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보고] 성신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 승리의 14일에 함께했습니다.


성신여대 사회대학생회장 정아

우리 생애 가장 따뜻한 추석
“명절 치를 일이 깝깝해도 이번 추석은 기펴는거야. 학생도 좋지?” 60년 살도록 이렇게 기쁜 날은 처음이라며거듭 말하시던 날. 본때를 보여줬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라던 한 조합원 동지는 까치발까지 딛으며 주먹을 하늘로 치켜드셨다. 고된 노동이야 몸에 익은 그녀들이었지만 매일같이 대리석 찬바닥에 몸을 누이며 버텨온 14일의 투쟁은 또 다른 고통과 불안이었다. 하지만 ‘신문에 날 정도로 기가 막힌 일’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포기하나며 오고가는 수정이들(성신학생들의 애칭)을 한명 한명을 불러세워 설득하고 알리길 14일. 너른 학교 곳곳이 더 이상 대자보를 붙일데가 없을 정도로 우리들의 투쟁이 빼곡히 가득찬 날에 그토록 고대했던 승리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깨진 플라스틱 그릇이나 쓰다 버리는 거지. 비정규직이라고 우리를 벼룩시장에 판거야 ”

개강을 맞은 대청소를 한다고 바닥을 유리같이 닦아놓은 다음날, 성신여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은 벼룩시장의 신규 채용 광고를 보고서야 자신들의 해고사실을 알았다. 짧게는 2년간 길게는 20년간 성신에서 일해온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에 대해 학교측이 밝힌 이유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배신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성신 재단은 성신여고에서 12년간 일하던 비정규직을 내쫓아 해고판정 받고서도 새로 결성된 노조와 그들과 함께하는 ‘문제 학생들’을 학교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아오다가 기상천외한 해고로 노조파괴를 시도했다.

맡은 구역의 청소를 다했어도 쉬는 것 보다 낫다며 매일 멀쩡한 잔디밭 풀을 뜯게 하는 혹사를 당할때도, 수시로 삼청교육대에 보내버린다는 소리를 들을때도, 행여 눈밖에 날까 지나가는 교직원 뒷통수에다 대고 인사할때도 그저 참고 참기를 몇해, 그래도 출근할 수 있는 반평짜리 대기실이 있다는게 고마웠다는 그녀들은 부당한 해고에 더는 분노를 삭힐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투쟁, 노조를 결성한 이후 학교의 부당한 조처가 있을 때 투쟁조끼를 입어보긴 했지만 막상 본부건물을 점거하고 들어가니, 온갖 회유와 건장한 학교 직원들이 휘두르는 욕설과 폭력 등 겪게되는 어려움이 수다했다. 파업 일차가 더해지면서, 투쟁가를 틀면 가사적힌 수첩을 한참을 뒤적거리고 나서야 뒤늦게 따라부르던 노래들을 꽤 익숙하게 따라부를 수 있게 된 이들도 있고, 또 목이 쉬어서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나마 열심히 구호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조합원들은 ‘미화원 일생’을 부를때는 모두가 하나같이 ‘꼭 내 이야기 같은’ 가사에 목이 꽉 매인다고 했다. 요즘 대학생인 나에게, 원곡이라는 ‘여자의 일생’은 도통 들어본적 없는 옛 노래이지만 조합원 동지들과 손을 꼭 잡고 이 노래를 연습할 때마다 가수가 아무리 빼어나게 부른다 한들 이보다 더 절절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몇 번씩 들었다.


참을 수가 없도록 노동자의 분노를
성신여대 말을 해라 대답 좀 해 봐라
노동자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미화원 노동자를 생각하세요
아 총장님 말좀 하세요 눈물로 호소합니다

미화원 일생 - 미화원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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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득 하늘색 풍선, 청소 아주머니들이 만난 ‘수정이’들의 지지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용역업체 현장소장의 횡포도 심했다. 꼭두 새벽부터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간까지 노동하면서도 63만원을 받고 일하던 성신의 청소용역노동자들은 나랏법 어드매에 보장도 되어있다던 최저임금이라도 제대로 받아보자고 노조를 만들었다. 우리 학생들은 노조 조직시기부터 함께하면서 대기실에서 또 청소중인 계단에서 청소용역노동자를 만났다. 그렇게 가입원서가 쌓일 때 아직은 불안하던 우리의 확신을 분명히 해주었던 것은 수정이들의 노조건설지지 서명이었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더해서, 같은 성신의 구성원으로서 청소용역노동자들이 합당한 권리를 행사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우리의 운동에 대해 학생들의 공감을 얻어가고 또 이를 확장해가는 과정을 통해 성신청소용역노동자들의 노동이 비로소 합당하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성신여대 청소용역노동자들과 우리 학생들은 비오는 날이면 이명박 욕을 실컷 하면서 같이 부침개도 부쳐먹기도 하고, 3.8 여성의 날 문화제에도 함께가면서 학생과 노동자가 함께 연대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던 차에 전면적인 투쟁이냐, 노조활동의 포기냐는 기로를 맞았고 성신의 청소용역노동자들은 망설임없이 투쟁을 선택했다.

개강 날, 노조와 연대단위가 붙이는 자보만큼 학교도 전 교직원을 동원해서 선전전을 했다. 등교하는 학생들은 학교본부가 붙인 대자보와 청소용역노동자가 붙인 대자보사이를 번갈아보며 갸웃거렸다. 하지만 올해들어 학생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장사 안되는’ 학과를 통폐합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할때도 그랬듯이 ‘경쟁력 확보’니 ‘학교 발전‘니 하는 말을 명분으로 삼지만 그저 듣기에나 좋은 말뿐이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자녀들의 등록금을 감당하기 위해 불안정한 일자리나마 선택할 수 밖에 없지만 교육비는 어마어마하고 여성들이 받는 임금은 그를 감당할 수 없이 형편없이 낮다는 것에도 많은 수정이들이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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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며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을 본 학생들이 지정된 핸드폰 번호로 보낸 응원의 문자가 곳곳에 게시되고 건물전면을 덮는 대형 플랑카드에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의 정당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가득히 모아졌을 때, 투쟁하는 청소용역노동자들은 직접 학생들에게 띄우는 편지를 써서 부착하는 것으로 답했다. ‘부끄럽다 나 못한다’ 하다가도 용기 내어 들어간 강의실에서 지지를 요청하는 발언을 하고 가면, 학생들은 건물 로비에 승리를 바라는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 잇을 붙여놓는 것으로 답했다.

투쟁 14일차, 청소용역노동자의 유니폼과 같은 하늘색 풍선을 학교 곳곳에 수백개를 매달았던 날, 시선을 옮기는데 마다 마주칠 수 밖에 없는 투쟁지지 풍선을 외면할 수 없던 학교는 끝내 손을 들었다. 승리의 주역인 성신분회 조합원들은 ‘의리 빼면 시체’답게 제일먼저 연대해온 동지들과 수정이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며 향후 투쟁을 약속했다. “그동안 겪은 설움을 생각하면 점거14일은 양에도 안차지만 어서 돌아가서 학교를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는 내 프로의식이 있으니 학교는 다행인줄 알라” 는 말로 ‘연약한 여성’이라는 말도, ‘청소가 누구나 쉽게하는 무가치한 일’이라는 말도 가당치 않음을 쩌렁쩌렁 선포하는 조합원들이었다.



 
여성리더십을 키운다는 대학 그리고 청소 용역 여성노동자들의 현실

3일이면 나가떨어질 줄 알았던 ‘아줌마’들이 임금의 절반씩을 중간 착취 당해온 지긋지긋한 하청 용역 인생을 끝내자고 말했을 때 ‘당연’하게 여겨지던 많은 것이 고발되기 시작했다. 하청 용역구조를 단박에 엎진 못했지만 몇 해전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임이 일고 있는 대학내 청소용역 노동자의 투쟁을 진척시켜 나가는데 성신여대의 사례는 원청 사용자인 학교로부터 합의문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여전히 비정규직인 조합원들에게는 매해 계약해지 시점이 돌아오겠지만 회사가 교체되더라도 노동조건을 훼손하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약속과 더불어 고용안정에 대한 책임을 학교가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합의문을 통해 시인한 것이다. 몇 년 씩 학교에서만 일했는데 얼굴도 본적 없는 용역회사한테 가서 따지라는 말이 억울했던 조합원들로서는 바라마지 않던, 그리고 너무나 합당한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은 평균 임금이 85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그마저도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사무직에 근무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훨씬 밑도는 임금을 받고 있다. 반평 좁은 대기실에서 옷 갈아입을 때조차 관리자들이 벌컥벌컥 문을 열고, 남자 화장실도 청소하는데 창피한줄이나 알겠냐며 여성으로 취급하지도 않다가도, 툭하면 ‘집에 가서 애나보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던 여성노동자들. 소장 눈에 나서 행여 내쫓길까 ‘애보는 건 쉬운건지 아냐’며 항변 한마디 못하고 매해 재계약 시기마다 떨어야했던 불안정한 일자리속의 여성 노동자들.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재생산 노동에 대한 부당한 평가에 터무니없는 저임금을 강요 받아야 했던 여성 노동자들. 성신여대는 재학생들에게 여성 리더를 키운다며 각종 자기계발 프로그램들을 제시하며 성공한 여성에 대한 환상을 부추겼지만 학교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명백한 현실, 이땅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처한 불안정노동과 빈곤을 감출 수는 없었다.


“ 앞으로도 함께하자 ”

투쟁을 하면서 사흘만에 6000천이 넘는 지지 서명을 받았지만 그저 감동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광범위하게 형성된 학내의 지지여론을 이어가는 동시에 직접 수정이들이 할 수 있는 실천들은 기획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생존권이 위협받는 나이 많은 여성노동자에 대해 보편적으로 느끼는 안타까운 정서를 넘어 사회가 제시하는 여성발전에 대한 환상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연대의 의사를 표현하면 혹시나 불이익이 당하진 않을까 고민하는, 그리고 비정규직이 안되기 위해 더욱 도서관으로 향하려는 인식들과 대결하는 다양한 실천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신 투쟁은 학생운동 기층의 기반조차 사라지고 있는 지금, ‘대학생들을 다시 봤다’는 다소 성급한 낙관을 뒤로하고 ‘운동의 기반’을 다시 만들기 위한 작업들과, 학생운동과 노동자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대중정책의 기획과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번 성신의 투쟁은 청소용역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는 활동과 학생운동 활동가들이 대학에서 불안정노동을 제기하는 운동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야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성신여대에서는 올해에 들어서만 학생들이 이미 2차례의 본부 점거 투쟁을 벌였던터라 조합원들이 ‘우리가 도중에 멈춘다면 연대하던 학생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며 투쟁의 결의를 다지곤 했는데 이를 함께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가슴뭉클했다. 승리를 자축하면서 “앞으로도 함께하자”고 했던 약속을 이제 어떤 내용으로 풀어갈까를 고민하는 것이 모두의 몫일 것이다. ‘밀착’만을 지상 과제로 하는 노학연대의 관계가 아니라 노-학 서로의 운동을 재구조화할 수 있는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운동과 노조의 자활력을 배가할 수 있는 교육사업, 당장 자신의 사업장에 투쟁사안이 없어도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맞서 투쟁하는 이들의 문제를 노조의 문제로 받아 안을 수 있는 일상적인 연대가 필요할 것이다. 학생운동의 역량이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가뭄에 단비 같은 귀한 승리를 마주하고서 많은 활동가들이 ‘성신여대의 모델‘을 확산하자고 말하고 있지만 위에 대한 실천이 담보되고서야 정말로 대학 청소노동자 투쟁의 활로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성신여대도 아직 많은 과제들을 갖고 있다. 투쟁승리 이후, 모처럼 풍성한 가을을 즐기러 간 북한산 소풍에서 질렀던 ‘막걸리잔 치켜들며 지르는 환호성’을 오래도록 지켜내기 위해서는 정말 지금부터가 승부이지 않을까. 처음에 노조를 만들고 최저임금에서 사천원 더 받는 79만원이 그토록 벅찼다던, 하지만 멈추지 않고 다른 투쟁을 만들어내고 또 끝끝내 승리를 거머쥔 그녀들이 오늘 다시 결의하듯이 이제 시작임을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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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진

2008/09/30 15:17 2008/09/3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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