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Ⅱ>우려되는 현재의 산별노조 재편



지난 2월 25일 개최된 ‘금속노조 임시대의원대회’에는 500명이 넘는 대의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15만의 산별협약쟁취 중앙교섭 돌파” “가자! 투쟁의 중심 금속노조”라는 플랜카드가 걸렸다. 올 해 금속노조가 핵심 투쟁과제를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 가장 단적으로 알 수 있었던 이 자리에서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은 “2008년 금속노조는 사용자들을 중앙교섭에 참가시키고 산별교섭을 확보하기 위해 운명을 건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며, “자동차 완성4사는 대공장 자본들은 작년 확약서를 이행하고 산별교섭에 응해서 정상적인 산별시대 노사관계 확립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그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난 7월 11일, 금속노조 지도부는 GM대우 사측과의 대각선교섭을 통해 <의견접근안>을 발표하였고, 7월 16일 새벽 1시 10분경에 금속사용자협의회와 <중앙교섭 의견접근안>을 합의한 후, ‘새로운 파업지침’을 발표하였다. 전체사업장에 내려져 있던 부분파업을 철회하고 중앙교섭에 불참하는 사업장에 한해서 부분파업을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서 일자 금속노조 지도부는 급히 <해설안>과 <문답자료>를 냈지만, 비판 여론은 가시지 않았다.
그 5개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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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재편, 지난 경과들

      <전노협>시절부터 꾸준히 쟁점이 되어 왔던 ‘산업별 노동조합(이하 산별노조)’건설은 여기에 숨어 있는 쟁점은 무수히 많고, 무엇보다 시기별로 그 양상이 조금씩 달라져 왔기 때문에, 이를 하나하나 다 검토하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최근의 경과들을 살펴보면, 1995년에 <민주노총>의 창립과 더불어 ‘산별 현실론’이 본격적으로 힘을 얻게 되고,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맹․전국자동차총연맹․민주금속연맹의 통합을 통해 98년 <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금속연맹)이 출범하였다. 금속연맹은 2000년 4월에 해외매각 저지를 위한 자동차 완성4사(현대, 기아, GM대우, 쌍용 등)의 총파업을 기획하기도 하는데, IMF 이후에 더욱 강화된 구조조정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01년 2월에 4만 명 규모의 <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이 출범하게 된다.

     금속노조의 중앙교섭은 2003년부터 성사되기 시작하였지만, 금속노조 출범 당시부터 상당수의 대기업노조가 불참한 약 4만 명 규모의 반쪽짜리 산별노조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금속노조는 산별중앙교섭에 참가하지 않은 대기업 사용자측과 벌이는 ‘대각선교섭’을 병행하는 등 대기업 사용자들과 대기업노조를 산별교섭˙산별노조에 참가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그 결과 2006년 국내 최초의 사용자 단체인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가 출범하였고, 2007년에는 <산별 중앙협약>을 마련하고 대기업 사용자들에게 ‘2008년부터는 산별교섭에 참여하도록 노력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더불어 2007년의 자동차 완성 4사 노동조합에 이어 올 해 3월에는 4-5천 명 규모의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이 금속노조에 가입함으로써 약 240개 지회, 약 15만 명 규모의 산별노조라는 외양을 갖추는 데에 성공한다. 



08년 금속노조 산별교섭

     금속노조는 올 해의 산별중앙협약에서 GM대우 사측과 “2009년의 중앙교섭을 노․사공동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는데, “작년 중앙교섭 합의안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금속노조는 작년에 대부분의 대기업 사측과의 대각선교섭을 통해 “2008년에는 산별 중앙교섭 참여를 위해 노사가 산별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연구해”본다는 합의 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노조 지도부가 “올 해에는 GM대우가 의견일치안을 낸 것이 성과”라는 자평한 것은 작년에 맺은 모호한 수준의 중앙교섭 참가약속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을 성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비판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즉, 애초에 08년 금속노조 투쟁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를 “중앙교섭 성사 그 자체”로 상정했던 것에 대한 진지한 반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구분

요구안

합의안

조합활동

조합원 교육시간 연 24시간 이상간부교육시간 연 40시간 이상
(대의원, 상집, 현장조직위원 이상)

연 8시간
지회 상집 이상만 연 24시간
(조합원 교육시간 제외하고 16시간)

노동시간

10월까지 실행위원회 구성

2009년 2월 실행위원회 구성

노동안전

작업량, 인원, 시간, 내용 노사합의
안전보건담당 1인 유급
(주1일 이상)
산재불승인 시 치료 및 보상

안전중대영향 있을 시 노사협의
100인 이하 월 2일
300인 이하 월 3일
없음

비정규직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사내하청 처우 개선
비정규직 매년 5% 정규직화
비정규직 포함 총고용 보장
하청변경폐업 시 고용˙단협 근속승계

관계법령
없음 (현행유지)
없음
고용유지 노력
승계되도록 노력

불공정거래

50억 이상 표준하도급계약서 작성
단가인하 임률고정 금지

70억 이상
없음

임금

최저임금 99,4840원
기본금 134,690원

시급 4080원(월950,000원)
없음(사업장에서 논의)


     위 표에 나와 있듯이, 금속사용자협의회와 체결한 <중앙교섭 합의안>은 요구안에 한참 미달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역시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사용자협의회와 합의한 직후인 7월 16일에 발표한 새로운 파업지침에서 “중앙교섭에 참여한 사업장에는 ‘파업자제’라는 인센티브를 주고, 참여하지 않은 사업장에만 한해 ‘부분파업’을 개시한다”는 전술을 결정한 것은 사업장을 넘어서는 공동투쟁의 의미를 살린다는 ‘산별교섭과 산별투쟁’의 대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올 해 금속노조 산별중앙교섭에서의 우려되는 현상들은 다수 지도부를 비롯한 노동자 운동 내부의 산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금속노조가 3월에 발표한 <산별시대, 노사교섭 어떻게 할 것인가?>에는 “산별 교섭 및 사회적 합의체제가 없는 가운데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동조합 탄압이 지속됨에 따라 자연적으로 노동조합은 자본과 국가와의 교섭보다는 총파업 등 투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평가지점은 지난 몇 년 동안 강화되어 온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금융화로 인한 노동유연화(신축화)․구조조정의 안착화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과 그에 적합한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는 점이어야 한다. 그 결과, 지금 우리의 노동자운동은 지배세력과의 힘의 관계에서 현저하게 밀려있는 상황이다. 이는 교섭과정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섭을 위한 교섭’ 또는 ‘교섭을 위한 투쟁의 배치’는 올바른 전략일 수 없다. 그 단적인 예는 금속노조가 자동차 완성 4사 등 대기업의 중앙교섭을 촉구하기 위한 갖은 방도를 썼음에도, 금속노조와 금속사용자협의회의 2008년 첫 중앙교섭테이블 열리기 바로 전 날인 4월 14일에 자동차 완성 4사가 일방적으로 “중앙교섭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에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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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쟁점들


주간 2교대제

      올 해 중앙교섭이 종료된 이후에 시작된 현대자동차 지부교섭에서 쟁점이 된 것은 ‘주간 2교대제’였는데, 이는 금속산업 노동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향후 금속노조의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이번에 체결된 현대자동차 주간 2교대제 관련한 합의안의 핵심내용은 지금까지 주야 맞교대로 10시간-10시간으로 시행되던 노동시간을 8시간-9시간(8시간+1시간 연장근로)으로 바꾸어 주간에만 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10시간-10시간 노동시간 때의 생산량을 유지한다는 내용이 함께 합의되면서 “오히려 노동강도의 살인적인 증가가 뻔하다”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사측은 노동안전교육시간, 중복휴일, 각종 공휴일․휴가 등을 제도적으로 폐지하기 위한 단체협약 개악을 시도할 가능성이 벌써부터 눈에 보이려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또한, 금속노조는 이렇듯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등 노동자들의 기본적이면서 핵심적인 노동조건과 관련된 투쟁을 조직하기는커녕, 중앙교섭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못 하고 지부교섭으로 넘어가도록 했다는 점에서 ‘과연 누구를 위한 산별노조˙산별투쟁인가’라는 의문을 낳게 했다.


비정규직

     위의 표
에서 봤듯이, 이번 중앙교섭 합의안에서 비정규직 관련한 조항들은 거의 ‘법령에 따름’이거나 ‘방안을 마련’이라는 식으로 치부되어 있다. 금속노조 지도부 스스로 “비정규직 등 전사회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기업별 노조의 틀을 넘어야 한다”고 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런 효과는 거의 발휘하지 못 했던 것이다.

     비단 중앙교섭 뿐 아니라, 실제로 대부분의 대공장들은 원청과 하청이 제각각 교섭을 진행하였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생산량’(Just In Time)이라는 자동차산업의 특성 상, 하청업체들 역시 주간 2교대제를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원-하청 간의 불공정거래 등 하청업체의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가 전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원청에서의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하청업체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훨씬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그대로 감내해야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최근 들어 비정규직의 수 자체가 증가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비정규직의 형태가 자본의 입맛에 따라 더욱 다양화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보자. 현재와 같은 산별노조˙산별투쟁이 계속 된다고 했을 때, 과연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에 걸맞은 노동자 주체 조직은 과연 가능할까?

 

 

Posted by 행진

2008/11/10 15:20 2008/11/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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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시대, 노동자운동의 전망과 과제

정세에 기반 한 운동을 위하여

     미국 발 금융위기가 자신의 파괴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 이명박 정부가 노동자·대중의 삶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 역시 이미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대중적으로도 어느 정도 상당히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을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에서 찾거나, 기껏해야 당장의 불만을 표출하려는 마음은 많지만 이를 집단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가입한 펀드를 걱정하거나, 이명박의 실정이 담긴 인터넷 뉴스기사에 불만을 토로하는 댓글을 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먼저, 97년 이후 계속된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구조조정으로 인해 노동자·대중 대부분의 삶이 힘들어 진 상황에서, “경제를 살리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로 등장한 이명박에게 많은 사람들이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내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제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거·정당정치로 대표되는 주류정치에 대한 지독한 불신을 보내지만, 그렇다고 이를 대체할 만한 무언가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이미 어느 정도 ‘국민의 삶에 대한 국가의 공적인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상당히 존재하게 된 상황에서, 앞으로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무능함이 지속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광범위한 대중적 불만은 ‘특정한 단일 이슈’나 ‘단일하게 대표되는 특정 이미지’에 대한 거부나 저항을 넘어서지 못하고 그 방향을 찾아 정처 없이 헤매게 될 가능성 역시 상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과거의 사회적 갈등 과정에서 ‘민주주의·사회정의를 위한 존재’로서의 ‘민주노조’라는 인식이 지극히 취약해 져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앞서 밝힌 부분과도 연결되겠고, 무엇보다 ‘노동자 운동 자신의 철저하지 못함’에서 기인하는 것이 크다. 현재 우리 노동자 운동이 처해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치밀하게 살펴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동을 조직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조건

     06년 금속노조의 임금구조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조합원 내 임금격차는 심각한 수준을 이미 뛰어넘었는데,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는 4배 이상 나고 있다. 특히, 전체 임금의 구성비를 보면 기본급의 비중은 자동차산업의 경우 전체 총액의 35.1%, 비자동차의 경우 39.9% 수준이며, 나머지 60~65%는 각종 수당과 초과근로, 특별급여로 구성되어 있다. 8시간 일해서 받는 기본급이 아닌 초과근로를 반드시 해야만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 아주 기형적인 임금구조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노동자들 간의 경쟁’이라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반복된다. ‘비정규직 노조와 같은 조직이 되거나, 연대를 하면 혹시 나의 임금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경쟁과 분할’이 빈번해지는 것은, “왜 동료와 경쟁하려 드느냐”며 다그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군가의 책임이라고 덧씌운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운동의 전반적인 방향 속에서 체계적으로 자리 잡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지배세력은 자신들에 대한 대중적인 불만과 적대를 다른 누군가에게로 돌리려 할 것이다. 얼마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홍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발언에서 “현재의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노사정간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대타협에 참여하지 않는 세력에겐 불이익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만들어 진 사회적 갈등’은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허구적으로 전가시키는 방식일 것이다. “이익집단인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라는 오래된 래퍼토리부터, “한국의 일자리를 빼앗는 이주노동자”라거나 “꼭 돈 벌지는 않아도 되는 여성들이 파업한다”등 말이다. 즉, 이미 강화되고 있는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더욱 활용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실리’를 위해서,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의 대립을 매개로 조직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노동자 운동 스스로가 이러한 지배세력의 전략에 치명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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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 가능성과 한계의 사이에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자주 외치는 “단결과 연대”는 추상적인 구호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유일한 무기인 ‘단결’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이를 가로막는 현상적인 결과가 아닌 이유를 아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정세적인 투쟁을 적극적인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산별재편 역시 그러한 흐름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사고되어야 한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가 분명함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산별이 중요하다”는 말만 강조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같다. 특히, ‘시기집중 임단투’에서 좀 더 많은 실리적 이득을 챙기는 것만을 위한 산별노조라면 더욱 그렇다. 단적으로 주간 2교대제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야간노동과 연장근로 등을 통해 갈수록 늘어나는 노동시간을 적절히 막아내면서 노동강도를 완화시키고, 노동시간 대신 노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시간을 보다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야간노동을 통한 노동재해와 이에 따른 손실액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무한정 야간노동을 강요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대신 주간 2교대제를 합의하되, 자본에게 손실이 되는 부분을 메울 수 있는 노동에 대한 착취의 새로운 방법을 궁리할 것이다. 즉, 문제는 ‘주간 2교대제’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주간 2교대제인가’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산별재편 역시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산별노조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래야 갈수록 심화되어 가는 금융위기 속에서의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복원’이라는 방향으로 노동자 운동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산별시대, 노동자운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금융위기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산별노조

     ‘어떤 산별노조를 건설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산별노조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적자금 투입기업(대우조선 등)과 기간산업(철도 등)에 대한 민영화˙사유화 정책은 금융규제 완화를 통해서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민연금을 이용한 금융시장 투자 등 기본적인 사회서비스에 대한 시장화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폭락하고 있는 증권시장을 회복시킨다는 이유로 국민연금을 이용한 투자를 하고 있기까지 하다. <산별 공공노조>는 ‘공공부문 선진화’로 불리우는 공기업 민영화에 맞서는 투쟁을 이러한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통해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부문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과 ‘공공성 파괴’에 대한 구호를 병렬적으로 늘여놓는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우선, 이 두 가지 현상 간의 관계가 어떠한 지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한 노동조합 내부에서의 노력과 교육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대중적 요구로서 제기할 수 있는 운동의 경로에 대한 고민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 노동자운동의 거점으로서의 산별노조

     이러한 문제의식의 유력한 경로 중의 하나로서 ‘지역’이 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주간 2교대제나 산별노조에 대해서 말했던 것처럼 ‘지역 자체’를 강조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며, 역시 문제는 ‘어떤 지역운동인가’이다. 지역공동체만의 특수한 발전을 위한 것도, 지구당 차원에서 표 몰이만을 위한 것도 ‘지역운동’이라 불리우며, 그 이름을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사회서비스 여성노동자나 이주노동자 등 단일한 사업장만으로 묶이지 않는 불안정 노동자의 범위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더불어서, 갈수록 노동을 분할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이 세밀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내하청, 용역 및 도급, 파견 등 관리체계를 더욱 분할하고 이에 따라 노동자의 층위를 다양화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자본의 관리체계를 내부적으로 극복하고, 일상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지속하면서 공동의 운동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할 것인데, 이는 지역을 매개로 하는 연대의 일상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다.

     이렇듯이 한 지역에서 서로 다른 사업장˙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더라도 같은 지역의 조직틀 안에서 일상적인 활동과 투쟁을 함께 하면서 연대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거점으로서 산별노조 지역본부나 지역지부가 자기역할을 분명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임금투쟁의 혁신을 위한 산별노조

     물론, 임금투쟁에 매몰되어 당장의 자기 실리적인 이득만을 위해 임단협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시기별 집중 임단협을 넘어 자기 사업장의 이슈만을 부각시키기 위한 시기 분산 임단협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단호한 비판이 필요한 것과는 별개로, 현재 노동자간의 갈등과 대립은 ‘임금’을 매개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다른 말로 하면 노동자들 간의 분할을 조장하는 지배세력의 입장에서 ‘임금’만큼 이를 관리하기에 쉬운 고리도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기존의 실리적˙관성적 임금투쟁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고민되지 않는다면, 금융위기에 따라 갈수록 실업률과 대량해고가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에 대해서 대중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커다란 곤란’에 부닥칠 수 있다. 더불어, 지배세력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목 아래, 생산직의 최대한 많은 부분을 비정규직화 시키는 것을 목표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존재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을 지양할 수 있는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반대로 임금문제가 노동자간 단결의 가장 기초적인 매개로서 작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고민이 활발하게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즉, 노동자운동 내부의 분할과 갈등의 증폭을 일차적으로 예방하는 동시에 ‘단결’의 구체적이고도 정세적(전술적)인 차원으로의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정최저임금의 현실화 및 산별최저임금 체결, 지자체 교섭 등을 통한 지역 내 저임금 해소도 고려해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의 임금체계가 필연적으로 낳고 있는 같은 산업 내에서도 기형적으로 차이가 나는 임금차이를 축소할 수 있는 ‘요구투쟁’을 조직하고 이를 전면화함으로써, 임금투쟁이라는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이 대사회적인 정치투쟁으로 발전토록 할 수 있는 고민도 진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현장과 이른바 상층에서의 ‘교섭전략’을 넘어 운동들 간의 진지한 고민과 집단적 논의, 그리고 지역으로부터의 조직을 통한 운동의 과정을 통할 때 그 의미를 보다 뚜렷이 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8/11/10 15:10 2008/11/1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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