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화되는 재정적자,
위기의 도화선이 될 것인가?




지방정부의 빚잔치

지난 7월 12일 경기도 성남시 이재명 시장은 LH공사와 국토해양부에 갚아야 할 5200억 원이 없다며 채무지급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경기도에서 재정 자립도가 가장 높아 이른바 ‘부촌’으로 불리던 도시에서 발생한 일이었던 만큼 사람들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성남시 발전연합회는 시장이 시민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정치쇼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행정안전부 역시 성남시 상황은 ‘과대포장’된 것이라며 시장의 ‘섣부른 행동’을 공식 비판했다. 여기저기에서 성남시 시장의 충격적 선언에 맞대응했지만 충격적 사실 그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성남시의 빚은 여전히 5천억 원이며, 성남시는 현재로서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성남시뿐이 아니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성남시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한 부채문제를 겪고 있다. 제 2, 3의 모라토리엄 선언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0년 현재 전국 지자체들의 부채 규모는 거의 100조 원 가량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국가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넘어서는 막대한 액수이다. 특히 인천시 같은 경우는 부채가 거의 3조까지 늘어나 예산규모의 30%에 육박하여 제 2의 성남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방 공기업의 부채 문제도 만만치 않다. 지방 부채 중 지방공기업의 부채는 약 42조 정도이며 이는 공기업 전체 예산의 140%에 달하는 금액이다. 더군다나 지방공기업 세 곳 중 하나는 부채비율이 300%가 넘어선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자립도 수치는 더욱 가관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 중 80% 가량이 재정자립도 50%를 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지자체로서는 예산의 반 이상을 지원받거나 빌려오지 않는 이상 운영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특히 군 단위는 열에 아홉이 30%에도 못 미치는 재정자립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전라남도 내 지자체 자립도는 평균 11%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가 1997년 이후로 지속적인 하락 추세 놓여 ‘자치단체’로서 지속 가능성을 위협받을 수 있는 도시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료 :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예산개요"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가?

보다시피, 지방재정의 경향적 부실화와 지역 간 재정 불균형 현상은 이미 우려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 쯤 되었으면 어쩌다 지방정부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따져봄 직도 하다. 대다수의 재정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지방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영과 비전 없는 지자체 운영으로 현재의 위기가 발생했다고 이야기 한다. 공무원들이 해외 탐방이랍시고 호화여행을 다녀온다거나, 청사신축에 수천억 원을 쏟아 붓는다거나, 공약 지키겠다고 온갖 선심성 행정을 남발하는 행태들이 바로 방만한 재정운영의 예이다. 비전 없는 지자체 운영이란 낮은 재정자립도를 극복하려는 지자체만의 특화된 전략 없이 관성적인 행정운영만 반복하는 지방 관료들의 행태를 말한다. 요컨대 돈을 벌어들여 재정자립도를 향상시킬 고민은 하지 않고 해외탐방이니 업무환경개선이니 하며 돈만 계속해서 축낸다면 재정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철저한 긴축관리를 통한 세출 절감 및 감시제도 도입과, 지역별 특성화 사업을 통한 세출 증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문제의 원인이 수입 없이 지출만 했기 때문이라면, 역으로 문제의 해결은 쓰는 돈을 줄이고 벌어들이는 돈을 늘리자는 나름 그럴듯한 발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현재의 지방정부 부채위기의 뒤에는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라는 거대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통념과는 달리, 금융세계화는 고삐 풀린 자본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민중을 착취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서구 열강들이 노동력, 자원, 시장을 찾아 지구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던 것에 반해, 그리고 냉전 시기의 미국이 철의 장막 이편의 나라들을 모두 자본주의화 시키기 위해 온갖 공작을 일삼았던 것에 반해, 현재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몇몇 세계도시(Cosmopolis)만을 쓸모 있는 공간으로 여길 뿐 지구 대부분의 지역들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요구에 따라 지역체계는 점차 재편된다. 한 국가 안에서, 깔끔한 국제공항과 회의 시설, 그리고 금융/통신/법률서비스로 무장한 세계도시가 형성되고 그 외의 도시들은 이로부터 분리된다. 전자는 후자와 운명을 공유하지 않는다.


금융세계화에 급속하게 편입 중인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울과 몇몇 수도권 도시들은 정보화/서비스화를 통해 나름의 세계도시적 자태변환을 시도하고 있는 반면에 그 외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들은 이러한 흐름에서 배제되어 도태되고 있다. 세계도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유무역지구와 같은 반민중적 정책 등을 통해) 외자 유치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경우가 간혹 있기도 하지만, 그 역시 매우 일부일 뿐 대다수 도시들은 활로를 찾지 못하고 쩔쩔매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과 지역 혁신 클러스터, 이명박 정부의 혁신 도시 등이 제기된 이유도 정확히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도태되고 있는 지방 도시들의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시한 나름의 해결책이 행정수도 이전을 통한 지역 균형 발전이나, 지방 특성화 사업을 통한 재정자립도 확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는 실패했고 후자는 ‘나비도시’ 함평과 같은 소수의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배제된 자들의 경쟁으로서) 지역 발전 이데올로기는 남아있지만 지역 현실에 맞는 중장기적 발전을 위한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각 지방정부가 택한 방법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수 있는 사업에 돈을 쏟아 붓는 것이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토목-건설 사업이나 전시행정을 경쟁적으로 수행하게 된 것도, 그리고 이로 인해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게 된 것도 이러한 사정에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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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흐름 속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금융위기는 현재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에 결정타를 날렸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방정부는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었다. 대부분의 경기부양 자금들은 건설-토목 사업을 대폭 늘리는데 사용되었다.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켜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의도였다. 전국 14개 광역자치단체 산하의 도시개발공사가 발행한 채권 규모는 2007년 8000억에서 2008년 14조 8000억으로 1년 새에 약 14배 늘어났다. 특히 인천도시개발공사 같은 경우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약 2년 사이에 3조 3천억 원 규모의 채권을 신규 발행했다. 이는 2008년 1600억 원 이었던 채권 발행 잔액보다 20배 이상 많은 액수였다. 게다가 이러한 막대한 세출은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정책과 함께 이루어졌다. 2009년 한 해에만 지자체의 세출이 12조 2000억 원 증가한 반면, 세입은 7조원이나 감소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실 건설-토목 사업을 대폭 늘려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되고 경기가 부양되어 투자되었던 돈이 회수될 수 있다면 그만이다. 인천도시개발공사도 토지 및 아파트 분양수익으로 차입금을 갚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다. 심각한 경기침체 국면은 벗어났다고 하나 부동산 시장은 낙엽이 나풀나풀 떨어지듯 살며시 낙하하고 있는 중이다. 인천도시개발공사가 착공한 송도국제도시 내 ‘웰카운티 3차’ 분양은 외국인 전용 120가구에 단 1가구만 청약이 들어온 상태이다. 성공을 장담한 것 치고는 결과가 너무 초라하다. 이제 지방정부로서는 정말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게 되었다.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도, 인천이 제 2의 성남시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그리고 소수의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지방 대부분의 도시들이 재정위기로 인해 심각한 곤란을 겪으리라는 예측도 모두 이러한 상황에 근거를 둔 것이다.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투쟁의 정당함, 투쟁의 유효함

상황이 이러니 누가되었든 해법을 내놓기는 내놓아야 한다. 보수주의자들처럼 전통적인 ‘작은 정부’론에 입각하여 공기업 민영화나 사회보장축소를 주장하건, 소위 재정전문가들처럼 수줍게 지역 특성화 전략과 세출감시제도를 제안하건, 우리에게는 솔직하게 위기를 인정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금 억울한 감이 있다. 우리는 현재의 금융위기/재정위기가 모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기인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곧 돈 있는 자들의 아욕과 탐욕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다. 지구 대다수의 지역이 ‘무방비도시’가 되고 인간의 삶에 ‘잔혹’이 일상화되어도, 코스모폴리스만 안전할 수 있다면 태평천국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단죄 없이 위기 비용을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우리는 절대로 저들이 만들어 낸 위기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We won't pay for their crisis!”). 그리스 노동자들이 사회보장제도를 후퇴시키는 긴축정책에 반대하여 벌이고 있는 투쟁과, 남한의 노동자들이 위기 비용 전가에 반대하면서 생존권 보장과 고용ㆍ성장 정책을 요구하는 투쟁이 그 어떤 해법보다 정당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것이 곧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몸부림을 제어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생존권 투쟁에만 머무른다면, 후안무치한 신자유주의자들과 무지한 재정전문가들을 넘어설 수 없다. 특히나 현재 재정위기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의 재정지출확대(‘서민경제 살리기’, 사회보장제도의 양적 확대 등)만을 요구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경제적 파산과 정치적 혼란뿐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회보장 축소나 공기업 민영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누진과세 확대를 통해 과세를 증대하거나 혹은 과세를 개혁하는 등 재정운용을 효율화하여 평등주의적인 정책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중요한 점은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생존권 투쟁을 넘어 현재 금융위기와 재정위기의 메커니즘을 변혁할 수 있어야 하는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그래서 투쟁의 정당함과 투쟁의 유효함이 서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자체이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행해져야 하고 행해질 수 있는가? 답변의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를 무엇으로 생각하건 관계없이, 이 주제를 토론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발리바르의 말처럼 “실패한다면, 어떠한 변명도 필요 없을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10/08/07 17:07 2010/08/0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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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G20 투쟁을 전개하자!




4차 캐나다 회의 결과

6월 28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막을 내린 주요 G20 4차 정상회의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선진국들이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2016년까지 GDP 대비 부채비중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는 남부유럽금융위기에 직면하여 재정건전성에 주력해야 한다는 유럽의 의견을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식발표문에는 "재정적자 감축 노력이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가 남부재정위기를 해소하기위해 재정긴축이 시급한 유럽과 하루빨리 세계경제를 재편해야 자국경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미국이 재정정책을 두고 대치하고 있다. 또한 은행세에 대한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갈등 역시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은행세 안건자체가 폐기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글로벌 무역 균등화, 중국 위안화 절상 등의 민감한 사안들이 거론되었지만 효력 없는 합의만 있을 뿐 실질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현실은 G20을 통한 국제적공조로 경제위기해소, 금융을 규제하겠다는 저들의 선전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까지 주요국 정부들은 ‘전례 없는 국제 공조’에 따른 공격적 경기 부양으로 경제위기를 물리칠 수 있었다며 득의만만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지난 3차 회의 때만 하더라도 출구전략을 논의하던 지배계급들은 당장 터진 위기 앞에서 당황하며 출구전략 논의를 미루고 결정한 것이 고작 재정건전성확보, 재정긴축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고작이었다. 캐나다 토론토에 모인 G20 정상회의도, 그리고 IMF도 ‘이제는 누가 뭐라 해도 재정건전성을 위해 힘쓸 때’입니다. 라며 해결책도 의지도 없이 그저 말뿐인 선언만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저들은 지금까지 선언된 것들이 5차 서울회의에서 그동안 회의를 통해 합의된 결과물들의 구체적 방안이 도출될 것이라며 온갖 수사를 갖다 붙이고 있다.  하지만 벌써 4번이나 회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해소와 금융규제를 위한 제대로 된 합의조차 이뤄내지 못한 G20이 갑자기 5차 회의에서 ‘선언’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각국들의 자국의 이익을 두고 팽팽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5차 회의가 진행되는 11월 즈음 이 상황이 극적으로 타개될 것이란 희망을 품는다면 이는 공상일 뿐이다. 이와 같이 G20은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지만 각 정권은 G20에 목을 매며 밑도 끝도 없이 G20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며 전 국민들이 G20을 올림픽처럼 환영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들이 이토록 G20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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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을 통해 노리는 것

각 정권은 G20정상회의가 경제위기를 비롯하여 모든 위기와 문제의 해결사인 마냥 홍보하지만 이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은 지난회의 결과들이 증명하고 있다. 허나 더 큰 문제는 금융규제안에 대해서 내놓는 각 국의 안들이, 현재 위기의 원인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억압하고 규제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진전시키려는 방향 속에서 설정되고 딱 그 수준에서 각 국의 이해를 도모하는 방식으로 대립하고 있다는 데 있다. 때문에 그 합의가 무엇이든 금융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저들의 기만은 계속될 것이며 한국에서 진행되는 5차 G20을 성대히 마친다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은 파국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말하는 위기극복이란 위기전가와 다를 바 없다. 지난 2차 런던 회의에선 ‘경기부양’이 핵심적으로 논의되면서 신흥개도국들을 지원하기 위한 1조 1천억 달러 출자가 합의되었고 이중 7천5백 불이 IMF에서 확충되었다. 즉 IMF를 통해 신흥개도국들에게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에 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나라들이 대부분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된 사실들만 보더라도 ‘지원’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결국에는 G20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세계경제 재편의 질서를 신흥개도국들에게 제시하면서 모든 고통을 ‘전가’하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없는 것을 우리는 97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또한 국제금융기구 개혁 등의 구체적인 사안들이 IMF와 기존 국제기구들에게 맡겨졌으며 이는 결국 국제금융기구의 자본과 기능을 강화를 하겠다는 것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더불어 5차 G20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은 스스로를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가교’로서 역할을 설정하면서, 개도국과 신흥국의 입장을 대변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이렇듯 의장국의 체면상 중립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사실 한국의 역할은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세계경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미국의 입장으로 개도국을 잘 달래주는 것에 불과하다. 즉 G20으로 금융을 앞세운 국경 없는 수탈을 이름만 바꾼 채 계속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3차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부터는 논의된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을 위해서 위기 극복 이후에도 글로벌 거버넌스로서 G20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각 국의 정상들이 한 치의 거리낌조차 없이 동의하는 이유이다. 이와 같은 G20의 5차 회의를 성대히 진행해야할 한국정부는 적극적으로 거리의 노점상을 몰아내 디자인 서울로서의 면모를 다지고,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며 추악한 한국의 노동현실을 가리려 하고 있다. 또한 한국경제가 안정기에 접었으니 ‘금리인상’을 하라는 IMF와 OECD의 요구까지 모범국가답게 열심히 받아들이면서 서울회의 이전에 이를 추진할 예정이며,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온갖 공공요금을 인상시키며 노동자민중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물론 이렇듯 G20 스스로가 자신들의 기만성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G20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거센 금융위기에 몸살을 앓았지만 그래도 국민들이 ‘해내야 한다.’는 정부의 이데올로기 공세 역시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G20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때문에 G20에 대응하는 우리의 투쟁은 그 목표와 방향이 명확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요구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투쟁을 진행한다거나, 독재, 반민주와 같이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한 일반적 비판이나 G20회의테이블이 약소국 배제하는 절차와 체계를 비판하는 운동으로 G20투쟁의 내용을 채워갈 벌여선 안 될 것이다. 현재 국격 상승과 경제위기 해결을 내걸어 민중들에게 환상을 심으며 본질인 금융세계화 심화를 은폐하고 있는 G20의 본질적인 성격과 그 모순에 대한 비판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G20 정부의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국민들의 희망을 망치고 국익에 반하는 적으로 몰려 고립될 수밖에 없으며 G20의 본질을 흐리고 대응을 지지부진하게 만들뿐이다. G20이 정당성의 확보를 위해 여러 의제를 가져다 붙이고는 있지만 결국 자본과 정권 자신들이 몰고 온 금융위기의 비용을 세계적으로 전가시킴과 동시에, 금융시장을 더욱 더 탄탄하게 만들고 확장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즉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수많은 이익을 가져다 준 금융세계화의 연명만을 논의하고 있는 곳이 바로 G20인 것이다. 이를 명확히 파악하고 운동을 만들 때 비로소 우리는 G20에 대항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민중운동진영 내에서의 G20대응투쟁은 금융세계화반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G20을 ‘계기’로 투쟁을 벌여낸다는 것은 단순히 G20이 포괄하는 수많은 의제별로 대응하여 따낼 것은 따내고 반대할 것은 반대하자는 이야기부터 사람들이 분노할만한 내용으로 투쟁하자는 대중추수적인 논의들 그리고 11월 투쟁 중간에 거치는 일정정도로 G20을 사고하는 모습 등을 보이고 있다. 이는 아직 운동진영 내에서 G20에 대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합의 이상의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G20에 맞선 공동대응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의제에만 매몰되거나 G20의 핵심이 금융세계화 심화, 세계경제구조 재편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된 채 각자 고립된 실천을 하려는 현재의 양상은 금융세계화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것에서 기인한다. 때문에 의제별로 잘 대응하는 것 말고 왜 G20에 맞서서 ‘공동’의 대응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합의나,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로 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G20에 맞선 투쟁의 지지부진함이 지속된다면, 운동진영은 결코 민중들의 요구와 융합할 수 없으며 한 발 더 퇴보할 수밖에 없다.


금융세계화 비판을 핵심으로 두고 G20에 반대하는 강고한 투쟁이 필요하다!

G20정상회의로 세계경제질서를 좌지우지하려는 지배계급들의 새로운 판짜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저들의 금융규제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만약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는 구조조정, 양극화와 같이 민중들을 더욱 착취하는 구조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이는 현재 노조탄압, 이주민․노점상등의 탄압이 심화와 같은 형태로 강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연대와 전략은 생각보다 강고하지 못하다. 만일 G20에 맞선 투쟁이 일회성으로만 그친다거나, G20반대투쟁의 의미를 잘 밝혀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국격상승을 해치는 자들로서 공격당하며 또 다시 한 발 ‘뒤로’ 물러나야 할 판이다. 또한 G20을 두고 개입이냐 혹은 반대냐 혼란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G20에서 저들이 이루려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자체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여내는 것이 G20에 대한 올바른 개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더 이상 노동자민중에게 물러설 곳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을 수 있는 투쟁과 이를 뒷받침해줄 강고한 연대의 끈이다. 때문에 지금부터 우리는 G20에 맞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떠한 실천을 만들어 나갈지, 또 어떠한 쟁점을 만들고 어떻게 대답을 내릴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공동의 합의와 계획을 통해 곧 다가올 G20을 예비해야만 한다. 초민족적 자본의 수탈과 이를 옹호하는 G20이 고용없는 성장 속에서 전세계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빈곤층을 확산시킬 것임을 폭로하면서, 자본과 정권의 유지를 위한 ‘저들만의’ 협상에 반기를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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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진

2010/08/07 16:52 2010/08/0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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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유연화 심화시키는
파견확대시행을 중단하라!


 지난 6월 24일 윤증현 기획부장관은 ‘하반기 경제운영정책’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파견범위를 조정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알선수수료 상한제 개선, 고용지원센터와 구직정보 공유, 위탁단가 현실화 등 민간고용서비스 규제 완화와 대형화, 전문화에 대한 계획을 담고 있다. 이를 두고 파견범위 조정이 아니라 확대시행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며 곳곳에서 이번 발표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면 이처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파견확대와 관련하여 그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문제점들을 짚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IMF 이후 파견법이 시행되었다. 이름은 ‘근로자파견법’이지만 파견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불법파견과 위장도급 형태의 불법, 편법적인 노동자파견을 급속히 확산시켜 법제정 이유가 곧바로 무색하게 됐다. 간접 고용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활용하면서도 사용자로서의 법적 책임까지 간단하게 회피할 수 있는 이 같은 악법은 13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결국 기업들의 효율적인 운영과 탄력적인 노동력 사용을 위해 시작된 파견법의 결과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고와 대부분의 일자리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지는 형태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런 파견법의 범위를 현재 제조업과 건설업을 제외한 32개의 업종에서 홍보도우미와 단순 제조업무, 종사원, 택시운전원, 전기전자 부품조립원 등 최대 17개 업무에서도 파견이 추가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하반기 경제운영계획 발표 이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와 고용서비스발전위원회는 ‘공공고용서비스 강화 및 민간고용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합의문’을 채택하였다. 합의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공공부문에 2012년까지 통합일자리정보망을 구축하여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공공부문 일자리 정보를 한 곳에서 통합 검색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민간부문에서는 ‘종합인재서비스업’을 활성화하여 구인구직-직업정보제공-직업훈련 등 상호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고용서비스들을 원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2012년까지 사회복지 통합망과 고용정보망의 연계가 추진될 경우 고용·복지의 통합서비스가 가능해지고 업무 효율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2011년부터 구인기업에 대한 직업소개요금을 자율화하고 구직자로부터의 요금징수를 금지함으로써, 민간 직업소개 시 발생하는 비용의 현실성을 반영해 구직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부담을 방지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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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파견법‘확대’ 시행을 ‘조정’이라고 말하며 말장난을 하고있다는 반응들도 많다. 또한 정부의 이번 발표에는 공공연하게 제조업까지 파견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담고 있어 정책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금도 곳곳에서 불법파견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이와 같은 발표는 불법파견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자본의 편에서 노동력을 그들이 원하는 수준만큼 더욱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고용선진화 방안 역시도 정부가 선전하는 것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들은 규제를 대폭 풀어 민간고용서비스업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시장을 선도하는 고용서비스 기업이 육성되면 산업 전체가 활성화되고 고용촉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용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려면 직업소개 수수료를 높이거나 많은 노동자들이 사업장 이동을 해야 고용 서비스업이 돈을 벌기 때문에 고용구조는 더욱 왜곡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구직자가 소개수수료를 내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고 있으나 기업은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해 채용 시 드는 비용이 결국 노동자 임금저하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 창출의 중간과정이 클수록 중간착취는 더 커지기 때문에 정부의 이같은 발표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민간고용서비스 산업의 활성화는 일자리 불안정성을 확대하면서도 기업은 안정적인 인력을 공급받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며 이러한 계획안에는 노동자의 안정된 일자리와 그들의 권리는 없다.

 지금까지 위장도급=불법파견=사내하청=간접고용의 무차별 확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면서 불법, 탈법을 밥 먹듯이 해온 사용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데 앞장서온 정부가 계속해서 저임금에 불안정한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마치 이것이 지금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인 양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극대화하고 노동시장전체를 비정규직 일자리로 가득채운 형태로 재편할 파견업종 확대 시도 및 민간고용서비스산업 육성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불법·편법을 횡행하며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를 빼앗아 가고 있는 파견법 자체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필요하다.

Posted by 행진

2010/08/07 16:41 2010/08/0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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