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Ⅱ>우려되는 현재의 산별노조 재편



지난 2월 25일 개최된 ‘금속노조 임시대의원대회’에는 500명이 넘는 대의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15만의 산별협약쟁취 중앙교섭 돌파” “가자! 투쟁의 중심 금속노조”라는 플랜카드가 걸렸다. 올 해 금속노조가 핵심 투쟁과제를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 가장 단적으로 알 수 있었던 이 자리에서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은 “2008년 금속노조는 사용자들을 중앙교섭에 참가시키고 산별교섭을 확보하기 위해 운명을 건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며, “자동차 완성4사는 대공장 자본들은 작년 확약서를 이행하고 산별교섭에 응해서 정상적인 산별시대 노사관계 확립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그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난 7월 11일, 금속노조 지도부는 GM대우 사측과의 대각선교섭을 통해 <의견접근안>을 발표하였고, 7월 16일 새벽 1시 10분경에 금속사용자협의회와 <중앙교섭 의견접근안>을 합의한 후, ‘새로운 파업지침’을 발표하였다. 전체사업장에 내려져 있던 부분파업을 철회하고 중앙교섭에 불참하는 사업장에 한해서 부분파업을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서 일자 금속노조 지도부는 급히 <해설안>과 <문답자료>를 냈지만, 비판 여론은 가시지 않았다.
그 5개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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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재편, 지난 경과들

      <전노협>시절부터 꾸준히 쟁점이 되어 왔던 ‘산업별 노동조합(이하 산별노조)’건설은 여기에 숨어 있는 쟁점은 무수히 많고, 무엇보다 시기별로 그 양상이 조금씩 달라져 왔기 때문에, 이를 하나하나 다 검토하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최근의 경과들을 살펴보면, 1995년에 <민주노총>의 창립과 더불어 ‘산별 현실론’이 본격적으로 힘을 얻게 되고,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맹․전국자동차총연맹․민주금속연맹의 통합을 통해 98년 <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금속연맹)이 출범하였다. 금속연맹은 2000년 4월에 해외매각 저지를 위한 자동차 완성4사(현대, 기아, GM대우, 쌍용 등)의 총파업을 기획하기도 하는데, IMF 이후에 더욱 강화된 구조조정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01년 2월에 4만 명 규모의 <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이 출범하게 된다.

     금속노조의 중앙교섭은 2003년부터 성사되기 시작하였지만, 금속노조 출범 당시부터 상당수의 대기업노조가 불참한 약 4만 명 규모의 반쪽짜리 산별노조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금속노조는 산별중앙교섭에 참가하지 않은 대기업 사용자측과 벌이는 ‘대각선교섭’을 병행하는 등 대기업 사용자들과 대기업노조를 산별교섭˙산별노조에 참가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그 결과 2006년 국내 최초의 사용자 단체인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가 출범하였고, 2007년에는 <산별 중앙협약>을 마련하고 대기업 사용자들에게 ‘2008년부터는 산별교섭에 참여하도록 노력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더불어 2007년의 자동차 완성 4사 노동조합에 이어 올 해 3월에는 4-5천 명 규모의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이 금속노조에 가입함으로써 약 240개 지회, 약 15만 명 규모의 산별노조라는 외양을 갖추는 데에 성공한다. 



08년 금속노조 산별교섭

     금속노조는 올 해의 산별중앙협약에서 GM대우 사측과 “2009년의 중앙교섭을 노․사공동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는데, “작년 중앙교섭 합의안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금속노조는 작년에 대부분의 대기업 사측과의 대각선교섭을 통해 “2008년에는 산별 중앙교섭 참여를 위해 노사가 산별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연구해”본다는 합의 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노조 지도부가 “올 해에는 GM대우가 의견일치안을 낸 것이 성과”라는 자평한 것은 작년에 맺은 모호한 수준의 중앙교섭 참가약속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을 성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비판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즉, 애초에 08년 금속노조 투쟁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를 “중앙교섭 성사 그 자체”로 상정했던 것에 대한 진지한 반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구분

요구안

합의안

조합활동

조합원 교육시간 연 24시간 이상간부교육시간 연 40시간 이상
(대의원, 상집, 현장조직위원 이상)

연 8시간
지회 상집 이상만 연 24시간
(조합원 교육시간 제외하고 16시간)

노동시간

10월까지 실행위원회 구성

2009년 2월 실행위원회 구성

노동안전

작업량, 인원, 시간, 내용 노사합의
안전보건담당 1인 유급
(주1일 이상)
산재불승인 시 치료 및 보상

안전중대영향 있을 시 노사협의
100인 이하 월 2일
300인 이하 월 3일
없음

비정규직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사내하청 처우 개선
비정규직 매년 5% 정규직화
비정규직 포함 총고용 보장
하청변경폐업 시 고용˙단협 근속승계

관계법령
없음 (현행유지)
없음
고용유지 노력
승계되도록 노력

불공정거래

50억 이상 표준하도급계약서 작성
단가인하 임률고정 금지

70억 이상
없음

임금

최저임금 99,4840원
기본금 134,690원

시급 4080원(월950,000원)
없음(사업장에서 논의)


     위 표에 나와 있듯이, 금속사용자협의회와 체결한 <중앙교섭 합의안>은 요구안에 한참 미달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역시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사용자협의회와 합의한 직후인 7월 16일에 발표한 새로운 파업지침에서 “중앙교섭에 참여한 사업장에는 ‘파업자제’라는 인센티브를 주고, 참여하지 않은 사업장에만 한해 ‘부분파업’을 개시한다”는 전술을 결정한 것은 사업장을 넘어서는 공동투쟁의 의미를 살린다는 ‘산별교섭과 산별투쟁’의 대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올 해 금속노조 산별중앙교섭에서의 우려되는 현상들은 다수 지도부를 비롯한 노동자 운동 내부의 산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금속노조가 3월에 발표한 <산별시대, 노사교섭 어떻게 할 것인가?>에는 “산별 교섭 및 사회적 합의체제가 없는 가운데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동조합 탄압이 지속됨에 따라 자연적으로 노동조합은 자본과 국가와의 교섭보다는 총파업 등 투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평가지점은 지난 몇 년 동안 강화되어 온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금융화로 인한 노동유연화(신축화)․구조조정의 안착화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과 그에 적합한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는 점이어야 한다. 그 결과, 지금 우리의 노동자운동은 지배세력과의 힘의 관계에서 현저하게 밀려있는 상황이다. 이는 교섭과정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섭을 위한 교섭’ 또는 ‘교섭을 위한 투쟁의 배치’는 올바른 전략일 수 없다. 그 단적인 예는 금속노조가 자동차 완성 4사 등 대기업의 중앙교섭을 촉구하기 위한 갖은 방도를 썼음에도, 금속노조와 금속사용자협의회의 2008년 첫 중앙교섭테이블 열리기 바로 전 날인 4월 14일에 자동차 완성 4사가 일방적으로 “중앙교섭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에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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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쟁점들


주간 2교대제

      올 해 중앙교섭이 종료된 이후에 시작된 현대자동차 지부교섭에서 쟁점이 된 것은 ‘주간 2교대제’였는데, 이는 금속산업 노동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향후 금속노조의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이번에 체결된 현대자동차 주간 2교대제 관련한 합의안의 핵심내용은 지금까지 주야 맞교대로 10시간-10시간으로 시행되던 노동시간을 8시간-9시간(8시간+1시간 연장근로)으로 바꾸어 주간에만 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10시간-10시간 노동시간 때의 생산량을 유지한다는 내용이 함께 합의되면서 “오히려 노동강도의 살인적인 증가가 뻔하다”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사측은 노동안전교육시간, 중복휴일, 각종 공휴일․휴가 등을 제도적으로 폐지하기 위한 단체협약 개악을 시도할 가능성이 벌써부터 눈에 보이려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또한, 금속노조는 이렇듯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등 노동자들의 기본적이면서 핵심적인 노동조건과 관련된 투쟁을 조직하기는커녕, 중앙교섭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못 하고 지부교섭으로 넘어가도록 했다는 점에서 ‘과연 누구를 위한 산별노조˙산별투쟁인가’라는 의문을 낳게 했다.


비정규직

     위의 표
에서 봤듯이, 이번 중앙교섭 합의안에서 비정규직 관련한 조항들은 거의 ‘법령에 따름’이거나 ‘방안을 마련’이라는 식으로 치부되어 있다. 금속노조 지도부 스스로 “비정규직 등 전사회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기업별 노조의 틀을 넘어야 한다”고 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런 효과는 거의 발휘하지 못 했던 것이다.

     비단 중앙교섭 뿐 아니라, 실제로 대부분의 대공장들은 원청과 하청이 제각각 교섭을 진행하였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생산량’(Just In Time)이라는 자동차산업의 특성 상, 하청업체들 역시 주간 2교대제를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원-하청 간의 불공정거래 등 하청업체의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가 전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원청에서의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하청업체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훨씬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그대로 감내해야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최근 들어 비정규직의 수 자체가 증가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비정규직의 형태가 자본의 입맛에 따라 더욱 다양화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보자. 현재와 같은 산별노조˙산별투쟁이 계속 된다고 했을 때, 과연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에 걸맞은 노동자 주체 조직은 과연 가능할까?

 

 

Posted by 행진

2008/11/10 15:20 2008/11/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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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특호_각론2] 불안정노동




금융화가 강요한 노동자 분할과 불안정한 삶에 맞서
   계급적 단결을 구축하자!



0. 들어가며

  2008년, 월스트리트부터 지방 소도시까지 예외 없는 불안전성의 시대

거의 100년이 가까운 전통을 지닌 금융자본들의 몰락으로 가시화된 금융위기는 전 세계의 경제를 요동치게 하는 가운데 대공황의 공포를 상기시키고 있다. 진정 될 줄 모르는 식량 위기와 에너지 값 폭등. 진흙 쿠키를 구워 먹는다는 아이티 섬의 사람들은 온난화로 연이은 자연재해까지 겪으며 사선을 넘나들고 있다.
2008년 대한민국 최저임금 3770원. 죽지 않을 정도의 삶을 강요받으며 한걸음 뒤에 벼랑을 두고 빈곤의 끝에서 흔들리는 도시빈민들. 어느 지방대 학생은 ‘등록금이 없어서 먼저 갑니다‘는 유서를 남기고 학교에서 목을 맸다. 고스란히 노동력을 헌납해야하는 인턴십 자리에도 수백 대 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요즘 20대들은 ’가장 바라는 삶‘이 무엇이냐는 설문에 ’안정적인 삶‘이라 답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에도 쟁쟁한 목소리, “갇혔어요. 이랜드 불매로 도와주세요”. 할인마트에서 79만원 받으며 캐셔로 일하던 4,50대 여성들이 벌이는 파업 중에도 100%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신규 매장은 곳곳에 ‘그랜드 오픈’했다. 이명박의 취임과 동시에 농성장을 싹쓸이 당한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도 정규직 노조가 걸림돌이 되어 여전히 싸워야 하지만 한강다리도, cctv철탑도, 이젠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금융 위기가 잠식해가는 월스트리트에서부터 바다건너 이 땅 지방 소도시 구석구석까지 어느 곳에서도 빈곤하고 불안한 삶이 강요되는 지금, 우리는 예외 없는 불안전성의 시대와 마주하고 있다.

이 글은 2009 학생회 선거 투쟁의 의의와 과제를 밝히는 과정에서 ‘불안정노동’ 투쟁에 대한 각론으로 작성되었다. 먼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신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을 중층화, 세분화하는 지배계급의 진화된 불안정노동 활용전략을 살펴볼 것이다. 기간 운동 진영에 존재했던 불안정노동 철폐를 ‘고용 안정 쟁취‘로만 협소하게 이해하는 편향을 짚고, 명확하게 금융화가 야기하는 빈곤과 궁핍화의 확대로 불안정노동의 일반화를 이해할 것을 촉구하면서, 인간학적 차이를 활용하는 신자유주의의 착취 전략과 대결하되 주류-남성 정규직 중심의 운동에 대한 공격이 아닌 노동자 대중의 통일성을 확보해나가는 방식의 운동이 절실함을 주장한다.
산별-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비정규투쟁의 상당 기간 정체로 드러나듯 전체 운동이 존재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기층운동 활성화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운동의 복원,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가장 응축된 형태로 담지하면서 계급대립의 핵심지점을 표상하는 계급분파를 조직함을 통해 노동자 내부의 위계와 단절하고 새로운 계급 대표성 구축을 위한 운동을 중장기적 방향으로 제시한다. 전체 운동의 위기와 동승하는 학생운동의 위기를 목격하면서 학생운동의 개조를 위한 실험의 장으로서 학생회 선거를 준비하는 바, 앞의 문제의식을 포괄하면서 오늘날 학생 운동의 기여가 절실한 공간 중 하나로 이주노동자 투쟁과 학교 청소 용역 노동자들의 투쟁을 주요하게 살펴보도록 한다.  

1. 금융세계화로의 전환: 심화되는 노동자 계급 분할
 
1) 격화된 노동에 대한 공세
 
2) 인간학적 차이를 이용한 착취 - 노동자 계급의 위계화

2. 진화하는 자본의 전략: 불안정노동 '제도화'의 완성
 
1) 만국의 자본가여 단결하라! -MB의 신 노사관계 안정화 전략
  2) 고용안정 '중규직'이 비정규직 보단 낫다? -불안정 노동의 세분화
  3) 남성-정규직과 파이를 나누라? -고용의 영역을 가리지 않는 신축화/궁핍화

3. 기로에 선 노동자 운동: 무엇으로 맞설 것인가?
  1) 산별-복수노조 시대로의 전환, 합의주의를 넘어 기층운동 복원으로! 지역운동 활성화로!
  2) 생활임금 쟁취 -빈곤에 맞선 투쟁을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3)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는 투쟁주체 형성 -새로운 계급대표성 구축으로!

4. 학생운동의 임무: 이주노동자/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투쟁에 전략적으로 주목하며
노동자사회운동의 재건을 선도하자!
  1) 이주노동자의 주체화에 기여하는 중장기적인 역량 투여를 결의하자!
     :: 유인과 추방의 반복 - 금융세계화가 초래한 주변부 경제 파탄과 노동력 이동
     :: ‘불법’과 ‘다문화’- 이주노동자를 고립시키는 착취의 두 얼굴
     :: 투항인가 재건인가 - 위기의 이주 노동자 운동
     :: 전체 운동의 엄호로 조직화의 기반을 복구하자!
     :: ▶이주노동자 한글학교 - 대학인들의‘연대’로 좁혀지는 차이와 적대
  2) 학교 청소용역 노동자의 투쟁을 지역을
기반으로 한 투쟁,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 급진화하자
!
    
:: 시도와 평가 -‘전략 조직화’의 모델을 전/환하자!
     :: ▶비정규직 권리 찾기 project PARTⅡ - 다시금 목표를 명확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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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진

2008/10/30 16:51 2008/10/3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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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시점에서 2008/11/26 10:49 # M/D Reply Permalink

    이주노동자 운동이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주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론 억압받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동지들을 위해 연대 해야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한국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주력운동이 될 수 있을까? 학생운동의 임무로 가장 첫번째에 위치할 운동일까? 라는 고민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금융, 군사 세계화 반대는 알겠는데 이 문제를 극복 하기 위한 소위 '로드맵'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데 이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 한국사회를 어떻게 변혁시키겠다. 어떤 흐름을 가지고 바꿔 나가겠다는 경로가 보이지 않는데, 이를 좀 더 구체화 해볼 생각은 없는지?

[투쟁보고] 성신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 승리의 14일에 함께했습니다.


성신여대 사회대학생회장 정아

우리 생애 가장 따뜻한 추석
“명절 치를 일이 깝깝해도 이번 추석은 기펴는거야. 학생도 좋지?” 60년 살도록 이렇게 기쁜 날은 처음이라며거듭 말하시던 날. 본때를 보여줬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라던 한 조합원 동지는 까치발까지 딛으며 주먹을 하늘로 치켜드셨다. 고된 노동이야 몸에 익은 그녀들이었지만 매일같이 대리석 찬바닥에 몸을 누이며 버텨온 14일의 투쟁은 또 다른 고통과 불안이었다. 하지만 ‘신문에 날 정도로 기가 막힌 일’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포기하나며 오고가는 수정이들(성신학생들의 애칭)을 한명 한명을 불러세워 설득하고 알리길 14일. 너른 학교 곳곳이 더 이상 대자보를 붙일데가 없을 정도로 우리들의 투쟁이 빼곡히 가득찬 날에 그토록 고대했던 승리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깨진 플라스틱 그릇이나 쓰다 버리는 거지. 비정규직이라고 우리를 벼룩시장에 판거야 ”

개강을 맞은 대청소를 한다고 바닥을 유리같이 닦아놓은 다음날, 성신여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은 벼룩시장의 신규 채용 광고를 보고서야 자신들의 해고사실을 알았다. 짧게는 2년간 길게는 20년간 성신에서 일해온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에 대해 학교측이 밝힌 이유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배신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성신 재단은 성신여고에서 12년간 일하던 비정규직을 내쫓아 해고판정 받고서도 새로 결성된 노조와 그들과 함께하는 ‘문제 학생들’을 학교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아오다가 기상천외한 해고로 노조파괴를 시도했다.

맡은 구역의 청소를 다했어도 쉬는 것 보다 낫다며 매일 멀쩡한 잔디밭 풀을 뜯게 하는 혹사를 당할때도, 수시로 삼청교육대에 보내버린다는 소리를 들을때도, 행여 눈밖에 날까 지나가는 교직원 뒷통수에다 대고 인사할때도 그저 참고 참기를 몇해, 그래도 출근할 수 있는 반평짜리 대기실이 있다는게 고마웠다는 그녀들은 부당한 해고에 더는 분노를 삭힐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투쟁, 노조를 결성한 이후 학교의 부당한 조처가 있을 때 투쟁조끼를 입어보긴 했지만 막상 본부건물을 점거하고 들어가니, 온갖 회유와 건장한 학교 직원들이 휘두르는 욕설과 폭력 등 겪게되는 어려움이 수다했다. 파업 일차가 더해지면서, 투쟁가를 틀면 가사적힌 수첩을 한참을 뒤적거리고 나서야 뒤늦게 따라부르던 노래들을 꽤 익숙하게 따라부를 수 있게 된 이들도 있고, 또 목이 쉬어서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나마 열심히 구호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조합원들은 ‘미화원 일생’을 부를때는 모두가 하나같이 ‘꼭 내 이야기 같은’ 가사에 목이 꽉 매인다고 했다. 요즘 대학생인 나에게, 원곡이라는 ‘여자의 일생’은 도통 들어본적 없는 옛 노래이지만 조합원 동지들과 손을 꼭 잡고 이 노래를 연습할 때마다 가수가 아무리 빼어나게 부른다 한들 이보다 더 절절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몇 번씩 들었다.


참을 수가 없도록 노동자의 분노를
성신여대 말을 해라 대답 좀 해 봐라
노동자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미화원 노동자를 생각하세요
아 총장님 말좀 하세요 눈물로 호소합니다

미화원 일생 - 미화원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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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득 하늘색 풍선, 청소 아주머니들이 만난 ‘수정이’들의 지지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용역업체 현장소장의 횡포도 심했다. 꼭두 새벽부터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간까지 노동하면서도 63만원을 받고 일하던 성신의 청소용역노동자들은 나랏법 어드매에 보장도 되어있다던 최저임금이라도 제대로 받아보자고 노조를 만들었다. 우리 학생들은 노조 조직시기부터 함께하면서 대기실에서 또 청소중인 계단에서 청소용역노동자를 만났다. 그렇게 가입원서가 쌓일 때 아직은 불안하던 우리의 확신을 분명히 해주었던 것은 수정이들의 노조건설지지 서명이었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더해서, 같은 성신의 구성원으로서 청소용역노동자들이 합당한 권리를 행사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우리의 운동에 대해 학생들의 공감을 얻어가고 또 이를 확장해가는 과정을 통해 성신청소용역노동자들의 노동이 비로소 합당하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성신여대 청소용역노동자들과 우리 학생들은 비오는 날이면 이명박 욕을 실컷 하면서 같이 부침개도 부쳐먹기도 하고, 3.8 여성의 날 문화제에도 함께가면서 학생과 노동자가 함께 연대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던 차에 전면적인 투쟁이냐, 노조활동의 포기냐는 기로를 맞았고 성신의 청소용역노동자들은 망설임없이 투쟁을 선택했다.

개강 날, 노조와 연대단위가 붙이는 자보만큼 학교도 전 교직원을 동원해서 선전전을 했다. 등교하는 학생들은 학교본부가 붙인 대자보와 청소용역노동자가 붙인 대자보사이를 번갈아보며 갸웃거렸다. 하지만 올해들어 학생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장사 안되는’ 학과를 통폐합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할때도 그랬듯이 ‘경쟁력 확보’니 ‘학교 발전‘니 하는 말을 명분으로 삼지만 그저 듣기에나 좋은 말뿐이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자녀들의 등록금을 감당하기 위해 불안정한 일자리나마 선택할 수 밖에 없지만 교육비는 어마어마하고 여성들이 받는 임금은 그를 감당할 수 없이 형편없이 낮다는 것에도 많은 수정이들이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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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며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을 본 학생들이 지정된 핸드폰 번호로 보낸 응원의 문자가 곳곳에 게시되고 건물전면을 덮는 대형 플랑카드에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의 정당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가득히 모아졌을 때, 투쟁하는 청소용역노동자들은 직접 학생들에게 띄우는 편지를 써서 부착하는 것으로 답했다. ‘부끄럽다 나 못한다’ 하다가도 용기 내어 들어간 강의실에서 지지를 요청하는 발언을 하고 가면, 학생들은 건물 로비에 승리를 바라는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 잇을 붙여놓는 것으로 답했다.

투쟁 14일차, 청소용역노동자의 유니폼과 같은 하늘색 풍선을 학교 곳곳에 수백개를 매달았던 날, 시선을 옮기는데 마다 마주칠 수 밖에 없는 투쟁지지 풍선을 외면할 수 없던 학교는 끝내 손을 들었다. 승리의 주역인 성신분회 조합원들은 ‘의리 빼면 시체’답게 제일먼저 연대해온 동지들과 수정이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며 향후 투쟁을 약속했다. “그동안 겪은 설움을 생각하면 점거14일은 양에도 안차지만 어서 돌아가서 학교를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는 내 프로의식이 있으니 학교는 다행인줄 알라” 는 말로 ‘연약한 여성’이라는 말도, ‘청소가 누구나 쉽게하는 무가치한 일’이라는 말도 가당치 않음을 쩌렁쩌렁 선포하는 조합원들이었다.



 
여성리더십을 키운다는 대학 그리고 청소 용역 여성노동자들의 현실

3일이면 나가떨어질 줄 알았던 ‘아줌마’들이 임금의 절반씩을 중간 착취 당해온 지긋지긋한 하청 용역 인생을 끝내자고 말했을 때 ‘당연’하게 여겨지던 많은 것이 고발되기 시작했다. 하청 용역구조를 단박에 엎진 못했지만 몇 해전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임이 일고 있는 대학내 청소용역 노동자의 투쟁을 진척시켜 나가는데 성신여대의 사례는 원청 사용자인 학교로부터 합의문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여전히 비정규직인 조합원들에게는 매해 계약해지 시점이 돌아오겠지만 회사가 교체되더라도 노동조건을 훼손하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약속과 더불어 고용안정에 대한 책임을 학교가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합의문을 통해 시인한 것이다. 몇 년 씩 학교에서만 일했는데 얼굴도 본적 없는 용역회사한테 가서 따지라는 말이 억울했던 조합원들로서는 바라마지 않던, 그리고 너무나 합당한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은 평균 임금이 85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그마저도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사무직에 근무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훨씬 밑도는 임금을 받고 있다. 반평 좁은 대기실에서 옷 갈아입을 때조차 관리자들이 벌컥벌컥 문을 열고, 남자 화장실도 청소하는데 창피한줄이나 알겠냐며 여성으로 취급하지도 않다가도, 툭하면 ‘집에 가서 애나보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던 여성노동자들. 소장 눈에 나서 행여 내쫓길까 ‘애보는 건 쉬운건지 아냐’며 항변 한마디 못하고 매해 재계약 시기마다 떨어야했던 불안정한 일자리속의 여성 노동자들.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재생산 노동에 대한 부당한 평가에 터무니없는 저임금을 강요 받아야 했던 여성 노동자들. 성신여대는 재학생들에게 여성 리더를 키운다며 각종 자기계발 프로그램들을 제시하며 성공한 여성에 대한 환상을 부추겼지만 학교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명백한 현실, 이땅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처한 불안정노동과 빈곤을 감출 수는 없었다.


“ 앞으로도 함께하자 ”

투쟁을 하면서 사흘만에 6000천이 넘는 지지 서명을 받았지만 그저 감동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광범위하게 형성된 학내의 지지여론을 이어가는 동시에 직접 수정이들이 할 수 있는 실천들은 기획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생존권이 위협받는 나이 많은 여성노동자에 대해 보편적으로 느끼는 안타까운 정서를 넘어 사회가 제시하는 여성발전에 대한 환상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연대의 의사를 표현하면 혹시나 불이익이 당하진 않을까 고민하는, 그리고 비정규직이 안되기 위해 더욱 도서관으로 향하려는 인식들과 대결하는 다양한 실천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신 투쟁은 학생운동 기층의 기반조차 사라지고 있는 지금, ‘대학생들을 다시 봤다’는 다소 성급한 낙관을 뒤로하고 ‘운동의 기반’을 다시 만들기 위한 작업들과, 학생운동과 노동자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대중정책의 기획과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번 성신의 투쟁은 청소용역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는 활동과 학생운동 활동가들이 대학에서 불안정노동을 제기하는 운동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야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성신여대에서는 올해에 들어서만 학생들이 이미 2차례의 본부 점거 투쟁을 벌였던터라 조합원들이 ‘우리가 도중에 멈춘다면 연대하던 학생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며 투쟁의 결의를 다지곤 했는데 이를 함께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가슴뭉클했다. 승리를 자축하면서 “앞으로도 함께하자”고 했던 약속을 이제 어떤 내용으로 풀어갈까를 고민하는 것이 모두의 몫일 것이다. ‘밀착’만을 지상 과제로 하는 노학연대의 관계가 아니라 노-학 서로의 운동을 재구조화할 수 있는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운동과 노조의 자활력을 배가할 수 있는 교육사업, 당장 자신의 사업장에 투쟁사안이 없어도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맞서 투쟁하는 이들의 문제를 노조의 문제로 받아 안을 수 있는 일상적인 연대가 필요할 것이다. 학생운동의 역량이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가뭄에 단비 같은 귀한 승리를 마주하고서 많은 활동가들이 ‘성신여대의 모델‘을 확산하자고 말하고 있지만 위에 대한 실천이 담보되고서야 정말로 대학 청소노동자 투쟁의 활로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성신여대도 아직 많은 과제들을 갖고 있다. 투쟁승리 이후, 모처럼 풍성한 가을을 즐기러 간 북한산 소풍에서 질렀던 ‘막걸리잔 치켜들며 지르는 환호성’을 오래도록 지켜내기 위해서는 정말 지금부터가 승부이지 않을까. 처음에 노조를 만들고 최저임금에서 사천원 더 받는 79만원이 그토록 벅찼다던, 하지만 멈추지 않고 다른 투쟁을 만들어내고 또 끝끝내 승리를 거머쥔 그녀들이 오늘 다시 결의하듯이 이제 시작임을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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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진

2008/09/30 15:17 2008/09/3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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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서 연대와 투쟁이 가장 소중한, 성영(고려대)
칠흑같은 시대에도
노래가 불리어질까?
그때에도 노래는 불리어질 것이다.
칠흑같은 시대에 대한 노래가.
- 베르톨트 브레히트

개강이 낼름 다가오는 가을의 문턱에서 한달전의 포럼을 기억해 내려니 어제 먹은 반찬도 기억나지 않는 머리로는 상당히 무리인것 같습니다. 오히려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여름내 동지들과 몸에 세겨넣었던 투쟁들이네요. 그 투쟁들속에서 발언해 내었던 여성노동권/지역운동/비정규직 철폐등등으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는 것이 가물해진 포럼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불안정노동 철폐 포럼을 준비하며 팀내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떠오릅니다. 노동운동의 역사와 투쟁들을 되짚어 가며 현시기에서 우리가 발언해내야 할 것들을 확인하며 가리워진 이야기들을 밝혀내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포럼 자리 자체에서는 시공의 촉박함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였지만 고민의 공유와 나누는 이야기는 의미가 있었고 더욱이 방중을 거치는 투쟁의 과정에서 확인했던 것이 많았습니다. 기간 나누었던 투쟁과 토론들을 뒤돌아보며 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짚어나가는 가운데 우리가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허허.

여성노동권


포럼이 따로 마련되기 까지 했던 여성노동권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불안정 노동을 이야기하며 여성노동권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여성노동권 포럼이 따로 기획되었지 않았다면 불안정노동 포럼이 여성노동권 포럼에 가까와 졌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노동의 분할과 적대의 논리에 가장 첨예하게 서있는 여성노동권에 주목하지 않고서는 누구의 해방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나 지금의 투쟁들이 무언가 성차에 기반한 여성 노동권으로 제기되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많은 투쟁 사업장이 여성 비정규직의 투쟁들인데 여성노동권으로 발언되지 않는것은 우리가 할 일들이 아직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것 같아요. 더욱이 그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숫자가 많으니-가 아니라 여성노동권으로 쟁취할 수있는 해방에 관한 이해가 더욱 확산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정규직 개악법 그리고 넘어서 금융세계화 비판 / 반신자유주의


비정규직 개악법에 관한 장은 제가 직접 준비하고 발제한 터라 더욱 애착이 갔습니다^^;; 비정규직의 출현과 경제적 배경에 대해서 많은 부분이 축소되었었는데 김덕민 선생님의 시민강좌로 채워졌을 것이라 믿습니다. 비정규직 개악법에 맞서는 투쟁의 의미를 더 많은 동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의문이 제 주된 고민이였는데 하나의 법을 두고 부르주아 의회정치에 대한 규탄과 반대를 넘어서는 주체화 과정이 더 중요할 것 입니다. 그냥 이야기하자면 그럼 비정규직 개악법 이거하나 차버리면 끝인가? 법을 폐기할 수있는가? 를 넘어서는 노동자의 권리로서 이야기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가 바라는 것은 비정규직의 차별시정을 넘어서는 비정규직 철폐이고 그 이후에는 노동자의 온전한 권리니까요.

이러한 이야기를 하려면 불안정노동의 출현과 관련되 이해가 필요합니다. 발제에서는 길게 다루지 못했는데 비정규직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구조조정을 강제하게 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인데 이러한 원인에 대한 분석과 발언들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자본이 넘나들 자유인 FTA와 자본이 날뛸 자유인 비정규직 개악법(일반적으로 노동 유연화/불안정 노동의 확산)이 함께 다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반신자유주의 선봉대 기간에도 이러한 맥락의 발언들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꾸준히 연습하고 만들어 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운동의 공간으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위한 지역 운동과 사회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의 의미도 함께 되새겨 보았습니다. 여러모로 포럼들과 맞닿아 있어서 어디까지 이야기 해야 할까하는 고민들이 들기도 하고 아-이 열쇠는 꾸러미 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그랬어요.

마치며


07년 하반기에 가장 많이 나올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아마 대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벌써부터 지배계급들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쏠리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선 보다 많이 나와야 할 단어. 우리가 주목하게 만들어야 할 단어는 불안정노동 철폐! 한미FTA저지! 입니다. 민중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종이 쪽지의 권리가 아닌 투쟁할 권릭입니다. 대선시기 자신들의 이익을 쫓아 싸움을 거듭할 지배계급에 맞서 그 논쟁의 장에서 진정한 권리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힘차게 투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공간에서 마주치는 학우들과의 이야기는 어쩌면 더 어려울찌도 모르겠습니다. 이 권리들이 모두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려내고 끊임없이 논쟁하는 가운데 올해말 대선의 공간이 누군가의 승리가 아닌 대중운동의 승리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행진

2007/09/08 21:30 2007/09/0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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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악법 폐기 투쟁의 분수령,
이랜드-뉴코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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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악법 시행과 함께 폭발한 홈에버, 뉴코아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기만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대중들의 전폭적 지지 속에 전국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신자유주의 정권은 그녀들의 투쟁을 ‘이랜드라는 기업과 노동자들의 대결’로 한정지으려하고, 불법 운운하며 공권력을 투입하고, 손배가압류와 직장 폐쇄, 구속 등의 각종 법적 조치를 통해 왜곡하고 탄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악법의 기만이라는 하늘은 ‘보호’라는 손바닥으로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녀들은 계속해서 매장을 타격하고 거점 형성을 위한 점거를 계획해오고 있으며 다양한 단위들과 함께 불매운동과 같은 일상 선전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다가오는 추석을 앞두고 전국 동시다발 매장봉쇄 투쟁 등의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연대단위들 또한 매장점거와 매출제로 투쟁 등에 결합을 중심으로 연대를 지속해오고 있다.

하지만 점거와 타격을 중심으로 하는 투쟁을 지지 엄호하는 과정과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쟁점의 전환’과 ‘투쟁의 대중적 저변 확보’를 위한 일상적 정치활동의 취약함은, 폭발적이었던 대중들의 지지와 전국적 쟁점형성이라는 조건을 지속적으로 이어오며 상승시키지 못하는 현재적 한계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이랜드-뉴코아 투쟁의 주된 전술이었던 ‘점거’와 ‘매장 봉쇄’ 투쟁이 공권력 탄압과 내부 분열 조장, 거점 재형성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그 효과를 다하지 못하고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점차 지구전으로 돌입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의 투쟁이 비정규악법 폐기 투쟁의 중대한 분수령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다시금 전선의 확장을 위한 투쟁을 결의해야 할 것이다. 최근 노동부의 주선으로 교섭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측은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실질적인 교섭전망은 불투명해 보이며 오히려 투쟁전선은 이완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결국 추석을 전후로 한 투쟁이 향후 투쟁의 성패를 가르게 될 것이며, 하기에 보다 공세적인 돌파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랜드 투쟁, 승리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이랜드vs노동자의 대결구도를 넘어 비정규악법 폐기 투쟁으로 나아가자.

이랜드 투쟁의 전국적 쟁점화 이후 투쟁의 의의를 축소시키기 위한 지배계급의 시도는 투쟁의 대상을 ‘이랜드’라는 기업에 국한시켜 실제 사태의 원인인 비정규악법에 대한 발언을 봉쇄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투쟁을 박성수 개인, 이랜드라는 일개 기업, 같은 매장에서 장사하는 소상인들 등과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게 만듦으로써 투쟁의 확장을 가로막으려하고 있다. 이러한 왜곡에 맞서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편적인 서민들의 삶의 문제로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녀들의 투쟁 또한 특수한 몇몇 사람들의 권익다툼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의 사태가 이랜드 노동자들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으며, 금융화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구조조정, 불안정노동 확산으로 인한 민생파탄을 폭로하고 비정규악법 폐기 투쟁을 적극 제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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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권을 적극 발언하자.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은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이 땅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경제 위기 이후 여성노동자들은 더욱 유연하고 관리하기 쉬운 노동력으로서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에 대거 유입되었다. 그녀들은 기존의 성별분업의 모습 그대로 대거 저임금/장시간/서비스직 등의 조건에서 여성적 이미지를 착취당하며 부차화 되어왔다. 이러한 자본의 이윤형성과 생존을 위한 필수적 전략으로서 ‘여성의 노동권 제약’에 대해 발언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상적이고 다양한 지역별 연대 운동을 활성화하자.

이랜드 투쟁은 홈에버, 뉴코아 등 지역 주민들의 생활의 거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투쟁이다. 상암점에서의 점거에서도 확인하였듯 지역에서의 지지기반 형성은 투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특히 추석을 앞두고 더욱 심해질 노동자-주민 간의 갈등 조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역에서의 이해와 지지, 그리고 동참을 끌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지역별로 지원대책위가 존재하지만 활동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대위 결합이나 공동투쟁진행 등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있어야겠다.

선도적인 투쟁을 기획하고 헌신적인 대중운동을 진행하자.

앞선 발언의 얼개로 대중들을 끊임없이 만나는 것과 함께, 쟁점을 확장시킬 정세적이고 선도적인 투쟁들이 기획될 수 있어야 한다. 이 투쟁을 지속적인 ‘정치적·전국적 쟁점’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대중운동 계획을 고민하고 일상적인 정치 활동을 수행하자.

개강과 함께 서명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대중운동을 기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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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 이랜드-뉴코아 향후 투쟁에 있어 9월 말까지의 흐름은 정말 중요하다. 특히 9월 말 추석 전후는 이랜드 자본의 매출이 가장 많을 때이며, 이랜드-뉴코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정에서의 압박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에 집중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또 투쟁의 대상을 끊임없이 한정짓고 특정한 권리들의 충돌로 몰아가려하는 시도들이 추석이라는 시점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개강과 함께 공세적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확장하고 쟁점을 상승시키는 투쟁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비정규악법 폐기와 이랜드 사태 해결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면서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랜드 문제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자. 1차적으로 추석까지의 공세적인 진행으로 실질적으로 ‘대중의 지지를 확장하는 투쟁의 무기로서’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정도의 수위로 서명을 조직하자.

서명운동과 함께 다양한 연대 활동을 계획하자. 서명운동 자체에서도 학내 노동자 만나서 서명받기, 학교 주변 알바생 서명받기 등 다양한 주체화의 경로 및 연대 확장의 경로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며, 서명운동을 통한 기반 위에서 학교-지구별 간담회, 모금 운동, 축제 기간 연대 주점 등을 기획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하자. 이 과정에서 광장사업 몇 번을 더 배치하는데 그치기보다는 각 대중운동단위의 싸이클 사업-개강맞이 사업, 축제, 학술제 등-과 유기적으로, 대중의 삶과 마주치는 방식으로 계획이 구상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7/09/08 20:58 2007/09/08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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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난 (금속노조 남부지역지회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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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여성의 날 행사에 갔다가 시그네틱스지회 투쟁이 담긴 <얼굴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늘 만나는 시그 동지들이 집안일과 투쟁을 힘겹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2005년에 투쟁을 막 시작했을 때, 고3이던 작은 딸에게 물질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정서적으로도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2005년 8월, 파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집에서 협조를 많이 해줬다. 하지만, 1년 반 정도 지난 지금은 눈치가 많이 보인다. 애 아빠는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애 아빠도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길어지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애들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또, 아이들 교육이며 집안에 들어가야 할 돈은 많은데 그걸 혼자 다 감당하려니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애들이 착하고 많이 이해해줘서 고맙고 투쟁하는데 큰 힘이 된다. 많이 도와주고 내가 밖에 나가서 다칠까봐 늘 걱정을 한다. 그래서 애들한테는 많이 미안하다. 얼마 전, 딸애가 졸업식인데 나에게 말을 안 하고 혼자 다녀온 것을 뒤늦게 알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침에 출근투쟁 때문에 일찍 나와야 해서 애들 얼굴을 못보고 나오는데, 그래도 꼭 밥상은 차려놓고 나오려한다. 얼마 전 한 쪽 손을 다쳤는데, 나머지 한 쪽 손으로 빨래를 하다 보니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여성이라는 것은 집 안에서 뿐만 아니라 일할 때 처절하게 느꼈었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라는 것은 정말... 나는 기륭전자에 들어오기 전까지 정규직으로 일을 했었다. 그때는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이든 경조사가 있든 마음 편하게 휴가를 쓸 수가 있었고 현장 분위기도 가족적이었다. 그런데 기륭전자는 몸이 아파도 경조사가 있어도 해고의 위협 때문에 휴가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고 동료들끼리도 살갑게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생리휴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자식들과 함께 살아가야하는 엄마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지 여성노동자들을 문자 하나로 자르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는 신체적인 이유까지 언급하면서 해고를 했다. 월급은 또 어떻고. 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한 달에 잔업을 40시간만 해도 100만원이 넘었는데, 여기서는 80~90 시간을 해도 100만원이 안되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자 직원과 임금의 차별도 있었다. 정규직일 때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는데,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는 버는 돈은 얼마 안 되고 체력은 딸렸다. 밤늦게 까지 일하고 집안일 까지 하고나면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났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대우와 비인간적인 해고였다. 그래서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투쟁을 하면서 기쁜 일, 통쾌한 일도 많았다. 현장 안에서 농성을 할 때, 사측에서 우리를 셔터로 가둬놓았었다. 나는 그 위 6개월 동안 불면증에 시달릴 만큼 갇혀있는 것이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웠다. 그 때, 언제인가 한 번 한 조합원이 그 셔터를 발로 뻥 차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 뻥 찼는데, 얼마나 시원하던지! 2005년 10월 17일, 공권력 침탈로 현장농성이 중단되고 경찰서로 연행이 되었었다. 그 때, 알몸 수색을 거부했던 일이며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 신문을 볼 권리 등을 요구하고, 나올 때 교통비까지 받아갖고 나온 일은 정말 통쾌했던 일이다. 하지만,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처음으로 설치했던 우리들의 천막을 용역과 전경들이 부수었던 것은 정말 가슴 아픈 기억이다. 투쟁을 하면서 무엇보다 기뻤던 일은 전국의 노동자들을 많이 만난 것이다. 특히, 코롱, 하이닉스, 하이스코, 한국합섬 등 장기투쟁 사업장 동지들은 서로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큰 힘이 되었다. 우리도 힘들지만, 다른 사업장 동지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우리도 그렇지만,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도 빨리 해결이 되어 그 동지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기륭 투쟁에 물심양면으로 연대해준 동지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그 날, 오후에 집회가 있었는데 김성만 가수가 축가를 불러주고 조합원들이 케익을 준비해주었다. 노래를 듣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눈물이 났다. 또, 조합원들이 연락을 했는지 내가 아끼는 많은 연대동지들이 알고 축하메시지를 보내주어서 참 기뻤다. 다들 힘들 텐데, 정성껏 생일을 챙겨준 우리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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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기륭분회는 대오가 그리 많지 않다. 일을 못하게 되면서 다들 방세며 전기세, 전화세도 못내는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식뻘 되는 회사 용역이나 전경들과 싸우고 그러다가 다칠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특히, 지난해 3월 6일 회사 용역들의 폭력과 회사에서 하루 종일 쏘아댄 물대포, 그리고 이를 방관하던 경찰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그렇지만 우리 조합원들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없는 세상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연대도 열심히 다니면서 550일이 넘는 투쟁을 하고 있다. 조합원들 모두가 밥 잘 챙겨먹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오늘, 집회를 하는데 지나가던 한 시민이 우리 조합원 아가씨들을 보고 나이 들어 보인다고 해서 속이 상했다.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여유 없는 투쟁이지만, 우리 조합원들이 건강도 잘 챙기고 피부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고...”

우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삶이 이미자의 노래에 나오는 동백아가씨처럼 오늘은 아프고 ‘멍’ 투성이지만, 오늘 단결되어 열심히 투쟁하는 우리가 있기에 반드시 기쁜 내일이 올 것임을 믿는다.

Posted by 행진

2007/03/20 18:21 2007/03/2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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