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요즘 경제뉴스를 보면서 가슴이 철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주식이 어느 정도로 떨어졌느니, 환율이 폭락했다느니, 어느 회사가 망했다느니, 실업자는 몇 명이라느니.. 여러분들은 이런 뉴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그리고 경제위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주식지수ㆍ환율지수ㆍ경제성장률ㆍ수출증가율 같은 수치들을 바라보면서, ‘경제 문제’는 일종의 숫자놀음처럼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또한 거시적인 수치들을 변화시키는 문제는 ‘경제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저 수치가 올라가면 더욱 잘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수치가 떨어지면 경제적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더욱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하지만 추상적으로 보이는 경제문제 역시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수치로 나타나는 경제문제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있으며, 때로는 실업과 자살 같이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일들도 나타납니다. 특히 2008년 가을부터 본격화되었던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경제문제를 몇몇 경제전문가들만 담당하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개개인의 행위를 단순히 합해 놓은 것이 거시적인 경제문제는 아닙니다. 여기에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관계, 여성과 남성의 관계, 금융자본과 실물자본의 관계, 국가 간 관계 등 수많은 관계들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들은 경제적 현상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며,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경제적 관계들을 바꾸는 실천을 벌여나가야 합니다. 이는 경제위기에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적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결코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경제가 풀릴 때까지 참는 것이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고용과 임금을 보장하라고 하는 것, 불안정한 금융자본의 이동을 통제하는 것, 경제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는 사회적 관계들을 바꾸어나가는 것. 경제위기 속에서 이러한 집단적 실천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 자료집은 이런 실천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들을 제시한 것입니다. 현재 경제위기가 어디에서 기인했으며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지를 알아보고, 현재의 위기에 대항하기 위해 핵심적으로 보아야 하는 지점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함께 경제위기가 각 부문에 연결되는 지점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경제위기가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게 전가되는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가 다니고 있는 대학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 알아볼 것입니다. 이 자료집이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행진

2009/03/11 14:16 2009/03/1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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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경제위기, 어디에서 왔는가?



지난해 심각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곳곳에서 거대 금융자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최근엔 거대금융자본 - 초민족 은행 - 을 적으로 삼은 ‘인터내셔널’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자본주의의 심장을 적으로 삼는 영화를 만들다니 아이러니하지만 (게다가 정의의 편은 인터폴과 뉴욕지방검사라는 공권력이다!) ‘눈에 보이는 적을 해치워도’ 금융자본의 세계 지배는 계속되는 이 영화를 보고 관객들은 “아무리해도 세상은 안 바뀌는군.” 하고 돌아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 액션영화에 비해 폭력성․선정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이 영화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매긴 것은 금융자본을 비판하는 어떤 내용의 영화도 최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싶은 정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일 게다.

어설프게 초민족 금융자본을 비판한 영화와는 달리 10년도 전부터 진지하게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분석하며, 금융위기가 초래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파괴를 막고자 했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해 온 경제학자들, 대안세계화 운동가들이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는 금융자본의 지배가 쉬워지게끔 온갖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을 밝혀 케인즈주의 하 큰 정부, 신자유주의 하 작은 정부라는 허구적인 쟁점을 해체하려 하였고,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에 맞선 시위를 조직하고 세계사회포럼을 개최하여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화가 전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으며, 금융자본을 비판할 수 있는 경제지식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교육 사업을 진행하여 비판적 시각과 저항의 언어를 민중들에게 돌려주고자 했다. 남한 전체가 경제위기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적 시각’과 ‘저항의 언어’ 가 절실히 필요하다.


1. 경제위기가 도래한 이유

대학생인 나에게 최근 가장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제 이슈는 뭘까? 우선 몇 달 전에 비해 엄청나게 급등한 환율로 인해 성인이 되어 해외에 한번 나가보겠다는 꿈은 저 멀리 사라졌다. 몇몇 등록금을 동결한 대학이 그 사실을 자랑스레 떠벌리고 있지만 사립대학 등록금은 평균 7.1% 상승하여 물가상승품목 중 상위권을 차지했다. 설상가상으로 자취비용도 점점 더 많이 들지만 부모님의 월급은 동결되거나 삭감되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청년실업이 문제된 것이야 옛말이지만,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1년짜리 일자리인 ‘청년인턴제’ 이고, 돈 많이 벌 때 임금 팍팍 안올리던 대기업은 위기가 오니까 대졸자 초봉을 깎을 ‘결의’를 했다. 누구든 여기에 몇 줄이고 더 힘든 경제상황을 나열할 수 있겠지만, 이쯤에서 그만하도록 하자. 어쨌든 이렇게 아직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삶, 그리고 미래까지 팍팍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작년 9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이후로 점점 더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리먼 파산과 더불어 메릴린치, AIG와 같은 투자은행과 보험회사가 매각되거나 국유화되더니, 지금은 메릴린치를 인수하면서 더 세를 키울 거라 여겨졌던 BOA(Bank of America)와 거대금융그룹이었던 시티은행, 미국경제를 선도했던 GM과 GE까지 주가가 폭락하면서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가 시작된 이후로 진행상황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지경에 이른 ‘원인’을 찾을 수는 없다. 조금 더 앞으로 돌아가, 2000년 이후 핵심 키워드를 가지고 위기의 원인을 찾아보자.

IT붐

2000년, 미국은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 말기, 한창 고어와 부시가 대통령 선거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김대중 정부 하에서 엄청난 구조조정을 통해 IMF위기를 막 극복할 즈음이었다. 지난 몇 년간 세계경제의 희망은 IT산업이었다. 재정적자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역플라자 현상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많은 양의 자본이 들어오는데, 이러한 자본이 당시 각광받는 산업이었던 IT관련 주식으로 몰리게 되고, IT분야를 중심으로 미국의 주식시장은 크게 성장한다. 당시 Yahoo와 같은 포털사이트 주식이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산업혁명과 IT를 비교하며 산업혁명에는 뒤졌지만 IT혁명에는 뒤질 수 없다며 컴퓨터와 인터넷을 빠르게 보급, IT벤처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IT붐을 보고 ‘신경제’라 일컬으며 희망을 갖던 사람들은 그러나 IT붐은 새로운 경제발전 메커니즘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만들어낸 거품(버블)이었음을 곧 깨닫게 된다. 어떤 산업이든 기업이든 주식이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되면 버블이 생겨난다. 주식의 평가기준은 모호한데, 사람들은 ‘미래수익’을 예상하며 주식에 투자하고, 그러면 그 종목에 또 돈이 몰리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의 특성 상 실물영역에서 수익을 내는 것보다 훨씬 단기적인 수익이 많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이미지’를 잘 설정하여 가치를 순식간에 높이고 거기서 발생하는 주식의 차액을 챙기는 것이 최근 주식투자의 공식이기 때문이다. IT기업들의 가치는 다른 기업보다 훨씬 가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 대체 인터넷 안의 가상공간은 어느 정도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느냐? - 특히 과하게 고평가된 측면이 있었다. 버블은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고, 2001년 IT주가는 크게 하락, 결국 신경제는 붕괴한다.

부동산의 증권화

IT붐이 꺼지자 미국은 즉시 경기침체에 빠져든다. 여기에서 미국의 FRB는 조치를 취한다. FRB는 오랫동안 경기침체기에는 저금리 정책을 통해 돈을 시중에 풀어 경기 활성화를 꾀하고, 호황기에는 고금리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고자 해 왔다. 의도한 대로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많이 빌려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렇게 돈을 빌려서 어디에 투자하느냐가 문제이다. FRB의 저금리 정책은 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어온 부동산 호황과 맞물린다. 시장에 풀린 돈은 부동산시장으로 몰리게 된다.

그렇다면 미국 경제의 침체기에 왜 부동산경기는 계속 호황이었을까? 그 이유를 살펴보자. 미국 정부는 다양한 세금제도상의 특전과 보조금으로 주택소유를 지원해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도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는데 여러 혜택을 주었고, 모기지(주택저당금융)론이 바로 그러한 방법이었다. 즉 사람들은 국가정책의 도움으로 부채 증가를 통해 소비를 늘리고 있었는데, 부동산도 그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저금리정책의 영향을 받아 2002년부터 주택경기는 더욱 활성화되고, 모기지론이 급증하게 된다. 그 중 특히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의 비율이 크게 늘어나, 2002년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의 3.4%만을 차지했던 서브프라임 등급은 2006년 말에는 13.7%가 된다.

이 모기지론이 최근 금융위기의 핵심에 있다. 2002년 이후 금융혁신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여러 파생상품들이 생겨나는데, 이 금융혁신의 핵심이 바로 ‘부동산의 증권화’이다. 같은 대출이지만, 남한에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다면, 미국은 모기지 회사에서 대출을 받는다. 모기지 회사는 은행이 아니라 모기지론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특수한 금융기관인데, 은행이 아니므로 사람들의 예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발명해 낸 것이 바로 모기지를 증권화하여 증권회사에 판매하는 방법이었다. (증권회사는 이것을 가공하여 다른 금융기관에 판매한다.)

모기지회사와 증권회사가 판매하는 증권이 바로 파생금융상품의 일종인 ‘MBS(주택연계증권)'와 ’CDO(부채담보부증권)' 이다. 이러한 증권과 이 증권에서 파생된 또 다른 증권 등이 전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갔고, 세계경제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자, 모기지 회사, 증권회사, 금융기관, 기관투자가를 비롯하여 증권에 투자한 모든 사람들의 순으로 긴밀히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2007년부터 우리 눈으로 확인했듯이 무너지기 쉬운 연쇄 구조였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금융혁신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채 비율이 급상승하고 있던 것과 동시에, FRB는 2004년부터 2006년 중반까지 여러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1%에서 5.25%까지 인상시켰다. 그러자 결국 주택거품이 폭발했다. 주택판매, 주택건설, 모기지 대출, 주택가격이 모두 급락하기 시작했다. 2007년 2∼3월 모기지 대출회사의 부실화와 파산 위기라는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의 태풍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이자율 상향조정의 첫 번째 물결이 강타했다. 금융위기의 신호탄이 쏘아진 것이다.

모기지 대출은 보통 3년 이상 운영되며 3년 이후에는 변동금리로 전환된다. 저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서브프라임 대부기관은 처음 2년 동안의 1% 수준의 매우 낮은 미끼금리가 이후에 변동금리가 적용되면 18% 수준까지 재설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았다. 즉 많은 사람들이 빌릴 당시의 금리가 낮았어도 몇 년 후 변동된 금리대로 돈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모른 채, 주택가격의 상승이 낮은 금리를 상쇄해줄 것이라 믿고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계부채를 계속 늘려왔다.

그런데 금리는 올라가고, 그로 인해 부동산 거품이 꺼져 주택가격이 하락하자 서브 프라임 등급의 대출자들이 돈을 빌릴 당시의 집의 시세보다 훨씬 떨어지게 되고 이들은 집을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흑인, 히스패닉을 중심으로 한 서브 프라임 대출자들은 돈을 갚지 못하여 담보로 잡혀있던 집을 잃고 (당시 연체율이 약 20%로 급상승한다.), 역시 빌려준 돈을 제 기간에 받지 못한 투자 기관과 서브 프라임 모기지 회사도 타격을 입었다. 2007년 4월, 미국 제2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회사인 뉴 센트리 파이낸셜이 파산 신청을 내는 것을 시작으로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가 시작된다.

2007년 8월, 미국에서 역시 급락한 주택 시세로 인해 투자 분을 회수하지 못한 미국 10위권인 아메리카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America Home Mortgage Investment) 역시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프랑스계 투자은행 베엔뻬 빠리바가 서브프라임 관련 두 종류의 펀드에 대한 환매를 중단하자 세계적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채권과 관련된 파생금융상품의 가격폭락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MBS 시장이 사실상 소실되었고, 이는 모든 층위의 부채담보부증권(CDO) 시장을 동결시켰다.

앞서 언급했던 연쇄구조는 빠르게 무너진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회사들이 순식간에 파산위기에 몰리고, 주가가 하락하면서 주식에 투자한 개인들도 손해를 입고, 금융에서 시작된 위기가 실물경제까지 영향을 미쳐 실업이 늘어나고… 하지만 이렇게 금융업에 너무 깊게 발을 들여놓은 회사들이 파산하고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금융은 모든 경제영역과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왜 평범하게 일한 사람들이 소위 ‘금융의 탐욕’으로 먹고 살 권리를 빼앗기게 되는 걸까? 우리는 어느새 금융자본에 지배당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필요하다.



2. 왜 금융자본이 경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나?

때는 70년대, 미국에서는 71년 닉슨이 금창구를 폐쇄하였고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났으며 미국이 베트남과의 정전을 합의한 2년 뒤인 75년에 베트남 전쟁은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이 난다. 70년대 들어 케인즈주의는 약발이 안 먹히기 시작했고 그동안 케인즈주의를 비판해왔던 세력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를 ‘신자유주의’라 부르기 시작했다. 결국 1979년, ‘불의의 일격’ 또는 ‘볼커의 반혁명’ 이라 불리는 사상최대의 금리인상이 이루어진다. 남한에서 70년대는 박정희의 시대였다. 79년, 그의 독재는 부마항쟁을 비롯한 민중들의 저항이 아니라, 김재규의 총성으로 끝마치게 되었다. 우리는 아주 나중에서야, 70년대 말에 박정희가 그의 경제정책을 발전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바꾸려 했던 것, 그것이 79년 4월에 실시된 ‘경제안정화종합시책’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국의 대공황 이후 억압받고 있던 금융자본이 반격을 꾀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70년대이다. 보통 70년대를 신자유주의의 과도기, 80년대부터 본격화된다고 본다. 초기에는 대부자본(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이익을 취하는 자본) 중심의 금융세계화가 진행된다. 이를 또 두 가지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73~79년의 저금리 대부자본 중심의 금융화, 두 번째는 79년부터 86년까지의 고금리 대부자본 중심의 금융화이다. 마지막 단계인 86년 이후부터는 증권시장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가공자본 중심으로 금융화가 전개된다.

대부자본 중심의 금융화

70년대 초반, 미국 경제는 자국 내 투자가 기대한 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자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이제 막 고도성장을 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산업자본에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79년까지의 저금리는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에 다다를 정도의 초저금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은행이 입는 손해는 커지고, 이와 동시에 달러가 시장에 엄청 풀리고 여러 가지 국제 정세가 더해져 달러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한다. 이에 대해 미국 재무부는 특단의 조치를 택한다. 이것이 79년 ‘볼커 반혁명’이다. 이로부터 금융화의 두 번째 국면이 전개된다. 이 조치로 인하여 마이너스였던 실질금리는 82년 최고 8~9%까지 상승한다. 금리가 높으니 당연히 전 세계의 달러들은 다시 미국으로 집중되기 시작하고, 금리가 높아지니 제 3세계 국가들은 갑자기 엄청난 이자를 감당해내야만 하게 되고, 결국 산더미 같은 빚을 감당하지 못한 채 ‘외채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더 이상 빚을 갚을 능력도 없는 제 3세계 국가들은 국가파산을 하거나 아예 돈 갚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구제금융조치와 모라토리움 선언들을 떠올려 보면 된다.) 이렇게 남미를 중심으로 제 3세계 국가들의 경제는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자 초기엔 고금리를 받았던 은행들도 위기에 처한다. 돈을 빌려간 사람이 파산신고를 하고 더 이상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하면 은행은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고금리에, 가뜩이나 산업도 잘 되지 않으니 새롭게 돈을 대출하지도 않는다. 빌려가는 사람도 없고, 돈을 빌려간 사람은 돈을 갚지 않아 미국의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기 시작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금융화의 단계는, 86년 무렵, 즉 대부자본이 줄줄이 파산하고 고금리 정책이 끝이 나는 시기부터 시작한다. 이전에 산업자본들은 대부분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재정을 마련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금리가 높으니 은행에서 더 이상 돈을 빌려서 쓰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그 재정은 어디서 마련하게 되었을까? 미국의 법인자본이 생겨날 때 취했던 방법, 바로 주식을 발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86년 이전에는 ‘유로달러’ 시장으로 재기를 노렸던 영국이, 이번에는 자국의 주식시장을 전면적으로 개방하고 각종 금융규제 조치를 철폐 하는 ‘빅뱅’을 일으켰다. 이에 각국도 앞 다투어 주식시장을 개방하고 금융규제를 없앰으로써 이제 은행 중심의 금융화 국면은 끝이 나고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화가 도래하게 된다.

가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사회로

이제 가공자본, 즉 주식시장이 경제를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 이전 시기는 대부자본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형식, 은행이 중심이 된 금융세계화였다. 반면, ‘가공자본’ 이란 말은 현실의 가치를 가지지 않고, 장래 수익을 낳게 하는 원천으로서 가공적인 자본의 형태를 말한다. ‘미래소득에 대한 청구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대부자본과 다르다. 대표적인 것이 주식인데, 예를 들어 내가 어떠한 주식에 일정한 돈을 투자를 하면, 투자한 돈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낸 이윤에 대해 자신이 투자한 만큼의 돈을 받게 된다.

그러나 주식은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데, 한편으로 금융자본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주식을 사야 산업자본이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공자본(주식)을 통해 주주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배당금, 경영권, 시세차익이다. 본래 금융세계화 전에는 앞서 설명한 대부자본을 비롯하여 배당금, 시세차익을 노린 가공자본의 이동이 철저히 금지되고, 경영권만을 목적으로 한 가공자본의 이동은 허용된다. 여기서 배당금과 시세차익을 노린 주식투자를 금융적 목적의 주식투자, 즉 포트폴리오 투자라 하고 경영권을 목적으로 한 주식투자를 산업적 목적의 주식투자, 즉 해외직접투자(FDI)라 한다. 이 두 형태의 가공자본을 구분하는 기준은 조금 애매한데, 다소 인위적인 기준을 설정하여 대충 10% 또는 15% 정도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면 금융적 목적이 아닌 경영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자로 간주되어 허용된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핵심은 이러한 가공자본을 비롯한 금융에 대한 규제를 없애는 것, 즉 금융해방이다. 지금까지 대부자본(은행)이나 가공자본(주식)에 가했던 온갖 규제들을 풀고 자유화하는 것인데, 국제적 이동 뿐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그러하다. 예컨대 은행은 과거에 주식시장에 투자하지 못했으나 점차 이를 가능케 하고, 이자율의 상한선 규정도 풀리고, 은행이 부동산시장에 투자하지 못했던 것을 풀고, 이런 세세한 제도들을 하나하나 다 없애가는 것이다. 미국에서 글래스-스티걸 법은 80년대부터 점점 해체되어가다, 99년에 완전히 폐지되었고, 남한에서는 겸업은행을 만들고자 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최근 발효되었다. 물론 그 전부터 각종 규제가 해체되어 왔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규제를 푸는 목표는 물가나 환율의 안정을 통해 금융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앞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해서 이야기했는데, 60년대 말에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초민족 법인기업은 외형상으로는 산업자본이지만 금융그룹처럼 움직이게 된다. 즉 ‘산업을 지배적인 요소로 하지만 금융그룹’ 이 되어간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인 GM, 가전제품회사인 GE 등도 금융적 활동을 통해 돈을 벌었고, 바로 최근까지 금융부문에서 낳는 이윤이 4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이 회사들의 위기는 이러한 금융부문으로의 무분별한 확장이라고 이야기된다.) 남한에서도 쉽게 예를 찾을 수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인 현대에서 ‘현대 캐피탈’이 나오고, 이 활동으로 많은 이윤을 남기는 사례가 그러하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금융자본의 이익이 여러 제도와 이념을 통해 비호되고, 전통적인 산업자본도 금융그룹의 성격을 띠면서, 금융은 거의 모든 부문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삶 구석구석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금융의 헤게모니 역전 전략은 사회제도도 변화시킨다. 단적으로 IMF구조조정과 같이 위기에 처한 국가의 체질개선 조치가 있다. 선진국들은 위기에 처한 제 3세계 국가들을 도와준다는 명목 하에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국가경제의 구조를 바꾸도록 종용한다. IMF는 외채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돈을 갚기 위한 효율적인 경제구조로 재편하라는 압력 또한 가한다. 여기서 말하는 ‘효율적인’이란 얼마나 그 나라에서 돈이 나오느냐, 이지 그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잘 사느냐가 아니다. 따라서 구조조정은 보통 사람들에게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M&A (기업들을 인수, 합병하는 것)를 보자. IMF에 의한 인수합병 절차는 단순히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하나로 뭉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업들을 정리 및 다운사이징하여 금융적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투자 가치를 상승 시키는 것이다. 또한 해고와 임금삭감을 통한 구조조정은 위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수많은 위기극복 전략 중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가장 고통을 많이 전가하는 방식이었다. 그 뒤에 다시 승승장구한 기업이 많았지만, 매번 ‘IMF보다 힘들다’는 말들이 나왔던 것을 떠올려보자.

또한 각국의 금융시장들은 철저히 개방된다. 물론 여기서 명목은 그 나라에 투자를 유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개방된 그 나라의 주식시장에 거대자본들이 들어와서 거품을 형성하여 재미를 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이제 ‘신흥공업국’ 은 ‘신흥시장’으로 변화하는데, ‘신흥공업국’이 산업 영역에서 새롭게 부상한 국가를 뜻한다면, ‘신흥시장’ 은 새로운 ‘주식시장’ 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신흥시장이 바로 남한과 대만이고, 이러한 국가들에서 외국자본은 자국에서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 바로 자본을 회수하고, 최근이 바로 그러한 상황이다. 환율이 몇 달 사이에 두 배 가까이 폭등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신흥시장에서 외환위기의 위험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각국의 목적은 자신들의 나라를 금융자본이 들어오고 싶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외국자본들에 의해서 자국의 존망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제 3세계 국가들은 점점 더 금융화를 가속화하게 된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위험요소를 더욱 끌어들이는, 생명을 건 줄타기를 하며 생존해나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3. 사이비 대안 말고 진짜 대안을!

우리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많은 것들을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30여년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처럼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이 흐름이 당연하다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 왔다. ‘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우리도 막을 수 없어’ ‘이것 말고 무슨 대안이 있단 말이야?’ 등등의 얘기들을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혹은 윽박지르면서 말이다.

위기가 심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추진했던 세력들도 뭔가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 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정책으로, 온갖 언론에서도 이 정책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본은 하나도 내주는 것이 없이 노동자들이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면서 해고를 막는 방법이다. 위기의 부담은 노동자들이 나눠서 지는 것이다.

청년실업이 더욱 심해지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청년인턴제도, 1년짜리 비정규직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우습게도 한나라당 김문수 같은 자들이 청년인턴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도 나이든 노동자들이 빨리 일자리를 그만두고 그 자리를 젊은 사람들로 채우라는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또 다시 노동자 내부에서의 싸움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경제학자들과 활동가들은 이러한 사이비 대안이 아니라, 진정한 대안을 찾으려 해 왔다. ‘위기라고 해서 사람들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면 안 돼. 기업에 투여하는 공적자금을 평범한 사람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금으로 주자.’ ‘돈 많은 사람만 더 돈을 많이 불릴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해. 금융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많이 걷자.’ ‘이런 상황을 우선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해. 교육 사업을 하자’ 등등으로 말이다. 이런 시도 중 현실화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으로 유럽에서는 자본의 이익을 비호하는 유럽헌법을 부결시켰으며, 남미에서는 FTA와는 다른 대안무역협정을 맺기도 하였다.

남한에서는 아직 크게 이렇다 할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의 활동가들은 WTO협정에 반대하는 남한 농민들의 활동으로 희망을 얻기도 하고, 몇몇 이들은 작게나마 자신의 권리를 찾기도 했다. 너무나 거대한 문제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는 대안은 실은 가장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우리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아지려면 어떻게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가? 어떤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하는가?’ 이렇게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가보자.

이 글에서 ‘금융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사람들의 삶을 팍팍하고 만드는 원인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는 이 원인에 맞선 실천을 고민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공부를 해갈수록, 그리고 구체적으로 노동자 민중이 어떤 부분에서 힘에 겨워하고 있는지를 직접 보고 알아갈 수록 우리가 무엇에 맞서야 하는지가 명확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의 결론인 ‘금융자본에 맞서자!’라는 막연한 방향성은 점점 더 구체화 될 것이다. 출혈적인 경쟁만을 해 왔던 지금까지의 삶의 원리를, 더 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삶으로 만들어가자. 그러면 우리의 세계는 더 크게 열릴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9/03/11 14:06 2009/03/1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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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전망] 


왜 미국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경제는 몸살에 걸리나요?




1. 들어가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경제상황은 계속 요동치고 있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현재의 위기는 실물경제에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며 확산되고 있다.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최대 자동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위기를 맞아 미 재무부에 자금요청을 하고 또 추가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응해 오바마 정부는 ‘신뉴딜 정책’과 제로 금리를 기반으로 한 ‘무제한 달러 공급’을 핵심으로 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미 수천억 규모의 금융 구제안이 시행중인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이것이 금융위기의 2라운드 혹은 ‘디플레이션’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헝가리ㆍ크로아티아ㆍ루마니아ㆍ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집단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동유럽발(發) ‘2차 세계 금융대란’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 국가가 서유럽 은행에서 대출받은 자금은 총 1조6000억 달러(국제결제은행 추산)에 이르는데, 만약 이들 국가가 연쇄적으로 채무불이행 선언을 하게 되면 서유럽 은행들의 부실채권은 급격히 늘어나고, 이는 다시 서유럽의 금융불안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언론에서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는 1,500원대로 치솟은 환율, 초민족자본의 탈출 러시, 외화유동성 부족 등 널려있는 악재들은 ‘제2차 금융위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외에도 한미 FTA와 자본시장통합법으로 미국 중심의 금융세계화에 더욱 깊숙이 발을 들여놓으려는 한국으로서는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며 동시에 미국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 뻔하다. 이 글에서는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를 한국과 미국의 경제관계의 역사를 훑어보면서 파악하고,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향방을 가늠해보도록 한다.

2. 한국과 미국 경제관계의 역사와 본질

한국이 미국과 정치ㆍ경제ㆍ군사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1945년 한국의 해방 이후 주변에 있던 소련과 중국은 현실 사회주의의 2대 강국이었고, 미국은 동아시아에 사회주의의 물결이 넘치지 않도록 전략을 세웠다. 경제적으로는 한국에 소비물품 중심의 원조를 하였고, 정치ㆍ군사적으로는 주한 미군을 배치하고 한국 정치에 대한 관여를 심하게 한다. 이것은 1950년대까지 이어지는 데 자본주의 세계의 최강국으로서 미국의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인들의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게 하여 사회주의로 경도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한편 단순한 원조정책은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를 미국경제의 구조와 긴밀히 연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방향은 지금까지도 한국 경제의 특징으로 남아있지만,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모습이 변화함에 따라 함께 변화해간다.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가 호황에 있을 때에는 한국의 경제상황 역시 나아지지만,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미국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경제는 감기에 걸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한국경제가 미국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서, 한미 경제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 1960년대 초~1970년대 말: 발전주의의 시대

냉전시기 동아시아가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바로 자본주의의 싹을 무럭무럭 기르는 것이었다. 이에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경제구조가 확립되어 가는데, 한국ㆍ대만ㆍ홍콩ㆍ싱가폴은 ‘동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서 급격하게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해 들어간다. 1965년 체결된 한일회담은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받거나 수출자유무역지구를 설립하여 외국으로부터 직접투자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자본을 바탕으로 군부독재정권이었던 박정희 정권은 ‘조국 근대화’라는 명목아래 강력한 국가 중심적 경제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런 정책은 주로 자본을 집중하여 한 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었고, 이로 인해 한국만의 독특한 기업형태인 ‘재벌’이 등장한다. 당시 추구했던 공업화의 내용은 1960년대 노동집약적 경공업에서 1970년대 중화학 공업으로 바뀌는데, 이러한 산업들은 미국ㆍ유럽ㆍ일본과 같은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발달한 산업들에 비해 이윤창출이 작은 부분들이었다.

한편 지금도 한국경제의 가장 큰 특징인 수출중심의 경제구조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자국시장을 활짝 열어주되 한국에 시장개방을 강요하지 않았다. 한국은 적극적으로 수출주도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자국시장은 개방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제품을 중심으로 미국에 대한 수출을 꾸준히 늘릴 수 있었다. 한국경제는 미국의 지원과 국가중심의 강력한 경제정책으로 신흥공업국(NICs)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1960~1970년대의 한국경제를 일컬어 ‘발전주의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사회는 급격히 변하기 시작한다. 점차 노동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농촌에서 유입된 인구로 도시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국가 중심의 동원을 강화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반공주의’가 강화된다. 이런 반공주의는 미국의 영향 아래 있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던 이데올로기였고, 이를 위해 국가를 중심으로 한 폭력과 억압이 심화된다.

□ 1980년대~1990년대 중반: 미국의 개방 압력과 3저 호황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와 독일ㆍ일본 등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추격으로 인해 미국은 최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잃어나간다. 또한 경제가 계속 악화되며 1970년대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미국은 1980년대부터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실시한다. 또한 쌍둥이적자(무역적자, 재정적자)에 시달리게 되자 미국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제 3세계 국가들에게 노골적인 경제적 압박을 가한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경제위기를 기회로 미국 자본이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제구조를 바꾸어나간다. 물론 냉전이 지속되는 시기라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던 한국은 라틴 아메리카와 같이 완전한 경제적 압박을 하지는 못한다. 한편 무역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의 엔화를 평가절상하는 내용의 플라자협약은, 80년대 중반 한국에서 ‘3저호황’(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저금로 많은 자본을 빌릴 수 있고, 저달러로 수입 비용이 줄어들며, 저유가로 생산단가가 낮춰지게 된 것이다. 3저 호황으로 무역 흑자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토대로 한국의 구조조정은 늦추어진다.

그런데 89년 폴란드를 시작으로 소련ㆍ헝가리ㆍ체코 등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한다. 미국에 대한 한국의 정치적 의미는 퇴색하였고, 미국의 한국시장 개방 압력은 가속화되었다. 어릴 때 들어봤을 법한 무시무시한 수퍼 301조’는 미국이 불공정한 무역행위를 하는 국가에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다. 그 ‘수퍼 301조 협약’을 89년 미국과 한국은 맺는다. 92년에는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미국계 초민족자본의 ‘국내 증권시장 투자‘가 가능해졌고,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되면서 농업 등의 분야가 대폭 개방된다. 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이에 가입하였고, 96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하며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에 강력하게 편입해 들어간다. 이런 흐름들 속에서 세계화나 경쟁 같은 담론들이 강하게 유포되어 가고, 국내 법제도 역시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는 미국계 금융자본에 유리하게 바뀌어 간다.

□ 1990년대 후반~2000년대: IMF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90년대 중반 이후 ‘4마리의 용’이라고 불리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자본의 불안정성에 타격을 받게 된다. 97년 12월 급격히 줄어든 외환보유고를 지탱할 능력이 없었던 한국정부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 IMF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맺은 ‘IMF 구조조정 협약’을 계기로 한국경제는 이전과는 다른 체제에 진입한다. 즉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한국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거의 완전히 개방되었고, 한국기업에 대한 외국인 주식의 총 보유한도가 점점 증가하게 된다. 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미국계 자본은 적극적인 투자/투기를 통해 헐값에 매입하게 된다. ‘바이 코리아’(Buy Korea)의 결과 투자자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그 수익률 또한 막대했다. 그 결과 외국인 보유 상장주식가액은 91년 당시 약 2.4조원 대, 97년 10조 원대였다가 99년에는 약 76.6조 원으로 대폭 증가하였다. 2000년 주식시장 거품이 거지면서 그 해 12월에는 약 56.6조 원까지 하락했지만 이후 다시 증가하여 04년 173.2조 원, 05년에는 급기야 260.1조 원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외국은행 자회사 및 외국증권사 현지법인 설립이 허용되었고, WTO 양허계획에 맞춰 각종 규제와 제도가 철폐되었다.

2003년 이후로 여러 국가들의 다자간 협상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무역기구와 도하개발아젠다(DDA)는 제 3세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저항에 부딪힌다. 이 때문에 국가와 국가가 직접협상(양자간 협상)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증가하는데, 한국에서는 2004년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동시 다발 FTA를 추진하고 있다. 그 내용은 DDA가 포괄하는 협정의 대상과 개방 수위를 훨씬 높여, 한국의 경제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의 FTA는 한국경제의 구조를 완전하게 금융자본이 가장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바꿔놓을 것이다. 한미 FTA가 시행된다면 이미 그 불안정성이 가시화된 세계 자본주의에 긴밀하게 통합하게 되며, 한국에서 초민족적 자본의 활동과 지배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초민족적 자본의 이득 면에는 민중의 삶과 권리가 파괴되는데, 이미 IMF 이후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등 노동 불안정성이 심화되었고, 복지제도가 공격 받으면서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수는 한국인구의 6분의 1에 가깝게 되었다.



3. 향후 한국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위에서 한국경제가 미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되는 상황을 역사적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런 연관은 향후 한국경제가 나아가는 방향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주식시세가 급격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롤러코스터 시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당장 하루하루의 전망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서는 다만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향후 경제위기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단상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키워드 ① : 동아시아와 미국경제

1980년대 이후 미국 경제가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면서도 계속해서 세계 최강국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동아시아의 역할이 크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의 이중 적자를 메워주고 있는 메커니즘으로서 동아시아 외환보유고 증가에 기반을 둔 달러환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에서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여 얻은 달러가 미국의 증권시장에 다시 투자되거나,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미국으로 자본이 도피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동아시아는 이에 걸맞은 체계로 바뀌어 가는데, 기존의 신흥공업국에서 벗어나 금융자본의 유출입을 쉽게 하는 신흥시장으로 탈바꿈한다. 미국에 의한 달러환류가 가능한 이유는 미국의 달러가 다른 통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이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미국의 발권이익(seigniorage, 액면가치와 발행비용의 차액)때문이다.

동아시아 달러환류 메커니즘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었던 이유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고가 1990년대 말 금융위기의 이후에 급격히 증가했던 데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정부정책상 외환보유고를 증가시키기 위해 통화안정채권이나 외평채의 발행을 통해 인위적으로 달러보유액을 늘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대하게 늘어난 외환보유고는 집중적으로 미국 재무부 증권에 투자되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의 지속적인 생산이 줄곧 미국 시장의 팽창에 의존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미국 시장의 성장지속과 동아시아의 성장지속은 서로에 대한 긍정적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동아시아에서 외환보유고가 늘어나게 되는 주원인 중 하나는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이면서, 또한 이를 가지고 미국 경제의 소비의 지속을 지탱해주는 메커니즘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IMF 구조조정 등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세계적 금융위기의 가능성에 매우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었지만,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장치나 제도가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이렇게 금융위기에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외환위기 가능성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체적으로 외환 보유고를 늘리는 것뿐이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동아시아는 미국의 경제위기를 떠안는, ‘미국의 금고’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메커니즘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미 미국 내에서도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달러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다. 이는 수출달러 환류를 가능하게 했던 미국의 지위, 즉 세계자본주의의 최종 소비자로서 미국의 지위가 언제 소멸하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다. 미국 재무부와 연준의 경제위기 극복방향은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과 인수ㆍ합병을 주도함으로서 금융자본을 구제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정책기조가 약간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현재의 위기를 몰고 온 ‘금융화’를 더욱 지원한다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시작하는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되고, 그 직격탄을 맞는 것은 미국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동아시아일 것이다.

키워드 ② : 자본시장통합법은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나?

장기화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5대 증권사를 미국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처럼 거대한 ‘금융투자회사’ 로 만들어, 금융시장을 발전시키겠다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이 지난 2월 4일부로 시행되었다. 07년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통합법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련된 기존의 6개법을 통합하고 관련 제도를 크게 바꾼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의 핵심은 지금까지 증권사ㆍ자산운용사ㆍ종금사ㆍ선물회사ㆍ신탁회사 등이 각각 판매하는 금융상품도 다르고 적용받는 법률도 달랐지만 이제 업종의 벽을 허물겠다는 것이다. 즉 증권사가 지금까지 선물사, 종금사에서 하던 일도 할 수 있고,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금융상품도 자유롭게 판매하며, 결제송금서비스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CMA(자산관리계좌)와 같은 방식으로 노동자의 임금도 금융의 변화에 긴밀히 연결시켜, 증권사(투자은행)가 모든 노동자를 금융투자자가 되게 한다.

또한 이명박 정권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의 후속조치로 각종 법령 개정을 추진하여 법 시행에 따른 제반조건을 보완하고,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완화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은행주식 보유규제 및 금융지주회사 제도 합리화 방안>(금산분리완화방안)의 요지는, 국내외 산업자본(기업)이 현재 4%로 되어 있는 시중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10%까지 늘릴 수 있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이나 사모펀드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증권회사나 카드회사를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까지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허용했고, 이에 따라 금융과 비금융회사들이 섞여 있는 기업집단(=재벌)이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기업과 금융회사가 함께 위험을 공유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지주회사는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제해 왔다. 하지만 금산분리가 완화된다면 재벌체제가 더욱 강고해지는 것은 물론 기업의 부실, 금융의 부실이 서로에게 전이될 수 있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동반 위기 폭발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 활성화와 금융투자기관 대형화를 초래할 자본시장통합법으로 한국에서의 금융화는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위기로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세계화가 급격히 붕괴되어 이미 작년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이 파산하거나 독자 생존을 포기했고, 자본시장과 투자은행 육성이라는 목표는 무색해진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은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지속되는 이윤율 하락과 금융거품까지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시장 육성으로 한국경제가 독자회생할리는 없다. 이번 경제위기의 시발점이 통제되지 않는 파생상품의 확산으로 형성된 금융거품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오히려 금융시장 육성은 금융위기의 위험도를 더욱 높일 것이다. 자본시장 육성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때맞지 않게 편승하는 조치는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하고, 민중의 생존의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키워드 ③ : 한-미 통화스왑(SWAP)은 환율불안을 해결할 것인가?

2008년 10월 한국과 미국은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맞교환) 계약을 체결하였고, 이것이 치솟았던 환율을 크게 하락시키고 1000선을 붕괴시킨 코스피를 급반등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 계약은 한국에 달러가 부족할 때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기금(FRB)에 원화를 제공하면 달러를 받고, 계약만기 시에는 다시 빌린 달러를 돌려주고, 원화를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최대 300억 달러까지 이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데, 미국은 규모 확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한 연장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빌린 달러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수료로 미국에 지불해야 한다. 이명박은 이러한 통화스왑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미국 국채 매각 카드로 ‘협박’까지 했다고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이제 통화스왑으로 인해 미국의 국채를 자연스럽게 매입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ㆍ멕시코ㆍ싱가포르와 통화스왑을 체결했고, 비슷한 시기 긴급경제구제책으로 쓰이는 7000억 달러 또한 국채 발행으로 해결했다. 이렇게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달러가 중요시되면서 미국경제가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달러강세를 지속시키고 있다. 위기는 당장 지연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은 미국을 중심으로 서로의 배를 쇠사슬로 묶어둔 것과 같이 다 같이 재앙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통화스왑은 환율불안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외환사정이 호전되려면 현재로서는 그 유일한 길이 경상수지 흑자를 통한 외환확보인데 이에 대한 전망이 별로 밝지 않다. 지금은 1997~98년과는 다른 상황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에는 원화의 평가절하와 수출 호조가 뒤따랐다. 미국 등 아시아 외 지역경제의 상대적인 안정 속에서 당시 막 붐이 일던 정보기술 제품의 대대적인 수출이 가능하였기에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반해 지금은 비록 원화가치가 하락했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나 지역의 경제도 부진하여 수출이 크게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어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4.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정부와 자본은 한미 FTA 체결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을 통해, 금융규제를 점차 완화가고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강행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더더욱 미국계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종속되고,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자본을 유출시키면 환율이 급등하고 한국경제는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위기가 중첩되어 한국경제는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위기로 인한 투자손실은 물론이고, 미국의 경기침체로 인해 무역적자가 증가하면서 외환위기가 재발할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우울한 전망은 금융위기의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한국경제는 벌써 환율인상ㆍ물가인상ㆍ신용경색ㆍ주식시장 하락ㆍ금리인상 등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본격적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자본이탈ㆍ거대자본 파산 역시 예상할 수 있고, 이는 실물경제 전 부분에 걸친 고용불안과 임금 삭감으로 민중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이미 IMF 때 우리는 ‘환란(患亂)’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주류 경제학자나 경제전문가들이 금융선진화를 이야기하며 미국경제로의 긴밀한 통합을 이야기하고 있는 현재,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혹자는 박정희 정권 시절과 같이 국가 중심의 경제정책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실물(산업)자본을 키우는 것이 현재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 역시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와의 긴밀한 연관 속에 가능한 것이었고, 이 시기에 만들어진 유산이 현재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미 경제구조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긴밀히 편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의지’만으로 상황을 역전시킨다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한편 세계최강대국이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이전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경제에 편입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의견 역시 제시되고 있다. 2008년 7월말 현재 중국의 미국 재무부 증권 보유액은 5187억 달러로 외국인 보유액의 20%를 차지하고 있고, 2007년 말 미국의 대 중국 무역적자는 2562억 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중국 금융이 양적인 면에서 크게 확대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오히려 중국이 강하게 미국경제의 운명에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것은 중국의 외환보유고의 상당부분이 대미 수출 시장 팽창에 의존하고, 이는 다시 미국 소비시장 팽창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경제 역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제 위기 부담을 계속 넘겨받으며 미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성장은 새로운 최강대국이 형성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왔던 한국경제는, 현재 금융위기 속에서 ‘감기’를 넘어 ‘몸살’, ‘중병’에 걸릴 지경이다. 한미 FTA에 반대하고 미국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단순히 ‘반미감정’에 호소하는 일부 ‘반미세력’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국가가 민중들의 삶을 책임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한미 FTA에 반대하고 미국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불안정한 금융세계화에 몸을 내맡기지 않겠다는 생존의 목소리이다. 현재 우리는 이런 목소리를 높여 나가며 한국과 미국의 부정적 관계를 끊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의 메커니즘이 만들어진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 분석을 해야 하며,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넘어설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의 시작이다!

Posted by 행진

2009/03/11 13:51 2009/03/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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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1] 


경제위기가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이유




1. 경제위기와 여성의 관계

너는 아직도 페미니즘 얘기하니?
요즘 세상에 여자가 어디서 차별받는다고.

알파걸, 골드미스가 판을 친다는 세상에도 차별받는 여성들이 있을까? 있다. 단지 ‘몇몇이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러하며 앞으로 그러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는 여성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안겨주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는 것이 이번 글의 주제이다.

<잠깐 질문>

그러기에 앞서 첫 번째 질문을 던지자면, 우리는 왜 여성이 ‘더’ 착취 받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하는 것일까? 절대 ‘더 불쌍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가 인간의 권리를 확장시켜왔지만 많은 경우에 이것은 ‘여성’의 권리를 확장시키는 것과는 별개로 존재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투표권이 그러하다. 우리는 투표권이 여성에게도 주어졌을 때 비로소 투표권은 ‘평등’해 졌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이렇듯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권리라는 것은 없는데, 경제위기 하에서 성별 간에 다른 방식으로 착취가 진행되고 있다면 그 내용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만 경제위기 하에서 발생하는 착취와 동시에 여성에게 더욱 부과되는 착취를 함께 없앨 수 있다. 경제위기만 극복하면 여성에 대한 착취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고 믿는다던지 경제위기부터 해결하고 여성에 대한 또 다른 착취를 없애겠다는 것은 별로 믿지 못 할 얘기가 아닐까?

여성 노동의 신화

사실 자본주의 아래서 여성이 ‘부수적인 노동력’으로 취급받은 역사는 매우 길다. 생산력이 급격히 높아진 자본주의 하에서 많은 노동력 없이도 충분한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때 생산의 바깥으로 가장 먼저 밀려난 사람들은 여성이었다. 이와 동시에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사람으로 정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성은 자본주의 시장구조에서 담보되지 않는 ‘재생산’의 영역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어머니의 숭고한 역할이자 여자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에 생물학적인 근거를 들이대기도 하는데, 세계 대전 당시에 많은 공장과 일터에서는 여성들만이 일했었다는 사실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생물학적 차이’의 결과라는 것은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즉, ‘힘이 세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아빠’, ‘연약하고 늘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은 엄마’라는 것은 환상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런 배경은 경제위기 하에서 여성들이 더욱 착취받기 쉬운 빌미를 제공한다. 이후에 사례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여성에겐 특수한 역할이 있다는 환상이 있는 사회 속에서 늘 ‘더’ 요구 받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번의 경제위기 이전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IMF만 생각해보더라도 여성들은 직장에서 우선해고 1순위였고, 그 이유는 언제나 ‘경제가 어려우니 집으로 돌아가라’였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여성 취업률이 높아지지만 나빠지면 가장 먼저 여성 취업률이 떨어지는 상황, 과연 자연스러운 차이에 의한 것일까?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를 살펴보자.


2. 여성, 어디서 일하고 있나?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에 의한 대량 실업이 발생했다. 연일 뉴스와 신문에서는 ‘고개 숙인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고 한 광고에서는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를 불렀다. 경제위기 아래 수많은 여성들이 우선해고 대상에 오르고 직장을 잃고 다시 가정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피땀을 흘렸음에도 응원 받는 사람은 단지 ’가계를 책임‘진다는 남성 노동자 뿐 이었다. 경제위기와 함께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것은 실업자, 반대로 이야기하면 직장이 필요한 사람이다. 최근 많은 50대 이상 여성들이 직장을 갖기를 희망 한다. 사람들은 중년, 고령의 여성들이 직장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속된말로 ‘애들 학원비나 벌’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판단은 임금수준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출난 직능이 없는 50대 여성이 구할 수 있는 직장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대형 할인매장, 청소업무, 보험판매사, 주방보조 등이 떠오른다. 앞서 열거한 대부분의 직업은 기본급이 없거나 봉급이 최저임금의 수준을 유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정당한 노동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은 여성이 맡는 역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때문에 여성들이 종사하는 일자리는 어느 곳보다 빠르게 비정규직화, 외주화 되어 왔고 가장 저렴하고 쉽게 자를 수 있는 노동력으로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이 활용되고 있다.

여성의 섬세함이 21세기형 리더십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참담하다. 2004년 OECD에서 실시한 국가별 남녀 임금격차를 보면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40%로 OECD국가 평균 20%를 훌쩍 웃도는 수준이다. 분위별로 보면 소득의 상위 20% 남녀 임금격차는 30%이하인데 이것은 평균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일수록 성별간의 임금 차별이 더 심각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현상은 ‘차이’일까 ‘차별’일까? 동일한 생산성을 갖고 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낮은 임금을 받는다면 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생산성’을 확인받을 수 있어야 할 텐데 한국노동연구원의 ‘여성인력과 생산성’(2000)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격차 가운데 38% 정도만 생산성 격차로 설명되고 나머지 62%는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즉 62% 정도의 여성들은 단지 성별에 의해 차별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의 70%가 여성노동자’라는 집계를 통해서도 여성이 더욱 취약하고 열악한 업종에 분포되어 있으며, 이는 여성의 노동이 저평가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기에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임금으로 받고 있다. 최소한의 임금이 왜 열심히 일한 사람의 전체 임금이 되어야 할까? 심지어 많은 사업장에서는 이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데 지킨다 할지라도 그 임금은 별로 현실적이지 않다. 청소 업무를 하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용역업체에 근무하며 한주 5일, 공식/비공식 노동을 포함해 하루 10시간 이상의 일을 한다 해도 많은 경우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80여만 원의 돈을 받는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80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병원에 가야 한다 던지 급전이라도 생길라치면 어떻게도 여유를 만들기 힘든 돈이다. 충분히 일하고도 살만큼 받지 못하는 것, 일을 하면서도 빈곤할 수밖에 없는 많은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최저임금은 그 비현실성이 인정되어 몇 년간 인상을 시켜왔는데, 최저임금을 임금으로 받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이것을 수포로 돌리려는 일이 있으니 최근 최저임금법이 개악된다는 소식이다. 지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최저임금에 대한 준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각 지역이나 나이에 따라 다르게 구성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갖는데, 이는 실제로 최저임금조차 앞으로는 더욱 보장하지 않겠다는 말일 뿐이다. 앞으로 최저의 임금선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은 어떻게 더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3. 우리는 일하고 싶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많은 여성들은 경제위기 아래서 더욱 극심한 착취에 노출되어 있다. 여대생의 삶 역시 결코 화려하지만은 않은데 최근 경제위기와 함께 취직 대신 결혼을 고려하고 있는 여대생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아도 그렇다. ‘취집’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는 지금, 여성에게 결혼과 취직이 동일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여성들에겐 꽤나 많은 평등이 주어진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형식적인 평등이 확립된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 왜 아직도 여성들은 차별받고 있는가? 우리는 이에 대해서 고민해 보아야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출산과 육아를 여성노동자만 걱정하지 않는 세상, 여성노동이 저평가 되지 않는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경제위기는 소수 몇몇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생사의 경계로 몰아넣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성은 그 충격을 줄이는 완충망 역할을 사회와 가정 양쪽에서 기대 받으며 갖가지 요구를 강요당하고 있다. 자본의 무한 증식 속에서 만들어진 오늘의 경제위기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그 답은 더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데 있다. 더 많은 이윤, 더 많은 효율로는 누구의 삶도 나아지지 않는다. 여성이 경제위기 하에서 더 착취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대안이다.

Posted by 행진

2009/03/11 13:36 2009/03/1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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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2] 

교육, 실업, 경제위기의 삼각함수




0. 대학 천태만상(千態萬象)

  캠퍼스에 봄이 흘러넘치면, 각 대학에서는 설렌 모습의 새내기들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활기가 넘치는 캠퍼스의 한 편에는 또 다른 걱정이 솟아난다. IMF 이후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하기 쉽지 않으면서 대학은 일종의 ‘취업 학원’으로 변모하였고, 많은 대학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되었다. 최근 경제위기가 더욱 심해지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강화되었고, ‘낭만이 넘치는 캠퍼스’의 모습은 3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라진다. 낭만이 사라진 공간에서 남은 것은 학점관리ㆍ어학점수관리ㆍ경력관리와 같이 길고 긴 스펙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 대학인들은 자기계발의 환상과 도태의 공포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기의 노동력을 경영하고 관리하며, '열심히 사는 대학생'으로 자신의 투자가치를 높이고 있다.

확대

한편 우리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모습 역시 10년도 채 안 되는 변화의 모습이다. 기업의 이름을 딴 건물이 들어서고, 단과대 건물에 기업의 실험실과 연구실이 버젓이 들어오고, 학내에 각종 상업 시설이 들어오는 모습. 학부제 도입ㆍ졸업인증시험ㆍ영어점수 획득 등 학사과정이 더욱 엄격해 지는 모습. ‘평생직장’은 없다며 직장을 잡은 후에도 주말에는 영어학원에 나가는 등 ‘평생교육’을 받는 모습. 캠퍼스에 5~6학년과 졸업생들이 많아지고, 더 이상 기초과학에는 관심이 없게 된 모습. 이러한 모습은 어디에서 기원하고,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는가? 2009년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이 예상될 정도로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대학교육의 모습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이러한 지점들을 예상하며 대학을 다니는 것은 우리가 공부하는 것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리고 경제위기 상황에서 어떤 행동들을 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1. 교육은 어떤 의미를 갖느냐?

  흔히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렀고, 대학인들은 ‘지식인’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대학은 학문연구를 하는 기관으로 각종 세상사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진리를 추구한다고 ‘생각되었’다. 혹은 대학은 ‘가난한 수재들의 공동체’로서 유일하게 계층상승을 이룩할 수 있는 방법, 개천에서 용 나는 장소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8년 대학 진학률은 83.8%에 이르며 아무도 대학인을 지식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모든 대학인들이 취직에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진리의 상아탑’은 옛말이 되었다. 그리고 사회적인 재원과 자원을 갖추고 있어야만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캠퍼스의 낭만’과 같은 말도 옛말이 되었다. 그런데 대학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어도 사실 그 본질은 경성제국대학이 성립된 1920년대나,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1970~80년대나, 2000년대 현재나 크게 다르지는 않다. 현재의 모습은 오히려 대학의 본질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대학의 본질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서 우리는 ‘근대경제체제=자본주의체제’라는 요인을 함께 살펴봐야만 한다. 근대 시민혁명 이후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과 같은 가치들을 내면화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지배계급이나 귀족들만 독점하고 있던 지식을 분배할 것을 요구하였고, 19세기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핵심적인 과제 중 하나는 ‘지식의 분배’였다. 한편 산업혁명 이후 기계제 생산 방식이 널리 확산되며, 그전까지는 숙련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던 핵심적인 기술과 노하우가 기계로 넘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 그 전까지 무기를 만드는데 있어서 대장장이의 기술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이런 기술은 도제 과정을 거친 몇 명 제자에게만 전수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기계로 무기를 만들게 되면서,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게 되었고, 기계를 관리ㆍ운영하는 방식이 더욱 중요해진다. 또한 대규모 기계제에 적합한 대규모의 노동자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를 육성하는 교육이 필요로 했다. 이를 필요로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계를 이용하여 생산을 하는 자본이었다.

이렇게 지식의 배분을 원하는 시민들의 투쟁과 교육된 노동자들을 원하는 자본의 요구가 만나며 초등교육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 학교교육이 확대된다.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교육의 비용을 줄이는 것은 ‘공교육’을 이용하는 것인데, 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드는 비용을 국가가 전담하며 ‘대중교육’ 확장되어 간다. 초등교육 기관에서는 기본적인 글 읽기 및 산수와 같은 노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식만을 제공한다. 한편 20세기에 들어서면 생산과정을 관리하고 이를 유통ㆍ판매 등과 연결하기 위해 회계ㆍ재무관리ㆍ마케팅 등의 활동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런 일들을 담당하는 중간관리자 계층이 등장하게 되고, 이들을 양성하게 위해 중등교육ㆍ고등교육 역시 확대된다. 상급학교로 진출함으로서 사무ㆍ관리를 담당하는 지식노동자가 되는 것은 육체노동자에 비해 고임금을 보장하였고, 중등 이상의 학교교육은 빈곤과 실업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층상승의 통로로 인식된다. 이로 인해 노동자의 지위와 임금이 학력에 의해 규정되기 시작한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모든 대중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의 필요에 따라 대중들 내부의 경쟁을 강화하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분할을 교육을 통해 정당화한다.

미국과 서유럽과 같은 중심부 국가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던 대중교육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대되는 과정에 발맞추어 확대된다. 한국 역시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자본주의 체계로 빠르게 변화해가고, 대학 역시 자본주의체제에 부합하는 노동력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기능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대학의 역사와 기능은 자본주의체제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대학은 자본주의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을 생산하는 공간으로서, 그리고 이에 적합한 노동력을 생산하는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경제위기의 양상과 이에 대한 대응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다니는 대학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 것인지 알아보는데 필수적이다.  

 

2. 금융화에 발맞추는 대학

  2009년 많은 대학들에서 등록금 동결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높은 등록금에 힘들어 하고 있다. 등록금은 이미 물가인상을 주도하는 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고, 사실 신자유주의에 맞춰 대학이 변해가는 징후는 바로 등록금 인상이었다. 즉 대학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미명 아래 재정을 차등지원하고, 알아서 살아남기를 강요하는 과정에서 등록금이 인상되었다. 한편 높은 등록금을 부추기는 원인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좀 더 복잡한 교육의 변화과정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대학 구조조정인데, 구조조정의 방향은 전 사회적으로 진행되는 '금융화'와 발맞추게 된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1) 대학의 운영 자체를 금융자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것 2) 대학에서 가르치는 지식 및 통제 방식이 변해가는 것. 이런 두 가지 모습은 서로를 보충해가며 현재 대학의 모습을 특징짓는다.

최근 가장 대표적인 현상은 대학 내 산학협력단이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여, 대학이 직접 기업을 설립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한 대학기술지주회사이다. 대학기술지주회사 설립과 관련하여 2008년 2월 통과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은 최근 더욱 완화되어 더욱 많은 대학이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월 국내 최초의 대학기술지주회사인 한양대의 ‘HYU홀딩스’가 첫 매출을 기록하였고, 서울대 역시 ‘서울대 기술지주 주식회사’를 출범하여 ‘매출 1조원 목표’의 장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또한 경희대와 고려대 및 동국대 등도 2009년 안 설립을 추진 중이고, 각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이에 대학은 일종의 기업이 되어 자금구조를 최대한의 수익을 얻는데 사용하고, 기업과의 연계를 더욱 노골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에서 생산되는 지식 역시 기업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데, 이미 이공계의 대학원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된 산학협동 과정이 사회과학ㆍ인문과학에도 침투하여 지식의 상품화 현상이 강해진다. 이런 과정에서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은 다른 분야에 통폐합되거나, 더욱 기업의 입맛에 맞추는 지식을 생산하게 된다.

대학에서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려는 지점은 갖가지 지점에서 나타난다. 최근에 금융의 불안정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많은 대학에서는 자금을 주식투자와 같이 단기간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자금을 구하기 위해 동문이나 교직원들에게 발전기금 명목으로 기부를 받거나, 심지어 등록금의 일부를 사용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 또는 캠퍼스 내에 상업시설을 유치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고, 최근에는 '잡 셰어링'이라는 명목으로 학내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구조조정을 하려는 시도들 역시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대학의 재단이 기업의 소유가 되며 둘 사이의 연계가 강화되는 것을 넘어, 현재는 대학이 적극적으로 '금융투기'의 주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학교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상품화하고 있고, 이는 학교의 발전이 곧 구성원들의 발전과 동일하다는 '학교 발전이데올로기'로 이어진다. 학교 발전이데올로기는 대학과 그 구성원들의 배타적인 이익을 옹호하는 기관으로 변모하고, 이런 전략과 위배되는 행동을 하거나 반대하는 세력들을 '외부세력'으로서 배제한다.

경제위기 속에서 대학의 금융화ㆍ기업화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대학이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대학의 경쟁력이 높아져야 학생들도 잘 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위기의 원인이었던 금융화에 대학들이 발맞추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장작을 지고 불 속에 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할 따름이다. 또한 대학의 지식이 단기적으로 기업의 수익을 창출하는데 맞춰짐에 따라, 지식의 내용과 사회에 대한 장기적인 기여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점점 기업이 되어가고 있는 대학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3. 대학은 실업률 관리기관?

  2009년 2월 대학의 졸업식장의 풍경을 취재하는 기사들은 '실업', '취업난', '졸업자 감소'와 같은 단어들이 뒤따르는 대학의 우울한 자화상이 담겨있었다. 대졸취업률이 역대 최저에 치달은 상황에서, '잡 셰어링(job sharing)'을 통해 대졸 초입을 깎고 신규인력을 창출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 하고 있다. 몇몇 신문에서는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84%에 달하는 현재 상황에서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대한민국 대다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기술ㆍ기능을 연마해 빨리 사회 적응에 나서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하지만 학력격차는 노동시장에서 곧 임금격차로 나타나고, 상급학교에 진출하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 자체의 폭이 줄어든다! 따라서 실업이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대학진학률이 이렇게 상승한 이유는 문화ㆍ의식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캠퍼스에 '장수생'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이 금융자본 중심의 경제구조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주식ㆍ양도성예금ㆍ모기지 등 금융관련 상품이 증가하고, 벤처사업을 육성한다며 1996년 코스닥 시장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금융을 육성하여 한국경제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과 달리, 금융자본은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는 영역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금융시장을 육성함으로서 사람들을 많이 고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들의 행위에 따라 주식의 허구적인 가치가 상승ㆍ하강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고용 없는 성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경제위기의 양상은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실물자본에까지 옮겨가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고용되어 있던 노동자들도 해고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은 개개인이 능력 없는 탓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단순히 '눈높이'를 낮추는 것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문제는 금융자본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진 현재 경제체제의 문제이고, 몇몇 경제전문가들이 좋은 정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현재의 체제를 바꿀 수 없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취업률이 최고의 홍보수단이 된 대학들은, 심각해진 실업문제와 관련하여 대안을 내놓고 있다. 숙명여대는 취업하지 못한 졸업자와 졸업예정자를 위한 무상 프로그램인 '학사 후 과정(Post-Bachelor Program)'을 시행하고 있다. 동문멘토링ㆍ취업캠프 등 프로그램으로 '백수 졸업자'의 취업 지원을 하는 학교들도 있는데, 한국외대는 7월 '졸업생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어학강좌와 경영회계실무 등을 교육할 예정이고, 성공회대도 내년 여름방학부터 '모의회사프로그램'이라는 졸업자 취업지원제도를 시행한다 한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학생들의 취업을 지원한다는 측면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양산되고 있는 '예비실업자'들을 학교에 묶어놓아 취업률 통계를 관리하는 방법이다. 한편 이것은 정부에서 취업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은 '포뮬러 펀딩(Formula Funding)' 등과 맞물려 정부지원을 획득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실시하며 이미 그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청년 인턴제 정책'과 맞물려, 각 대학의 실업대책 역시 낮은 임금의 임시직을 양산하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에 걸맞은 노동력을 양성하며 급격히 증가한 한국의 대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실업률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인들에게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들어가서, 계속 일하고 싶다면 끊임없이 개인의 경쟁력과 스펙을 쌓아야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억지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기간은 무한히 늘어나고, 실업 인구는 적체되어 가고 있다. 대학들은 실업문제를 결코 해결하지 못하며 문제를 유예하고 봉합하는 데 적극 동참할 뿐이다.  

 

4. 어떤 대학생활을 할 것인가?

  우리가 대학에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은 무엇 때문에 대학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진리 추구’ 혹은 ‘학문 연구’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은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혹은 남들이 다 가니까 어쩔 수 없어서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목표’도 현재의 상황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경제위기 속에서 실업률은 점차 증가하지만, 역설적으로 교육을 받는 시기는 점점 늘어간다. 대학은 금융화ㆍ기업화에 적극적으로 편입하며 경제위기에 대응한다고 하지만, 일부 사람들만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과정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해야 할 지식은 오히려 인간을 구속하고 있다.

현재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고 스펙을 쌓는 것 보다, 대학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공부를 하는 것의 의미를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소한 아직 대학생활의 여유가 남아 있다면, 졸업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다면 위와 같은 것들을 성찰할 수 있는 활동을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취업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변혁적인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것, 거리에 몸을 맡기고 사회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실천을 하는 것, 최대한 학내에서 자치활동을 많이 해보는 것. 이를 통해서 대학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지식에 짓눌리지 않게, 교육을 받는 것이 더욱 많은 사람에게 행복한 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더 이상 대학을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부르지 않고, 대학 자체가 기업이 되고 있는 현재. 대학-실업-경제위기의 삼각함수를 풀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

Posted by 행진

2009/03/11 04:40 2009/03/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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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세계화 운동을 남한 곳곳에 뿌리내릴

전국학생행진 본조직 출범을 선언하며!!


경제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지난 해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되어 실물부문의 경기침체로 확장되고 있는 지금의 위기는 장기화된 불황을 향해 치닫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초민족적 자본은 자신들의 이윤놀음을 위해 노동권, 주거권, 식량, 생태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을 자신들의 질서로 종속시키고 파괴해 왔다. 전반적인 이윤율 하락 경향 속에서 적절한 실물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철저하게 금융의 논리에 종속되어 투자되고, 금융지주회사가 산업자본을 소유하는 형태로 지배구조가 변해온 것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본질이다. 파생상품을 확산시키면서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금융거품을 형성해 온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친 덫에 걸려 체제 자체를 위협할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지배계급들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리면서, 민중들의 고혈을 짜내 위기를 지연하려고 하고 있다. 경제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고통분담’, ‘노사화합’ 이데올로기는 대규모 해고와 임금삭감,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이미 비정규직 해고 및 정규직의 ‘희망퇴직’, 조업단축이나 잔업특근 축소로 인한 임금삭감 등의 일이 개별 사업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하면서도 청년인턴제 실시, 최저임금법 개악,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악,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대한 법률 개악 등을 통해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을 확대하는 자본의 전략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또한 ‘자본시장통합법’ 등을 통해 불안정한 세계 금융질서에 더욱 더 밀착하면서 경제를 회생시키겠다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이러한 지배계급의 공세를 막아내기에 현재 운동진영은 너무나 앙상한 모습이다. 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계급투쟁이 역사적 패배를 맞이하면서 80년대 초중반이 지나야 시작된 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너무나도 빨리 위기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념과 운동의 혁신’을 꾀하지 못하고 97년 외환위기를 맞이한 변혁운동은 ‘신자유주의’라는 지배계급의 전략에 맞설 ‘피지배계급의 재조직화와 주체형성의 전략’을 밝히지 못하면서 파견법, 정리해고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본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부문간・기업간 격차도 커졌는데 이러한 분할선을 따라 노동자・민중들은 분열되어 연대와 단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또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의 부재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우선해고를 수용했다. 최근에 벌어진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은 이러한 역사적 과오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지배계급의 위기가 곧바로 민중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줄 보증수표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조, 당 할 것 없이 각급 대중조직이 대중과 운동의 융합의 표상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새로운 계급주체 형성에 실패한 것에 대한 결과이다. 대중운동이 일시적으로 고양된다 하더라도, 이를 분명하게 전체운동 상의 조직적인 성과와 전략적인 혁신으로 나아갈 수 없는 현실, 이는 학생운동이라 하여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운동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민중들의 요구를 학생대중의 보편적인 요구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학생‘부문’의 문제를 강조하면서 대규모 조직력에 대한 환상에 빠지거나, 대중운동 차원에서 의미없는 분별정립을 하면서 끊임없이 축소되어왔다. 다양한 계기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터져 나올 대중운동을 담을 그릇으로서, 또한 이를 급진화시킬 대중조직이 실천적으로 붕괴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국학생행진의 초기 문제인식인 ‘反신자유주의 대중운동 협의체’라는 전술도 수정을 요구받았다.

건설준비위원회로서의 3년을 거쳐 본조직으로 출범하는 전국학생행진은 이제껏 지속되어 온 운동의 위기를 끊어낼 이념의 혁신과 재건을 도모하는 학생활동가 조직으로서 자기역할을 분명히 할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인종/성별/나이/학력 등의 차이를 차별로 만들어 전 세계적 착취구조를 만드는 지배계급들에 맞서, 차이를 권리로 확장하는 가운데 특정 부문의 이익을 넘어 노동자민중의 단결을 확대하는 것이 대안세계화 운동의 문제의식이다. 우리가 속한 공간에서, 때로는 그 공간을 뛰어넘어 대중의 한 가운데에서 운동을 다시 조직해 내면서, 어느 것 하나 양보할 수 없는 민중들의 권리를 세계화하는 첫 발을 내 딛자.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의하는 바이다.

전국학생행진은
금융화와 궁핍화에 맞서고, 금융세계화를 보호하고 통치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반대하면서
민중의 생존권과 평화권을 위해 투쟁한다!
또한 페미니즘 없이는 어떠한 운동도 지속될 수 없음을 분명히 인식하며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에 저항하고, 여성권과 노동권을 쟁취한다!
마지막으로 교육의 시장화 흐름에 반대하며 집단적 자기통치의 조건으로 민중의 지식권을 쟁취한다!

이를 위해,
학생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복구하고
정세분석 및 토론, 대중정책 기획, 실험 및 평가를 통해
대안세계화 운동의 기지가 될 공간과 주체를 형성할 것을 결의한다!

폭력과 착취로 연명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현재적 형태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종식시키고 민중들의 대안이 거대한 물줄기로 쏟아져 내리게 할 장구한 싸움이 단단한 기반 위에 설 수 있도록 전국학생행진 회원 모두는 견결하게 투쟁할 것이다.


2009년 2월 22일

전국학생행진 본조직 출범총회 참가자 일동


Posted by 행진

2009/03/11 04:34 2009/03/11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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