고 있는지를 직접 보고 알아갈 수록 우리가 무엇에 맞서야 하는지가 명확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의 결론인 ‘금융자본에 맞서자!’라는 막연한 방향성은 점점 더 구체화 될 것이다. 출혈적인 경쟁만을 해 왔던 지금까지의 삶의 원리를, 더 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삶으로 만들어가자. 그러면 우리의 세계는 더 크게 열릴 것이다.
Posted by 행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