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 행진 회원 릴레이 인터뷰

'첫 번째' 인터뷰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행진 1호 회원이신 경인교대 신문사의 '지기자' 동지를 만났습니다. 인터뷰에 흥쾌히 응해주신 지기자 동지께 모두들 박수~! 짝, 짝, 짝~^^ 앞으로도 멋진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전국학생행진(건)(이하 '행진') : 인터뷰로 이렇게 만나뵙게되서 너무 반가워요! 우선 행진의 1호 회원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어떻게 가입하시게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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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연(이하 '지기자') : 평소에 취재를 다니면서 여러 투쟁의 현장에서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하시는 동지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행진에서 얘기하는 신자유주의 반대, 여성주의,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 등에도 평소 많은 동의를 했었구요. 그래서 가입하게 된 것 같아요^^

행진 :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시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 건가요? 하고 계시는 활동에 대한 자랑도 부탁드려요.

지기자 : 일단 신문사에서 취재를 통해서 기사를 작성하지요. 다루는 기사의 분야들은 다양한데요, 대학의 소식들을 학우들에게 전달하고 교육권에 대해서도 얘기합니다. 또한 행진에서 얘기하는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학내에서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도 고민하지요. 학내 선전전과 강연회도 주최하구요.

음...자랑이라...^^; 활동하는 과정에서 여러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취재가서 같이 분노와 감동을 느끼고 때로는 어떤 것에 공감하기도 하구요. 그런 것들이 진짜 좋은 것 같아요.

행진 : 그렇게 자랑하시는 것을 들으니 샘나는데요^^;; 앞으로 언론운동(혹은 언론이)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행진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그러한 활동에 연대할 수 있을지도 묻고 싶은데요.

지기자 : 언론 운동 보다는 대학 언론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요. 학생 운동의 위기라는 말이 오래되었듯이 대학 언론 운동 역시 위기를 겪고 있어요. 과거에 대학 언론이 존재했던 상황과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 학우들이 학내 언론에 대해서 많이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들은 극복해 나가야 하겠죠.

그래도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과거에는 대학 언론이 기성 언론에 대해 반정립했던 측면이 있어요. 그러나 요즘에는 기성의 언론이라고 해도 인터넷 매체를 보면 진보 언론이 많은 것 같아요. 그 속에서 대학 언론 운동의 활로를 모색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선 보다 구체적인 기사들로 학우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행진과의 연대라... 언론 운동이 하나의 부문 운동이긴 하지만 다루는 대상이 여러 범위에 걸쳐 있는 만큼 서로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함께 열심히 하자구요^^

행진 : 지금까지 언론 혹은 언론운동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눠봤던 것 같습니다. 약간 인터뷰가 무거웠던 감도 있는 것 같네요^^; 그럼 화제를 좀 바꾸어서 요근래 감명깊게 봤던 책이나 영화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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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자 : 요근래 권혁범씨의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라는 책을 봤어요. 권혁범씨가 쓴 칼럼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우선 읽기가 쉬워요^^ 그리고 평소에 생각했던 거랑 공감되는 것도 많고 결혼·연애에 대해서도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있죠. 군대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구요.

재미있게 본 부분중에 주례사에 대한 부분이 기억에 남네요. 글 쓰신 분이 교수니까 제자들에게 주례요청이 많이 들어오거든요. 그럼 그 분은 틀에 박힌 주례가 아닌 이런 주례를 하신데요. 결혼식 때 보면 신랑은 혼자 들어오고 신부는 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둘 다 혼자 들어오던지 둘 다 부모님 손을 잡고 오던지 하라고 하신데요. 주례 내용은 가사나 자녀양육을 분담하고, 모든 성차별에 반대하고, 소수자에 대해 배려하고, 사랑이 식었을 때는 폭력으로 해결하지 말고 재산·자녀양육권을 잘 분배해서 잘 헤어지라는 거래요. 괜찮지 않아요?^^

행진 : 재밌으면서도 좋은 책일 것 같네요. 꼭 봐야겠어요. 이제 인터뷰가 얼마 안 남았는데요, 행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지기자 : 저도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행진 활동을 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늘 힘을 받게 된답니다. 행진에서 얘기하는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도 물론 열심히 해야 하지만, 서로 연대와 관계맺음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행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진 : 끝으로 행진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 마디, 부탁드려요.

지기자 : 벌써 끝인가요?^^; 제가 인터뷰 질문을 할 때 인터뷰 하시는 분에게 편안하게 하시라고 얘기했는데, 정작 제가 인터뷰를 해보니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네요. 하하~~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지치지 말고 늘 힘차게 투쟁하셨으면 합니다. 동지들, 투쟁이에요!!^^

Posted by 행진

2006/06/28 06:28 2006/06/28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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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자본과 산업의 결탁, 가려지는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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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3일 화요일은 토고와 대한민국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평택 전쟁기지 건설 반대! 촛불 문화제는 진행되었다. 어디서? 월드컵 경기 응원 인파가 광화문을 다 장악할 것이 분명하고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기 불가능하다는 판단아래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안에 있는 한미 FTA 반대 농성장에서 진행을 하였다. 50여일을 꼬박 채우고 있는 촛불 문화제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대추리에서 촛불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을 주민들을 생각하며 평택 투쟁을 알려가기 위해 쉼이 없었다. 그런데, 붉은 옷을 입은 수십만 명의 사람들로 인해 옮겨간 것이다. 월드컵은 6월이면 끝이 난다. 평택 투쟁도 6월말 계고장이 날아온다. 한미 FTA 협상도 이미 1차 협상을 마무리 했고 2차 협상은 7월 초이다. 6월은 월드컵을 열심히 응원하고 7월부터 투쟁하자고 할 텐가? KTX 여승무원 동지들의 투쟁도, 기륭전자 동지들의 투쟁도 모두 7월부터 생각해보자고 할 것인가?

미디어의 농락- 온통 월드컵 특집 방송


5월 4일 대추초등학교에는 전국의 방송들이 다 모였다. 마치 전쟁 속보라도 올리듯이 긴장이 팽배했다. 그래, 언론이라면 저런 정신이 있어야지 했다. 그러면 월드컵이 시작되고 나서 방송 편성표를 보자. 언론이라는 말이 부끄럽게도 3대 메이저 방송사의 편성표는 “축구”를 빼고는 무엇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전이 펼쳐진 지난달 18·22·25일 메인뉴스 시간의 월드컵 관련 보도 비율이 SBS 100%, MBC 96%, KBS 94%에 이르는 등 월드컵 기간 내내 TV뉴스가 파행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국민들의 귀와 눈을 가리는 그 편성표에는 월드컵 뿐, 긴박한 평택도 FTA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없었다. 축구가 방송가를 싹쓸이 한 지금, 한미 FTA 협상은 마무리되어 가고 도두리에는 전경들이 상주하고 KTX 노동자들은 100일 투쟁을 축하하였고 투쟁을 열심히 하시던 장애인 동지는 지하철에 투신을 하셔서 돌아가셨다. 토고전이 있던 그날 밤, 같은 시각, KBS 1TV에서는 평택 미군기지확장에 관한 국방부와 범대위의 대 토론회가 있었다. 계속 토론회를 거부하던 국방부가 잡은 그 시간. 이렇게 중요한 논의를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보고 있을지 우려를 표한다는 사회자의 말에 적극 공감하며 미디어와 국가가 월드컵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국민을 농락한다는 생각을 씻을 수 없었다. 이날의 대 토론회야 말로 월드컵 방송국인 3개 메이저 방송사의 특별!특집!방송이어야 했었다. 언론이 왜 존재하는가?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방송사들은 국민이 한국사회의 쟁점들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의 눈과 귀가 되는 공공적 역할을 담보해야한다. 또한 문화를 선도하고 형성하는 일 주체로서 언론은 존재한다. 그 중에 여론을 형성하는 몫은 가장 큰 책임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의 언론은 자신들이 선도적으로 한국 사회 다양한 쟁점들을 덮어버리고 있다. 언론이 축구에 올인하는 동안,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동안, 오프사이드는 알아도 세이프가드는 몰라도 되는 것처럼, 다음 국가대표 감독이 누가 되는지는 빠삭해도 평택은 내일 모레 퇴거명령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몰라도 되는 것처럼 한국사회 또한 축구 광풍이 불고 있다.

자본-국가-월드컵 / 언니 좋고 형부 좋고 나도 좋은 삼각관계


올해 들어 힘들어하는 활동가들을 많이 보았다. 몸을 손오공처럼 여러 개로 나누어 투쟁했으면 좋겠다고 상상도 해보곤 했다. 어느 한 해 그렇지 않은 해가 없었지만 한미 FTA투쟁, 평택 전쟁기지 건설저지투쟁, 비정규직투쟁, 교육투쟁에 그야말로 숨돌릴 틈 없이 민중들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물론 민중들은 강고하게 투쟁하고 있다. 어느 하나 정세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투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저항의 움직임을 살짝 잠재우고 대한민국에 사는 민중들의 공감과 저항의 세력화를 막기 위해선 월드컵만큼 좋은 게 없다. 기업들은 덩달아 신이 났다. 2002년의 자발적인 붉은 악마들의 거대한 움직임을 보고 돈이 된다는 판단아래 광고부터 시작하여 급기야 서울시청 앞 광장을 사기까지 하지 않는가. 하나가 되자며 응원을 독려하는 것은 기본이다. 기업들이 월드컵을 위해서, 국위 선양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벤트로는 개인정보가 새나가고 있는 것이며, 그들의 상품 광고를 억지로라도 한 번 더 보게 만든다. 2002년에는 무료로도 배포하고 싼값에 살 수 있었던 티셔츠는 이제 전 의류기업들에서 독점을 행하고 있다. 월드컵 특수! 자발적으로 기업의 이윤을 올려주니, 기업들은 정말 이 같은 호재가 없다. 여기에 더불어 제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문제는 2002년에도 제기되어왔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 월드컵 공식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 실명하는 파키스탄의 어린 노동자나, 몇 억에 판매되는 베컴의 축구화를 푼돈을 받고 만드는 동남아의 어린 노동자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민족-국가주의와 축구경기. 이 두 가지를 이용하여 자본은 돈을 벌고 정부는 불만을 무화시키고 언론은 그 가운데서 어색하지 않게 당연히 응원의 인파로 흘러가도록 중간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금의 월드컵을 결코 유쾌하게 즐기기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월드컵은 부메랑이다


우리 2002년을 잊지 말자. 월드컵 뉴스 속에 방송도 되지 못하고 인터넷 뉴스 한 끄트머리에 겨우 간략하게만 나왔던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 그 때 얼마나 투쟁하기 힘들었던가. 언론의 외면을 받았지만 투쟁으로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며 촛불을 켜드는 그 동안, 거리에는 월드컵 승리 기쁨의 인파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한참 지나고서야 그 투쟁은 간신히 살아나게 되었다. 시기를 놓친 투쟁에 대한 방기는 2006년 칼이 되어 우리 목전을 겨누고 있다. 바로 한미FTA와 평택 전쟁기지 건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이다. 지금 이 투쟁 또한 힘을 잃을 때, 2010년 월드컵 응원의 붉은 함성은 민중들의 절규로 붉은 티셔츠는 민중들의 피로 물들지 그 누가 알겠는가.

신호등 신호에 따라서만 다니던 길을 자유롭게 다니고 모르는 사람과 하나가 되어 흥분하는 즐거움! ‘우리나라’가 이기기라도 하면 더 기쁘다. 내 힘든 삶도 잊을 수 있고 오랜만에 ‘쾌감, 해방감’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기에, 현실을 잊기 위해 스포츠와 축제에 열광하도록 조작당하고 있는 거라면, 우리의 일시적인 쾌감은 분노를 담은 것인지도 모른다. 거짓된 해방감을 인식하고 투쟁으로 진정한 해방을 쟁취할 수 있도록 칼끝을 벼려야 할 때인 것이다. 자본과 정권이 조장하는 월드컵 열기에 휩쓸려가는 사이, 누구에게 저항하자고 하고 연대투쟁하자 말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하나씩 둘씩 고립되어 잊혀지고 쓰러지는, 투쟁하는 민중들을 더 이상 잃을 수 없다. 해방 세상을 향해 민중으로서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청년학생들이라면, 지금의 월드컵 세상을 그대로 즐기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본과 정권이 적극 이용하는 월드컵, 이용되는 것은 부메랑이 되어 월드컵을 넘어선다. 축구국가대표의 경기 승리, 그리고 패배 이후 국가주의의 기억과 텅 빈 거리를 남길 것인가, 아니면 민중들의 승리로 해방의 거리를 다시 한 번 만들 것인가. 지금이 바로, 정세를 열어젖히는 선도적이고 헌신적인 투쟁을 시작할 때이다.

Posted by 행진

2006/06/28 06:20 2006/06/28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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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장활동에 대한 상반된 기억


현장활동은 많은 추억을 남긴다. 민중들과 함께 땀 흘리면서 노동의 댓가를 깨닫게 되고, 물씬 풍기는 서로의 땀냄새와 잠버릇, 술버릇에 대한 이야기는 현장활동 일정을 끝내고 돌아와서도 한동안 계속 안주거리가 된다. 그리고 직접 몸으로 체험하게 되는 현장활동은 현장활동 공간의 현실을 몸과 가슴으로 느끼고 이후, 더욱더 힘차게 연대하면서 세상을 바꿔나가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곤 한다. 연대의 의미가 아니더라도 공기 좋은 환경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술마시는 기억은 대학생활 내내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소중한 현장활동의 기억은 누군가에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아가씨 말고 힘 센 남학생 좀 보내달라’며 일을 하러 온 여학생들을 못마땅해 하시는 모습, 여자가 따르는 술 맛이 제 맛이라며 술시중을 강요하는 상황, 마을에 결혼 못한 노총각들이 많으니 아가씨는 농촌으로 시집오라며 엮어(?) 주시는 상황에 빈번히 처하면서 이런 상황에 대해 불만을 제대로 한번 제기하지도 못하고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하는 여학우의 경우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상하지 않고 현장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또한 아동․여성농민과의 분반활동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경우, 신체적 차이가 고려되지 않은 작업 분배, 안주 마련이나 식사 뒤처리를 여성이 맡게 되는 암묵적인 분위기, 평가시간에 어렵게 꺼낸 성폭력에 대한 제기를 무심코 넘겨버리는 경우 등에서 여학우들은 ‘농활의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사이에서 혼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학우에게 농활이 소중하지 않은 경험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그 소중한 경험에서 스스로가 배제당하고 성적 불쾌감을 끊임없이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농활을 비롯한 현장활동에서의 성폭력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학생과 학생들 사이, 혹은 연대단위와 학생 사이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기간의 농활을 되돌아보아도 항상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직까지도 한국사회가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모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학우가 현장활동을 가는 것은 그러한 모든 상황에 대하여 각오하고 참아낼 것을 결의하고 가는 것도 아니며, 현장활동이 ‘그럴 줄 몰라서’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를 다지며 다시 오늘의 현장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과 함께하기 위해, 연대과 소외, 가능성과 절망이라는 여학우가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들에 대해 고려하고 ‘여성주의적’ 농활을 만들기 위해 기간 농활에서 ‘단절’해야 할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또 다시 그녀‘만’의 문제로 치부되며 ‘모두’가 즐거운 농활이 아니라 그 누군가만의 반쪽짜리 현장 활동이 될 것이다.

2. 현장활동을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현장활동을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무엇을 일컬음인가. 그에 대한 답을 확정적으로 내리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농활, 연대활동을 진행하면서 수다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 우리는 뿌리깊은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자 - 反여성적이고 여성배제적인 상황들에 의해 연대활동의 소중함보다는 성적수치심과 피해감, 무기력감을 느끼고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들이 매년 생겨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주의라는 것이 성적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폭력에 맞서 서로의 차이가 존중되고 인정되게끔 하는 하나의 운동이라고 하였을 때, 현장활동을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기간 당연하게 여겨져 왔고 문제로 제기되지 못했던 현장활동 전반의 반여성적이고 여성배제적인 구조를 전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장활동을 진행하여 오면서 간과되었던 여성의 문제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현장활동 현장에서의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고 발생한 성폭력 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여성주의적 인식이 확장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간 반성폭력 내규만으로 한정된 여성주의적 실천은 여성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왜곡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즉, 반성폭력 내규의 제정, 합의를 뛰어 넘는 여성주의에 대한 실천은 계속되어야 하고 이는 현장활동에서 적극적으로 실험되어야 한다.

우선, 반성폭력 내규를 고민함에 있어 현재적으로 내규 제정 및 “합의”가 말처럼 쉽지 않을 뿐더러 일정정도 관성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합의”의 과정은 처벌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고 할 때, 여성주의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질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현장활동을 함께 가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폭넓은 논의를 통해 여성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공유하고,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여/남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 차이에 기반하여 여/남이 우애롭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과정이라는 것에 대한 폭넓은 동의지반을 획득해 나가야 한다.

3. 현장활동에서의 여성주의적 실천은


여성들이 현장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이다.

2004년 농활에서의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울대 몇몇 농활대에서 불가피하게 농활을 철수하는 일이 있었다. 이것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철수한 농활대는 “연대의 의지가 없다.”, “학생들이 어르신을 가르치려 한다” 등의 대대적인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연대'란 과연 무엇일까? “연대”는 서로간의 차이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성적 차이에 대한 인식 없이 무조건 연대가 중요하니, 학생들이 참아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연대의 진정한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연대를 위해서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를 그저 참고 견디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일주체의 일방적인 희생에 다름 아니며, 이것은 연대의 참 의미를 도리어 파괴하는 것이다! 현장활동이 끝난 이후, 우리는 이렇게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과연 FTA 반대 농민집회에 힘있게 나오라고, 그리고 내년에 농활에 또 함께 가자고,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연대의 의지가 없다"라는 말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연대의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이 더 이상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다시금 긍정적으로 해소되고 그리하여 신뢰가 회복될 가능성이 희미해지는 그 순간, 이미 연대는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미 연대가 불가능한 조건이 있는데 연대의 의지가 없다고 주체에 대한 비난을 가하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결국 그토록 연대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리고 연대를 다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연대를 불가능하게 하는 그 <조건들>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그것들을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다시 '철수'의 문제로 되돌아가보자. 현장활동에서 '철수'하는 것이 그 자체로 문제의 온전한 해결을 보장하는 것인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사회의 가부장제가 닿지 않는 공간은 거의 없다. 현장활동을 철수하느냐마느냐라는 쟁점보다는 오히려 농촌과 대학사회, 그리고 이 사회의 모든 장소를 가로지르는, <한국사회 전반의 가부장제>를 바꿔내기 위한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가 고민의 일차적 초점이 되어야 한다. 사실 현장활동이 여성배제적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모든 관계>와 <공동체적 삶>의 남성중심성이 문제이며, 농촌의 가부장성이 독자적으로 문제라기보다는 강의실, 술자리 등 우리가 몸담고 관계맺고 있는 삶의 장 '전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철수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문제 해결을 위한 시기시기의 구체적인 과정 - 그것이 철수가 되었든 아니면 다른 방식이 되었든 - 을 결정하기에 앞서, '진정한 해결'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 그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입각할 때,  <현장활동의 여성주의적 재구성>이라는 프로젝트 역시도 그 의의가 살려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여성의 '권리'를 찾아가는 지난한 투쟁의 과정 중 일부이다.

반성폭력 운동이 그렇듯 ‘현장활동’에서도 반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긴장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여성의 권리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사례들이나 유형들을 살펴본 것은 단지 ‘이런이런 피해 사례가 있으니 여성을 보호해주세요’라고 소극적으로 청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에게도 성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원하는 현장활동을 참여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당연히 있기 때문이다. 남성에게는 굳이 ‘권리’라는 거창한 말을 붙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보장되는 것들이 왜 여성에게는 그렇지 않은 걸까. 그것은 보편적 ‘권리’ 개념이 ‘남성’을 중심으로, 남성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편’적 권리에서 어느 누군가(여성)의 권리는 제외되어 있다면 이미 그것은 ‘보편’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권리 개념을 재구성해내기 위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적 억압과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실천들을 벌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농활이나 환활등의 현장 활동에서 반성폭력 운동을 한다는 것은 농민들을 여성주의로 계몽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여학우와 남학우가 동등한 농활대원으로 즐겁게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물적 조건들을 확보하고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현장활동에서의 반성폭력 운동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하면 더 좋은 것’이 아니라, 현장활동을 수행하기에 앞서 기본 전제인 것이다. 누군가(여성)는 배제되고 있는데 어찌 그것에 ‘연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는가. 혹은 ‘연대’를 위해서는 왜 여학우가 참고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여학우들이 배제당하지 않고 남학우와 같이 즐겁게 농활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은 왜 농민을 무시하는 태도로 취급받는가. 현장활동에서의 반성폭력 운동은 먹물 묻은 대학생들의 잘난 척이 아니라 여학우들의 현장활동에 대한 ‘권리’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4.현장활동을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실천전략


현장활동을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철저한 사전준비가 진행되어야 한다. 당장 현장활동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성폭력적인 상황에 대해서 학생들 사이에 합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연대단위와도 충분히 여성주의적인 문제의식을 전달하고 이에 대해서 합의해 나가는 과정을 밝아야 할 것이다.

특히, 연대 단위와의 사전준비는 중요한데, 농활, 환활, 빈활의 현장활동 공간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간이다. 서로의 차이에 기반한 “연대”의 의미에 대해서 사전에 동의지반을 마련하고 공동으로 현장활동에서 여성주의적인 실천을 결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사전답사와 현장활동단위와의 간담회에서 충분히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학생들과 연대 단위들이 사전에 현장활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반성폭력 주체학교”와 같은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여 연대단위들의 상황에 맞게끔 창발적인 기획을 통해서 여성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반성폭력 주체학교”라는 형태가 아니더라도 사전 답사에서 마을 주민들과 간담회 혹은 호별방문을 통해서 사전에 여성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장활동을 준비하면서 학생들 사이에도 성폭력 문제와 여성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고 함께 여성주의적인 실천을 결의하고 성폭력적인 상황에 대처할 것을 결의해야 한다. 현장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폭력적인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이를 바꿔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현장활동이 반쪽짜리 현장활동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우애롭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서 가부장제에 맞서 여성의 권리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현장활동에 참여해서도 일상적으로 여성주의적 실천을 담보해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현장활동에 참여한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여성주의적 실천을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반성폭력 주체학교 자료집을 참고하세요, stulink.jinbo.net)

물론 이것은 글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끝임 없는 노력과 혁신의 자세 없이는 또 다시, 현장활동에 대한 실망과 상처를 가슴에 안은 채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현장활동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소중했던 기억이 될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장활동에서 여성주의적 실천이 바로 여성의 권리를 쟁취해나가는 과정이란 것, 여성이 현장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임을 가슴 속으로 새기고 이러한 실천을 하나하나 시작해 나가는 소중한 결의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연대활동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한국사회 가부장제 자체를 변화시켜나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갈 수 있다.

Posted by 행진

2006/06/28 06:12 2006/06/28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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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한미FTA와 한국 농업의 미래


 “미국 농민들과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농민이 생산한 옥수수 4달러어치로 팝콘을 만들어 팔면 소비자가 사먹는 값은 140달러입니다. 그럼 남은 돈 136달러는 누가 가져갑니까. 곡물 메이저, 가공업자, 초국적 기업들 몫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이 정치권과 짜고 농산물 수입국들에 압력을 가한다고 생각하는데, 총장님의 견해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WTO 각료회담에서 자결한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생전에 수파차이 파닛팍디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에게 보낸 항의 서한 중

1.한미FTA 협정과 농업 분야


농업 분야는 한미FTA협상 중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지난 2월 2일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한국의 농산품 관세와 장벽을 낮춰 미국 농업생산자들이 최대한 이익을 얻도록 협상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발표 이후, 식품산업계의 열렬한 응원이 이어졌다. 캘 둘리 식품협회회장은 "한국은 이미 6번째로 큰 미국 농산물 수출시장인데, FTA가 체결되면 미국 식품회사는 한국시장에 더 활발하게 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돈 불 전국돈육생산자위원회(National Pork Producers Council) 회장도 "하루 육류단백질 섭취량의 44%를 돼지고기로 충당하는 한국시장에 진출하게 되는 것을 열렬히 환영한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한국정부 역시도 농산물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어떻게든 협상을 이루겠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번 워싱턴에서의 1차 협정을 보면, 「세이프가드(농산물 특별 긴급수입제한)의 도입」, 「기존 저율관세할당수입제도(TRQ, 수입초과 물량에 높은 관세를 물리는 제도)의 유지」가 주요쟁점이 되면서 양국간의 농업분야 통합협정문 작성에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사실 위의 것들은 이미 기존의 WTO 규정 속에서도 응당 보장이 되어야 하는 제도들이다. 즉 이와 같은 ‘소극적 수준의 요구들’이 FTA 협상에 있어 일종의 반대급부로서 도마 위에 오른다는 것은, 이미 <큰 틀>에서는 한미 양국 정부간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 1차 협상의 한국대표단이 마치 미국과 큰 논쟁을 벌이며 국익을 위해 싸우고 있는 양 그려지는 것은 ‘언론에 의한 왜곡’이라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농업 분야의 구체적인 협상의제나 과정 또한 공개되고 있지 않다. 이에 반발하여, 농업 단체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의제에 쌀문제 등이 포함됐는지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하였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와 한국낙농육우협회, 전국한우협회 등 9개 농업 단체는 12일 외교통상부를 상대로 "미국의 한국 축산물 수입금지 조치와 쌀 문제가 농업협상분과 및 동식물검역협상 분과의 협상 의제로 포함돼 있는지 공개하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낸 것이다.

2. 한국 농업의 현실


한국농업은 이미 파탄날대로 파탄났다. 많은 농민들이 빈곤의 구렁텅이로 내몰려, 절망 속에서 농촌을 떠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농가 8가구 중 2가구는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한 가구당 농가부채는 3000만원이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토지에 대한 소유는 몇몇 사람들에게 집중되면서, 대다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있다. 더 이상 농사에 희망이 없다면서 밭을 아예 갈아엎는 농민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환자나 다름없는 열악한 농업조건에서 농업회생 대책을 내놓아도 시원찮을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는 지난해의 쌀개방에 이어 올해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WTO-DDA협상과 한칠레FTA 등을 통해 농산물 시장을 완전개방해 온 한국정부의 노력으로 인해, 현재 농산물은 80%정도 시장개방이 된 상태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결과, 한국의 모든 농축산물이 전면 개방되었다. 그리고 현재 쌀만이 유일하게 「최소시장접근물량 방식」으로 수입되고 있다. 사료용을 포함한 전체 식량자급률은 26.91%이며, 이마저도 쌀을 제외하면 2.7%에 불가하다. 정부의 식량감산정책으로 인해 곡물재배면적은 계속 하락하였다. 또한 ‘추곡수매제’와 같은 ‘국내농업 보조금제도’의 폐지는 농가소득의 하락으로 이어졌고, 정부 통계로도 지난 10년 동안 농가부채는 250%나 증가했으나 이에 반해 소득은 65%정도만 상승했다. 그나마 이것도 UR 협상에서 '개도국'의 지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인데, 만약 한국의 주곡인 쌀이 전면 개방된다면 한국의 농업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전체 농가 중 80%가량이 쌀농사를 짓고 있는 현실에서 쌀이 ‘전면개방’ 된다면, 한국농업은 그야말로 사망선고를 받게 되는 것과 같다.

지난 2004년 한칠레 FTA 체결 이후, 한국이 칠레로부터 수입한 농산물은 67% 증가했고 축산물은 47% 증가했다. 칠레산 포도 수입액은 51.3%, 2005년 키위수입액은 177% 증가, 2003년 포도주 시장 점유율 6.5%에서 2005년 17.6%로 증가로 인해, 국산 포도주값 25% 낮춰서 팔아도 수익률은 낮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현재, 2008년까지 폐원 신청이 된 과수원이 전체 복숭아밭의 36%(5,700ha), 시설포도밭의 34%(560ha), 키위밭의 16%(140ha)에 이른다. 폐원한 농가는 콩이나 참깨를 심어. 다른 작목의 과잉을 만들고 젊은 농가는 5년 뒤 다시 복숭아 농사를 짓겠다고 하고 있다. 한칠레 FTA로 인해 농민들은 농사지을 수 있는 작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그나마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 농산물로 옮겨가도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하락으로 짓던 농산물을 다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WTO, FTA등을 통해서 진행된 개방농업정책은 농민들에게는 생존권의 파탄을 가져오고 있으며, 전 국민적으로는 식량을 온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송두리째 박탈해가고 있는 것이다.

3.한미FTA체결이 한국농업에 미칠 영향


노무현 정부는 무역겨래 활성화로 “교역량 증가에 따른 공산품, 제조업 분야의 고용창출, 수출증가”, 서비스부문의 국제 경쟁력이 향상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농업과 관련해서는 국제적인 경쟁력 강화를 통해서 농업생산구조를 혁신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대규모 영농을 통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생산력의 향상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국가경제의 전체적인 발전을 위해서 농업을 희생해야 한다고 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미FTA의 추진은 결국 국익, 국가 경쟁력 발전을 핑계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질서를 관철시키는 노무현 정권의 ‘고전적인 수법’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가 민중들의 삶을 짓밟아서라고 보장하고자 하는 그 국익은 바로 <초국적 자본의 이익>이며, 농업분야에서는 <초국적 거대곡물기업>의 이익일 뿐이다.

이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던 멕시코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4일 'KBS스페셜'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NA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에서는 FTA 속에서 한 국가가 어떻게 총체적으로 파탄나는지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세계 최초로 미국과 비대칭 FTA를 맺었던 멕시코의 사례는 그야말로 한판의 거대한 사기극이었다. 통계조작을 통한 허위 연구결과 발표, 기만적인 전국순회 공청회, 대대적인 홍보 팜플렛 배포와 TV 광고까지 동원한 여론몰이, 모든 과정의 비공개, 거수기 노릇을 했던 의회의 모습 등…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 체결될 당시의 상황은 현재 한미 FTA의 진행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추진된 FTA로 인해 멕시코 농민 13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에 급증했다. 현재 멕시코에서 ‘국민경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싼타페’와 같은 경제특구 외에는, 멕시코의 도시들은 노점상들로 채워져 있다. 1994년 미국과 NAFTA를 체결한 이후 최소 800만명의 농민들이 도시로 유입되고 농촌은 폐허로 변했다. 옥수수의 도매가격이 지난 11년 간 197% 오른 데 비해, 옥수수로 만드는 주식인 토르티아의 가격은 같은 기간에 698%나 상승했다. 민중들에 대한 대대적인 착취 과정에서 막대한 이윤을 얻는 것은 카길 등의 초국적 거대농산물기업들이다. 이들은 생산부터 유통망까지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과정 전반을 장악하였다. 이렇듯, FTA는 국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대가로 초국적 독점기업의 이윤을 보장해주었다.

그렇다면 한미FTA가 체결되면 한국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할까? 한미 FTA가 체결되면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낙농, 우유, 사과, 배, 오렌지, 밀, 콩, 수산물, 심지어 쌀까지 추가개방에서 제외되는 품목은 단 하나도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쌀개방이 진행될 경우, “쌀 제외 시 농업총생산액(20조원)”은 2조 3천억원 감소할 것이며, “쌀 포함 시 농업총생산액”은 8조 9천억원 감소(총생산액의 45%)할 것이다. 최소 10만 농축산인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농업총생산액의 절반이 감소된다는 것은 농업의 총체적인 붕괴를 의미하며, 이러한 농촌의 몰락 속에서 도농간 격차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또한 농협, 농업정책자금, 유통 분야의 피해도 예상이 되는데, 농협의 경우, 공금고와 정책자금 수신 등 30%에 달하는 주요 수입원이 사라지고 농가목돈마련저축 등 비과세 통장이 사라지게 된다. 또 신용사업의 이익금을 지도사업비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교육, 생산 등 농민의 이익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제약받게 된다. 그리고 카길 등 미국계 유통회사들이 몇 안 되는 우리의 도매법인을 쉽게 인수할 수 있어, 가락동 도매시장 등은 <수입농산물 유통시장>으로 전락하고, 더욱이 유통의 독점을 통한 피해는 농민과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다.

4. 초국적 곡물기업의 이익에만 복무하는 한미FTA


지난, 한칠레 FTA 협상과정, WTO 각료회의 등이 진행되었을 때, 항상 언론을 통해서 흘러나왔던 이야기는 이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정부는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가적 이익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며, 즉 “국가 경쟁력 발전”을 주요한 무기로 해서 대대적인 언론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그것이 국익이 되었든 되지 않았든) 궁극적으로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작 한 마디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농업문제를 분석함으로써, 한미 FTA가 ‘누구의 이익’에 복무할지를 고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국익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허구성 역시도 폭로하고자 한다.

미국에서 한미FTA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미국의 농민과 한국의 농민이 함께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한국의 '한미 FTA 농축수산 비상대책위원회'와 미국의 '전미가족농연합회(NFFC)'는 9일 한미 FTA 1차 본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 건물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 FTA를 저지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한미 FTA의 체결로 한국의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 이득을 보는 것은 카길, 몬산토, 델몬트 등 소수의 초국적 농업기업들일뿐 미국의 소농과 가족농들은 오히려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는 한미FTA가 단순히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한미FTA는 오로지 초국적 농업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오히려 대부분의 농민들의 삶을 파괴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국제식량 시장은 소위 ‘세계 5대 곡물 메이저’로 불리는 미국계 카길과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 프랑스의 드레퓌스, 남미의 붕게, 스위스의 앙드레가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곡물 교역량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세계 농산물 생산지와 미국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곡물을 사들이고, 이를 각국 정부와 기업에 판매해 엄청난 이윤을 거두어들이는 농업 분야의 공룡들인 것이다. 이들 메이저가 손대는 것은 밀 같은 곡물만이 아니다. 씨앗에서부터 농약. 살충제. 가공 식품. 생명공학에 이르기까지 식량과 관련된 분야 전체는 물론 선박 회사나 저장 시설까지 두고 있으며 최근에는 금융 산업까지 진출해 있다.

그중에서도 세계 최대인 미국계 카길은 1998년 말 당시 세계 랭킹 2위였던 곡물 메이저 콘티넨털까지 인수해 세계 곡물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카길은 세계 72개국에 1천개가 넘는 공장을 두고 세계 각국 노동자 10만 명을 부리고 있으며 전세계 1백여 나라와 거래를 하고 있으며, 한국 수입 곡물 시장에서도 60%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식량 자급률이 30% 이하인 우리나라에서 전체 수입 곡물의 60%를 단 하나의 곡물 기업이 공급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인의 밥상이 사실상 카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결국 한미FTA는 이러한 초국적 곡물 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WTO, FTA는 민중의 생존권, 식량통제권을 박탈하고 초국적곡물기업의 손아귀에 민중의 목숨을 맡기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5. 민중의 식량통제권, 건강권을 침해하는 한미FTA


“아이들과 아침식사를 하는 A씨는 불안하다. 밥상에 오른 음식들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된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식품선택에 까다로운 A씨는 생협을 통해 유기농식품을 주문해왔지만, FTA로 농업이 몰락하면서 원하는 만큼 식품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됐다. 오늘은 감자와 두부가 유전자조작이 아닌지 유난히 신경쓰인다. 미국의 끈질긴 요구로 유전자조작식품표시 해당 품목에서 먹을거리들이 하나둘 제외되더니 이젠 표시제 자체가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한미FTA를 통한 농업개방은 농민들의 삶을 파괴한다. 그리고 민중들에 의해서 식량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해 나가고 있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어디서든지 생산하고 구입할 수 있는 권리, 가진 재산에 상관없이 식량을 마음대로 선택하고 먹을 수 있는 권리는 철저하게 박탈될 것이다.

미국의 농축산업자들이 다가올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면, 반대로 한국의 농민들은 다가올 태풍에 보호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맞서야 할 판이다. 이는 결코 농민만의 위기가 아니며, 전국민의 건강과 안전의 위기이다.

우선,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큰 쟁점이 되었던 광우병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의 축산업은 공장식 대량 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동물을 공산품으로 취급한 공장식 대규모 축산업 폐해의 대표적인 사례가 “광우병”이다. 광우병은 소에게 육식사료를 줌으로써 발생하는 병으로, 미국에서는 이미 워싱턴, 텍사스, 그리고 최근 앨라배마에서 발생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한미FTA 개시 전제조건 중의 하나로 광우병 때문에 금지했던 쇠고기 시장을 덜컥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하자마자 일주일 뒤인 3월 13일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세 번째 광우병 소가 발견되었는데도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강행은 안전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 국민을 인간광우병(BSE) 위험에 노출시키는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쇠고기뿐만 아니라, 미국은 식품수출을 쉽게 하기 위해 직접적인 관세 인하와 위생 및 검역조치(SPS) 기준 완화 수단을 사용한다. 각 나라마다 농산물이나 식품을 수입할 때 위생검사와 검역을 거치도록 하고, 그 기준은 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이 미국 농산물을 수출하기 전에 검사하는 절차를 대폭 완화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측은 "한국은 유전자조작과 같은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사용된 옥수수·콩·콩나물·생감자 등에 유전자조작 여부를 표시하는 라벨을 달도록 하고 있다"며 "이는 미국의 유전자조작 식품 수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미국은 세계최대의 GMO(유전자 조작식품)생산국이자 수출국으로서 전세계 GMO 재배면적의 67%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생산되는 콩의 35%, 옥수수의 25%가 GMO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전자조작식품을 전통적인 종자개량식품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콩'이면 '콩'이지 그게 유전자조작을 했건 안 했건 차별하지 말라는 말이다.

유전자조작 식품·유기농 식품 등에 대해 라벨링 제도를 실시하는 것, 광우병을 유발할 위험이 있는 쇠고기 부위나 조류독감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 가금류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을 위해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고려 없이 한미FTA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가공식료품 전체 수입량의 44%를 미국에서 수입할 정도로 한국의 식품에 대한 미국 의존도는 높다. 그런데 사실 미국의 식품산업은 카길과 콘티넨탈이라는 거대 '농식품복합체'가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한미FTA체결은 한국의 식량수급을 소수의 초국적농식품복합체에 더욱 의존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으로 보인다. 농촌은 타격을 입고,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한 식품에 대한 선택권도 위험에 빠진다. 결국 미국정부는 철저히 미국 농식품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6. 한미FTA의 진행방향과 우리의 투쟁의 과제


한미FTA 협상에서 농업분야에 미치는 피해를 살펴보면, 단순히 농민들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문제를 뛰어넘어서 민중의 건강과 식량통제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FTA의 본질은 초국적 자본에게는 무한 이윤과 이윤 확장을 위한 무대를 제공해주고, 농민을 비롯한 민중에게는 빈곤과 식량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가는 것이다. 농업분야뿐만 아니라 한미FTA를 추진함으로써 진정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은 거대한 자본을 통해서 민중들을 착취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초국적 자본이다. 초국적 자본은 민중에게는 끝없는 빈곤을 선물하고 노동권, 여성권, 교육권 등 다양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여전히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세계적인 대세”이며,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해묵은 논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전세계 민중들은  WTO, FTA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민중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시애틀에서 홍콩까지, 전세계 곳곳에서 전세계 민중들의 연대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7월에 한미FTA 2차협상이 진행될 예정이다. 더 이상 눈뜨고 바라볼 수 없는 저들의 폭력에 맞서 거침없는 투쟁을 벌여내야 할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6/06/28 06:04 2006/06/28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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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2호를 발간하며

1호에 이어, 드디어 2호가 발간되었군요! 요즘 홈페이지도 예쁘게 새단장하고 있는데, 그 곳에 3호, 4호 이렇게 뉴스레터가 차곡차곡 쌓여갈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이글이 보내질 지금쯤, 많은 동지들이 아마도 현장활동을 준비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진행하고 있으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많은 방면에서 치열한 고민하면서, 이번 여름을 함께 뜨겁게 살아갔으면 합니다.

2호 Main Voice의 '한미 FTA와 한국 농업의 미래'에서는 초국적 농산물복합체가 주도하는 정세 속에서 전 세계의 농민들과 민중들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구체적인 분석을 담았습니다. 그간 많은 농민분들이 목숨을 던지시면서까지 세계화에 맞서 싸우셨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가 한국 농업을 어떻게 망쳐놓아왔는지에 대한 인식은 충분히 공유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혹자는 이 문제를 '미국 쌀 대 한국 쌀'이라는 식의 민족 대 민족의 대립구도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농업 정세는 민족주의적 대립구도로 일원화하거나 아니면 '신토불이' 식으로 정리한다고 해서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여기서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좀 더 구체적인 분석을 담았습니다.

페미니즘 텀의 '현장활동의 여성주의적 재구성을 위하여'에서는 농활을 비롯한 현장활동에서 여성참가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습니다. 매년 현장활동에서의 여성배제적, 성폭력적 상황이 겉으로 드러나면서 현장활동을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한지 안한지, 현장활동에 공동체의 이름을 걸고 참여해야 하는 것인지 많은 단위에서 수다한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하지만 사실 현장활동 자체만이 독자적으로 문제라기보다는, 또는 농촌사회의 가부장성이 독자적으로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현실의 가부장성이 총체적으로 문제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고민은 비단 ‘현장활동’에만 그칠 수 없습니다. 사실 이 같은 고민은 공동체의 관계가 형성되는 그 때부터 -예컨대 1년 주기로 봤을 때는 ‘새터’를 비롯한 신입생환영회가 되겠지요-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공동체 내부에서의 고민 속에서 올해 ‘현장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결정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 공동체는, 여성들이 마음놓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즐겁고 힘차게 투쟁할 권리, 활동할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전국학생행진(건)의 모토인 ‘평등 - 자유 - 연대’는 비단 일부 남성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니까요.

이번에 첫 선을 보이는 ‘너는 청량음료’ 코너에서는 앞으로 문화, 그리고 문화운동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을 담을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번 독일 월드컵, 여러분은 즐거우셨나요?^^ 물론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월드컵은 단순한 ‘축구’라는 스포츠만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또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붉은 색의 흥분 아래 민중의 붉은 피는 조용히 흐른다.”의 의미에 대해, 함께 진지하게 성찰해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번 2호에서는 처음으로 회원 동지와의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누구를 첫 주자로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첫 인터뷰의 특징을 살려, 행진의 1호 회원이신 경인교대의 ‘지기자(지석연)’ 동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시면서 그간 해 오신 고민들에 대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진 회원 동지들의 삶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가 앞으로도 많이 담길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럼 여러분, 앞으로 3호가 나올 때까지, 열심히 투쟁, 또 투쟁!^^

Posted by 행진

2006/06/28 06:02 2006/06/2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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