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 없는 실험으로
페미니즘을 공동체의 원동력으로 만들자!
0. 들어가며
올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몇 가지 사건들을 떠올려보자. 여자 연예인의 특정 신체 부위를 지칭하는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신종 단어가 유행어처럼 나돌기도 하고, 끔찍한 아동 성폭력을 저지른 가해자에게 내려진 12년이라는 형량이 너무 적다며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기도 했던 일들을 들 수 있겠다. 여성들이 ‘꿀벅지’라는 단어가 성적인 불쾌감을 주기 때문에 성희롱이라고 제기하자 남성들은 ‘초콜릿복근’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런 방식으로 제기하지 않는데 왜 유독 여성의 신체부위를 지칭하는 단어만 성희롱이라고 하냐며 이것은 남성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공격을 해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무엇이 성희롱이냐’에 대한 논쟁이 인터넷 게시판을 뒤덮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한 개그 프로에는 ‘남성인권보장위원회’라는 이름의 코너까지 등장했다. 그동안 여성들이 성차별이라고 제기해왔기 때문에 남성들이 드러낼 수 없었던 애환(?)을 소재로 한 이 코너는 첫 방송에서부터 큰 호응을 얻으며 회를 더 해갈수록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부각시키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아동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사회적으로 성폭력을 차단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법제도를 더욱더 강력하게 바꿔야 한다는 지점에서만 논쟁이 형성되고 있다. 이 사회의 어떠한 구조와 인식지형이 끊임없이 성폭력이 발생하도록 만드는지에 대한 고찰이나 반성은 간데없다. 성폭력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를 선정적으로 드러내며 이런 가해자에게 12년은 너무 적으니 무기징역이나 화학적 거세 등의 외국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만 되고 있다.
이런 이슈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소위 ‘꿀벅지vs초콜릿복근 논쟁’에서 페미니스트들은 ‘꿀벅지’가 왜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단어이고 ‘초콜릿복근’은 어떤 맥락에서 성희롱이라고 불리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못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제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으레 페미니스트들의 억지라고 일축했으며 페미니즘은 역시 여성들만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더욱더 단단히 굳혔다. 어쩌다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드센 여성들의 요구에 밀려 남성의 인권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당당히 외치는 개그맨들이 뜨거운 호응을 받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일까?
2010년 학생회 선거 페미니즘 각론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주체화되는 방식을 살펴보며 여성들이 불만을 느끼는 지점이 어디이고 그러한 불만들이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여대생들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이며, 하기에 지금 대학사회에 필요한 페미니즘은 무엇인지를 담고자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권만을 보장하라는 것이 아니며 남vs여의 구도를 만들어 불평등한 사회에서 여성이 더 많이 가지게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번 학생회 선거를 통해 분명히 말하자. 선거에 임하는 모두가 페미니즘이 이 시대의 보편적인 해방을 만들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권리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 위하여 이 각론이 풍부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 시대분석_ 여성들은 어떻게 주체화되고 있는가?
…현재 대한민국의 20~30대 여자들의 대부분은 ‘일하는 여자’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분야를 막론하고 여자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다양한 고민과 속마음, 남성 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인내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는 여자들만의 문제, 행복한 직장생활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노하우를 담은 책…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 책 소개 中
사회가 남성 중심적으로 구조화되어있기 때문에 여성들이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직장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 이 사회가 일하는 여성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는 것, 그렇다고 일 안하고 집에만 있다고 해서 편한 것도 아니라는 것, 내조의 여왕이 될 것인가 커리어우먼이 될 것인가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병행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회가 정말 불합리하다는 것 등은 거의 모든 여성들의 불만이자 여성 관련 계발서들이 서두에 담는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계발서들이 이에 대해 내놓는 해답은 하나같이 ‘개인의 능력을 키우라’는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성 관련 계발서들이 담고 있는 내용은 옷 잘 입는 여자가 일도 잘 한다거나, 인맥지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립서비스는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라며 상사 대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상전처럼 구는 남자 부하직원 다루는 스킬도 알려준다. 또한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는 방법,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등 개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회는 여성들에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자신만의 전략을 만들라고 하는데, 많은 여성들이 이를 받아들인다. ‘여성’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남성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 열심히 스펙을 쌓지만 결국 대부분의 여성들이 ‘최고의 스펙은 남성’이라는 벽 앞에 좌절한다. 결코 여성들이 덜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사회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좀 더 뛰어난 능력자가 되라고 주문하며 여성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많은 여성들이 현실의 불합리함을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으로서 자기계발을 택한다는 것이다.
경기가 장기 침체로 접어들면서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경제위기를 체감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여성들의 자기계발은 ‘알파걸’과 ‘골드미스’가 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생존 자체를 위한 조건이다. 많은 여성들은 롤모델로 제시되는 여성들의 삶이 능력 있는 몇몇 여성들만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지만, 고생 끝에 합당한 만족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한 줄기 희망을 품고 다시 이를 악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여성들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지, 사회에 일어나야 하는 변화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 것인지는 적극적으로 토론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여성의 취업률이 늘었다는 통계가 발표되고 있는데, 올 2월 대졸 여성의 59.4%가 7월까지 일자리를 구해 2007년 46.4%, 2008년 54.7%에 이어 3년째 취업률 증가세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에 비해 대졸 남성의 경우 취업률이 낮아지고 있다는데, 그럼 정말 여성들이 더 취업 잘 되는 세상이 온 것일까? 주목할 것은 증가하는 퍼센티지가 아니라 일자리의 질이다. 올해 취업한 여성 대졸자 가운데 임금근로자는 15만 2000명이었는데, 이 중 상용직 취업자는 절반 남짓(7만 7000명)에 불과했다. 많은 여성들이 눈높이를 낮춰 임시·일용직으로 취업하기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에 취업률이 올라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계속해서 일자리의 질이 낮아지는 가운데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정부의 기조는 사회서비스시장화정책이나 경력단절여성들의 재취업을 위한 여성새로일하기센터 등에서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성별 분업과 생계를 부양하는 일차적인 의무가 남성에게 있다는 이데올로기는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정부의 정책들은 여성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일하는 여성들의 권리가 보장된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며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적극적인 운동들을 축소시키기도 한다.
대학의 모습은 어떠한가. 학내 페미니즘 운동이 만들어놓은 틀이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면서 페미니즘은 제도로, 여학생들의 편의만을 요구하는 이기주의라는 오해로, 대학생이라면 이미 지키고 있는 기본 에티켓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성폭력이나 성차별이라는 단어가 케케묵은 무언가를 다시 들춰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여자 대학생’은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관계 맺고 자신의 능력대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로 서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강의실에서 여성비하 발언으로 불쾌감을 주는 교수들이 있으며 과/반이나 동아리에서도 성폭력적인 상황들이 사라졌다고 보기 힘들다. 이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공론화할 수 있는 공동의 움직임이 사라졌을 뿐이다. 예를 들어, 여자 연예인의 특정 신체부위를 성애적으로 표현한 단어를 들었을 때 불쾌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사라졌다. 한 여고생이 여성부 게시판에 그런 표현은 성희롱에 해당되니 사용하지 말자고 글을 올린 것에 네티즌들은 성희롱이다 아니다 갑론을박하기도 했지만 많은 여성들이 자신도 불쾌함을 느꼈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이처럼 어떤 문제에 대하여 불만이나 불쾌감을 느낀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밝히고 그것이 개인의 불편함이 아니라는 것을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 대학에 남아있는가 했을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페미니즘은 공동체를 바꾸는 운동으로 인식되었으며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대학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는 무엇을 성폭력이라고 하는지,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떠한 원칙을 가지고 해결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서 공동체 안에서 논쟁을 이끌어내고 구성원들이 직접 반성폭력 학칙을 제정하기도 하며 대학생들의 인식과 문화에 큰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페미니즘이 대안적인 공동체를 위한 원동력으로 인식되지 못한다. 반성폭력 운동의 소중한 성과들이 개별적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축소되거나, 공동체에서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 ‘남성들의 권리와 대치되는 무언가를 요구하고 딴죽 거는 여자들의 투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페미니즘이 논쟁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비생산적인 싸움을 일으키거나 오해만을 낳고 있는 것이다.
여대생으로서 공부를 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몰성적으로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노력이 온전히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불만과 불안감은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해프닝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작년 촛불투쟁 이후 인터넷 상에서 소위 ‘배운 여자’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많은 젊은 여성들이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현안에 대한 의견도 적극적으로 개진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경제위기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해보기도 하고 취업이 잘 안 되는 현실을 한탄하기도 한다. 여성문제건 사회문제건 대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일회성 촛불시위를 기획하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 한다. 적당히 진보적인 개인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여성들에게 이 시대의 대안은 현실에 조응해서 자기계발 열심히 하거나 완전한 일탈을 꿈꾸며 여행을 떠난다든지 소비하는 것 외에는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2. 페미니즘으로! 공동체에서 논쟁과 토론을 재개하자!
여대생들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취업하기 힘들다는 것, 취업이 된다 해도 노력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한 직장이거나 직장 안에서 여러 가지 차별적인 상황과 맞닥뜨리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의 경제위기나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운동’이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개별적으로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의 불만은 인터넷 게시판에서나 이념 없이 특정 사안마다 일어나는 촛불시위에서 휘발성 강한 모습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사회에 대한 불만을 자기만족적으로나마 표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기계발에 몰두하면서 애써 현실을 외면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에 반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불만을 느끼는 지점들에 대하여 운동주체들이 속 시원히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여성들은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취업이 잘 되지 않는 현실, 취업이 된다 해도 사회의 전통적인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와 남성 중심적인 구조가 가져오는 차별들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 여기에 더해 여성의 신체가 성적대상화 되면서 외모를 가꿔야 한다는 압박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여성의 몸을 부각시키는 각종 미디어의 영향 속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가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사회가 왜 여성에게 이런 것들을 강요하게 되었는지 제대로 밝히지 못하면서 남성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성희롱이라는 공격에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개별적으로 해결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집단적으로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불만과 불안감을 설명하고 공동의 실천이 활발히 이루어지기에는 대학사회의 조건이 과거와는 너무 많이 변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 페미니즘 운동이 만들어왔던 많은 것들이 학생들에게는 더 이상 유의미한 고민을 던지지 못한 채 학교 당국의 제도권으로 빨려들어 가거나, 학내에서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 여성들의 이기주의로 받아들여지는 모습, 대학의 문화가 양성평등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기층 공동체에서 기본적인 반성폭력 내규조차 토론되기 어려워지는 대학의 모습과 마주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시금 페미니즘을 ‘공동체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언어’로 만드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고민하는 것이 몇몇 주체들의 몫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논쟁과 토론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며 대학사회에 정치를 복원하기 위한 집단적 저항의 키워드로 페미니즘을 세워내자!
3. 페미니즘이 집단적 저항의 언어가 되기 위하여
대학사회에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할 수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왜 대학사회가 페미니즘으로 재구조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자. 페미니즘을 고민하지 못하는 공동체는 어떤 구성원에게 불합리하거나 폭력적인 상황이 생겨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거나 인지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대학사회는 사회의 구조와 지배적인 문화가 투영되는 공간이기에 사회가 ‘정상’이라고 이야기하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고스란히 받아 안게 되며 그것은 결국 배제되는 사람들을 낳을 수밖에 없게 된다. 페미니즘을 공동체가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연료, 즉 ‘보편적인 윤리’로 만들지 못하면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고려되지 못한 채 남녀의 평등이 관념으로만 남아서 오히려 차별을 은폐하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차이를 고려하지 못하는 공동체에서는 권력을 가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확연히 구분되고,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억압이 될 수도 있고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성적 차이로 인해서 차별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는 공동체(사회)를 바꿔내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끈질긴 실천들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가 분명히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대학생들이 페미니즘을 보편적인 권리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운동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다시금 페미니즘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거기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논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을 공동체의 보편적인 운영 원리로 만들기 위해서 지금 당장 나의, 우리의 공동체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실사하고 분석하여 함께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또한, 반성폭력 운동의 한계를 말했던 것이 이제는 반성폭력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면 구체적으로 공동체의 상황과 구성원들의 인식 양태를 분석하여 지금 시기에 필요한 실천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회 자체가 이것을 추동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사회에서 ‘꿀벅지’와 같은 쟁점이 형성될 때 이를 대중적인 논쟁의 장으로 끌고 나올 주체가 없고 공간이 없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공동체의 페미니즘적 재구성’은 페미니즘이 발언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공간과 주체가 유실되었기 때문에 학생회를 통해 페미니즘을 공동체의 윤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내에서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성폭력 상담소가 아니라 결국에는 공동체가 어떠한 원리로 운영되는가에 달려있다. 대학사회가 페미니즘으로 재구성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논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한데 학생회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1. 반성폭력 운동의 목표를 재설정하자: 공동체에서 논쟁을 다시 시작하자!
그간 대학 페미니즘은 기존의 인식을 깨뜨리는 성정치 담론과 반성폭력 운동의 실천으로 대학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며 발전해왔다.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던 성폭력의 문제를 대학사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발언하며 학내 구성원들과 함께 운동을 만들어 왔던 페미니스트들의 전성기는 학생운동이 수세기에 접어들면서 함께 소멸되어갔다.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반성폭력 규약/학칙은 그 자체만으로 성과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그것이 왜 필요하고 어떤 것들을 담으려고 하는지를 설득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고 그로 인해 구성원들의 기존 사고방식을 깰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과인 것이다. 그런 고민들이 확장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페미니즘이 대학사회에 제시해 왔던 담론과 정책들-예를 들어 반성폭력 학칙이나 여학생 휴게실 등-이 이제 더 이상 대학사회를 변화시키는 대안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단지 학칙이나 제도로서 금지주의적이고 처벌주의적인 방식으로 인식된 것이라고 우리는 평가해왔다.
지금 대학사회에서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공동체의 논쟁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과거 대학사회에서 사람들이 성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성폭력이라고 이름 붙이는 과정은 얼마나 충격적이고 논쟁적이었겠는가. 지금의 문제는 페미니즘을 가지고 아무런 논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은 많은 대학에 성폭력 상담소나 여학생 지원센터 등의 공간이 생겼지만 이것은 반성폭력 운동이 제기했던 문제의식들이 학생사회에 남아서 ‘운동’이 되지 못하고 그것의 형태만 학교의 제도로 편입된 것이다. 학교의 성폭력 상담소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를 징계/재교육하고 피해자를 보호/치유하는 역할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 자체가 대중공간에서의 논의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본래의 문제의식을 더욱더 풍부하게 발전시켰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제도들을 한계적이라고만 규정해버릴 수는 없다. 성폭력 문제의 해결이 제도화된 것은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이 제대로 인식조차 되지 못했던 때에 성폭력을 정의하고 사건 해결의 원칙들을 마련하고 합의하는 것은 당시 반성폭력 운동의 목표였을 것이다. 학칙도 있고 상담소도 학교마다 생긴 현재의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반성폭력 운동의 목표를 새롭게 세우는 것이다.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까?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잘 처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이것 자체가 운동이 될 수 있는 조건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반성폭력 운동은 단지 성폭력 사건이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지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사건을 잘 해결하는 것만도 아니다. 공동체의 어떠한 인식구조가 성폭력을 발생시키는지 분석하는 것이고 이것을 위해서는 학습과 논쟁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과/반/동아리에서 새내기 여학생이 으레 연애의 대상으로 보여 지는 상황들이 우리의 공동체에는 없는지, 대학생들이 연애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떠한지, 성차를 고려하지 않는 공동체의 문화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해보고 실태에 맞는 실천들을 기획해보자. 이런 과정이 없으면 크고 작은 성폭력은 언제나 발생할 것이고 사람들은 어쩌면 그것을 인지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내 주변의 조건을 바꾸는 운동, 공동체에 논쟁을 제기하고 거기에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주체화될 수 있는 반성폭력 운동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현재 반성폭력 운동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3-2. 노동권을 페미니즘의 원리로 재구성하자
우리는 현재 여성들의 불만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들에게서 노동권을 박탈하고, 여성에게 남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권의 박탈이 성별화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는 것은 가정과 일터 모두에서 여성을 착취하는 성별 분업과 가족 이데올로기의 도움 없이는 지속될 수 없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보다 적극적으로 대학사회 안에서 밝혀가자는 것이다. 여성들의 불만 지점이 취업과 외모라고 해서 ‘면접 때 먹히는 메이크업 강좌’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이다. 여성들의 불만이 신자유주의가 규정하는 문제들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면 이것에 대한 우리의 대안은 여성들이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되면서 대학사회 내에 침투해 있는 이데올로기는 대학 간, 계급 간 다양한 형태로 분할되면서 여성이라는 자체만으로 동일성을 형성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여성들만이 가질 수 있는 피해감을 중심으로 전개했던 예전의 페미니즘 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분할되어 있는 지금 시대의 여대생들의 삶에 침투하여 신자유주의가 야기하고 있는 여성발전담론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와 대립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시대의 보편적 권리로서 노동권을 제기하고, 불안정노동이 일반화되는 가운데 그것이 여성들에게 차별이 되어 돌아오는 이유가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이에 대한 집단적인 저항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다 명확히 제기하는 것이 2010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주체화할 수 있는 페미니즘의 핵심이다. 집단적 저항을 위한 여성들의 무기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한 개별적인 불만 표출이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페미니즘으로 재구조화하고 공동의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다.
4. 정책적 제안
4-1. 여성 노동권 적극적으로 발언하자!
여성의 노동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여성에게 일과 가정 모두를 책임져야 한다고 강요하는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폭로하자.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변해왔던 가족의 역사를 분석하며 가족이 내포하는 체제의 모순과 성적 차이에 기반한 차별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왔는지를 보는 것도 지금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할 것이다.
또한 투쟁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에 연대하며 학생사회에 알려내자.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해고가 만연해졌고 여성들은 경제위기의 공격을 가장 먼저 받게 되었다. 기업이 어려워 해고를 선포하면 가장 먼저 해고되어 가정으로 돌려보내지는 것이 여성이지만 전반적으로 노동이 불안정해지면서 여성도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리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여성들은 또다시 임시직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린다. 이렇듯 여성의 노동권이 불안의 악순환 속에 놓여 있음을 발언하며 여성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여성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하며 이것은 타자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상호 동시적인 해방을 향한 ‘연대’로 가능함을 이야기하자.
취업 문제로 자신감을 잃어가는 여성들에게 이러한 현실은 개인의 노력으로 돌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강조점을 찍자. 여성의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어 경제위기를 풀어내는 기획도 시도해볼 수 있다. 학생회에서 단위의 여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고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지 등을 조사하고 모여서 포럼과 같은 형식으로 여성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되는지 현실을 함께 되짚어보는 등의 계기를 통해 ‘취업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노동의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획들을 다양하게 시도해보자.
4-2. 페미니즘 스쿨을 통해 공동체에서 페미니즘을 말하자!
페미니즘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인식 구조를 변화시키는 운동이기 때문에 당위적인 언어만으로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공동체에서 페미니즘을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지금의 공동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먼저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이 중단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렇게 페미니즘을 고민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열고 대중들이 처한 상황과 인식 양태에 맞는 언어와 실천을 발굴하는 것이 현재 학생회의 역할이다. 페미니즘 스쿨과 같은 기획을 통해 공동체의 페미니즘을 진단하고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 단위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드러내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이고 분절적인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학생회에서 단위의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감정을 교류하거나 공동체의 지배적인 문화를 변화시키는 실천 외에도 페미니즘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획도 꼭 필요하다. 페미니즘의 역사나 여성노동권에 대해서 학습할 수 있는 공부방을 기획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전에 기획단을 구성하여 페미니즘으로 주체화될 수 있는 경로를 확장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4-3. 공동체의 반성폭력 자치규약을 재개정하자!
반성폭력 자치규약을 가지고 있는 단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단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규약이 수년간 토론되지 못하여 지금의 상황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규약이 되거나 구성원들에게 그 필요성을 인정받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설문조사를 통해서 여성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성폭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남학우들을 대상으로 기존의 자치규약에서 느끼는 것들이 무엇인지 등을 조사해서 규약을 재개정 해보는 것이 공동체에서 페미니즘을 발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반성폭력 내규는 새터나 현장활동을 떠나기 전에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다면 주체들의 논의로 한정시키지 말고 대중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기획해보자. 현장활동 주체학교를 열어 현장활동에서 왜 페미니즘을 고민해야 하는지 토론해볼 수 있을 것이고, 새터를 떠나기 전에 2학년들을 모아 새내기들에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이유와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토론하는 것도 좋다. 이를 단위의 반성폭력 규약을 만들거나 재개정하는 흐름으로 이어가보자.
4-4. 성폭력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기획해보자!
최근 아동 성폭력 사건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극단적 성폭력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으며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되고 있다. 그러한 논쟁이 가해자 처벌 법안을 강력하게 개정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문제라고 앞서 지적한 바 있다. 학교 근처 자취방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 “성폭력 없는 00동” 캠페인을 기획해보자. 최근 들어 부쩍 젊은 여성이 납치되는 사건이나 대학 근처 자취촌에 강도강간 사건이 많이 보도되고 있는데, 가로등이 없거나 인적이 뜸한 골목길이 여성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설명하는 전단지나 스티커를 만들어 골목마다 붙여놓을 수 있겠다. 학생회가 주민들과 만나서 가로등이 없는 골목에 가로등을 설치하는 문제를 이야기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캠페인의 과정과 결과를 게시하여 단위에 문제의식을 환류시키는 것도 잊지 말자.
이런 사업이 뜬금없이 골목에 전단지를 붙이거나 비/반권의 여성 정책처럼 단지 가로등을 설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 사업을 왜 하는 것인지 설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극단적 성폭력이 왜 발생하는 것이고, 그것이 발생하지 않게 만들려면 사회적으로 여성이 성적 대상화 되는 문제나 폭력의 대상이 되는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겠다.
Posted by 행진