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를 꿈꾸는 대학생들을 위한 "서평 아카이브"

* 아카이브 _특정 장르에 속하는 정보를 모아 둔 정보 창고

전국학생행진의 <서평 아카이브>에서 다른 세계를 꿈꾸는 대학생들을 위한 책을 소개합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서점에 가보면 여전히 새롭게 출판되는 책들은 넘쳐납니다. 이 책의 홍수 속에서 우리에게 다른 세계의 전망을 밝혀줄 책은 무엇일까요? 여러 학교의 필진들이, 교양서, 학술서, 신간소개, 절판되었지만 꼭 읽으면 좋겠는 책들을 간추려 서평 형태로 소개합니다. 매 뉴스레터마다 소개되는 책들을 눈여겨보고, 직접 찾아 읽으면서 대안 세계로 향한 힘찬 한 걸음을 내딛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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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춤을 추는 시대가 아니라
다른 모습도 자연스러울 수 있는 시대를 꿈꾸었던 <프라하의 소녀시대>


같은 땅을 딛고 서있지만 다른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은 누구에게나 호기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그녀들의 삶에 대하여 호기심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넘어 인간으로서 연대의 감정을 갖는 사람은 드물다. 작은 남한에서 태어나 경기도 부천시의 작은 동네가 전부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 다른 문화 속에서 다른 말을 하며 살아가는 이국 사람들도 모두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사실상 정부가 없고, 교통질서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길거리가 곧 집인 베트남에 갔을 때 이곳이 ‘제 3의 다른 곳’이 아니라 ‘여기도 바로 이 자체로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바로 내 옆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숨쉬고, 먹고, 자고, 이야기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뚜렷한 자아가 형성되기 전 까지 십 수 년 동안 받아온 교육의 힘이란 실로 거대하다. 대한민국에서 초중등 교육을 이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생각, 국가와 민족에 대한 생각이 비슷비슷하다. 우리는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배우며 자란 소년 소녀들의 삶은 어떠할지 상상할 수 있을까? 아니, 아마도 그러한 삶이 있다는 것부터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마음을 좁게 먹는다. ‘지금’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크게 열어두지 않는다. 돈에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돈이 지배하는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렵다. 오히려 이 세상에 잘 적응하기 10개월짜리 캐나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을 만나기가 훨씬 쉽다.

책은 다른 삶을 만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이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1980년대에 태어나 한국 사회에서 자라온 20대라면 만나보지 못했을 네 여성1)의 삶을 통해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저자의 아버지는 각 나라 공산당의 이론 정보지인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의 일본 공산당 대표로 선발되어 가족 모두가 프라하에서 지내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5년간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수학했다. 일본에 돌아가서도 사춘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을 잊지 못하던 저자는 1980년대 후반 이후 동구 공산주의 정권의 붕괴를 지켜보면서 친구들이 무사히 살고 있는지 걱정스러워 결국 1995년, 특히 친했던 그리스인 리차, 루마니아인 아냐, 유고슬라비아인 야스나를 찾아 나선다. 그렇게 30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각자 조국의 운명처럼 너무도 다른 날들을 살아가고 있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저자와 친구들의 소녀시절 이야기와 현재가 교차되며 등장한다. 저자가 5년간의 프라하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겪었던 공산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 간의 차이에 대한 혼란스러움, 그리고 급물살처럼 흘러간 동유럽 친구들의 살아온 날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글의 전개는 논픽션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책에서는 공산주의 사회가 어떠한 지 그 어떤 교과서나 영화보다도 실감나게 말해주고 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일본에 돌아온 저자가 프라하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는, 같은 시기, 다른 두 사회를 살아가는 중학생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우리가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자유’가 더욱 빛을 발하는 공간이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임을 알 수 있다.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곳도 자본주의 사회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뚱뚱하거나, 키가 작거나, 얼굴에 주근깨가 많은 것도 모두 개인의 다양성이라면, 진정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는 자본주의 국가인 일본이 아니라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였다. 우리는 단지 화려한 쇼윈도에 진열된 패션상품들에 현혹되어 진정한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당시 프라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인해 상품은 그다지 다양하지 않지만 지금의 남한 사회보다 더욱 다양한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던 것 같다.

<프라하의 소녀시대>에서는 ‘문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게끔 한다. 사람이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것이 모두 문화인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문화의 범위는 과연 어느 정도인가. 오늘날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문화를 ‘대중문화’라 칭하는데, 이것은 대중적으로 쉽게 접할 수 없는 문화의 영역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프라하에서 저자와 친구들은 사흘에 한 번은 연극이나 오페라, 콘서트에 갔다고 한다. 주말이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람회에 가는 것이 당연했고. 하지만 2009년의 대한민국에서는 극소수만이 사흘에 한 번 연극이나 오페라를 즐길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이 창조하는 모든 것이 문화일 텐데 우리는 지금 문화예술에도 귀천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문화’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보자.

글을 맺기 전에 이 책이 픽션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책은 언제나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지만, 책에 등장하는 그/그녀들의 가치관이 결코 ‘억지로’ 주입된 것이 아니라 삶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이라는 점이 책 속의 한 줄 한 줄에서 더욱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필연이라고 믿었던 지금 이 곳에서의 삶의 모습이 형체도 알아 볼 수 없게 녹아내리는 얼음동상과도 같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물로 또 다른 멋진 얼음동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저자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으로 60억 지구인들의 60억 가지 이야기를 모두 느낄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얼마나 좁은 생각 속에서 자라 왔는지를 뜨겁게 고민할 수 있기를 바라며.

ps.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삶을 보기 위해 곧바로 배낭 메고 세계 일주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함께 다른 세상을 배우고, 만들어 갈 ‘소돌프’2)들이 넘쳐날 테니, 그 마주침 속에서 시작하자.

1)  작가가 찾아 떠나는 친구는 세 명이지만 이 과정에서 작가 자신의 삶 또한 엿볼 수 있기 때문에 작가를 포함하여 네 여성이라 하였다.
2) ‘동지’를 뜻하는 체코어. 즉, 혁명가들끼리 서로를 부르는 말인데, 이미 10월 혁명이 반세기가 지난 당시 소련에서 ‘동지’라는 말은 상당히 일상용어로 자리 잡고 있었다. 책 속 저자와 친구들에게도 익숙한 단어.

Posted by 행진

2009/10/15 21:42 2009/10/1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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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소 2009/10/28 04:47 # M/D Reply Permalink

    제, 제목에 심대한 오타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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