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시대, 노동자운동의 전망과 과제

정세에 기반 한 운동을 위하여

     미국 발 금융위기가 자신의 파괴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 이명박 정부가 노동자·대중의 삶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 역시 이미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대중적으로도 어느 정도 상당히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을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에서 찾거나, 기껏해야 당장의 불만을 표출하려는 마음은 많지만 이를 집단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가입한 펀드를 걱정하거나, 이명박의 실정이 담긴 인터넷 뉴스기사에 불만을 토로하는 댓글을 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먼저, 97년 이후 계속된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구조조정으로 인해 노동자·대중 대부분의 삶이 힘들어 진 상황에서, “경제를 살리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로 등장한 이명박에게 많은 사람들이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내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제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거·정당정치로 대표되는 주류정치에 대한 지독한 불신을 보내지만, 그렇다고 이를 대체할 만한 무언가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이미 어느 정도 ‘국민의 삶에 대한 국가의 공적인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상당히 존재하게 된 상황에서, 앞으로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무능함이 지속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광범위한 대중적 불만은 ‘특정한 단일 이슈’나 ‘단일하게 대표되는 특정 이미지’에 대한 거부나 저항을 넘어서지 못하고 그 방향을 찾아 정처 없이 헤매게 될 가능성 역시 상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과거의 사회적 갈등 과정에서 ‘민주주의·사회정의를 위한 존재’로서의 ‘민주노조’라는 인식이 지극히 취약해 져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앞서 밝힌 부분과도 연결되겠고, 무엇보다 ‘노동자 운동 자신의 철저하지 못함’에서 기인하는 것이 크다. 현재 우리 노동자 운동이 처해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치밀하게 살펴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동을 조직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조건

     06년 금속노조의 임금구조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조합원 내 임금격차는 심각한 수준을 이미 뛰어넘었는데,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는 4배 이상 나고 있다. 특히, 전체 임금의 구성비를 보면 기본급의 비중은 자동차산업의 경우 전체 총액의 35.1%, 비자동차의 경우 39.9% 수준이며, 나머지 60~65%는 각종 수당과 초과근로, 특별급여로 구성되어 있다. 8시간 일해서 받는 기본급이 아닌 초과근로를 반드시 해야만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 아주 기형적인 임금구조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노동자들 간의 경쟁’이라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반복된다. ‘비정규직 노조와 같은 조직이 되거나, 연대를 하면 혹시 나의 임금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경쟁과 분할’이 빈번해지는 것은, “왜 동료와 경쟁하려 드느냐”며 다그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군가의 책임이라고 덧씌운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운동의 전반적인 방향 속에서 체계적으로 자리 잡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지배세력은 자신들에 대한 대중적인 불만과 적대를 다른 누군가에게로 돌리려 할 것이다. 얼마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홍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발언에서 “현재의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노사정간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대타협에 참여하지 않는 세력에겐 불이익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만들어 진 사회적 갈등’은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허구적으로 전가시키는 방식일 것이다. “이익집단인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라는 오래된 래퍼토리부터, “한국의 일자리를 빼앗는 이주노동자”라거나 “꼭 돈 벌지는 않아도 되는 여성들이 파업한다”등 말이다. 즉, 이미 강화되고 있는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더욱 활용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실리’를 위해서,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의 대립을 매개로 조직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노동자 운동 스스로가 이러한 지배세력의 전략에 치명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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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 가능성과 한계의 사이에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자주 외치는 “단결과 연대”는 추상적인 구호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유일한 무기인 ‘단결’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이를 가로막는 현상적인 결과가 아닌 이유를 아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정세적인 투쟁을 적극적인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산별재편 역시 그러한 흐름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사고되어야 한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가 분명함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산별이 중요하다”는 말만 강조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같다. 특히, ‘시기집중 임단투’에서 좀 더 많은 실리적 이득을 챙기는 것만을 위한 산별노조라면 더욱 그렇다. 단적으로 주간 2교대제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야간노동과 연장근로 등을 통해 갈수록 늘어나는 노동시간을 적절히 막아내면서 노동강도를 완화시키고, 노동시간 대신 노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시간을 보다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야간노동을 통한 노동재해와 이에 따른 손실액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무한정 야간노동을 강요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대신 주간 2교대제를 합의하되, 자본에게 손실이 되는 부분을 메울 수 있는 노동에 대한 착취의 새로운 방법을 궁리할 것이다. 즉, 문제는 ‘주간 2교대제’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주간 2교대제인가’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산별재편 역시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산별노조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래야 갈수록 심화되어 가는 금융위기 속에서의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복원’이라는 방향으로 노동자 운동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산별시대, 노동자운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금융위기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산별노조

     ‘어떤 산별노조를 건설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산별노조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적자금 투입기업(대우조선 등)과 기간산업(철도 등)에 대한 민영화˙사유화 정책은 금융규제 완화를 통해서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민연금을 이용한 금융시장 투자 등 기본적인 사회서비스에 대한 시장화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폭락하고 있는 증권시장을 회복시킨다는 이유로 국민연금을 이용한 투자를 하고 있기까지 하다. <산별 공공노조>는 ‘공공부문 선진화’로 불리우는 공기업 민영화에 맞서는 투쟁을 이러한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통해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부문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과 ‘공공성 파괴’에 대한 구호를 병렬적으로 늘여놓는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우선, 이 두 가지 현상 간의 관계가 어떠한 지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한 노동조합 내부에서의 노력과 교육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대중적 요구로서 제기할 수 있는 운동의 경로에 대한 고민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 노동자운동의 거점으로서의 산별노조

     이러한 문제의식의 유력한 경로 중의 하나로서 ‘지역’이 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주간 2교대제나 산별노조에 대해서 말했던 것처럼 ‘지역 자체’를 강조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며, 역시 문제는 ‘어떤 지역운동인가’이다. 지역공동체만의 특수한 발전을 위한 것도, 지구당 차원에서 표 몰이만을 위한 것도 ‘지역운동’이라 불리우며, 그 이름을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사회서비스 여성노동자나 이주노동자 등 단일한 사업장만으로 묶이지 않는 불안정 노동자의 범위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더불어서, 갈수록 노동을 분할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이 세밀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내하청, 용역 및 도급, 파견 등 관리체계를 더욱 분할하고 이에 따라 노동자의 층위를 다양화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자본의 관리체계를 내부적으로 극복하고, 일상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지속하면서 공동의 운동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할 것인데, 이는 지역을 매개로 하는 연대의 일상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다.

     이렇듯이 한 지역에서 서로 다른 사업장˙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더라도 같은 지역의 조직틀 안에서 일상적인 활동과 투쟁을 함께 하면서 연대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거점으로서 산별노조 지역본부나 지역지부가 자기역할을 분명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임금투쟁의 혁신을 위한 산별노조

     물론, 임금투쟁에 매몰되어 당장의 자기 실리적인 이득만을 위해 임단협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시기별 집중 임단협을 넘어 자기 사업장의 이슈만을 부각시키기 위한 시기 분산 임단협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단호한 비판이 필요한 것과는 별개로, 현재 노동자간의 갈등과 대립은 ‘임금’을 매개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다른 말로 하면 노동자들 간의 분할을 조장하는 지배세력의 입장에서 ‘임금’만큼 이를 관리하기에 쉬운 고리도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기존의 실리적˙관성적 임금투쟁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고민되지 않는다면, 금융위기에 따라 갈수록 실업률과 대량해고가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에 대해서 대중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커다란 곤란’에 부닥칠 수 있다. 더불어, 지배세력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목 아래, 생산직의 최대한 많은 부분을 비정규직화 시키는 것을 목표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존재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을 지양할 수 있는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반대로 임금문제가 노동자간 단결의 가장 기초적인 매개로서 작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고민이 활발하게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즉, 노동자운동 내부의 분할과 갈등의 증폭을 일차적으로 예방하는 동시에 ‘단결’의 구체적이고도 정세적(전술적)인 차원으로의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정최저임금의 현실화 및 산별최저임금 체결, 지자체 교섭 등을 통한 지역 내 저임금 해소도 고려해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의 임금체계가 필연적으로 낳고 있는 같은 산업 내에서도 기형적으로 차이가 나는 임금차이를 축소할 수 있는 ‘요구투쟁’을 조직하고 이를 전면화함으로써, 임금투쟁이라는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이 대사회적인 정치투쟁으로 발전토록 할 수 있는 고민도 진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현장과 이른바 상층에서의 ‘교섭전략’을 넘어 운동들 간의 진지한 고민과 집단적 논의, 그리고 지역으로부터의 조직을 통한 운동의 과정을 통할 때 그 의미를 보다 뚜렷이 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8/11/10 15:10 2008/11/1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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