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하는 짓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미국의 상선 제너럴셔먼호는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며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말로는 상선이었지만, 대포 2문을 장착하고 선원 16명이 ‘완전무장’한 채 승선하고 있었다. 무력을 앞세워 강제로라도 통상을 진행 하겠다는 음흉한 속셈을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조선이 통상요구를 거절하자 사람을 납치·감금하는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한편에서는 통상이라는 경제적 요구를 내밀고, 한편에서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강압적·위협적 군사력과 함께하는 모습은 과거 구미열강의 식민지 개척과 제국주의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14번이나 지나갔지만, 검은 야욕은 바뀐 것이 없다. 지금 부시 정부도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다. 제너럴셔먼호가 요구하던 통상은 한·미FTA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대포와 완전무장한 선원은 주한미군 재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이번에는 그 타깃이 한국뿐만이 아니라 현재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부시가 ‘악의 축’으로 지정했던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전체라는 사실이다.


‘양자간 무역협상’인 FTA는 원래 미국이 주도하는 GATT체제를 견제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었다. 그런데 WTO의 다자간 협상이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지체되자, 이번에는 미국이 이를 역이용하기 시작하였다. FTA는 소수 회원국 간 배타적 교역조건을 마련하고 그 외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상대적 특수이익을 누림으로써 그것에 제외된 국가들에게 위협감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특유의 도미노 효과가 발생하고 다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말까지 16개국과 FTA를 체결했고 남아공, UAE 등 44개국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런 추세라면 미국은 오는 2010년에 50-60개국과 FTA를 체결하게 될 것인데 이렇게 전 세계를 FTA로 묶어낸다면 그 자체가 WTO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미국의 계산이다.

한국 정부는 한·미FTA는 우리나라가 제안하고 교섭하여 얻어낸 것이며, 협상이 시작하기도 전에 퍼주었다고 비난을 받았던 4대 현안도 미국의 압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처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미FTA를 체결하면 우리나라는 엄청난 경제성장을 할 수 있고 동북아 허브국가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 놓는다. 그러나 한·미FTA 체결 후 미국은 ‘대한(對韓) 흑자국’이 될 것이라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또 한·미FTA를 체결하더라도 대미무역이 증가할 것이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그리는 ‘장밋빛 전망’은 새빨간 거짓말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한·미FTA의 실체는 바로 ‘미국이 끊임없이 주창하고 전파하려고 하는 신자유주의’를 한국에 뿌리박고, 한국사회 전체를 ‘자본이 더 쉽게 이윤창출을 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하는 것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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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이 한·미FTA를 추진하기로 한 것은 바로 중국에 인접하고,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국의 지리적 특성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강한 경제적 협정을 맺어 한국 경제를 미국 경제에 종속시킴으로써 동북아시아에서 경제적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한국이 중국의 경제권 아래에 들어가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를 얻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한·미FTA문제를 미국의 동북아 재편 전략의 한 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인데, 이것은 현재 미국과 한국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평택전쟁기지 확장 이전의 문제를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5월 4일 정부가 자행한 군부대 투입으로 인한 유혈사태와 무차별 연행이후 평택 주민들은 경찰의 검문과 감시아래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마을 길가에 CCTV를 설치하는 등 주민들을 향한 정부의 위협은 더욱 거세지고 있으며 국방부는 10월말까지 주민들을 강제퇴거 시키겠다는 입장이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평택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던 주민들과 미군기지 확장반대 범국민 대책위,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의 목소리에 정부는 폭력과 야만으로 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평택주민들을 보상금을 더 많이 타내려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범대위와 시민들을 반미투쟁을 위해 평택주민들을 이용하는 폭도로 매도하고 있다.

정부는 평택전쟁기지 확장이전 계획은 국책사업이라 이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말한다. 또 용산미군기지 이전은 한국의 자존심 회복을 위한 것으로서, 한국측의 요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의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마치 평택전쟁기지 확장이전은 수도 서울을 위해서 용산미군기지를 이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위해 평택 팽성읍 일대에 수용되고 있는 289만평 가운데 용산기지 대체부지는 38만명평에 불과하고, 2사단의 대체 부지는 220만평이며, 나머지는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른 잔여 부대의 대체부지이다. 이러한 규모만 놓고 따져보더라도 평택전쟁기지 확장이전의 핵심은 의정부·동두천 등 경기 북부에 주둔하고 있는 전투부대인 2사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의도적으로 이러한 사실들을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평택전쟁기지 확장이전은 단순히 한국정부의 요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미국측 발언만 보아도 잘 드러나는데 럼스펠드 미국방장관은 2003년 2월 13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주한미군은 한반도 방위를 보증하는 가운데 서울과 비무장지대(DMZ) 지역에서 상당수 병력을 이동시키고 해군과 공군력에 더욱 중점을 두는 쪽으로 검토할 것이며, 병력의 기동력 개선에 따라 일부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미국이 이전부터 독자적으로 이러한 계획을 검토해왔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미국의 주한미군 재편은 과거 냉전시대의 붙박이형 군대에서 벗어나 기동성과 신속성을 가진 군대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지리적 여건상 공군과 해군이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평택이 그 대상지가 된 것이다. 주한미군 뿐만 아니라 미국은 주일미군재편도 착수하고 있는데 이렇게 한-미-일로 이어지는 삼각구도속에서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포위하고 북한에 위협을 가하려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다. 이것이 한·미FTA라는 ‘경제동맹강화’와 함께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미 fta’와 ‘평택 전쟁기지 건설’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군사세계화/금융세계화를 한반도에 관철시키기 위한 ‘동전의 양면’ 격의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우리는 동북아를 재편하여 자신의 헤게모니 유지를 실현하려는 미국에 음모에 반대해야 하고, 미국의 움직임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발맞추어 2월2일 ‘꿰어 맞추기’ 식의 공청회를 열고 바로 다음날 한·미FTA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그리고, 6월 초 본협상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연초에는 날로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겠다더니 이제는 한·미FTA가 양극화 해소의 방법이라고 한다. 97년 외채위기 이후 무차별적으로 시행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개방, 무한경쟁 논리가 바로 양극화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은근슬쩍 감추며 민중들을 기만하려는 심산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또한 1월 19일에는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여 한국을 미국의 군사적 전략을 위한 기지로 사용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길을 마련해 주는 한편 미군기지를 확장해야 한다며 평택 주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내쫒으려 하고 있다. 주한미군 재편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이는 장차 중국과 북한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민중들을 전쟁의 공포속으로 밀어넣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여 동북아 허브 국가로 자리잡겠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은 미국이 노리고 있는 중국과 북한에 대한 위협인 것이며 오히려 동북아 전체의 안보에 커다란 불안요소를 만드는 일인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러시아와 합동군사훈련을 수행하고 북한과의 동맹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한-미-일에 대응하는 중-러-북의 삼각구도가 형성된다면 이것은 장차 신냉전구도로 발전할 위험성을 가지게 된다. 또한 한·미FTA협상체결로 한국사회가 더욱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재편된다면 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해서 민중들의 삶은 더욱더 파탄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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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1970년부터 1981년까지 10년이 넘는 길고 긴 싸움을 통해서 군사기지 건설 백지화라는 승리를 이루어낸 프랑스 라르자크의 투쟁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프랑스 정부가 고용의 유연성을 내걸고 추진했던 최초고용계약제가 프랑스 전역에서 10주간에 걸쳐 계속된 학생과 노조의 시위에 굴복해 결국 철회됐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는 민중의 삶을 지키기 위해 투쟁해야 하며, 승리해야 하고, 승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뿐만이 아니라 평택과 마찬가지로 미군의 군사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오키나와 주민들과 연대하여 민중의 목소리를 더욱 하나로 묶어 힘을 실어야 한다. 미국 노동계에서도 자유무역 확대 정책이 결국 정부와 자본가에게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파악하고 한·미FTA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함께하겠다는 반가운 뜻을 밝혔다. 자본과 거대한 국가 권력의 횡포에 저항하는 민중의 저항은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전 민중이 연대하여 목소리를 높일 때 비로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140년전 제너럴셔먼호를 무찔렀던 것도, 그 보복으로 신미양요를 일으킨 미군을 무찌른 것도 바로 민중들의 힘이었다. 민중의 힘으로 평택전쟁기지 확장이전을 저지하고 한·미FTA협상을 무산시키자. 민중의 힘으로 새 새상을 만들자.

Posted by 행진

2006/04/24 05:14 2006/04/24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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